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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기고] “시위자일 가능성 농후”… 경찰 마음 설명서

[경찰청장에게 고함 – 인권경찰의 조건②] 집회 탄압 관련자 책임지고, 손배소 철회 등의 조치 필요   … 중략 … 경찰에게 집회는 그저 ‘범죄’일 뿐이었다 “집회참가자들인지, 일반 시민들인지 여부는 사실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불법행위자는 거의 대부분이 아마 경찰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선 보자마자 ‘야 이 새끼야 길 비켜’ 바로 반말부터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조건 ‘청와대 주변이 내 집이다. 내 집인데 네가 뭔데 막느냐’ 그리고 몸싸움을 시도합니다. ‘너 이름이 뭐야? 내가 소송하겠어.'(…) 보통 이렇게 강력하게 하고 몸싸움을 하고 욕을 하고 단체로 몰려와서, 사복을 입고 있더라도(…) 그럴 경우 시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그래서 그 경우에는 실무적으로 그렇게 차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1주기 집회에 참가해서 도로를 행진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일반교통방해죄라는 죄명으로 기소되었다. 위의 발언은 이날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적법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변호인들이 증인으로 신청한 경찰관의 증언내용이다. 이 증언에는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집회 참가자’가 일반시민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물었지만 경찰은 집회 참가자라고 대답하지 않고 ‘불법행위자’라고 지칭했다. 이 불법행위자들은 반말하고 무조건 몸싸움을 시도하고 소송을 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는 구분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통행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차단당했던 이유들이. 서울 시내에서 시위가 있던 날, 나는 경복궁에서 북쪽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찰이 인도까지 차단하고 있는 곳을 통과해서 버스를 타야 했다. 경찰은 몇몇 사람을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확인하고 통과를 시켜주었다. 그러나 나는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그때는 왜 유독 나만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따라서 조그만 틈을 통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시도하자, 바로 내 앞에서 “저 사람 못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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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깊이 숙인 이철성 청장의 고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깊이 숙인 이철성 청장의 고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성찰적 반성과 책임인식이 결여된 사과를 비판한다.     지난 6월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말하고 일반 집회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수사권 조정과 함께 인권 친화적인 경찰에 대한 주문이 요구되면서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한 경찰의 사과와 책임에 대한 부담은 높아졌다. 하루 앞서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고 유족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뒤늦은 사과가 연이틀 이어졌지만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진심 어린’이란 표현은 했지만 ‘진심’의 마음과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며칠 전인 6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 즉각적인 의견을 피하면서 “수사결과에 따라 유족에게 사과할 수도 있다”던 이철성 경찰청장이 돌연 사과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출입 기자간담회에서 이 청장은 “폭력시위 진압 과정에서 생긴 일이지만 어쨌든 고귀한 생명이 돌아가신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말했다. 16일에도 이 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과정에서 유명 달리한”이라고 표현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폭력시위’ 탓으로 돌린 지난해나 그저 ‘시위과정’이라고 말한 어제나 결국 의미하는 바는 경찰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왜, 무엇을 기대하며 사과를 했는가?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은 있는가? 차벽을 설치하고 공격하듯 쏟아부은 물대포로 집회의 자유를 박탈한 경찰력 행사에 대한 반성은 있는가? 이 청장의 말과 태도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었다. 경찰의 수장으로서 당시 경찰력 행사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었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특히 청장으로 있을 때 벌어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청구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지 않았다. 유족이 겪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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