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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두 개의 장면을 통해 본 ‘선거와 평등’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열렸습니다. 선거는 국민의 뜻이 직접 표현되고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지만, 투표 과정에서 차별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희망법 김재왕, 박한희 변호사가 이번 총선에 참여하며 느낀점과 개선해 갈 방향을 정리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투표참여, 아직 더 싸워야하나 봅니다.

 

글 김재왕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선거에 참여할까요?

우선 선거공보가 다릅니다. 후보자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형 선거공보를 보냅니다. 내용이 점자로 인쇄되어 있지요. 그런데 모든 후보자가 점자형 선거공보를 보내지는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지만, 점자형 선거공보를 보낸 정당은 11개에 불과했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점자형 선거공보

전반적인 투표 과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투표 과정은 공직선거법에 하나하나 규정되어 있습니다. 선거인은 투표소에 가서 신분증으로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갑니다. 기표소에서 기표용구로 기표하고 투표용지를 반으로 접고 기표소를 나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습니다. 저도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어려운 점은 기표입니다. 비밀선거의 원칙에 따라 장애인도 스스로 기표함이 원칙입니다. 같은 기표소 안에 2인 이상이 동시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공직선거법 제157조 제7항). 그리하여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는 시각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를 할 수 없는 선거인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특수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를 제작·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공직선거법 제151조 제8항). 그래서 투표소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투표보조용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장애인투표보조용구 /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블로그

투표보조용구는 반으로 접힌 카드 형태입니다. 앞면에는 기호 또는 성명 등이 점자로 인쇄되어 있고 그 옆에는 네모난 구멍이 나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투표보조용구를 열어 안쪽에 투표용지를 넣고 다시 접으면, 투표용지의 기표란 이 투표보조용구 앞면의 구멍과 맞게 됩니다. 시각장애인이 푸표보조용구의 점자로 기표하고자 하는 후보자의 기호나 성명을 확인하고, 그 옆 구멍 사이에 기표용구를 찍으면 기표용지의 해당 난에 기표가 됩니다.

그런데 투표보조용구 사용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정당 투표용지는 엄청 길었습니다. 투표용지 길이에 맞게 투표보조용구도 길었습니다. 저처럼 촉각이 예민하지 못한 사람은 투표보조용구를 사용해 기표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무효표가 될 수도 있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자에게 기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기표할까요? 공직선거법은 직접 기표 원칙의 예외로서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제157조 제6항 단서). 저는 제 아내와 기표소에 들어가 아내에게 기표를 부탁했습니다. 과연 제 아내는 제 의사대로 기표했을까요? 제 아내는 저와 정치적 의견이 같아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각장애인이 투표보조용구를 이용하여 혼자서 기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기표를 부탁하더라도 그 기표가 잘 되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은 기표 내용을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자 투표나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공식 기표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014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런 상황을 개선하라고 진정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각장애인이 기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직 더 싸워야하나 봅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모습 / 출처 비마이너

 

 

 

불필요한 성별표시로 누군가가 배제되는 일이 없기를

 

글 박한희

 

지난 4월 15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소로 갔습니다재작년 은평구로 이사 온 이후 은평구에서 하는 첫 투표입니다그런데 지금까지 못 보던 투표과정이 있었습니다바로 신분증을 제시하면 선거인명부 목록에서 직원이 확인을 하고 ‘선거인명부대조전표’라는 것을 작성해 주더군요선거인명부 확인 줄을 서기 위한 일종의 대기표’ 같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 전표에 등재번호이름 외에 성별을 체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생년월일주소도 없는데 말이죠. 그리고 제가 제출한 주민등록증을 보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잠시 망설이더군요주민번호 7번째 자리는 ‘1’인데 사진은 여성처럼 보이니 뭐라 체크해야 할지아마 내면의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결국은 여성에 체크해서 저한테 전표를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 전표를 들고 선거인명부를 확인하고 성별은 인 선거인명부에 서명을 하고 투표를 했습니다그렇게 하여 저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주민등록번호선거인명부대조전표선거인명부의 성별이 서로 불일치한 채 이루어졌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성별표기를 하도록 되어 있는 선거인명부대조전표

 

여기까지 읽으시고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나요? 성별이 불일치해도 선거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선거에서 성별을 확인하고 드러내야 할까요무엇 때문에 대조전표에서까지 굳이 성별을 확인하고 체크해야 할까요?

결론을 말하자면 선거에서 성별을 표시하고 확인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선거 시 신분증을 제시하고 선거인명부에 서명하는 것은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그런데 이름주소생년월일만으로도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실제로 선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분증에는 학생증공무원증 등 성별이 아예 기입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성별은 선거에서 불필요한 정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필요한 성별이 트랜스젠더에게는 참정권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법적 성별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는 투표를 위해 성별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때로는 직원들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이로 인해 많은 트랜스젠더가 투표를 포기합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트랜스젠더 참여자 90명 중 60명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절차에 부담을 느낀다 했고그 중 22명이 이러한 부담으로 투표참여를 포기했다고 응답했습니다전체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24%가 성별 표시로 인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입니다아마 16년 만에 투표율 60%의 벽을 넘었다는 이번 총선에서도 어딘가의 트랜스젠더들은 늘 그러했듯 투표를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성별표시가 차별임을 인정하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투표를 위한 신원확인 과정에서 본인의 성별표현과 선거인명부상 성별이 상이한 것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중앙선관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이는 지난 3월 3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진정을 제기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요청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선거인명부에 성별표시는 「공직선거법」 제37조에 규정되어 있기에 결국은 법을 바꿔야 합니다또한 이분법적인 성별을 표시하는 주민등록번호 역시 임의번호로 바뀌어야 합니다그렇게 할 때 비로소 트랜스젠더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평등한 참정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 합니다그러나 진정으로 선거가 축제가 되려면 누구나가 권리를 존중받고 또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만 합니다앞으로 2년 뒤에 이루어질 제20대 대선과8회 지방선거에서는 더 이상 이와 같이 불필요한 성별표시로 인해 누군가가 배제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포스터. 하지만 누구나에게나 선거 참여의 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