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름 실무수습 참여 후기

2020 여름 실무수습 참여 후기

7월 6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이한결, 이민경, 김민수 세 명의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희망법  ‘2020 여름 실무수습’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실무수습도 강의와 과제 그리고 여러 인권옹호 현장을 방문해야 하는 등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참가자들 모두 내내 밝은 표정으로 성실하게 참여해 주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출퇴근이 쉽지 않았을테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있었을텐데, 4주 동안 희망법 사무실을 밝은 기운으로 채워주어서 세 분에게 참 감사했습니다.
학생들이 이번 여름 실무수습에 참가하며 느낀 점들을 정리한 후기를 소개합니다. 꿈을 향한 길에 값진 경험을 했다는 소감에 희망법도 무척 기쁩니다. 희망법도 여러분에게서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넓은 곳에서 반갑게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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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이라서 경험할 수 있었던 특별함

 

이 한 결

 

희망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학년 때 학교로 한가람 변호사님이 특강을 오셨을 때입니다. 공익변호사의 삶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셨는데, 저렇게까지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것은 어떤 걸까 놀랍고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를 계기로 희망법에 관심을 가지고 가끔 홈페이지에서 변론기를 읽어보며 소식을 접해오던 중 실무수습 모집 공고를 보고 용기를 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을 통해 공익인권 사안에 대해 더 배워보고 싶었고, 공익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순식간에 4주가 지나 실무수습이 끝난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바랐던 것은 거의 다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우선, 실무수습 기간 동안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희망법의 변호사님들이 집회의 자유, SOGI인권, 차별금지법, 법원개혁 등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주제로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셨고, 모두 다른 곳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소중한 강의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법’이라고만 생각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해 조혜인 변호사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 차별금지법으로 달라지는 점 등이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느끼며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총 3차례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각각 사안마다 관련 법리를 깊게 분석해서 나름대로의 법적 논리를 구성해본 것은 단순히 다수설·판례를 외워 온 지금까지의 시험공부보다 더 큰 배움이 되었습니다. 변호사님들은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시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바리바리 챙겨주신 공부자료도 감사합니다.
또한, 책상 앞 공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외부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가 본 재판 방청에서는 양측의 날 선 공방에 긴장했습니다. 아주대 로스쿨이 3학년 2학기 전공필수과목에서 F학점을 부여해 졸업을 막은 것이 변호사 시험 합격률 조정을 위해 이루어진 위헌 위법행위임을 주장하며 학위 수여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이었는데,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시험 점수에만 주목하는 판사에게 답답한 마음이 드는 한편,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법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방청을 가서 살면서 처음으로 눈앞에서 본 혐오세력에 기겁했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민변 소수자위원회 월례회의에서는 장애인활동지원법 위헌심판에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변호사님의 생생한 후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주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입니다. ‘생각’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여겨 온 제게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인 동시에 제가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 무리 속에서 리플렛을 들고 서서 내가 어쩌다 이러고 있지 싶기도 했으나 또 의외로 그렇게 별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게 되니 더 절절한 울림도 느껴졌고, 무엇보다 제게 이번 기자회견은 인권 관련해서 강의를 통해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외부로 의견을 발산하는 능동적인 활동에 처음으로 참여해 본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그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고, 일상에서도 제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 조금 덜 주저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곳이 아닌 희망법이라서 경험할 수 있었던 특별함도 있었습니다. 희망법 실무수습에서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닌 진행 중인 사건을 과제로 받게 되는데, 실제 사건이라 생각하니 더 긴장되고 앞으로의 결과가 궁금해지며 과제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었기에 겪을 수 있었던 놀라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동과제는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집회를 일괄 금지한 조례에 대한 헌법소원의 청구이유보충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과제를 완성하고 며칠 후 헌법소원 대리인단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우리 실무수습생들이 이미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법적 쟁점들에 대해서 실제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 토론하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회의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마치 제가 대리인단의 일원이 된 것 같았으며, 서로 작성할 파트를 나눌 때 사다리타기를 하자고 하거나 영어 논문을 기피하는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도 지금과 크게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업과 인권 팀에서 받은 개인 과제는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의 답변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청주방송에서 14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하고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PD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한 대책위원회에 대해 회사 측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억대의 배상을 청구했고, 이를 빌미로 진상조사 결과를 거부하고 합의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회사 측의 청구가 시민사회의 의견 표명과 비판 행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이므로 각하되어야 한다는 본안전 항변과, 문제 된 광고가 공공성과 진실성을 갖추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본안에 대한 항변으로 답변서를 구성했습니다. 서면을 완성하고 제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검토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회사 측이 진상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고 대책위원회와 최종 합의를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고 이재학PD의 명예를 회복하고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개선하기로 했으며, 대책위원회에 제기했던 소송도 취하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답변서를 제출할 필요는 없겠지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분쟁이 해결된 것입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 중 진실성 부분을 작성하며 사건을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고, 관련 자료를 보다가 너무 끔찍해서 울었을 정도로 과제에 이입했었는데, 과제를 끝낸 순간에 그런 소식을 접하니 마치 제가 실제로 맡은 사건이 해결된 것 같았습니다. 이때 느꼈던 허무함과 기쁨이 뒤섞인 강렬한 감정은 앞으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방학 실무수습으로 희망법을 고른 것은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희망법이 로스쿨 실무수습에 신경을 많이 써준다는 얘기를 들어서 기대치가 조금 높았었는데, 높았던 기대 그 이상을 경험하고 갑니다. 희망법에서의 시간을 바탕으로 제가 로스쿨에 입학하며 그렸던 미래인 영리 활동과 공익 활동을 병행하는 변호사로서의 진로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꼭 공익 분야가 아닌 어느 곳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희망법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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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기회

 

이 민 경

 

희망법에서의 한 달이 지나고 벌써 팔월이 되었다는 것이 싱숭생숭해집니다.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건물을 찾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실무수습이 끝날 때는 엘리베이터 공사가 완성될까 했는데 결국 공사가 끝난 엘리베이터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희망법에서의 교육과 재판 방청을 통해 인권법에 대한 소양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님들의 집회의 자유, 성소수자 인권, 소송실무, 장애인권, 직장 내 괴롭힘, 차별금지법, 법원 개혁 교육을 1, 2주에 걸쳐 들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현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관련 법이 있으며 그 법이 무슨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권법교육뿐만 아니라 서울행정법원, 수원지방법원, 수원고등법원으로 재판방청을 다니며 양 측의 입장을 모두 접할 수 있었고, 실제 당사자분도 만나뵙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문서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표현하는지 보았습니다.
법률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 국회 토론회,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앞 기자회견에 참여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의 벽을 직접 보고 인권운동가로서의 길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한 달의 실무수습 시간은 끝났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항상 희망법을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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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과 법률가

 

 김 민 수

 

많은 방황 끝에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법에 대해—혹은 법률가라는 직업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지 않으려 애써왔던 것 같습니다. 법이라는 수단이 때론 소수자의 무기가 되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엔 체제를 성실히 수호하는 데에 쓰이기 마련인데, 운동이 언젠가 법 너머의 세상을 상상할 때 법의 언어를, 그러니까 강자의 논리를 체화한 스스로가 운동의 걸림돌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변절자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희망법 실무수습에 지원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인권변호사 단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경험해본다면 이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자신의 현장에서 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들에 대한 어떤 부채감과, 그처럼 삶을 바칠 용기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어떤 질투심, 그리고 로스쿨로 도망친 스스로에 대한 어떤 수치심을 껴안고 서울혁신파크를 향했습니다.
실무수습 지원서를 쓰면서도 고민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4주라는 긴 실무수습 기간, 로스쿨 한 학기를 겨우 마친 스스로의 미숙함, 코로나로 인해 뒤숭숭한 시국 같은.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걱정이라면 바꾸면 되고, 바꿀 수 없는 걱정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던가요. 4주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오히려 한 달쯤 더 하지 못한 게 아쉬웠고, 코로나로 재판이 밀리는 바람에 통상 법원 휴정기인 7월에도 재판 방청을 잔뜩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과제 수행에 필요한 법학 지식은 내부교육에 더해 추가적으로 리서치를 하는 것으로 채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우인 걱정들이었죠.
내부교육에서는 집회의 자유, SOGI인권, 소송실무, 장애인권, 직장 내 괴롭힘, 차별금지법, 법원 개혁 등의 주제에 대해 상세히 배울 수 있었고, 세 번의 재판 방청에서는 배운 내용이 법정에서의 공방에서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틀을 연달아 수원지법에 간 것도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은 여전히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틈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변호사님들의 모습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역시나 과제를 수행하면서였습니다. 집회의 자유, 직장 내 괴롭힘, SOGI인권과 관련된 공동과제 두 개와 개별과제 하나를 배부받았는데, 상대방의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뛰어난 실무수습 동기들과 토론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되돌아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 사건 모두 현재 진행되고 있던 소송이었어서 텍스트에 박제된 판례 문구를 대할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교과서를 뒤적이고 판례를 검색했던 것 같습니다.
개별과제를 마치고 강평하던 중, 한가람 변호사님은 이런 지적을 하셨습니다. 변호사가 운동을 설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만이자 착각이라고, 운동이 먼저 앞서나간 다음 뒤에 남겨진 실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변호사의 신분은 조선시대로 치면 기껏해야 중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스스로의 신분을 망각하지 말라고. 제가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면서 했던 그 모든 걱정들은 사실 무의미했습니다. 운동이 변호사에게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면, 그때 그저 충실히 자문하고 소송을 대리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4주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스크 때문에 김이 서리는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채 읽지 못한 서면을 부랴부랴 읽던 출근길의 버스, 저 멀리 북한산 자락이 보이는 창문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던 여정원 구내식당, 가끔 밀접접촉자가 나오면 폐쇄될까 걱정되던 미래청 건물, 그리고 서로 멀찍이 앉아 과자를 하나씩 까먹으며 과제를 토론하던 희망법 사무실까지. 제 일상에 잠시 스며들었던 풍경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는 건, 아마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희망법으로부터 저를 충분히 거리두게 하지 못했던 때문이겠지요.
다시 없을 기회를 주신 희망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희망법에서 배운, 사회운동 속에서 변호사가 가져야 할 자세를 항상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