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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 2017

[오마이뉴스] 트랜스젠더 하면 하리수만 생각나는 분들에게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②] 트랜스젠더 인권변호사 박한희   … 중략 …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공대에 입학했다. 남자의 모습이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이번에도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점점 남자로 ‘연기’하며 살기 힘들었다. 변호사 박한희씨 이야기다. “남자 정장을 입고 회사생활을 2년 하니까 생활하는 거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 둘째로는 내가 혹시라도 회사에서 아우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본인 동의 없이 밝히는 것)을 당해서 어떤 불이익을 겪어도 사기업에선 잘리면 그만이니까 전문 자격증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왕 전문직 공부할 거면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찾아보자 싶었고 정신과 의사랑 변호사 두 가지를 생각하다가 의대는 위계도 심하고 변호사가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로스쿨을 택했죠. 성소수자들 중에 저 같은 이유로 로스쿨에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인터뷰 당시 한희는 변호사시험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 로스쿨 졸업생 신분이었다. 지금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트랜스젠더의 일자리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생각해보라. 크로스드레서(사회적으로 다른 성별이 입는 옷을 착용하는 행위)가 아닌 남성이 매일 치마를 입고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출근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부치(Butch, 복장·말투·몸짓 등에서 소위 남성적인 방식으로 성별 표현을 하고 이를 편안하게 느끼는 레즈비언)가 아닌 여성이 짧은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해야 한다면? 게다가 볼일을 볼 때마다 남자 화장실로 가야 한다면 그의 심정이 어떨까. 한희는 트랜스젠더들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화장실 이용과 복장 규정이라고 했다. 또한 트랜스젠더들은 구직 과정에서부터 차별을 겪는다. 트랜지션(성전환 시술이나 수술을 받는 것)을 한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바뀌지 않는 한 채용과정에서 ‘왜 주민등록번호와 생김새가 다르냐’며 차별받고, 결국 탈락한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신분증이 필요 없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요. 트랜스여성 중에 유흥업 종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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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터괴롭힘 판례 연재] 4편, 내부고발자 괴롭히기

어느 내부고발자의 30년간의 싸움     아주 특별한 정년퇴임   2006년 가을 K씨의 조촐한 정년퇴임식이 열렸습니다. 퇴근시간인 5시 30분에 회사 앞마당에서 후배 직원들과 몇몇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간단한 인사가 오갔습니다. 수수한 꽃다발을 받아든 K씨는 수줍게 웃었습니다. “퇴직을 하려니 쓸쓸하기도 하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내일부터는 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그의 짧은 소감이었습니다.   K씨는 대학 재학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과 동시에 ‘간부후보생’으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토나미운수에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입사 4년 만에 그는 회사의 골칫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토나미운수를 포함한 대형 운수회사들이 고액의 운임 유지와 상호간에 고객유치 경쟁금지 등을 불법적으로 담합하여 왔다는 사실을 언론사에 고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회사가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부고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당했고, 고발을 한 직후 상사를 찾아가 자신이 고발했음을 밝혔습니다.     풀뽑기, 설거지 그리고 이불정리   내부고발 후 인사부서장은 그에게 한 일주일 정도 ‘구 교육연수원’에서 근무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K씨는 회사가 조용해질 때까지라고 잠시 떠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이 30년간의 싸움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그는 연수원 2층 작은 방에서 혼자 근무하면서 여름이면 풀을 뽑고, 연수생용 이불을 정리하고, 식당 설거지도 했습니다. 겨울이면 연수원 마당의 눈을 쓸었습니다. ‘구 교육연수원’이 노후해 문을 닫자 타부서 이동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인사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그는 다시 ‘신 교육연구원’으로 이동해 비슷한 일을 이어갔습니다.   회사는 그에게 수차례 퇴직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에게는 물론 형과 어머니를 찾아가 사직을 권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협박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끝까지 그의 싸움을 지지했습니다. 그 30년간 당연히 승진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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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구성원인사] 김두나 변호사가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6월부터 희망법 기업과인권팀에서 활동을 시작한 김두나 입니다.     희망법에 출근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새로운 일과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속 깊고 다정한 동료들의 보살핌 덕분에 무사히 한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희망법을 처음 만났습니다. 여러 인권단체들이 함께하는 연대활동에서 만난 희망법 변호사들은 제가 생각했던 법조인들과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었어요. 사안 대응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하는 단체의 활동을 존중하며 인권운동 내 법조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당시 인권운동에서 법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저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어요.   법학 공부를 하는 동안 희망법에서 실무수습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희망법의 활동이 구석구석 궁금했어요. 희망법 구성원들이 차별적 법제도를 바꿔가기 위해 치열하게 활동하고 동료들과 활동의 고민과 일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희망법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 희망법에서 변호사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막상 지원하려니 제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운 좋게도 희망법의 일원이 될 기회가 주어져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희망법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한 마음에 타로 상담을 받았습니다. 타로 카드는 제가 희망법에서 ‘함께 성장할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희망법에서 한 달을 지내보니 카드의 예언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앞으로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하지만 든든한 동료들을 믿고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희망법과 저의 성장을 지켜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김두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