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하계실무수습 후기 3편] 가장 큰 가르침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 보기

[2017 하계실무수습 후기 3편] 가장 큰 가르침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 보기

송영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7월 17일, 과제를 받다

 

1차 개별과제와 1차 공통과제를 마치고 숨을 돌리는 주말을 보냈습니다. 퀴어퍼레이드의 흥겨움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채 7월 17일 희망법에 출근했습니다. 2차 개별과제 안내메일이 하나하나 도착해서 총 세 개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4시가 되고 세 분 변호사님이 차례로 와서 과제를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들은 세 개의 과제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수행하는 것이 2차 개별과제였습니다. 가장 먼저 장애인의 선거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 작성 과제를 최현정 변호사님이 설명했습니다.

이 과제는 지난 대통령선거 투표일 당일 뇌병변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보조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하려고 기표소에 입장하고자 할 때에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참관인과 함께 기표소에 입장할 것을 명령하면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기표소 입장을 제지한 행위에 관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사건을 설명 받았을 때에는 사실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변호사님께 되물었습니다. 투표소에 투표사무원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인지, 활동보조인이 기표소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제지하거나 참관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한 행위를 제지한 것인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참관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강제하는 것이 장애인 당사자의 투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과제들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처음 설명을 들은 이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한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장애인의 선거에는 당연히 참관인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매우 짧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장애인 당사자임에도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고, 그것은 그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송을 사건의 당사자의 입장에서 깊게 생각해보며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4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의 장애인참정권 침해’에 대하여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7월 19일 초안 제출

 

이 과제는 다른 개별과제들과는 다르게 초안을 이틀 후 19일까지 제출해야 했습니다. 사실관계는 뇌병변 장애인이 활동보조인과 단 둘이서 기표소에 입장하려는 행위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거절한 것이었고, 그 근거가 된 법률규정은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이었습니다. 이 법률조항은”시각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통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조항을 해석적용한 대법원의 판례는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판례에서는 가족의 경우에는 1인이 특수한 신뢰관계가 인정되기 때문에 가족 1인만을 동반하여 기표소에 들어갈 수 있지만,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2인이 기표소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공직선거법 제157조 후단을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이와 같은 사실관계와 판례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서면을 완성해야 하는 시기는 빠듯했습니다. 작성해야 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서는 서면의 샘플이 많지 않았습니다. 헌법소송법의 내용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7월 18일과 19일은 정신 없이 자료를 찾고 읽고 서면을 썼습니다. 다행히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진행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서면이 인터넷 상에 공개돼있었습니다. 그것을 참고하여서 내용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한 소원과 일을 나누어서, 저는 적법성 요건에 대해서, 소원은 본안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서면을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나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소원과 저는 당사자는 헌법재판소에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라며 당사자의 입장에서 말하기를 많이 상상했습니다.

헌법소원심판의 적법성 요건에 대해서 서면을 쓰는 것은 다소 기계적인 것이고 간단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가장 우선 적법성 심사의 단계를 말하기 이전에 심판대상을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지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의 제지행위는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제지의 근거로 사용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후단에 대하여서는 법령헌법소원으로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법령이 아니라면 이 선거관리워원회 직원이 제시한 선거관리위원회 업무지침을 행정규칙으로 보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 기본권침해성이나 보충성의 요건도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적법성 요건의 판단 역시 단순하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첨예한 법리가 대립하는 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월 19일 변호인단과의 만남

 

7월 19일 오후 4시에 서면 초안을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많이 부족한 17페이지 가량의 서면을 냈습니다. 그리고 오후 6시에 민변 사무처에서 진행된 소수자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10분 정도의 소수자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이 계셨고 그 자리에서는 소수자위원회 소속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이 사건 소송의 대리인단이 작성한 서면의 초안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틀의 빠듯한 시간동안에 서면 초안을 작성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변호인단의 서면을 읽기 전에 먼저 서면을 작성하고 고민해보라는 배려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 변호인단이 작성한 서면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우리가 작성한 서면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면을 작성하면서 당사자인 청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서면이 소송에 쓰인다는 생각을 생생하게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적법성 요건에 대해서는 변호인단은 실제 이 사건이 각하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면을 작성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각하는 변호사의 최대 치욕이라는 뼈있는 농담을 들으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인단의 서면은 실제 법률가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서면이 헌법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변호인단의 서면은 이 사건 심판대상이 장애인에게 차별이 된다는 것은 헌법재판관에게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득하려고 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외사례에 대해서 광범위한 연구가 있어서, 그렇게 바쁜 일상에서 어떻게 이 많은 해외사례를 찾았는지 감탄이 들었습니다. 서면을 먼저 작성하고, 그것을 실제 변호인단이 작성한 서면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회의에 참석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것 역시 실무수습생으로서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법률조항인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에 대해서 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의 다양한 유형에 대한 고려가 없이 장애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에 문제가 있는 조항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을 통해 기표가 자신의 의사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투표참관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외부적으로 담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장애적 상황에 대해서만 투표참관인이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규정해야지, 모든 기표가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투표참관인이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규정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을 변호인단에 공유했을 때에 변호인단은 매우 유심히 들어주면서 아주 중요한 생각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7월 21일 최종과제 제출

 

7월 20일에 출근한 이후에는 1차로 제출한 서면에 대해서 강평을 들었습니다. 강평을 맡은 최현정 변호사님은 정말 자세하고 꼼꼼하게 서면을 검토해주셨습니다. 중간중간에는 변호사시험을 위한 요령이나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어느 하나 허투로 들을 수 없고 수험과 실무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이었습니다.

이제 과제는 7월 21일까지 최종적으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변호인단의 회의에서 공유된 문제들을 우리 나름대로 해결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어렵고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청구의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공직선거법 규정의 경우 청구기간 도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것까지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 서면에 드러난 명확한 오류들을 수정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다시 소원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자료를 찾아서 제공한다면 변호인단이 이 사건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자료를 찾는데 열중했습니다. 주말 내내 자료를 찾던 중 선거권에 대한 법령헌법소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적법성 요건 판단에 있어서 독특한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을 소개하는 논문을 찾았습니다. 이 논문에서 선거권에 대한 법령헌법소원은 장래의 선거권에 대한 판단이므로 청구기간의 도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내용을 포함시켜서 7월 21일에 과제를 제출했습니다. 22일에는 최현정 변호사님이 초안에 대한 강평과 마찬가지로 세심한 강평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청구기간 도과 문제에 대한 판례가 변호인단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정말 고맙고 보람찼습니다. 함께 과제를 한 소원이 생각한, 활동보조인을 이용해 기표하고자 하는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에 비해 차별 받기 때문에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논리 역시 더욱 고민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8월 4일 헌법소원심판청구

 

7월 28일에 4주간의 희망법 실무수습을 마쳤습니다. 바쁘게 보냈던 시간을 정리하면서 학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던 때에 페이스북에서 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장애인 문제를 다루는 언론, <비마이너>에서 “장애인의 비밀투표 침해하는 선거법, 헌법소원청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만났습니다. 기사에는 이 과제를 지도해주신 김재왕 변호사님의 모습이 보였고, 과제를 진행하는 내내 상상했던 청구인도 사진으로 보였습니다. 이 사건이 진짜 헌법재판소에 갔구나, 내가 작성한 과제가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과제를 받았을 때에 한참을 과제를 되물었던 제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이 기사를 접하는 많은 사람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의 몇몇은 제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동일하게 느낄 것이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장애인을 향해 서슬퍼렇게 계속 질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과제를 만나지 않았으면 저도 그 많은 사람의 편에 서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니까요. 이 과제는 제게 많은 가르침을 줬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가르침은 차별 당한 그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차별과 혐오의, 크고 정교한 산이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장애인 변호사로서 살아가면서 이 가르침 하나만은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