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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소식] 에버랜드의 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는 장애인 차별

희망법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에버랜드에서 ‘T-EXPRESS’ 등의 탑승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을 대리하여 손해배상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탑승 제한을 규정한 가이드북의 시정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지난 11일 법원은 희망법의 주장을 받아들여, 에버랜드의 운영사인 삼성물산 주식회사에게 시각장애인 당사자에게 각 200만원을 지급하고,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가이드북의 문구를 삭제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11. 선고 2015가합553445 판결).

 

 

○ 에버랜드의 시각장애인 탑승거부

 

시각장애인 원고들은 2015년 5월, 자유이용권을 구매하고 비장애인 동반자와 함께 에버랜드에서 T-EXPRESS 등을 타려고 하다가 제지당하였습니다. 위와 같이 에버랜드 직원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하여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한 것은 에버랜드 내 놀이기구 이용과 관련한 안전수칙 및 탑승제한규정 등을 정한 ‘어트랙션 안전 가이드북’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위 가이드북의 내용에 따르면 에버랜드는 스릴 레벨이 높거나 탑승자의 운전이 필요한 놀이기구 7종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 에버랜드의 주장 – 안전상 이유

 

에버랜드는 시각장애인에게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이용을 제한한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에버랜드는 시각장애인들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타고 내릴 때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며,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탈출 및 구조의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놀이기구들이 모두 고속주행, 높은 고도에서의 낙하, 360도 회전, 예측할 수 없는 회전운동, 다른 놀이기구와의 충돌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어서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상황인지 및 반사적 방어행동의 속도가 느린 시각장애인들에게 놀이기구 탑승 중 더 큰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 시각장애인에게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더 큰가 – 에버랜드에서의 현장검증

 

시각장애인에게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크다는 에버랜드 주장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버랜드는 이 사건 놀이기구가 시각장애인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하는 동영상을 제작하여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희망법과 에버랜드는 위험 여부에 대하여 팽팽히 맞섰고, 결국 재판부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안전사고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에버랜드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하였습니다. 검증에 참가한 시각장애인들은 희망법의 주장과 같이 별다른 이상 없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었고, 비상탈출 과정에서도 정상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은 탑승자가 안전장치에 의해 좌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운행되는 구조로 정상적인 시각이 존재하여도 운행도중 탑승자가 취할 수 있는 움직임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시각장애인에게만 특별히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고 보이지 않으며, 설령 시각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놀이기구 승하차시나 비상상황에서 구조가 필요한 경우에 일부 더 큰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어려움은 에버랜드에서 운행하는 놀이기구들 44종 모두에 있어 마찬가지라 할 것이고, 이 사건 놀이기구들 7종에 대하여만 시각장애인들의 이용을 제한할 만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이 상존하는 놀이기구를 운영하는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존재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이 허용된다고 하여 그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피고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 시각장애인이 더 많은 충격을 받는가 – 놀이기구 탑승시의 충격 정도 감정

 

현장검증 결과가 불리하자 에버랜드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일한 사람이 이 사건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받는 충격의 정도를 시각을 차단하였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측정하고 비교하는 감정을 신청하였습니다. 희망법은 비장애인도 눈 감고 타는 경우가 있다며 감정은 불필요하다고 하였지만, 재판부는 감정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3개월이 걸렸습니다. 감정 결과, 희망법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운행 중 탑승자가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상태와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신체에 받는 물리력(중력가속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 그래도 시각장애인에게 보호자가 필요한가

 

검증과 감정 모두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에버랜드는 가이드북을 수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수정안은 성인인 비장애인 보호자가 있는 경우에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바꾸어 말해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여전히 이 사건 놀이기구에 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희망법은 이 사건 놀이기구들의 위험 정도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차이가 없으므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어떠한 탑승 제한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에버랜드의 수정안은 ①성인인 시각장애인이 미성년인 비장애인과 동행한 경우, ②시각장애인이 저시력인 시각장애인과 동행한 경우, ③비장애인과 동행한 시각장애인이 혼자 탑승하려는 경우에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그 이용에 따른 위험 정도에 차이가 없는 이 사건 놀이기구들에 대하여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직접 운전이 요구되는 ‘범퍼카’에 대하여는 시각장애인이 동반자와 함께하는 경우에 탑승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하였습니다.

 

 

○ 안전사고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

 

 

재판 결과를 알리는 기사 밑에는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를 타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입니다. 에버랜드의 주장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법은 안전사고의 책임은 놀이기구 탑승을 결정한 시각장애인이 진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장비를 착용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갖추었다면 누구나 놀이기구를 안전하게 탈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시각장애인에게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놀이기구 탑승 여부를 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에버랜드가 이런 설명을 충분히 하였음에도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 탑승을 결정하고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시각장애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 장애인에 대한 편견 극복하기 – ‘보호’에서 ‘존중’으로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어쩌면 에버랜드의 탑승제한도 장애인을 ‘보호’하겠다고 한 것일지 모릅니다. 소송 마지막까지 에버랜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보호자’가 필요하다며, 그 시각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같이 살아가는 동등한 주체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보호’의 시선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꾸는 일, 희망법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에서 시각장애인과 동행한 이들을 ‘보호자’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쓴 판결문에서 변화의 희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