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희망법 창립기념 좌담회 ‘공익인권법 운동의 나아갈 길’ 녹취록

※ 지난 4월 9일 희망법 창립행사 ‘희망심는날’에서는 사전마당으로서 사회자와 여러 패널을 모시고 조언과 격려를 듣는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이 날의 ‘공익인권법 운동의 나아갈 길’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아래와 같이 옮기오니 관심 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덕진 : 안녕하세요. 저는 영광스럽게도 희망법의 창립행사 특별좌담회의 사회를 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입니다.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수다를 떨 수밖에 없는데요. 희망을만드는법, 아직 한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 거에요?(웃음) 6시반, 7시에 하는 창립행사에 이렇게 많은 분이 온 것은 요 근래에 처음 봅니다. 변호사님들 당연히 많이 오시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오시고, 민변에서도 오셨는데, 특히 인권활동가들이 많이 왔어요. 

인권활동가들이 원래 변호사님들이 하는 행사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많이 오신 것을 보니, 희망법에 기대하는 것이 많고, 희망법에 많은 것을 요구하고 떼를 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축하 말씀을 먼저 드리고요, 맛있게 식사하시면서 저희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좌담회를 지금 진행하려고 하니 여러분은 편안하게 수다 떠는 거 보신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자리 함께하신 분들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인권운동진영에서는 이름만 대면 다 아시는 내로라 하는 분들입니다만, 오늘 가족·친지 분들도 많이 오셨고 평상시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도 많이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소개해서 올리겠습니다.

제 옆에 계신 분은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이십니다. 류은숙 활동가는 저서도 많으시고, 문헌연구 뿐만 아니라 현장활동에 있어서도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 분이 하자는 대로 하면 인권운동판에서 뭐… 큰 지장이 없습니다. 크게 욕을 안 먹고.. 이 분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되는, 그런 선배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이 분은… 정체성이 좀 애매합니다. (좌중 웃음) 이 분은 글을 쓸 때마다 자기 소속을 달리 하십니다. 어떤 때는 강사라고 쓰시고, 어떤 때는 연구원으로 쓰시고..  다방면에 해박하시고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같은 명저들을 많이 남기신 엄기호 선생님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은, 희망법 분들께서는 희망법을 ‘공감 투’라고 말하면 싫어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아직도 인권운동 한다 그러면 인권운동사랑방이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어느 때까지는 ‘공감 투’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공감 여러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신생 라이벌업체를 정탐하러 오시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님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요즘 인권 관련해서 법학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다루고, 트위터에서는 팔로워를 늘리는데 능통하신 숙대 법대 홍성수 교수님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행사 사회를 많이 봤는데요, 볼 때마다 많이 떨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떨리는데요. 희망법 멤버들의 가족들도 와 계시고 계셔서 많이 떨립니다. 저는 나름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자화자찬을 해왔는데, 인권 이슈가 생겼을 때는 저를 안 부르고 이런 행사가 있을 때 꼭 저를 부르십니다. 이런 존재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좌담회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희망을만드는법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이라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에게 오늘 던져진 주제가 ‘공익인권법 운동의 나아갈 길’입니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던져주면서 저한테 ‘사회자의 역량을 발휘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하시고 자유롭고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라,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이 말 많은 네 명의 말을 잘 끊으면서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좌중 웃음) 이 점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좌담회 진행하는 동안, 먼저 나누어드린  희망법 리플렛을 보시면 후원회원 가입신청서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본인들이 잘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저처럼 꼭 쓰셔가지고, 이렇게 절취선을 잘라서 틈나는 대로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김동현, 서선영, 류민희는 집에 데려가실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사진은 후원회원 가입신청서 뒷면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탁드리면서 오늘 좌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준비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공익인권변호사가 왜 필요한가, 인권운동하는 현장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준비한 질문은요, 일단 공익인권계의 삼성 같은 존재죠, 공감의…(좌중 웃음) 마땅히 뭐가 없기 때문에, 재산도 제일 많고 제가 알기로는.. 제가 공감 자문위원이라 잘 알아요. 인원도 많고.. 정정훈 변호사께서 공익인권법 활동을 하신 선배로서, 공익인권법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공감을 왜 만들었고, 공감에서 어떤 것을 해왔는데, 어떤 한계가 있더라, 이런 말씀도 좋을 것 같아요. 정 변호사님, 말씀을 먼저 열어주시죠.

정정훈 : 안녕하세요. 공익인권계의 삼성이라는.. (좌중 웃음) 공감의 정정훈입니다. 반갑습니다.

굉장히 난감합니다. 공익인권법 운동이 뭐냐는 질문에.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식사하시는데 누가 되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됩니다.

저희가 공감을 만든 게 2004년입니다. 8, 9년째 되어 가는데요. 당시에 공감을 만들었을 때는 NGO, 시민, 인권단체들과 밀착해서 법률적으로 조언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소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법률적인 관점에서 사건들을 들추어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이슈들, 흔히 소수자인권 이슈들인데요. 이쪽에 주목을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저희들이 어떤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 8년 법을 가지고 사회변화를 만들어보자는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요. 우리가 법을 가지고 흔히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비유가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아요. 법이 억압적 도구이면서도, 변화를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양날의 칼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8년 동안 경험해보니까 이게 양날의 칼이 아니라 그냥 칼입니다. 억압적 기제라는 측면에서의 법은 칼날에 해당하고, 변화라는 측면에서의 법은 칼등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칼을 들고 칼등으로 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공익법운동 자체가 가지는 한계가 명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8년이 지나서 하게 됩니다. 칼등으로 상대한다는 것이 때로는 성과가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등으로 칼을 쓰면서 스스로 상처가 나기도 하고, 운동 전체에 상처를 내기도 하는 그런 측면이 있어서, 법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세밀하게 보고 실천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김덕진 : 어려운 이야기를 편안하게 해주셨는데, 칼등으로 친다는 게 무슨 말인지 희망법 식구들이 알아들으셨나 모르겠어요. (웃음) 아니 제가 못 알아들어가지고요. 저는 정 변호사님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인권운동 진영,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성과가 있을텐데 그 성과와 한계를 희망법 식구들에게 잘 전수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희망법 조혜인 변호사님은 공감의 노하우를 모두 빼오실려고 공감에서 무급으로 펠로우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될까요? 정 변호사님? 공감이 해왔던 것들을 희망법이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까?

정정훈 : 더 나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참고하실 수 있을 겁니다.

김덕진 : 공감을 뛰어넘어라, 진심이십니까?(웃음)

정정훈 : 진심입니다.(웃음)

김덕진 : 별로 아직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신 것 같으니까, 공감 후원하신 분들 오늘 다 희망법으로 후원을 바꾸세요.(웃음)

제가 인권운동단체에 온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그때는 인권변호사, 공익변호사 하면 신문에 나는 유명한 분들, 여기 계시는 이석태 변호사님, 김선수 변호사님 같이 유명한 분들만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공익 관련해서 일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여러 현장에서 변호사님들을 많이 뵙게 되는데, 이제 엄기호선생님께 여쭤보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보시기에 인권운동 현장에서 변호사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일을 잘 하던가요? 인권운동에 도움이 되던가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까칠한 엄기호를 부른 거 아닌가요?

엄기호 : 인권운동에 대해서는 류은숙 선배님이 말씀하셔야겠고요. 저는 공익변호사 운동, 민변 혹은 공감이 하는 활동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을 먼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인권운동진영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보통 법이나 인권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자기 삶에서 불리하거나 불합리한 일이 생기면 ‘민변에 전화해봐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그런 사례를 몇 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법과 큰 상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가 있었던 동네가 뉴타운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재개발이 되면서 난리가 터졌는데. 제가 외국에 출장을 갔다 왔더니 조합에서 제 허락도 안 맡고 제 집 1층을 그냥 철거를 했어요. 잘 아시는 것처럼 재개발 지역에서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굉장히 무식하고 불법적인 일을 많이 하죠. 

제가 너무 열이 받아가지고, 제가 가끔 자본주의자로 빙의할 때가 있는데, 찾아가서 “아니 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남의 사유재산을 뽀개도 되는거냐”고 조합에 거세게 항의를 했어요. 물론 저희 조합이 끼고 있는 곳은 삼성 재벌이에요. 제가 항의를 했더니 조합담당자가 눈도 깜빡하지 않으면서 하는 말이 “고발하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네들은 그런 일로 고발당하고 감옥 갔다오는 일을 워낙 많이 해가지고 신경 안 쓰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거에요.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도 무자비하게 해서 포기를 시키고 있죠. 

제가 고민을 하다가 제 친구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했더니 친구가 조합 이사를 바꿔달래요. 조합 이사가 저한테는 기고만장하더니, 변호사와 전화 한 통을 하고 나더니 저를 쳐다보는 태도와 모든 것이 180도로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보상을 해주긴 했어요. 남의 집 부수고 50만원 보상해주긴 했는데, 제가 그때 느꼈던 것은 시위나가서 집시법 위반했을 때나 다른 곳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나, 변호사든 누구든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많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법과 상관없이 살아가죠. 언젠가 법이 내 편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었을 때, 정말 법이 내 편이 되기 위해서 옆에 누가 있을 수 있을까. 이제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민변에 알아볼까’ 이런 이야기부터 나오거든요. 저는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법에 호소하는 것의 문턱을 낮춘 거 그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김덕진 : 그럼 앞으로 그런 억울한 일 생기면 희망법으로 전화하면 됩니까? 서선영 변호사님?(웃음) 
그런 전화를 걸 데가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억울하게 빼앗기고 억압받는 서민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류은숙 선배님께, 다시 한 번 엄기호 선생님께 드렸었던 질문을 다시 드리면, 인권운동 현장에서 변호사 혹은 법률가들이 맡아왔던 역할이 굉장히 큽니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나 인권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운동을 하셨고 활동가로 사셨던 삶들이 있는데. 저는 그것과 공감이 보여줬던 활동은 조금은 결이 달랐다고 보거든요. 현장에서 보시기에 공익변호사들의 활동, 그 이전에 공감이라는 비슷한 단체들이 생겨나기 이전에 인권변호사들이 했던 활동은 어떤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류은숙 :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하는 류은숙입니다. 많은 토론회 자리에 서봤지만 오늘 많이 정말 떨리는데, 가장 비싼 사례비를 받고 이 토론회에 왔거든요. 희망법의 변호사가 강정마을에 한 달 동안 상주할 것을 결의하고 그 답례로 이 토론회에 나와줄 것을 요청받았어요. 변호사 한 달 상주와 교환한 만큼 가장 비싼 사례비를 받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김덕진 : 초임변호사 연봉으로 따지면 뭐 450만원..
류은숙 : (웃음)…굉장히 떨리고, 또 하나 부탁받았던 것은 그간의 인권변호사 활동을 잘근잘근 씹어달라고 하셨는데, 남의 잔칫집에 와서 잘근잘근 씹어달라는 어려운 역할을 맡겼기 때문에 굉장히 떨립니다.
김덕진 : 그 동안의 건에 대해서는 할 수 있잖아요, 왜냐하면 희망법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의 건은 이석태, 김선수 변호사 이런 분들에게…
류은숙 : 제가 씹을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에 제게 그런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고요.(웃음)
제가 인권운동을 한 지 만 20년째 되는데요, 그동안 접했던 인권변호사라는 분들의 활동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당연히 하셨다는 것.
제가 인권운동 초기에, 저도 막내였는데요, 흰 머리도 안 나고… 변호사를 만나서 일을 얘기하러 갈 때는 정장을 입고 가는 거예요. 왜 평소대로 안 하고 뭐하러 양복을 입고 가냐, 이러면 그때는 활동가가 아니라 간사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는데, 인권분야에서 어떠한 전문성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옷이라도 말끔하게 입고 가야지 상대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선배들 이야기를 들을 때 제가 굉장히 씁쓸했었어요. 전문성이 굉장히 왜곡되게 받아들여진, 그 하나의 이야기를 드리고 싶고.
두 번째는, 또 가장 많이 기여를 하셨던 게 ‘돈’이죠. 인권단체에서 사무실 하나 구할 때마다, 뭐 하나 구할 때마다 변호사분들의 쌈짓돈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인권단체는 클 수 없었죠. 그 부분에서 큰 역할을 했는데. ‘인권단체는 변호사 돈 없으면 못 움직이는 것’라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들었어요. 그런 역할로서의 ‘돈’이 아닌 다른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세 번째는, 제일 많이 접한 것은 교육자로서의 변호사입니다. 요즘은 인권교육에서 다양하고 다방면에 재능을 가지신 분들이 인권교육을 하고 계시지만, 인권교육의 상당기간 동안은 교육을 한다고 하면 법교육이고, 인권변호사들이 와서 법에 관한 교육을 하는 것만이 인권교육으로 전적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있었죠. 
그런데 이게 조금씩 변해가면서 사람들이 법 이야기로는 인권에 대한 상상력이 별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인권교육이 다방면화되면서 변호사협회나 인권교육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그랬었어요. 그때 프로그램을 짜고 같이 논의를 할 때, 제가 이게 누구를 위한 프로그램이냐고 물어봤었어요. 저는 정말 반갑게 변호사들 스스로도 이제 법분야만이 아니라 인권분야에 대해서 교육을 받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프로그램에 협조했는데 실상은 자문을 구하러 오신 변호사님이 하신 말씀은 ‘저희 그룹들은요 교육을 받으려고는 안 합니다. 어디 나가서 교육할 때 써먹으려고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린 전문성, 돈, 교육이라는 면에서, 물론 그동안 큰 공을 올리셨지만 왜곡된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고요.

오늘 희망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요, 우리가 인권교육할 때 ‘경’자를 넣어서 단어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대표적인 게 존경, 경배, 경청 이런 단어들을 들거든요. 이 전까지 역사가 경배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변호사나 활동가나 인권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료로 마주보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희망법의 행사가 이렇게 되었다는 자체가 우리가 동료로서 연대하는 사람들로 마주보게끔 역사가 진행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리 계속 마주보면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덕진 : 예. 뭔가 박수를 쳐야 할 것 같은 발언을 해주셨어요.

류은숙 선배 만나셨던 변호사님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드러내서 했대요, 속으로 하지.. 되게 독특하신 분들은 많이 만나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변호사님들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만난 변호사님들은 다 훌륭하십니다!(웃음)

이제 홍성수 교수한테도 마이크를 넘길게요. 법을 공부하시는 학자로서, 공익인권변호사들의 활동에 어떤 기대나 바람이 있으신지,  인권운동에 소송과 법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다양한 경험에 의해서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홍성수 : 예. 제 전공이 법사회학입니다. 최근의 제 연구 주제가 ‘법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왔었는데요. 현재 시점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공익인권변호사그룹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과거의 1세대, 2세대 인권변호사들이 처해 있던 사회·정치적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굉장히 다르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죠. 국회에 로비를 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 국회의원이 될 수도 없었고, 정부에 이야기를 해도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는 법원에 호소함으로써 세상을 바꿔보자는 전략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단 소송을 해볼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어차피 입법부나 행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죠. 부작용 같은 것을 생각할 필요 없이, 소송을 통해 정치적인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은 언제나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은 상당히 다릅니다. 소송은 세상을 바꾸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단지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인권변호사나 공익인권변호사그룹도 소송이라는 전략을 무조건 택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어차피 목표는 법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소송에 승소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는 것에 있다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세상을 바꾸는 일에서 소송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여전히 법원이 종종 진보적인 판결을 내놓기는 하는데, 비교연구를 해보면 전 세계 어느 법원도 진보적인 법원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제3세계나 민주주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는, 하도 정치가 워낙 낙후되다 보니까, 법원이 일시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하는 것 뿐이죠. 우리도 과거에 법원이 그런 역할을 일정 부분 해왔고, 최근에도 인권이나 민주주의 측면에서 후퇴하고 있는 흐름이 있으니까, 법원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입법부·행정부가 제 구실을 하는 상황에서도 과연 사법부가 더 진보적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소송을 통해서 법원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부분을 고민해보지 않으면 공익인권소송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공감이나 희망법이 소송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송운동이라고 하는 것에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계가 있다고 해서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 상황에서 소송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만, 공익변호사운동의 사회적 위치가 잘 확보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김덕진 : 홍교수님 말씀에서, 무언가 변호사그룹과의 쟁점이 생길 것 같습니다. 원래 순서는 엄기호인데, 정 변호사님으로 바꿨습니다. 정 변호사님 이야기를 안 들어볼수가 없어요. 홍교수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분명히 소송만능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겠죠? 당사자로 소송을 엄청 많이 수행하셨잖아요. 소송으로 세상이 바뀌던가요?

정정훈 : 소송에서 별로 이겨본 적이 없어서요…(웃음) 정확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소송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소송은 하나의 사건인데요, 소송이라는 좁은 사건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변화라는 측면에서 가지는 사건적 의미를 자꾸 밝혀내면서 소송을 수행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소송에 있는 법논리를 따라가게 되면서 한국사회에 가지고 있는 의미나, 운동적 의미들, 능동적 변화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이런 고민들을 같이 가지고 나가면서 진행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김덕진 : 공감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지난 8년을 살아왔나요?

정정훈 :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요. 딱히 그러지는 못 한 것 같습니다.

김덕진 : 염 변호사님 동의하십니까? (웃음) 염형국 변호사님은, 정 변호사님이 겸손하게 말씀하시면, 그렇지 않다고 공감은 잘 했다고… 왜냐하면 저 분이 공감의 역사에 보면 항상 제일 먼저 나와요. 2003년 염형국 변호사 업무 시작,이 공감 역사에 첫 번째로 나와서…(웃음)

예를 들면, 인권운동에 있어서 저희도 마찬가지인데요. 피해를 입은 분이 진정을 해서, 상담을 해서 소송을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 일의 주인공이 변호사님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당사자가 어떻게 주장을 하면, ‘법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또는 소송에서는 그런 것들을 제기하기가 어렵다’라고 제한을 하기도 하고, 저도 그런 것을 많이 느끼긴 하는데… 소송으로 운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소외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거든요. 엄기호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기호 : 먼저, 저는 좀 전에 두 분이 말씀하신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근본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소송이 운동일 수 있는가. 저는 이게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운동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를 하거나 합의가 있어야 되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마오가 아주 잘 정리를 해주었는데, ‘조직화하고 의식화하는 것’라고 보통 얘기를 하거든요. 이건 마오주의자건 마오주의자가 아니건 별로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세력을 모으는 과정인 거고, 그 과정 속에서는 누군가를 설득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게 정서적 설득이건 이성적 설득이건 간에… 

그런데 소송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과연 운동에 어떠어떠한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소송운동이라고 할 때, 소송이 운동일 수 있는가, 저는 소송은 운동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소송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들의 언어로 설득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소송은 아까 정정훈 변호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법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과정인 거잖아요. 법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죠. 공부 좀 많이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법의 언어로 누가 이야기하면 ‘쉽게 좀 말해봐, 내가 이긴다는 거야, 진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법의 언어로 운동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저처럼 인문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언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이게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거죠.

두 번째는 소송을 통해서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소송 자체는 정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법이란 것은 질서란 말이죠, 나라에서 구축해 놓은 질서이죠. 질서를 통해서 질서를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질서를 바꾸는 것인데, 질서 안에 있는 질서로 질서를 바꾸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법의 언어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과대대표되는, 너무 전면에 나서버리는 거, 피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소수자 문제 같은 경우에는, 저는 이 부분에서 당사자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아요. 운동의 과정 속에서 소송이 들어가면 모르겠지만 소송이 운동이 되어버리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당사자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법정에서 또는 법정 밖에서 운동의 과정에서 대표될 수 있는, 대변될 수 있는 언어가 못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당사자들의 언어로 해야 하는 것이 운동인데, 그 부분이 누락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소송이라는 게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인권문제에 있어서 관심 있는 것은 당사자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몇몇 인권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겪었던 일을 들으면서 느낀 것인데, 소수자라고 할 때는 법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가 있는 사람인데 당사자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예 법에 호소하는 것 자체가 가로막혀져 있는 사람들인데요.. 예를 들어 폐쇄공포를 가진 사람이 돈이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자신이 폐쇄공포증임을 증명하려면 진단서, 병원에 1달 입원 등… 소송을 통해 인정받으려면 지금의 법의 체계 속에서는 당사자조차 되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이제 희망법은 이미 범주화되어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 범주화되지 못한 사람들과 같이 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덕진 : 희망법에서 많은 주문이 가는 것 같아요. 아직 희망법도 비주류고, 아직 시작인데..무겁습니다. 엄기호선생님 말씀 중에 법의 언어라는 것 말이죠. 제가 제주 강정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막 트윗을 하시는데요, 이렇게 ‘홍길동님 구속!’ 연행된건데 구속되었다고… 구속되었다는 표현도 틀리진 않아요, 인신이 구속된 것이니까. 그런 용어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구속이 아니고 연행이고, 영장실질심사가 있고, 그 다음에 구속적부심이 있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오늘도 강정에 있는 백신옥 변호사가 송강호 박사님 구속적부심을 했는데, 트위터에서는 오늘 10시 반에 영장실질심사합니다, 라고 트윗을 날린 거에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줬는데도! 그런데 이건 본인이 당사자가 되어서 피의자로서 구속되면 금방 알아요. 절차를 확실히 알게 되는데(웃음)

많이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절차고 언어인데… 그것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든다. 판결문도 쉽게 쓰신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는 것. 이것이 어떻게 운동의 언어로 녹아들 수 있는가, 이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아, 홍교수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역시 우리 홍교수님은..

홍성수 : 아주 중요한 부분을 엄기호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는데요. 이른바 정치와 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언어과 논리가 있는데, 법률의 언어는 이와는 다릅니다.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에 일어난 사건을 법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적인 전문성이죠.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만나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그 말씀은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당사자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법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 점이 전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변호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법의 언어로 전환할 수 없었던 사회의 언어 중에도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제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요. 미국에서 정신대 소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정신대 할머니들이 “정신대 문제는 법률가와 변호사들이 다 망쳤다”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미국에서 정신대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신대 문제의 진정한 해결보다는 ‘승소’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배상금을 노리고 소송에 합류한 변호사도 있었구요. 그러다보니까 할머니들이 말하고자 했던 ‘진실’보다는 법적으로 이기기 위해필요한 쟁점들이 더 부각이 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쟁점화가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소송당사자였던 할머니들이 진짜 말하려고 했던 역사적 진실 자체가 왜곡이 되고 ‘이럴거면 왜 소송을 했는지 모르겠다’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죠. 

저도 들은 얘기라 소송 전략상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몇몇 소송에서 국한된 얘기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소송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사회의 언어를 법적인 언어로 바꿀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공익인권소송운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덕진 : 그 의미 자체를 아직 찾아가고 있는 길이다, 10여 년 그런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은데 활동 많이 하신 우리 류은숙 선배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아까 변호사님들 한계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 해주셨는데 혹시 친한 변호사님 있으신가요?

류은숙 : (웃음) 희망법 서선영 변호사님과 친합니다.

김덕진 : 친한 변호사가, 희망법 멤버가 아니더라도, 선배에게 ‘내가 공익활동을 하고 싶은데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돈은 많이 주고 아무 말도 하지 마? (웃음) 제 마음이에요.

류은숙 : 일단은 우리 다 같이 모자란 부분이 있으니까 돌이라도 서로 맞대면 더 좋은 것이 나오지 않겠냐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요. 

그간 많은 변호사분들이나 연수원생들이 실습이니 사회봉사니 하는 이름으로 인권단체들에 정말 많이 오거든요. 그때마다 곤란하 게 이 사람들을 써먹을 길이 없어요.(웃음) 왜냐하면 그들의 일의 방식이 완전히 분업화되어서 우리가 그간 현장에서 부딪힌 것 중에 고르고 골라서 소송거리가 될 만한 것을 재단해서 줘야지만 일이 시작되는 이상한 코스가 있거든요. 요리로 따지자면 다듬고 씻고 지지고 볶고 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시작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작업 방식이 있는 건데, 소송과 운동과의 관계, 그 한계에 대해서 앞에서 지적하셨잖아요. 저는 소송과 운동, 이 둘이 같이 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상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태까지 해오던 게 아니니까 다른 걸 한 번 해보고 싶잖아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면, 재단된 후가 아니라 수많은 생생한 날것과 같이 부딪치면서 법을 무기로 가진 사람, 교육을 무기로 가진 사람, 대화를 무기로 가진 사람 등등이 같이 많이 어울려야지 새로운 것이 많이 개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언어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법률가뿐만이 아니라 인권활동가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대부분도 논리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아주 싫어합니다. 저도 성격이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로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아주 짜증스러워 해요. 옛날에 민변 변호사님들 중에 별명이 ‘첫째, 둘째, 셋째, 넷째’인 분이 많으셨거든요. 그런 언어가 아닌 걸 매우 짜증스러워하면 생생한 날것에 가까이 갈 수 없죠. 그런데 생생한 날 것에 가까이 가는 게 개인적 노력, 인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운동하는 문화, 일하는 문화 자체가 같이 조직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인데 희망법이 그러한 새로운 분위기를 북돋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덕진 : 네. 우리가 너무 큰 기대를 하면 큰 부담이 될텐데.. 그런데 저들은 지금 별로 귀담아 듣지 않네요. 우리 앉혀놓고 자기네들끼리 계속 떠들고 있어요.(좌중 웃음) 무슨 이야기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아요.

서선영 : (웃음) 녹화해서 공부하려고요.

김덕진 :  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좌중 웃음) 여기 리플렛에 보면 희망법에서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영역들의 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준비하는 일도 있고요. 다 소중하고 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네 분에게 짧게 이것 하나씩만 여쭤볼게요. 홍성수 교수님부터 제가 여쭤볼게요. 소송이든 정책이든 법률을 만드는 것이든, 지금 꼭 희망법이 제일 처음으로 하면 좋겠다 싶은 것, 물론 소송은 이미 시작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영역 중에 블루오션을 딱 찾아주신다면?

홍성수 : 대본에 없던 질문을 갑자기 그렇게 하시면…. (좌중 웃음)

김덕진 : 사회자 재량이라고 여기 대본에 써 있으니까… (좌중 웃음)

홍성수 : 한 가지 딱 집으라면 좀 어려운데요. 아까 엄기호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분명히 소송조차 제기할 수 없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텐데요. 그런 문제들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미 사회적으로도 파악되어 있는 사회적 취약계층은 사실은 법률구조공단이나 다른 사회부조기능에 의해서 어느 정도 커버될 수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망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덕진 : 네. 애매모호한 이야기 해주셨고요.(웃음) 이제 정 변호사님.

정정훈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요즘 관심 가지는 것은 주민자치문제인데요. 지방행정이라는 것이 전혀 견제되지 않은 형태로 그냥 막 가버리더라고요. 전혀 견제되지 않은 행정권력으로 인해서 주민들의 삶이 왜곡되는 형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초기에 주민감사라는 제도들이 들어왔다가 반짝하고 말았는데요, 이런 제도들을 한 번 잘 살리는 기획을 해서, 희망법하고 지역 활동하는 NGO단체가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떤가 싶습니다.

김덕진 : 네. 희망법의 준비영역으로 자치와 인권조례가 있습니다. 아마 그런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엄기호 선생님.

엄기호 : 제가 원래 준비해왔던 것은 홍성수 교수님이 하셨기 때문에 급바꿔서 말씀드리면, 저는 기업문제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삼성 문제 같은 경우에는 재개발되는 많은 지역들에서 정말 무자비하게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그것도 거의 대부분 법의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 경향신문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부실공사를 해서 층간소음이 너무 심해서 그것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린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그 소음을 입증할 책임을 이 사람에게 넘겼더라고요. 비용만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든다고…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법 바깥으로 확 밀려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는 국가가 주로 사람을 법 밖으로 밀어냈다면 지금은 굉장히 명백하게 자본이 사람을 법 밖으로  밀어내고, 그동안 시끄럽게 군 것에 대해서 명예훼손까지 제기하는 식으로 해서, 사람을 완전히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짓을 기업들이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이제 이런 부분, 예를 들면 삼성 본사 앞에서 나홀로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좀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류은숙 : 예. 저는 간단합니다. 강정 상주 변호사 한 달 약속한 게 이번주에 끝나거든요. 무기한 연장해주시고요.(좌중 웃음) 꼭 희망법 사람만이 아니라 희망법이 여기 계신 많은 법조인들을 동원하여 순번제로 강정마을 해결될 때까지 상주 변호사 활동을 끝까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덕진 : 제가 이 대답을 꼭 듣고 싶어서 질문 드린 것은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되어버렸네요.(웃음) 한 가지 더 여쭤볼게요. 먼저 류은숙 선배님부터, ‘희망법 이런 건 절대 하지 마라, 절대 이렇게 되지 마라‘ …준비되지 않으면 못 해요?

류은숙 : 아.. 제가 질문지를 두고 와서 지금까지 준비 안 한 대답이었어요. 어.. 징징거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좌중 웃음)

김덕진 : 혹시 서선영 변호사 개인한테 하는 말씀 아니신가요?

류은숙 : 아니. 그게 아니라… (웃음) 법률을 필요로 하는 많은 분들은 변호사님들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시겠지만 저 분들이 법에 부닥쳐서 겪는 어려움을 저희가 많이 듣거든요. ‘이 놈의 법 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이렇게 맨날 징징 거리시는데 제가 푸쉬킨의 시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부분을 바꿔서 ‘법은 맨날 너희를 속일 것이다. 슬퍼하고 노여워해라. 그게 당연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덕진 : 좋습니다. ‘징징거리지 마라!’. 자, 엄 선생님도..

엄기호 : 전문가주의를 경계해라, 이런 말씀은 이쪽에서 해주실 것 같고요. 저는 우울증에 안 빠지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지난 번에 강정에 법조인들이랑 같이 갔었거든요. 그런데 강정에서 주민들이 막 호소를 하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건 투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마을주민들은 이해를 못 하시는거죠. 내가 내 삶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인데 왜 이게 다 불법인가. 오히려 쟤네들이 내 눈앞에서 다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데 왜 저것은 해결이 안 된다는 거냐, 이러시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같이 갔던 법조인들이 진짜 우울해하더라고요.

김덕진 : 술 많이 먹었죠.

엄기호 : (웃음) 저는 우울증에 안 빠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덕진 : 여태까지는 좀 암울하네요.

정정훈 : 저는 단명하지 마라, 고 말해주고 싶어요.(좌중 웃음)  

김덕진 : 혹시 생물학적 삶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을 말하는 겁니까? (웃음)

정정훈 : 좀 길게 징하게 가셨으면 좋겠다,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직도 운영도 유연하게 하시면서 단명하지 않게 길게 갈 수 있는 운영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성수 : 사실 제가 준비했던 말씀은 ‘망하지 말아라’였는데, 정정훈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단명하지 말라”와 비슷한 것 같네요. 어떤 조직은 있는 것 자체가 해악적인 조직도 있잖아요. 그런데 희망법은 존재하기만 해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덕진 : 처음에 희망법 이름이 지어지기 전에, 서선영 변호사랑 술 마시면서 이런 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감이나 다른 분들은 후원 구조를 만들어놓고 이미 일할 것을 만들어놓고 시작하는데 저 분들은 제가 쭉 들어봐도 별 게 없어요. 아까 류은숙 선배가 변호사들이 돈으로도 인권운동에 많이 후원을 했다고 큰 기여를 하셨다고 했는데 저기는 우리가 기여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시작하느냐’라고 주변에서 많이 걱정을 했는데 어쨌든 준비하는 과정이나 오늘 창립행사까지 보면 앞으로 힘차게 일해나갈 수 있고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그러시죠? (좌중 박수)

우리 희망법 한가람, 조혜인, 김재왕, 김동현, 서선영, 류민희, 이렇게 6명으로 시작하면 앞으로 더 크고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감만큼만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고 공감을 꼭 뛰어넘으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순서는 희망법의 창립보고도 있고 인권운동판에서 가장 핫한 지보이스와 한낱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여 주시고요. 저희들이 오늘 나눈 이야기가 희망을만드는법 식구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류은순 선배님 존경하면서 변호사님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변호사님들 좋아합니다. 이걸 꼭 밝혀두고 싶고요(좌중 웃음) 여러분, 우리 희망법에게 힘내라고 박수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