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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희망법 브리핑] 동성혼 불인정의 위헌성을 인정한 판결을 통해 들여다 본 일본 동성커플 권리의 진전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 대한 법 앞의 평등은 서양에서만 전유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동성혼’이라고 일컬어지는 평등한 혼인의 권리는 성소수자의 입체적이고 다양한 삶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충분히 실질적이고 동시에 상징적인 권리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에서도 2019년 5월 대만에서는 동성 간 혼인이 가능해지고 일본, 태국 등 여러 지역에서 진전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3월 17일 삿포로 지방재판소에서 일본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불인정하는 민법 등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 판결은 큰 의미가 있지만 갑자기 등장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며 일본에서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동성커플과 성소수자 권리의 진전의 맥락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평등으로 가는 여정에서 어디까지 왔는지 희망법 브리핑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3월 18일 일본 삿포로 지방재판소 앞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위헌 판결을 축하하고 있다 (출처: Marriage for All Japan)

 

일본 대중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만화, 영화,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 다양하게 다뤄지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보셨을 것입니다. 소위 “BL” 장르물에서 법적 보호가 없는 동성커플이 불완전입양 제도를 이용해서 서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꽤 오래전부터 봤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정치 지형을 자민당을 포함하여 ‘보수적’ 이라고 보지만 사실 일본은 오랫동안 차분히 성소수자 권리를 진전시켜 왔습니다. 일본은 중요한 인권 보장 메커니즘인 국가인권위원회나 별도의 헌법재판소가 없는 국가이지만, 중앙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전문가단체, 학술단체 등 다양한 기관과 영역에서 독자적인 규범과 정책의 확장을 통해 차츰 평등 보장의 망을 조각보처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성소수자 권리

일본에는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 혹은 혹은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 성소수자 단체 아카(OCCUR)가 도쿄도를 상대로 제기한 대관 차별 손해배상 소송 이후 성소수자 차별금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실상 규범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1997년 9월 17일 도쿄 고등법원은 “행정 측의 처분은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태만으로 인한 몰이해에서 지방자치법과 조례가 금지하는 불합리한 차별적 취급을 했으며 위헌 위법이었다”라고 판시하기도 했습니다.

📖 도쿄도 대관 차별 손해배상 소송 (일본어)

그 이후 지방자치단체에는 성평등(‘남녀공동참여’), 인권 관련 조례, 행동, 지침에 성소수자가 포함된 곳이 많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중앙 행정부의 각 부처에도 성소수자 관련 정책이 많습니다.

일단 중요 입법으로는 2003년 제정되어 2004년부터 시행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관련 법(‘성동일성장해특례법’)이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은 남여고용기회균등법에 대한 2017년 시행 새 지침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동 및 직장 내 괴롭힘도 ‘성희롱(세쿠하라, Sexual Harassment)’에 포함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법무성 인권정책에 성소수자는 포함되며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유튜브 캠페인도 진행합니다. 문부과학성은 2015년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하여 의료기관의 진단서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학생의 교복/옷차림, 화장실 등 시설 이용에 관한 배려, 상담 체제의 충실, 취직 등에 제출하는 졸업 증명서에 졸업 후 변경한 성별과 이름을 적는 등의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통지를 전국 각급 학교에 내렸습니다.

국가 차원의 성평등계획에 해당하는 제5차 남녀공동참가기본계획에는 복합차별을 겪는 여성 중 한 집단으로 성적지향이나 성자인을 이유로 한 어려움을 겪는 여성(성소수자 여성)들을 언급하는 등 다양한 성소수자 정책이 명시되어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자살종합대책대강에서 충실한 각 집단별 정책 이행을 나열하며 ‘(문부과학성은 관련 정책으로) 성적 소수자는 사회와 지역의 몰이해와 편견 등의 사회적 요인에 의해 자살 충동을 안고 있는 것도 있기 때문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교직원의 이해를 촉진하고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 상담 실시 등을 촉구한다’ 등의 각 부처별 성소수자 정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동일성장해특례법’ (일본어)

📖후생노동성의 남여고용기회균등법 2017년 지침 (일본어)

📖법무성 성소수자 인권 관련 유튜브 캠페인

📖문부과학성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통지 (일본어)

📖자살종합대책대강 (일본어)

중요 선거 때마다 자민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은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정책 입장과 공약을 내놓습니다. 이에는 성별정정에 관한 법제 개선, 차별금지법 입법, 동성결혼 등의 정책 이슈가 포함됩니다.

📖자민당 성소수자 정책

2019년 6월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민법 일부 개정안이 입헌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야당 3당에 의해 중의원에 공동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국회에서는 아직 통과되지 않았지만 동성 커플의 권리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전이 있었습니다.

📖민법 일부 개정안 (일본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진전

2015년 도쿄의 2개의 시부야 구, 세타가야 구에서는 동성커플을 결혼에 상당하는 관계로 인정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합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가정동반자(domestic partnership) 제도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제도는 법률상 결혼 같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지역 내 사업자들이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거 임대 계약이나 병원 면회 시 배우자와 같은  제도 도입 이후 텔레콤 기업, 병원, 생명 보험 등이 이 증서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부야 구 파트너십 제도 (일본어)

📖세타가야 구 파트너십 제도 (일본어)

이 제도는 지방자치단체마다 요강(일종의 행정명령) 혹은 조례 형식으로 도입하며 이를 채택한 지방자치단체의 수는 5년 동안 급속하게 늘었습니다. 현재 7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 제도를 제공하며 이 지방자치단체들을 합산하면 일본 총인구의 1/3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성소수자와 동성커플의 1/3 정도는 어느 정도의 공적 인정과 보호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한 동성파트너십 제도 현황. (출처: pablo suzuki)

 

인권 진정과 일본변호사연합회의 입장

비슷한 시기에 의미있는 인권 진정이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 에 제기되었습니다. 2015년 7월 7일 455명의 신청인은 일변련에 일본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내용의 인권 구제를 신청했습니다.

일본에는 국가 차원의 인권위원회는 없지만 일변련에서 중요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공식적 입장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는 정부나 국회에게 권위있는 해석으로 작용합니다. 일변련은 오랫동안 인종적 혐오표현(헤이트스피치)에 대한 입법 의견을 내왔고 이는 조례와 법률 제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2019년 7월 18일 일변련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13조, 헌법 제14조에 위배되는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하며, “신속하게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관련 법령의 개정을 해야한다 “고 의견을 밝혔고 이 의견서를 법무부 장관, 총리, 중의원 의장, 참의원 의장에게 전달했습니다.

📖2019년 7월 18일 일본변호사연합회의 “동성 당사자의 혼인에 관한 의견서” 전문

이 의견서는 일본 헌법 제24조(“① 혼인은 양성의 합의만에 근거하여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상호의 협력에 의하여 유지되어야 한다”)가 동성혼을 금지한다는 일부 주장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일변련은 2021년 다시 한번 “사실상 혼인 관계와 같은 사정에 있는 사람등에 대해 이익을 주는 법령은, 법령 자체의 취지로부터도, 당사자의 성별에 관계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며 동성 커플에도 사실혼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2021년 2월 18일 일본변호사연합회의 “동성의 사람도 사실상 혼인 관계와 같은 사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법의 평등한 적용을 받을 것에 관한 의견서” 전문

 

2019년 2월 14일 동성혼 소송의 시작

2019년 2월 14일 도쿄,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4개의 지방법원에서 13쌍의 동성 커플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9월 후쿠오카에서 추가 제소도 있었습니다.
소 제기의 내용은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 14조(평등권), 헌법 24조(혼인의 자유) 등 헌법의 위반이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구 취지 자체는 혼인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입니다만, 일본 성소수자 운동이 소송을 시작한 목적은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올해 초 도쿄 소송의 원고들 중 HIV 활동가 사토 이쿠오 님이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 일본 동성혼 소송 서면 아카이브 홈페이지

매 기일 함께 법원 참석을 한 도쿄 소송의 원고 커플들 (출처: Marriage for All Japan)

 

“미래를 여는 판결”

이렇게 5개 재판이 진행되던 중 홋카이도에서 첫번째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1년 3월 17일 삿포로 지방재판소는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을 보장한 일본 헌법 제14조에 반한다는 판결을 일본 최초로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지만 현 상황의 위헌성을 확인한 내용은 일본 성소수자 운동이 의도했던 실질적인 의미의 승소입니다.

동시 제기한 다른 지방에서 코로나 상황으로 정상적인 기일 진행을 하지 못한 가운데, 삿포로 지방재판소가 가장 빨리 1심의 판단을 하게 되었고 재판부는 ‘성적지향은 선택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받는 법적효과의 일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입법재량을 넘은 차별적 취급이다’고 하며 이 상황이 일본 헌법 제14조에 반한다고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다른 지방의 재판 결과도 주목되며 5개 도시의 모든 재판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판결 전문 (일본어)

📖판결 요지 (영어)

‘위헌이다’를 읽는 재판장의 목소리는 떨렸다고 합니다. 한 지방법원 판사의 뚝심 있는 결정이 이렇게 전 세계로 보도되었습니다. 이 판결 자체로 집행가능한 결과는 도출되지는 않지만 이 판결은 미래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일본의 성소수자는 평등한 미래를 그저 가능성이 아니라 기정사실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판결 직후 실시된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퍼센트는 동성혼에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15년의 41퍼센트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동성혼 소송 외에도 동성커플의 권리를 다룬 판례가 몇 가지 있습니다. 2019년 9월 18일 우츠노미야 지방법원은 부정행위로 인해 파탄으로 이른 동성의 배우자가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에서 부정행위 이 판결은 최근 3월 상고 기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1심 판례 (일본어) (일본최고재판소 홈페이지)

📖평석 (일본어)

📖1심 판례 비공식 국문 번역본 (국문)

한편 우연치 않게도 삿포로 판결이 나기 며칠 전, 도쿄지방재판소는 남편이 부인과 부정행위를 한 동성의 연인에 대해 불법행위를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안에서도 ‘부정행위’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일본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동성 사이의 결혼은 인정되지 않는데 부정행위로는 인정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자조했는데 바로 며칠 후에 삿포로 판결에서 동성혼의 불인정에 위헌성도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의 동성 커플은 최고법원에 의해 사실혼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혼인 중인 사람과 동성인 사람 사이의 ‘부정행위’도 불법성이 인정되며), 7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혼인에 상당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제공하며, 한 하위법원에서는 마침내 동성혼의 불인정에 위헌성을 인정했으며 이 대화는 국회 안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어디에도 인권과 평등에 있어서 완벽한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 정치인들은 종종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하여 대중의 지탄을 사곤 합니다. 중요한 점은 많은 나라들이 대화를 닫지 않고 사회로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선거철에는 성소수자 ‘특구’라는 미명 하의 배제와 분리의 차별 담론이 버젓이 등장합니다. 공중파 방송국은 993만이 본 12세 등급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동성 간의 키스만을 검열합니다. 지난 한 달 사이에도 수도 없는 차별의 담론이 사회에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미래를 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글_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