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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생각] 국가폭력의 마감자, 사법부

글 / 서선영

 

“유서대필 조작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강기훈씨의 가혹행위, 사건조작 주장을 배척하며 “독선,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언어들로 마무리했다. 이 판결문은 20년 이상의 세월동안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은‘자살방조’라는 형법조항을 공부할 때 이 판결을 대표적인 사례로 외웠다. 2015년에야 비로소 이 조작사건은 재심을 통해 무죄임이 확인되었다. “독선,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은 바로 이 판결문을 썼던 임대화, 윤석종, 부구욱 판사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이들에게 “사법제도”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사법제도

 

(…)“이상의 증거들 및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원심판시와 같이 김기설이 자살하려는 정을 알고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해 준 사실과 그 후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원심 판시 사실은 그 증명이 있으므로 이 부분 항소논지도 이유없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이 사건에서 공권력에 의한 사실조작으로 무고한 인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나 당심의 위 판시 내용 전반에 의하면 피고인은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은 입장에서 그 무실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스스로의 독선적 판단과 주장에 의하여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하려는 입장에 서 있는 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92. 4월 20일. 재판장 판사 임대화, 판사 윤석종, 판사 부구욱

유서대필 조작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강기훈씨의 가혹행위, 사건조작 주장을 배척하며 “독선,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언어들로 마무리했다. 이 판결문은 20년 이상의 세월동안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은‘자살방조’라는 형법조항을 공부할 때 이 판결을 대표적인 사례로 외웠다. 2015년에야 비로소 이 조작사건은 재심을 통해 무죄임이 확인되었다. “독선,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은 바로 이 판결문을 썼던 임대화, 윤석종, 부구욱 판사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이들에게 “사법제도”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책임 지지 않는 국가폭력의 마감자, 사법부

 

경찰과 검찰의 고문과 조작 기소는 국가폭력이다. 그러나 그 폭력은 일반적으로 스스로 완결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사법부라는 마감자가 있다. 조작된 사건들이 법률 전문가인 판사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덮는 작업이었다. 사건에서 진실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모아서 덮고 못질하는 작업을 한 것은 사법부였다.

간첩조작 사건, 긴급조치 사건, 유서대필 조작사건까지 수많은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했던 고문을 당했다는 호소,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말들은 무시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다 보이는 고문의 흔적을 판사들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독선이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답했다. 재판은 사실의 진위여부를 따지고 법률을 적용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이런 재판을 재판이었다고 부르기 어렵다. 재판이라기 보다는 상황극에 가까웠다. 이런 연극에서 판사들이 피고인들의 고통을 느꼈을리는 없다 .

형사소송절차에서 10명의 죄인을 놓쳐도 1명의 무고한 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법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명 대 1명이 아니라 ‘1’ 그 자체이다. 어떤 한 사람도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아서는 안된다.‘1’은 그 어떤 숫자와도 비교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법제도, 형사절차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제도에서 ‘1’은 사람이 아니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의 수이고, 정해져 있는 정답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숫자였으며 윗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회이기도 했다. 조작된 공소사실에 판사 본인의 호통까지 곁들여가며 적극적으로 판결문을 쓴 경우나, 고문의 흔적을 못 본체 한 경우나,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법대로 한다고 판결한 경우나 그 모든 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판사 본인의 삶이었을 뿐, 판결로 망가뜨려질 피해자의 삶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양승태라는 법관, 한국 사법제도의 일탈이 아니라 실현에 가깝다.

 

양승태라는 사람은 얼마전까지 한국 사법부의 수장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수사 등을 통해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긴급조치 배상 판결을 한 판사를 징계하려고 한 사실 등 사법부의 존재이유가 허물어지는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양승태는 70년대에 긴급조치 사건들, 80년대 간첩조작 사건들에서 유죄판결을 하며 사법부의 상층부로 하나씩 계단을 올라왔다. 양승태는 한국 사법제도에서 성공한 판사의 정형에 가깝다. 한국의 사법제도는 이런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판결이 정상적으로, 오히려 잘 하는 판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한국의 사법제도였기 때문에 재심을 통해 과거사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무죄 판결이 나와도 판사들은 자신의 고유한 잘못은 없다고 항변한다. 사과를 하지도,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는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일들은 양승태나 임종헌 같은 예외적 인물들로 인해 생긴 사법제도의 일탈적 사안이 아니라 70년간 왜곡된 한국 사법제도의 실현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세련된 국가폭력을 계속했던 사법부

 

차기 대법관 후보 1순위였던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보면 강제징용 등 사건등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소멸시효라는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궁리한 장면들이 나온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나왔던 피해자들이 국가와 가해자들에 대해 배상청구한 사건들도 소멸시효로 기각된 경우가 많았다. 강기훈씨도 국가와 당시 검사들, 국과수 감정인의 책임을 묻기 위해 배상을 청구했지만 직접 가해자들인 검사와 감정인에 대한 배상청구는 모두 소멸시효로 배척되었다.

이전의 국가폭력이 수사기관이 주도한 것을 사법부가 마무리 한 것이었다면, 소멸시효라는 법기술로 배상책임을 부인한 것은 사법부의 주도적 행위에 가깝다. 한평생을 고통과 울분에 가득찬 삶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법원은 또 한번 세련된 모습으로 모양을 바꾼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법원과 과거사

 

양승태 전임이었던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유신시대와 5공 정권 시절의 주요 시국사건들을 모아서 대법원장 집무실 맞은편인 1103호 캐비닛 두 개를 가득 채웠다는 기록이 있다(판결은 6419, 피고인은 8782명 / 권석천,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창비, 2017년). 그러나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법원은 스스로의 과거사를 제대로 평가한 적이 없다. 사법제도를 이야기하며 조작사건의 피해자에게 호통치고 군림하던 법원은 막상 자신들이 한 일을 들여다보고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가득차 있다. 잘못은 수사기관이 한 것일 뿐 사법부는 피해자라는 논리이다. 이에 더해 법원은 소멸시효라는 법리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지속시키고 있기도 하다.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들이 연행되고 고문으로 죽기 직전까지 몰린 상태로 사건들이 조작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판결문들에서 고문 피해자의 눈물과 피가 보이지 않는다. 판결문과 공소장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런 판결들이 쌓여 있다. 그렇지만 법원의 과거사 작업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과거를 제대로 밝히는 것은 단순한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지 않는 법원과 가해자인 법원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법원은 단순히 수사기관이 다 만들어온 사건을 소극적으로 방치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 가해자였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원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밝히는 작업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 본 글은 광주트라우마센터 이북 <그라지라>에 서선영 변호사가 기고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사진출처 /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