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희망버스를 변론하며, 그 두 번째 이야기



희망버스와 법의 경계

희망법은 지난 7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변론을 진행하며 뉴스레터에 글을 남겼습니다. 이제 10월 말이 되어 그 동안의 변론 과정을 잠시 돌아봅니다. 희망버스를 둘러싼 재판은 다른 한편으로 법의 경계를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었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야간시위행위, 일반교통방해행위, 해산명령불응행위는 모두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의 경계와 관련된 행위들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형법상의 각 조항들은 모두 그 위헌성이 문제되고 있으며 현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계류 중이거나 각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중입니다.

희망버스와 관련된 또 다른 공소사실은 공동주거침입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이 공소사실은 ‘5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동하여 타인이 관리하는 건조물인 영도조선소에 침입하였다’는 것으로, 그 문구나 위반법률의 명칭(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만을 보면 큰 폭력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는 영도조선소가 휴무 중이던 일요일 새벽,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살아서 내려오라는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85호 크레인이 있는 커다란 공터에 자발적으로 모여 하룻밤을 평화롭게 지새고 나온 행위에 불과합니다. 희망법은 기소된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함께, 이러한 행위가 과연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법적으로 처벌되어야 할 위법성이 있는 행위인가를 물었습니다. 


“공동주거침입”의 위법성?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와 영도조선소 안의 85호 크레인 앞에 모였던 당시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문제에 관한 외부적인 타결책이나 타결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채로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이 150일을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희망버스 참가단은 이러한 다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오른 이에게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들을 움직인 것은 정리해고 문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지고 있는 짐이라는 문제의식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이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다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감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연대의 마음들이 모여 사회여론이 형성되고 정치권이 움직이게 되면서 결국 한진중공업에서는 미흡하게나마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희망버스는 현행법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문제들의 해결에 전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촉구한 민중들의 자발적인 연대의 흐름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위법이라는 외피를 무릅쓰고라도 그 곳에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이러한 절박한 마음들은 행위의 위법성을 살필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희망법이 변론을 맡은 사건의 재판부를 비롯하여 전국 대부분의 법원들은 이렇게 기소된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공동주거침입행위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영도조선소에 들어가게 된 행위의 동기와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선고유예는 형의 선고를 미루고 판결확정일로부터 특별한 일 없이 2년의 기간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로서, 형법상의 제재 중에 가장 가벼운 판결입니다. 법원 역시 희망버스의 배경과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무더기로 기소한데 이어, 속속 내려지고 있는 이러한 선고유예 판결들에 대해서도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일률적인 항소를 하고 있습니다. 하여 희망법은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함께 항소심에서 다시 희망버스의 정당성을 변론하고 있으며, 얼마 전 한 사건에서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받아내었습니다.

희망버스가 법에 던지는 물음과 답변

어떠한 행위의 윤리적인 정당성을 반드시 법의 언어를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당성이 법을 통해서만 인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희망버스 변론 또한 희망버스의 정당성을 법에서 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희망버스 재판은 오히려 ‘희망버스에서 보인 민중들의 양심과 연대감에 대해 법은 어떤 응답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 앞에 한국 사회와 법질서를 세우는 과정일 것입니다. 희망버스를 둘러싼 재판을 거치며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민의 정도, 우리 법질서의 그릇, 그 크기와 깊이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법의 그릇에 대해 생각하며 검사의 항소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씁니다.

글_조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