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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후기]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참가 후기

분단과 평화 사이

– 제16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참가 후기

 

김광민

 

분단과 평화 사이

참가 안내 메일로 이번 대회의 주제를 받았다. ‘분단과 평화 사이’. 잠시 이 단어들을 내려다 보았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사흘 동안 이야기하게 될 주제였다. 하지만 바로 다가오는 감정은 없었다. 특별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 단어들은 너무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낯익다. 시골 식당에 걸려있는 ‘믿음 소망 사랑’처럼. 내 삶과 어떤 관계인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평생 분단 속에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단’과 ‘평화’는 드러나지 않을 뿐, 늘 주위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는 뉴스를 매일 보고 있다. 뉴스 속에서 남북문제는 항상 뜨겁게 달궈져 있다. 마침 인권활동가대회가 예정된 2월 27일과 28일 이틀간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다. 과연 비핵화는 이뤄질 것인지, 종전선언은 가능한지,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오는지, 관심이 고조되어 갔다.

 

제16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 참가한 희망법 구성원들. (왼쪽부터 김광민, 조혜인, 강현진)

 

처음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서울 도봉산과 강원도 철원에서 전국인권활동가대회가 개최되었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인권활동가들은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으며, 평화체제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이야기 나누자’는 기획으로 준비됐다. 

전국인권활동가대회는 전국의 여러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일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기회다. 물론 평소 업무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편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흔하지 않은 기회이고, 격려를 주고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에 처음 참가했다. 희망법에 적을 둔 지 3년이 되어가지만 타단체 활동가들과 만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마치 대학 신입생 시절 오리엔테이션 합숙에 온 것처럼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의 말과 표정과 몸짓이 새로웠다. 서로 손을 맞잡고, 눈빛을 나누고, 미소를 짓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참 좋았다.

사흘간의 프로그램 중 첫날, 간단히 참가자들의 소개 시간이 끝나고,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북도 남도 아닌>을 보았다. 이 영화를 만든 최중호 감독과의 대화시간도 이어졌다. 영화 <북도 남도 아닌>은 북한을 탈출했지만 남한에 정착하지 못하고 제3국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탈북 후에도 변함없는 참혹한 생활, 남한에서 겪은 고립과 차별, 그리고 멀리 낯선 땅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삶을 담았다. 그들은 한국 정부에게는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단이었고, 한국 사회는 같은 민족이라면서도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결국 그들은 차가운 시선을 피해 숨거나 떠나야 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오랜 세월 작업을 이어 온 사진작가 노순택의 강의가 이어졌다. DMZ 곳곳에서, 연평도 포격 현장에서, 서울과 평양의 거리에서, 분단으로 인한 모순과 상처를 사진에 담아오며 느낀 것들과 고민들을 이야기했다.

첫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밤, 북미 정상 모두 하노이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기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생중계를 이어갔다. 분주하게 기사를 전하는 기자들 뒤로 하노이 거리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물결과 덥고 비릿한 호안끼엠의 밤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회 첫날 참여단체 소개 시간에 무대에 선 희망법 강현진(왼쪽), 김광민

 

하나의 철원, 두 개의 기억

대회 둘 째날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분단 현실을 직접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올랐다. 철원은 서울에서 멀지 않았다. 한시간 반도 걸리지 않아 철원에 들어섰다. 시원하게 뚤린 고속도로 덕이기도 하지만, 원래 철원은 서울에서 10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다. 전철로 갈 수 있는 춘천이나 천안과 비슷한 거리다. 실제 거리보다 멀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휴전선이 있기 때문일까 생각했다. 차창 밖으로 넓은 평야와 병풍처럼 놓인 산줄기가 흘러갔다.

아름다운 풍경과 임꺽정에 얽힌 전설이 유명한 고석정에서 첫 일정은 시작됐다. 철원 일대는, 북한에 위치한 평강에서 분화한 용암이 흘러들어 만들어졌다. 고석정 일대 역시 화산분출로 생성된 현무암이 층층이 쌓이고, 그 위로 오랜 세월 한탄강이 굽이치며 지금의 장대한 풍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현무암 계곡에 거대한 화강함 바위가 홀로 우뚝 솟아 웅장하면서도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데 이것이 고석정이다.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에 임꺽정 전설도 서렸을 것이다.

발길을 서둘러 도착한 다음 목적지는 승일교다. 철원은 한국전쟁 전에는 북한에 속했다. 1948년 북한은 소련의 공법으로 승일교를 짓기 시작했지만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한국정부가 미국 공법으로 완공했다. 때문에 남북 양쪽의 아치 모양이 다른 특이한 다리가 되었다. 승일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분단이 만든 남북 사이의 ‘다름’을 실감하게 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각기 다름이 하나로 협쳐져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쪽과 북쪽의 아치 모양이 각기 다른 승일교

 

승일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철원 노동당사 건물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당사 건물 일대는 전쟁 전 철원의 중심지였다. 철원은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중간지점이다. 또 금강산으로 가는 전철도 이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늘 관광객으로 붐볐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철원 시가지는 완전히 사라졌고, 간신히 흔적처럼 남은 몇몇 건물이 당시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 중 하나가 노동당사다. 당시 북한이 소련 양식으로 공들여 지은 건물로 당당한 풍체이지만, 지금은 폭격과 치열한 전투 속에 여기저기 무너지고 부서져 전쟁의 참혹한 기억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당사에서 다시 출발한 버스는 조금 더 북쪽으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인 철원평화전망대로 향하려면 우선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검문이 형식적인 과정이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버스에 올라 인원을 점검하는 굳은 표정의 군인을 보고 있으려니 긴장감이 감돈다. 

 

철원 노동당사 앞 기념사진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넓은 논 사이로 버스는 천천히 달렸다. 차창밖으로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두루미들이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두루미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출입하기 쉽지 않고 깨끗한 환경이 잘 보전되어 철원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이 역시 전쟁과 분단이 만든 일이다.

철원평화전망대에서 북녘 풍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질문이 많았다. 백마고지가 어디예요? 북한 마을은 어디에 있어요? 태봉도성은 어디쯤인가요? 몇몇은 아주 딴 곳을 가리키며 북한이 저기냐고 물었다. 남과 북, 이쪽과 저쪽의 풍경은 다르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 들도 냇물도 바람도 햇살도 모두 하나로 얽혔다. 그러니 이곳에 처음 온 우리가 남과 북을 분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철원에서 본 분단의 모양이 꼭 그러했다. 바라다보이는 풍경은 하나지만, 역사와 이념 속에선 각기 두 개의 철원이다. 분단이 철원을 두 개의 기억으로 남겨놓고, 서로를 엇갈리고 빗나가도록 해놓았다. 그래서 우리가 철원에서 만나게 되는 분단의 모양은 눈이 아니고 마음이 알아차린다. 안타까움, 후회, 그리움, 증오, 괴로움 같은. 사람들은 철원에 와서 그런 마음을 보고 간다. 다만 누군가는 잊고 싶지 않아서, 다른 누군가는 잊었던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서울로 돌아와 숙소에서 다시 뉴스를 보았다. 북미 두 정상이 함께 만찬을 열고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했다고 기자들이 설명했다. 종일 전쟁의 흔적만 찾아다니다 되돌아온 밤, 두 정상의 만찬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철원 평화전망대로 향하는 사람들

 

다시 일상으로

셋째 날 참가자들이 서로 소감과 평가를 나누는 것으로 제16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는 막을 내렸다. 사흘 동안 친숙해진 사람들과 내년 대회에서 다시 만나자며 작별했다. 헤어지는 아쉬움은 ‘힘내시라, 건강하시라’ 서로에 대한 격려와 응원으로 대신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TV를 켰다.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두 정상이 각기 숙소로 돌아갔다고 했다. 결렬된 협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묻어났다.

회담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당신이 죽기 전에 금강산에 가 볼 수 있겠느냐며 아쉬워했다. 나 역시 언제쯤 평양 거리를 걸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과연 분단이 끝나기는 할까? 철원의 평화전망대는 언제 문을 닫을까? 

우리의 일상은 평화롭지 않다. 그저 분단과 평화 사이 어디쯤에서 부유하고 있다. 흔들리고 출렁인다. 지난 사흘을 보내며 내가 깨달은 것은 고작 이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평화가 아니라 떠도는 처지란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래야 뭔가 작은 실천이라도 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