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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희망법 김재왕 변호사는 지난 4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국가책임을 입증하는 최초의 자료공개 발표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서의 국가책임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무엇이고, 왜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형제복지원 자료공개 발표회 전면


관련기사 보기 – ‘형제복지원 사건은 명백한 국가범죄’

○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은 약 3,500명을 수용한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습니다.

당시 경찰 등 공무원들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라 길거리 등에서 발견한 무연고자를 비롯해 술 취한 사람, 역 대합실에서자고 있는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입소시켰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입소된 사람들을 불법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 성폭력 등의 끔찍한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의 12년 운영기간 동안 2014년 3월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지검 울산지청 소속의 김용원 검사가 1986년 12월 울주군 소재의 한 농장에서 강제노역하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1987년 3월 형제복지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세상에 알려 졌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7번의 재판 끝에 1989년 3월 징역 2년 6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원생들에 대한 불법감금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고,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형제복지원 특별법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등은 정부가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고 백서를 통해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사법적인 구제 또는 적절한 보상 입법이 제정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여 피해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실시하여 인권신장을 도모하고자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법안은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중입니다.

○ 국가에 의한 부랑인 수용

형제복지원 이사장 박인근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1981년 4월 10일에는 신체장애자의 구걸 행각 등을 단속하라는 내용의 대통령 총리지휘서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부랑인의 수용을 장려한 것입니다.

부랑인 수용의 근거인 냄부 훈령 제410호는 위헌적 규정이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법, 생활보호법, 아동복지법, 심신장애자복지법, 노인복지법 등의 법률들은 ‘부랑인의 신병 인수’를 직접 규정하거나 하위 법령에 위임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법률들의 적용 대상이 내무부 훈령에 규정된 ‘부랑인’ 정의에 부합되지 아니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찰 등 관계 공무원들은 내무부 훈령에 규정된 ‘부랑인’과 ‘부랑인에 준하는 자’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단속 및 수용을 했습니다. 그러나 훈령은 단지 행정규칙에 불과하므로 훈령에 따른 수용은 법률에 근거 없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법률유보의 원칙’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이 그 내용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여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경찰의 적극적 개입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 중 83%는 경찰에 의해 인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주소가 있거나 연고자가 있는 사람까지도 부랑인으로 취급해 형제복지원에 인계했습니다. 당시 신병인수증이나 신상기록카드에는 이런 사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에 사람을 넘긴 경찰은 승진에 가산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 부산시의 관리감독 부재

형제복지원이 국가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 사회복지법인이었다는 점에서, 업무의 위탁 관계상 국가 또는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최소한 관리감독자로의 책임이 있습니다. 부산시는 형제복지원과 1년 단위로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을 보면 부산시에 형제복지원을 관리·감독할 권한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는 그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제복지원에서의 원생 사망 등의  문제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매년 형제복지원과의 위탁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 사건 축소 및 은폐

수사 과정에서도 외압이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검사는 위선의 명에 의해 수사를 중단하였습니다. 당시 보사국장과 안기부 조정관은 박인근의 석방 탄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1인 시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하여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이런 점을 살펴 볼 때 국가가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국가는 어서 형제복지원의 진상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제정되어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형제복지원의 자료가 담긴 자료발표회 자료집 첨부합니다.


cfile5.uf.2162E0505487A7322B4E64.pdf




글_김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