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해피 프라이드! – 월드프라이드 참가기

들어가며

퍼레이드를 돌면서 연신 서로 외쳤던 그 말, 해피 프라이드! ‘이게 왠 어색한 말이야.. 크리스마스인가? 마틴 루터 킹 데이인가? ….이건 우리 종족들의 명절이구나.’ 


저는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1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했었습니다. 월드프라이드 2014 토론토(WorldPride 2014 Toronto)의 부대행사로 열렸던 월드프라이드 인권컨퍼런스 2014(The WorldPride Human Rights Conference 2014)에 발제와 참가 목적으로 다녀온 것인데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의 캔디 활동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호림 활동가님도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이 여정에 함께 했습니다. 

저희는 이 방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뉴욕에 다녀오신 병권, 기즈베 활동가님과 함께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주최로 ‘캐나다 토론토 세계 성소수자 인권 회의 참가 및 미국 뉴욕 성소수자 단체 방문 경험 나누기 – 태평양 너머 평등의 무지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보고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보고회의 내용을 포함해서 제가 보고 느꼈던 점을 공유할까 합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LGBT 운동에 집중하여 다녀온 국외 방문은 대만에 이어서 두 번째였습니다. 이번에도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북미 위주의 LGBT 운동과 커뮤니티를 집약적으로 관찰하고 많은 활동가, 연구자, 법률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이러한 소중한 기회에 재정적 지원을 해주신 법조공익모임 나우에 감사말씀을 전합니다.


월드프라이드

소수자 운동의 정치적 구호로서의 프라이드(Pride)는 차별과 낙인에 저항하는 자긍심, 자기 긍정 등을 뜻합니다. 행사로서의 프라이드는 원래 1950, 60년대 폭압적이던 시대에 연례상기집회(Annual Reminder)를 열던 것을 1969년 스톤월 항쟁 이후 발전시켜 1970년 6월에 뉴욕에서 ‘CHRISTOPHER STREET LIBERATION DAY’ 행사를 연 것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이 날을 위해 각 뉴욕 LGBT 단체들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 바이섹슈얼 활동가 브렌다 하워드는 ‘프라이드의 어머니’로도 불립니다. 이제 프라이드는 성소수자 연례 행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시마다 다른 이름이나 형태로도 행해지기도 합니다. 시드니 마디그라(Mardi Gras), 싱가포르의 핑크닷, 그리고 우리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처럼요.

1970년 CHRISTOPHER STREET LIBERATION DAY

출처 : http://outhistory.org/oldwiki/Christopher_Street_Liberation_Day_March 

다수의 프라이드는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여 6월에 열리지만 각 국가나 도시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기에 열리기도 합니다. 수많은 무대차와 행렬이 등장하는 퍼레이드는 프라이드 기간(LGBT역사의 달LGBT history month나 프라이드 주간Pride week) 중의 중요행사입니다. 그 외에 전시회, 인권컨퍼런스, 클럽 파티, AIDS 추모제, 영화제 등 많은 부대행사들이 이 기간에 이뤄집니다. 상업적인 스폰서도 이제는 단골손님인데요. 올해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에는 게이웨딩업체도 한 부스를 차지했습니다. 

월드프라이드 토론토 로고

http://www.pridetoronto.com/

그 중에서도 월드프라이드는 1980년대부터 미국의 지역 프라이드 행사의 연합체로 시작했던 인터프라이드라는 단체(35개국, 162도시의 회원)에서 라이센싱한 상표로서 2-3년에 한 번씩 한 도시에 월드프라이드라는 명칭을 수여합니다(유로프라이드라는 유럽 단위의 단체도 있는데 월드프라이드 도시로 선정된 유럽도시는 그해 유로프라이드 도시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습니다). 2012년 런던에서 열렸던 월드프라이드는 관과 충분히 협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지 행사 진행 면에서 잡음이 있었습니다. 토론토 관광 진흥청과 합작하여 신청을 한 토론토 월드프라이드는 곳곳에 가득한 월드프라이드를 축하하는 관련 광고물이 넘쳐서 흡사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도시 같았습니다.

공항 광고

벽화

TD은행 광고

그 주의 토론토 교통패스

토론토 프라이드는 토론토의 스톤월 항쟁이라고 할 수 있는 1981년 게이사우나 단속에 대한 대규모 시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토론토는 이번 월드프라이드를 유치하면서 수십 년간 자신들의 운동의 성과를 쇼케이스하고 운동에 불씨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권 이슈에 대한 캐나다 특유의 자부심(‘우리는 미국 같지 않다’)도 엿보였습니다. 시내 지대가 높아져 LGBT들이 점차 교외로 나가는 상황에서 처치 앤 웰슬리 거리를 다시 한 번 게이 빌리지로 자리매김하는 시간도 되었겠지요. 누군가는 폐막 즈음하여 ‘아마 토론토에서 올해 같은 규모의 프라이드는 다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내년은 유난히 허전한 느낌일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그룹

간호사 그룹

물론 트랜스젠더 포함이 충분하지 않음에 대한 커뮤니티 내적인 반성과 법제도적 현안의 존재(온타리오 인권헌장에 성별정체성이 2012년에야 포함됨), 무슬림 퀴어, 아시안 퀴어 등 커뮤니티 내 종교/종족 등 다양성 이슈, 인구밀도가 낮은 캐나다 특성상 도시-비도시 간의 지역격차, 지역의회 안에서 LGBT 관련 입법에 대해 반동적인 움직임(counter-mobilization)에 대한 경계 등 많은 현안들이 남아있었지만 왠지 토론토도 한 시대가 정리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원래 정치적 집회로 시작된 프라이드는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점차 변해갔습니다. 양적 성장, 상업화, 탈정치화 경향도 강해졌고요. 이에 반발하여 주 퍼레이드 외에 다이크 마치, 트랜스 마치, 바이 퍼레이드가 따로 열리기도 하고 한 도시에 다른 색깔을 가진 별도의 프라이드가 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IGLHRC의 그레이스 푸어 활동가에게 언제 프라이드가 가장 재미있었냐고 여쭤보니 80년대 뉴욕 프라이드를 꼽으시더군요(70년대가 더 래디컬하고 재미있었겠지만 그건 못 보셨겠죠?). 프라이드마다 아직도 커뮤니티 내 의미 있는 논쟁거리 – 예를 들면, ‘결혼 평등’이 슬로건이었던 시드니 마디 그라에서 폴리아모리 단체의 소외감 등 – 는 남아있습니다만, 이제는 주요 정치인들이 표밭을 가꾸기 위해 인사하고 은행, 주류회사 같은 메인 스폰서들이 홍보하고 관광객에게는 좋은 사진 기회를 제공하는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이것도 그동안 참 많은 것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현재 아닐까요. 1년에 하루, 그 작은 도로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남의 잔치에 와서 깽판을 놓는 사람들의 난동을 목격해야 했던 한국인으로서는 저 느낌이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세 참가자와 관련 있는 단체를 모두 현수막에 넣었습니다. 

여행차 온 한국관광객들이 알아보고 많은 환호성을 질러주셨어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그렇게 환호해주세요~

토론토와 게이 동네(gayborhood)

북미의 대도시마다 게이 바 등 유흥지역, 음식점, 서점 등 상업지역, 아파트 등 주거지역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게이 빌리지 지역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Castro Street), 시카고의 보이스타운(Boystown), 시애틀의 캐피톨 힐(Capitol Hill). 유럽에서는 런던의 소호, 베를린의 놀렌도르프광장(Nollendorfplatz) 등이 유명하지요.

LGBT들은 스톤월 이후 70년대부터 바나 크루징공간 같은 심야 유흥 위주의 공간뿐만 아니라 낮에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갈망하기 시작하였고 종전에는 우범지역으로 여겨지거나 임대료가 낮은 곳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영향으로 더 이상 젊은 LGBT들이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대가 올라가기도 하였고 LGBT 수용도가 올라가면서 굳이 모여 살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게이 빌리지는 박물관 같은 전통의 장소가 되거나 도시 중상류층들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고, 아이를 가진  많은 LGBT들은 이제 교외지역에 정착하는 경향도 생겨났습니다.

 

-USA 투데이, LGBT에 대한 수용도가 올라감에 따라 ‘게이버후드’가 사라진다  ‘Gayborhoods’ fade with growing acceptance of LGBT

토론토의 유명한 게이 동네(gay villiage), 게이버후드(gayborhood) 는 처치 앤 웰슬리 거리입니다. 게이 바, 레스토랑, 여행사, 게이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도 있지요. 현지 분들은 이미 많이 쇠퇴했다고 하였지만 월드프라이드 기간 중 거리의 위용은 여전히 대단했습니다.

처치 거리 표지판

처치 거리 519번지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는 짧게 ‘519 centre’라고 불립니다. 1975년에 세워진 이곳은 처음에는 이성애자들,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던(closeted) LGBT들이 골고루 이사회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LGBT 청소년 사업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가 동수(‘청소년에게 악영향’ 운운)였던 이사회에서 한 바이섹슈얼 남성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시킨 일이 이 센터의 변화의 시작이 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센터는 LGBT가 많이 사는 이 지역의 수요에 부응하면서 점차 LGBTTQ 청소년/홈리스/단체 친화적인 민관 합동형 커뮤니티 센터가 되었습니다. 한국 단체들도 청소년을 위한 이러한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편 커뮤니티 센터 뒷마당에서 있었던 커뮤니티 행사인 AIDS 추모제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호림 활동가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

519 센터

519 커뮤니티 센터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The_519_Church_Street_Community_Centre)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게이버후드는 어디일까요. 얼마 전에 ‘게이의 캣워크 무대’로 유명한 종로3가 포장마차거리에서 친구사이 2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불청객들이 남의 잔치에 와서 행패를 부렸습니다. 초점이 없는 그 눈들을 보며 증오발언(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유명한 일본의 재특회가 생각났습니다. 

인권컨퍼런스

이번 인권컨퍼런스는 월드프라이드의 부대행사로서 현재의 LGBTI 국제인권에 대한 범세계적인 대화·교류 행사로서 인권활동가, 정책담당자, 연구자, 법률가들이 주로 참가하는 행사였습니다. 토론토 대학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마크 S 본햄 성적 다양성학 센터(Mark S. Bonham Centre for Sexual Diversity Studies) 주최로 3일간 66개 세션, 140여개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센터 자체도 학내 퀴어 운동의 투쟁의 산물로서 1969년도에 세워진 것으로 학부프로그램, 학제간 통합과정으로 석박사과정을 운영합니다. 

월드프라이드 인권컨퍼런스 로고 

http://www.wphrc14.com/


인권컨퍼런스 프로그램의 예

첫째날 오전의 프로그램. 몇몇 세션은 큰 회사가 스폰서를 하기도 했습니다.

세션 주제는 토론토/캐나다, 대륙/지역적(EU, 아시아 등) 등 지리적으로 묶기도 하였고,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등 정체성별로 묶기도 하였으며, 고용/노동권, 결혼 등 가족구성권, 교육, HIV/AIDS와 보건권 등 권리별로 묶기도 하였고, 문화, 종교 등 사회현상별로 묶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세션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찼습니다.

저녁마다 하는 총회 세션에는 주로 국외의 활동가들이 등장하였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DOMA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이디스 윈저(Edith Winsor)는 원래 캐나다에서 혼인신고를 했었는데 당시 결혼식을 주재한 캐나다의 첫 오픈리 게이 판사 하비 브라운스톤와 대담을 하였습니다. 

이디스 윈저, 테아 스파이어, 하비 브라운스톤

이디스와 테아의 결혼식, 마이크 앞이 하비 브라운스톤 판사

(출처 : ncronline.org)

인권컨퍼런스 6월 25일 행사

왼쪽부터 요한나, 요니나, 이디스 윈저, 하비 브라운스톤

세계 최초 레즈비언 총리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의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전 총리와  요니나 레오스도티르 부부(2010년에 결혼)도 등장했습니다. 논점만 말하는 무뚝뚝한 요한나 전 총리와 연애사를 풀어놓는 애교 많은 요니나는 참 귀여운 커플이었습니다. 그 외 프랭크 무기샤를 비롯한 우간다 활동가,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마샤 게센 등 작년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던 국가의 활동가들이 총회 세션을 빛냈습니다.

개별적인 세션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비 밀크와 함께 LGBT 노조운동을 했던 클리브 존스(Cleve Jones)의 수십 년 운동사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결혼회의주의자였는데 결혼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은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의 낸시 윌슨(Nancy Wilson) 목사의 30년 결혼 운동사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몇몇 발언들이 기억에 남네요.

왼쪽부터 비벡 아난드, 낸시 윌슨, 밥 갤러거

캐나다의 낸시 윌슨 목사

– 우리는 차근차근 싱글의 입양할 권리부터 출발을 했는데, 여기서 ‘싱글’이란 사실 벽장에 있는 동성애자 커플들이었다.

– 결혼은 it factor가 있다. 결혼을 주장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예민해진다.

– (‘이성애자들에게도 결혼은 통과의례(rite of passage)인데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만의 의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하는 질문에) 

물론 통과의례이다. 이 의례는 둘이 겪는 변화도 있지만 가족들이 들어온다는 의미도 있다. 예식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것(DADT)’을 넘어서고 가시성으로서 모두를 자극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모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예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AIDS위기 때 친구들이 많이 죽었고 장례식을 참 많이 갔다. 이 ‘예식’이라는 것은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큰 의미가 있다. 결혼식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라이드 비슷하게 모두가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그런 의식은 중요하다.

– (각국으로 수출되는 반동성애 흐름에 대해) Follow the money. 누가 돈을 대는지 그 이니셔티브를 봐야 한다.

캐나다의 밥 갤러거(Bob Gallagher)

– 60년대 여성운동 없이는 70,80,90년대 LGBT 운동이나 지금의 운동도 없다. 게이 해방 전에 여성운동이 있었고, 결혼평등 전에 개인의 기본권이 명시된 캐나다 인권헌장이 있었다.

인도의 비벡 아난드(Vivek Anand)

– 게이인 내게, 일단은 여자랑 결혼하고 애도 낳고, 대신 사이드로 ‘게이’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 누가 너를 대놓고 차별하는가, 왜 언론에 대고 떠들어야 하는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이성애자로 간주되고 내게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 (어떻게 인도는 형법 377조도 있으면서, 제3의 성도 인정할 수 있는가, 이게 한 나라에서 가능한 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웃으면서) 

인도는 1 시간대에 5개의 세기가 공존하고 있다(“1 time zone, 5 different centuries”).

– (377조 소송 패소에 대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거지. 지고 나서 춤추고 노래한다고 욕 먹기도 했지만 우리는 바로 이 정신이지! (That’s the spirit!)

이러고 나서 패럴 윌리엄스의 ‘Happy’에 맞춰서 인도 퀴어들이 춤춘 동영상을 틀어주더군요. 패배에 좌절하지 않는 정신!

반가운 아시아 활동가들 – IGLHRC의 Grace Poore, ILGA의 Azusa Yamashita, 필리핀의 Angie Umbac, Being LGBT in Asia 필리핀 편을 책임집필한 Outragemag의 Michael Tan, 인도네시아의 Anna Arifin. 이번에 또  만나게 된 대만 Tongzhi의 Chih-Liu Peng, Sih-Cheng Du 등 – 이 나온 세션은 항상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ILGA-Asia 등 아시아 단위의 컨퍼런스를 기대하게 만든 것도 이 친근한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왼쪽부터 그레이스 푸어, 앤지 움박, 야마시타 아주사

이 컨퍼런스에서 법률가인 제가 주제넘게 ‘종교’와 관련된 발제를 했던 것은, 별로 논쟁점이 될 만한 것도 없는 평이한 차별금지법안의 발의가 일부 집단의 반발에 밀려 의회 안에서 철회된 초유의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각 나라에서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주 반대자로 보수개신교 세력이 등장한 것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상황이지만, 특히 한국 일부 개신교의 이러한 태도에는 어떠한 맥락이 있는지 간단하게 발제를 했습니다. 저의 내용은 주로 세인트 캐서린대 종교학 조민아 교수님의 2011년 논문 ‘Other side of their zeal’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동성결혼식을 주재한 것으로 유명한 브렌트 혹스(Brent Hawkes) 목사에게 조언도 듣고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영어 발표라 많이 버벅거렸다는 회한만 남네요. ^^;

전반적으로 알찬 컨퍼런스였습니다. 한편 현지인들이 아시아 활동가들의 발제를 볼 때 식민주의 시대와 근본주의 기독교가 아시아/아프리카에 뿌려놓은 씨앗인 남색법 등 차별적인 법제도/관행의 존재, 반동성애 세력의 강화와 팽창에 대해 1세계 백인의 죄책감(white guilt)을 가지고 보는 묘한 오리엔탈리즘도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들이 아시아의 구체적 맥락을 잘 모르는 면도 있고요. 앞으로 계속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거겠죠.

국제연대/아시아

많은 사회적 정치적 운동은 어느 시점에서는 국경을 넘어 국제 단위로 나아갑니다. 데니스 알트먼은 ‘Global Sex’를 통해 Globalizaition 시대의 전지구적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지만, 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국제 LGBT 운동이 국제기구/인권기구에 접근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고(1990년대 초반) 지금 그 안에서 추동하는 변화가 동시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유럽 안에서의 지역단위의 흐름은 1980년대 초반 유럽의회에서 “Squarcialupi Report”를 채택하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주로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 일어났던 이 정치적인 흐름은 유럽위원회가 1996년 생긴 ILGA의 유럽지부 ILGA-Europe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긴밀하게 유대하면서 더욱 가속화됩니다. 이러한 흐름 하에 유럽 단위의 성적지향에 기한 고용차별금지지침도 등장합니다. 이 흐름이 UN에서는 2000년대 이후에서야 나타납니다. 인권이사회의 결의 채택이나 UN Free & Equal 프로젝트, UN 바깥에서의 요그야카르타 원칙의 성안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전세계 단위에서의 운동은 아직 쉽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는 EU의 팽창으로 새로운 동·남유럽 국가들이 가입대상에 올랐습니다. EU는 가입의 조건으로 법제도와 인권 전반 어젠다, 예를 들면 LGBT 차별 철폐 등을 각 국가에 요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인권컨퍼런스에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동유럽 몇몇 국가 안에서의 반동 움직임 등 오히려 유럽 안에서의 양극화 상황(‘좋은 나라는 더 좋아지고, 안 좋았던 나라는 더 안 좋아짐’)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일단 EU에 가입하고 나면 가입하기 위해 법제도를 정비해야 했던 가입 전보다 EU의 협상력이 떨어지고 악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손을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전히 동유럽 LGBT 운동은 EU의 역할과 지역 연대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ILGA-Europe 무지개 지도

이러한 지역적 유사성을 통한 동반상승(하강 방지?) 작용은 이제 아시아에서도 눈에 띕니다. 동남아 ASEAN 국가들이 인권 헌장을 만들면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배제하려고 한 반동 움직임에 대해 대항하였던 성소수자 시민단체들의 연대 Asean SOGIE Caucus 가 있습니다.

Asean SOGIE Caucus

, 최근 UNDPUNAID가 손을 잡고 시행하는 Being LGBT in Asia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국가별 LGBT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 대화를 여는 프로젝트입니다. 한국은 소위 ‘developed country’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국제원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데,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중점 국가(focus country)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산업화된 국가로서 한국 LGBT 인권상황이 다른 산업화된 국가나 OECD 기준에 부합해야 하겠습니다만, 군형법 추행죄가 존재하고,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에 대하여 재판상 구제를 꾀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도 없고, 동성결합에 대한 아무런 권리·혜택이 없는 국가가 OECD국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LGBT 운동이 활기를 띄고 있다는 중국은 대만, 홍콩과 함께 묶이는 운동의 연대체가 존재합니다. 이에 반해 극동의 한국이나 일본은 참 애매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Being LGBT in Asia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게 동성애 혐오라는 현상은 식민지시대의 수입품입니다. 동성애 혐오는 수입된 것이지 ‘전통’도 아니고 ‘아시아적 가치’ ‘아프리카적 가치’도 아닙니다. 합의하의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한국의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의 기원은 국방경비법->미국 전시법->영국의 전시법의 소도미 법까지 올라갑니다(미국 UCMJ 125조는 2003년 로렌스 대 텍사스 판결로 인하여 합의하의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처벌하지 않았고 2013년 국가수권법의 정비로 합의하의 소도미 처벌 조항은 사라졌습니다). 

원조국에서 이제 철폐된 악습들이 수입국에는 남아있고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아시아/아프리카는 1세계 운동의 성취 과정을 지켜보며, 각 지역 및 국가들이 처한 상이한 정치적·문화적·역사적 맥락 하에서 분투 중이지만, 1세계 성취의 반작용(backlash)을 여기서 직면하기도 하는 상황에도 놓여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국가의 상황과 상호작용관계에 있으며 함께 대응해야 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국제연대’란 때론 국외의 멋들어진 컨퍼런스룸에서 다시는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단기적인 소득이 없을 이야기들을 나누고 명함을 교환하고 돌아오는 공허한 허영으로 비추어지기도 합니다. 현안이 산적한데 왠지 비용과 시간의 비효율적인 사용 같기도 하고요. 이번 방문을 통해 북미의 운동으로부터는 영감을 얻고 비슷한 상황에 놓은 아시아 활동가들과 동병상련과 연대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 활동가는 서울학생인권조례 투쟁을 언급하며 “왜 한국은 문제 있을 때만 연락하니? 다들 한국 소식을 궁금해 한다.”고 하며 이런 자리에 자주 나올 것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할 수 있는 일부터, 예전부터 존재하여 오던 국제연대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계속 다지는 것부터, 일단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가며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월드프라이드 개막식에 나온 멜리사 에써리지(Melissa Etheridge)는 어느덧 나이가 많이 들었더군요. 혹시 공개된 공연장에서 볼 수 있을까 싶었던 케이디 랭(kd lang)은 40, 50대 레즈비언들을 앉혀놓고 비싼 돈을 받고 디너쇼를 하고 있었고요. 이렇게 뜰 줄 몰랐던 쌍둥이 레즈비언 듀오 티건 앤 사라(Tegan and Sara)는 이제 록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티건이 어쩐지 음흉한 표정으로 “All I’m dreaming lately is how to get you underneath me”라고 부를때 괴성을 지르던 제 주변의 여성 관객들을 보고 너털웃음이 났지요. 

출처: © Tommy Kearans 

http://www.undertheradarmag.com/interviews/tegan_and_sara_tegan_quin_marriage_equality/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험난하지만 흥미진진한 노정에서 한 느낌표를 찍으며 ‘동성결혼’이라는 상징적인 성과물을 지나치면서 축배를 들고 있는 ‘제1세계’의 모습에서 저희는 무엇을 가져와야 했을까요. 지금 저들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어떠한 조건들이 있었는데, 그 조건들이 우리 안에 없다면, 어떤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올 수 있을까요. 2017 마드리드 월드프라이드에서는 한국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요?  

아래 동영상은 일주일간의 월드프라이드 풍경을 정리한 호림 활동가의 역작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어떠한 이질감 속에 비관적인 감상도 가끔 들었지만, 1주일 내내 한 도시를 ‘접수’하며 LGBT 활동가들과 LGBT 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던 그 해방감만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작은 도로 하나도 내어주기 주저하는 한국에서 이 광경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모두 머리를 맞대어봐야지요. 저의 뜬금없는 질문들을 잘 받아주고 훌륭한 여행친구가 되어 주신 캔디, 호림 활동가께 새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를 환대해준 현지의 한국/아시아 퀴어 여러분들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멋지게 다시 만나요. 

글_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