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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트랜스젠더는 정부의 케어를 받을 수 있을까?

법적 성 바꾸려면 성전환 수술 필수인 한국이지만 건강보험 적용 제외
보장성 강화 위해 추진 중인 ‘문재인 케어’에 트랜지션 포함 여부 주목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지정된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이 다른 사람이다. 두 성의 차이는 당사자에게 때때로 고통으로 다가온다. 둘을 일치시키기 위한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은 누군가에겐 삶을 위한 필수 의학 조처다. 그런데 이때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성전환 수술은 수백에서 수천만원이 들고, 2∼4주 간격으로 평생 맞는 호르몬 치료도 한 번에 수만원씩 든다. 모두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개인이 전부 부담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치료와 수술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트랜스젠더에게 병원 문턱은 높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팀은 최근 트랜스젠더 278명에게 설문조사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 ‘한국 트랜스젠더가 경험한 의료 이용 장벽’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논문 발표에 앞서 의견을 구하기 위해 12월7일 저녁 서울 성북구 고려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를 초청해 2시간에 걸쳐 비공개 포럼을 열었다. <한겨레21>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비공개 포럼에는 트랜스젠더 관련 의학적 조치 경험이 풍부한 추혜인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살림’ 원장과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이 함께했다. 트랜스젠더로서 한국 첫 변호사가 된 박한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5명, 김 교수 연구팀을 합쳐 총 11명이 참석했다.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돈이라는 장벽

성전환 수술의 높은 비용은 트랜스젠더가 경제적 곤란을 겪기 쉬운 이유 중 하나다. 현재 한국에서 법적 성을 바꾸려면 성전환 수술이 거의 필수인데 돈이 많이 든다. 평균적으로 고환·정소 제거 수술은 300만원, 난소·자궁 제거 수술은 400만원이 든다. 가슴 수술은 370만∼530만원, 성기 재건 수술은 1500만∼2천만원이 든다. 법적 성을 바꾸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외모 등 사회적 성과 주민등록번호에 적힌 법적 성이 달라 회사 서류·면접을 통과하기 힘든 탓이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는 난망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오히려 ‘커밍아웃’이 힘든 법이다. 20∼30대에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 수술비를 마련하는 이들도 있다. 돈을 모으는 데 시간을 쏟느라 스펙과 경력을 쌓지 못했기에 양질의 일자리도 멀어졌다. 결국 ‘돈이 없음 → 성전환 수술 못 받음 → 좋은 일자리 못 얻음 → 돈이 없음’이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실제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진행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모든 성소수자 중 트랜스젠더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가장 열악했다. 트랜스젠더 중 정규직은 26.1%로, 전체 성소수자 정규직 비율 44.0%에 비해 훨씬 낮았다. 반면 비정규직(13.7%), 비임금근로자(15.3%), 비경제활동인구(19.7%) 비율은 전체 성소수자보다 1.5∼2배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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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션은 인권 문제

이날 포럼에서도 문재인 케어가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참가자들은 “트랜스젠더는 ‘성적 기호’가 아닌 ‘성 정체성’이며 트랜지션은 인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트랜스젠더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질의한 뒤 10월9일 한국 정부에 권고문을 보냈다. “당사국이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및 사실적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사회보장, 재생산, 건강, 주택과 관련된 차별적 법과 규제 조항들을 개정하라.” 국제적으로 이 문제를 인권 이슈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미 2006년에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에서 “성전환 관련 수술에 대한 국민건강보험의 단계적 적용 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

한쪽에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보험료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201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윌리엄 파둘라 교수팀이 세계적 학술지 <일반내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트랜지션이 건강보험에 포함됐을 때 전체 가입자가 추가로 내야 할 돈은 매달 0.016달러(약 17.5원)에 불과하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의 우울증·자살률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사회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결론은 참고할 만하다.

더구나 현재 법원은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신체 침해적인 생식능력 제거 및 성기 수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이 비용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이중의 부담을 주고 있다. 추혜인 원장은 “한국에선 법적 성별 정정 요건에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이 필수로 들어 있음에도 건강보험을 해주지 않는 게 부당하다”고 말했다.

최근엔 트랜지션을 하지 않고도 법적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세계적 추세다. 김승섭 교수는 “트랜스젠더 개인마다 살아온 역사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성전환 관련 의료적 치료의 내용과 시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윤정원 과장은 ‘받고 안 받고를 선택할 수 있는데 왜 급여화를 해줘야 하냐’는 반론을 의식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여성이 폐경을 겪지만 이 중엔 호르몬 보충요법을 받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폐경으로 홍조와 불면, 우울 등을 겪는 사람이 호르몬 치료를 받았을 때 건강이 좋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해준다는 점입니다. 트랜지션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효과가 뚜렷하므로 건강보험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건강보험에 들어가면 현재 트랜지션 치료를 하는 의사들의 수입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추혜인 원장과 윤정원 과장은 적극 찬성이다. 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추혜인 원장은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성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랜스젠더 분들이 서울에서 호르몬 치료를 받으려 동해와 제주도, 목포에서 옵니다. 수술을 받으러 타이로 가는 분들도 있고요. 한국에서 트랜지션을 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보니 생기는 일입니다. 시간과 교통비 등 간접적인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트랜지션을 하는 의료인이 많아져 집 가까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의료인 교육과정에 트랜지션이 들어갈 가능성도 커지고요.”

건강보험에 포함되면 치료 과정과 치료비가 표준화되고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트랜지션은 의료기관마다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게 값’이다. 조각보 활동가 ‘진호’의 말이다. “트랜스 남성(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의 경우 가슴 사이즈에 따라 수술비를 다르게 책정합니다. 수술이 어려우면 값이 오를 수도 있지만 평균 금액의 두세 배를 부르기도 해 부당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 크다”

조각보 활동가 ‘준우’ 역시 “몇몇 병원이 전문병원이란 이름으로 독점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데, 서비스가 그리 훌륭하지 않다. 수술 뒤 부작용이 생겼을 때 추가 치료도 잘 안 되는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박한희 변호사는 “건강보험이 되면 돈이 없는 트랜스젠더들이 싸지만 질 낮은 병원을 찾아야 했던 상황도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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