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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 활동자료를 함께 나눕니다.

[한겨레21] 옛것은 갔지만 새것이 오지 않았다

새 대법원장 취임에도 피부에 와닿는 변화 아직 미흡…
“사법부가 절박한 사람들 심정 더 헤아려주길”

 

‘옛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았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한겨레21>의 ‘올해의 판결’ 심사 결과를 정리하면 그렇다. 2017년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최종 확정한 헌법재판소 결정,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등 굵직한 사건이 줄줄이 이어진 한 해였다. 새 시대를 기대하는 시민들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컸지만 올 한 해 사법부가 내린 무수히 많은 판결과 결정들을 톺아보면, ‘명판결’이라며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제왕적 대법원장이라 이르던 ‘양승태 체제’가 막을 내리고,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했지만 사법부는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꺼뜨리기는 이르다. 올겨울 우리 주변을 맴도는 이 매서운 추위는 다음해면 찾아올 따스한 봄을 위한 ‘통과의례’라 믿고 싶다. 그렇게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올해의 ‘긍정적 판결’ 13건을 골랐다. 이는 지난해 5건에 견줘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조금이라도 좋은 판결을 내리려 고심한 판사들의 용기를 북돋고, 조금 더 빨리 새싹을 틔우려는 심사위원 7명의 바람이 담긴 결정이다. ‘부정적 판결’은 예년과 비슷하게 6개를 뽑았다. 올해의 판결 최종 심사회의는 12월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심사회의 때 나온 다양한 의견을 정리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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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시선과 조금은 가까워진 사법부

노희범(심사위원장·법무법인 ‘우면’) 법원의 판결을 좋다, 나쁘다로 가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공권력이 작용하는 한 축인 사법부의 결정을 국민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한겨레21>이 해온 ‘올해의 판결’은 법관과 변호사들에게 다양한 희망과 깨우침을 주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사법부의 지표가 될 판결, 모범이 되거나 비판받아 마땅한 판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우선 올 한 해 사법부 평가부터 해보자.

안진걸(참여연대 사무처장)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 결정과 김명수 대법원장 선출을 보면서 사법부가 국민들과 조금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더 큰 차원의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 바란다.

김한규(법무법인 ‘공간’·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대법관이 좀더 다양성 있게 구성되지 못해 아쉽다.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으로 대표되는 획일화된 대법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이 비판이 서오남이 아닌 사람을 임명하면 된다는 형식 논리로 변질된 것 같다. 최근 추천된 대법관 2명(민유숙·안철상)도 한 명은 여성이고, 한 명은 비서울대지만 평생 법관만 한 고위직 출신이다. 생각의 다양성을 충족하고 있냐는 의문이 든다. 대법관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외형적 조건뿐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까지 봐야 한다.

김태욱(금속노조 법률원) 노동 판결을 보면 극소수 판사만 좋은 판결을 한다. 대다수의 판사는 노동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사법부의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어지는 9년 동안 기대하기 힘들었던 노동사건 전담법원 등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시기가 온 게 아닐까 한다.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헌법재판소장이나 대법원장 청문회를 보면 동성혼 등 성소수자 쟁점에 대해서는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한다. 사법부가 소수자 인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드러난 해라고 생각한다. 지난 5월 대만 사법원에서 동성혼을 금지한 현행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 있었다. 대만 사법원은 재판관 14명 중 8명이 진보적 학자였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다.

오지원(법률사무소 ‘나란’·전 세월호 특조위 과장) 올해 대통령 파면 결정이 있었지만, 정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다. 그 전(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기 전)까지 검찰과 법원을 포함한 사법제도가 제 기능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국정 농단을 했는데, 제대로 수사도 못하다가 결국 1천만 넘는 시민이 촛불을 드니까 그제야 헌재 결정이 나오고 박근혜 구속도 이뤄졌다.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진일보한 판결이 없다. 국민이 만족할 만한 재판을 하는지, 조서 중심 재판에 문제는 없는지를 따지는 큰 틀의 개혁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에도 소식이 뜸하다.

개인보다 조직을 더 신뢰하는 판사들

이석배(단국대 법학과 교수) 며칠 전 학교에서 수원지검과 행사를 함께했다. 우연히 밥을 먹는데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간첩 증거 조작이 이뤄졌던 탈북자 유우성씨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예전에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을 들은 뒤 이민 가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그만큼 문제가 많은 사건 담당 검사가 복귀해 부장검사를 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정권이 교체된 뒤) 기대도 많고 많은 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바뀐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김한규 법원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실무준비단’이 전원 판사로 구성된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많은 비판을 받는 검찰도 개혁위원회를 구성할 땐 형식적으로라도 여러 영역의 사람들을 끼워넣는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의미 있는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박한희 법원이 절박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한 지방법원에 60살 가까운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 신청을 했다. 그런데 법원장이 “그 나이 먹고 굳이 성별 정정을 해야겠냐”고 물었다. 당사자는 취업도 안 되고 생계가 힘든 처지였다. 그러니까 판사가 “어디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라”고 했다 한다.

오지원 판사들이 개인과 국가 또는 대기업이 싸울 때 ‘큰 조직이 거짓말을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경험해보면 큰 조직일수록 더 거짓말을 잘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때도 기업들이 보고서를 조작했다. 하지만 판사들은 여전히 조직을 더 신뢰한다.

안진걸 맞다. 기업 총수들 판결문에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판결문에서 ‘가정경제를 생각해서’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태욱 노동자는 노조 탈퇴가 감형 사유인 황당한 경우도 있다. 부당해고에 반발해 투쟁한 동양시멘트 노동자 사건 때, 1심에서 노조 탈퇴한 사람은 집행유예나 벌금을 받았지만 노조원에게는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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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봉, 김선식,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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