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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편의 제공 ‘좋아요’ 적극적 차별구제 ‘글쎄요’

장애인 차별금지법 판례 71건 살펴보니 “장애인 이동권 보장” 판결 다수
적극 구제조처 인용판결 6건 그쳐 국가·지자체 책임 인정도 소극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햇수로 10년이 되는 지난해 말까지 법원 판단을 받은 관련 사건은 모두 7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특성에 맞는 편의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다수 나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이 법의 ‘정수’로 꼽히는 구제조처가 인용된 건수는 턱없이 적어, ‘권리 구제’라는 입법 취지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한겨레>가 지난해 말까지 선고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판결문을 모두 입수해보니, 민사·행정사건의 상당수가 ‘정당한 편의제공’ 여부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많았다. 2015년 서울중앙지법이 ‘서울시-경기도’ 왕복 시외·광역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마련하라는 판결을 처음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서울고법은 광역버스에 마련된 휠체어 공간의 폭과 길이까지 명시하는 판결을 했다. 김재왕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지체장애인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소송을 냈고, 법원도 차별행위가 확인된다는 판단을 보다 쉽고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형사사건 판결문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수사기관은 장애로 의사소통 등에 어려움이 있는 피의자에게 신뢰관계인이나 변호인의 동석 등 적절한 조력을 제공해야 한다. 법원은 이런 조력을 못 받은 상태에서 내놓은 자백이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4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지적장애인 ㄱ씨 사건에서 “검찰에서 진술할 때 신뢰관계인이 동석하지 않아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며 피의자신문조서 일부를 무효로 봤다.

 

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적극적 구제조처’가 시행 6년 만인 2014년에야 첫 인용 판결이 나오고 지난해 말까지 모두 6차례(확정 2건, 청구 18건) 인용된 데 그친 것은 한계로 꼽힌다. 입법 초기 이런 구제조처가 차별행위를 시정하고 인권을 보장할 강력한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점에 비하면, 성과가 미미한 수준이다.

 

법원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구제조처를 적용하는 데 소극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 등은 국가나 지자체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관련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법원이 아직 이들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없다. 최정규 변호사(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는 “법원이 행정기관에 정책 추진과 재정 지원을 명하는 게 자신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보는 것 같다”며 “국가 역시 편의제공 주체로 법에 명시된 이상 민간사업체와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현장검증 등을 활용한 법원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현장검증에 참여한 한 판사는 “현장 체험을 하면서 장애인이 느낄 불편함은 물론, 편의 미제공으로 인한 모욕감까지 헤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소은 기자 /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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