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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차별 발언 ‘혐오의 가이드라인’ 될 우려 커

홍 “동성애” 질문에 문 “반대한다” 보편 권리를 찬반으로 탈바꿈시켜
‘이 정도는 말해도 된다’ 식으로 대중들에 잘못된 메시지 줄수도
방송인 김제동씨, 페이스북에 “동성애는 판단의 대상 아니다
성범죄 모의한 사람이 판단대상” 여성단체연합, 홍준표 사퇴 촉구

 

한국 사회의 미래를 탐색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돼야 할 대선 후보 토론회가 사회적 차별과 혐오 담론에 길을 터주고 이를 증폭하는 무대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보수 후보가 한국 사회 한쪽의 동성애 혐오 정서에 기대어 성소수자 인권을 보편적 권리가 아닌 찬반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는 정치전략을 구사한 데 더해, 상대적 진보성을 드러냈던 유력 후보조차 이를 정면으로 반박·제어하기보다 오히려 개인 견해를 앞세워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한 실망과 우려가 깔려 있다.

 

25일 밤 제이티비시(JTBC)·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합니까?”라고 거듭 물었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반대한다”,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재차 답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분 발언 기회를 통해 “동성애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문 후보의 발언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이에 대한 별다른 첨언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홍 후보는 “설거지는 여성의 몫”,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등 각종 성차별적 발언에 더해 대학 시절 ‘돼지발정제’를 이용한 성폭행 모의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행복추구권을 명시한 헌법 10조를 언급하며 “동성애도, 이성애도, 무성애도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성범죄를 모의한 사람만이 판단의 대상”이라고 적었다. 개인의 성적 지향을 두고 찬반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씨도 “문재인 캠프는 성소수자 관련한 발언들을 교육 좀 했으면 싶다”고 비판했다.

 

문 후보는 토론회가 끝나갈 무렵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견해를 가다듬어 밝혔다. 하지만 문 후보가 공식 토론에서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개인적 선호를 드러낸 데 대해 “성소수자 담론에 관심이 있다면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는 말에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 “인권이나 페미니즘이 취향이고 장식인가” 등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준표 후보가 토론에서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킨다”, “동성애 때문에 대한민국에 얼마나 에이즈가 창궐했는지 아냐”고 한 발언에는 더 큰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6일 성명에서 “혐오 조장 발언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계속 존재하는 한 이 사회에 혐오로 인한 차별과 폭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홍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대선 후보들의 문제 발언에 대한 규탄도 이어졌다.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의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행사 연설을 찾은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은 문 후보의 연설이 끝난 뒤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깃발을 펼쳐 들고 “문 후보는 사과하십시오”라고 외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13명의 활동가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되자 녹색당과 청년유니온 등은 긴급 규탄 성명을 내고 연행된 인권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대선 토론회 발언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유력 대선주자들이 공개석상에서 드러내는 혐오 발언이 ‘이 정도는 말해도 된다’는 식의 가이드라인으로 비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촛불’의 힘으로 열린 조기 대선이 오히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혐오 담론이 한층 확산되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에스엔에스(SNS)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한 비판을 두고, “개인의 취향인데 왜 반대가 안 되냐. 나도 동성애 반대다”, “평균적인 시민 정서를 발언한 것이다”, “군내에서 동성애가 된다는 거냐? 이래서 군필이 대통령 되어야 한다”는 등의 역비판이 쏟아졌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는 “지도자들의 표현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혐오 표현, 나아가 혐오행동 표출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희정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대선 후보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지지자들에게 ‘이 정도 발언쯤은 괜찮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대선에서 위력을 떨친, 소수자 혐오 담론을 통해 지지층을 획득하려는 극우적 정치전략이 한국 사회에서 더 나쁜 형태로 재현되는 조짐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보수 후보들이 보수진영 결집을 노리면서 반대 진영 후보 검증 잣대로 ‘동성애 반대’를 활용하는 행태가 적극적 반박 없이 먹혀들도록 용납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적 진보성을 띤 후보 쪽에서도 보수 표심을 의식한 ‘전략적 모호성’에 기대기보다는 보편적 인권 보장 차원에서 분명한 차별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무엇보다 각종 차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낼 장치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으로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된 입법이다. ‘성적 지향’이 사유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보수 기독교 세력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희정 연구원은 “이날 토론회가 역설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황금비 박수지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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