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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 – 김원영 회원님

이번 “만남 도란도란”은 김원영 회원을 모십니다. 김원영 회원은 김재왕 변호사와 로스쿨 동기이면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다양한 이력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김원영 회원을 김재왕 변호사가 인권위 조사실에서 만났습니다.

김원영_변호사

재왕: 근황부터 이야기해 보지요. 인권위에서 일한 지도 3년이 돼 가는 것 같은데 일은 재미있는지요?

김원영: 일이란 원래 인간본성에 안 맞는 거라 다 재미없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가운데 덜 재미없는 편에 속하는 일 같습니다.

재왕: 최근에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장애인 국회의원에 대한 글을 썼던데,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됐는지?

김원영: 그 글은 사실 아주 빠른 시간에 쓰기로 마음먹었고 빠른 시간에 썼습니다. 할 일이 밀려있었는데도 쓰지 않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어요. 제가 가장 분노했던 점은 그 의원의 SNS 글에서 어떤 ‘성찰’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장애인 비례대표로 의회에 들어갔는데, 그렇다면 소수자 운동과 소수자 정치에 대한 역사적 고민을 최소한은 공유하고 있어야하고, 현재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머리로는’ 알아야 합니다. 그의 신앙 때문에 마음으로는 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특정한 장애유형의, 50대 이상의 남성, 사업가나 장애인단체장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과연 장애인들이 가진 ‘소수성’을 대표할 수 있을지 다시 의문이 듭니다. 그들은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장애인’ 집단만을 대표할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웃긴 건 장애는 생물학에 기초한 인간분류의 한 기준이 아니며, 사회적 차별의 결과라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장애인 비례대표 제도를 만들어낸 장애운동의 오랜 투쟁의 성과라는 점입니다.

재왕: 비마이너에 글을 연재하게 된 배경은?

김원영: 비마이너 탄생 당시에 과정에 참여했던 친구가 제안했습니다. 잠깐 쓰고 말 줄 알았는데, 간헐적이긴 하지만 5년을 쓰고 있습니다. 비마이너 독자가 늘면 좋겠습니다.

재왕: 글을 잘 쓴다는 평이 많아요. 희망법의 어떤 변호사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글 잘 쓰는 비결은?

김원영: 저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표현을 창조할 수 있거나 박식한 컨텐츠를 가진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장애인으로서 또 빈곤층으로서 경험한 고유한 서사는 확실히 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대학시절부터 사회과학대학에 머물면서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에서 글쓰기 훈련을 할 기회가 꽤 많았습니다. 결국 제가 가진 특별한 서사와 고등교육 환경이 만난 지점에서 제 글이 갖는 힘이 (그런 힘이 있다고 한다면) 생겨났다고 봅니다.

재왕: 글쓰기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일가견(?)이 있던데 연극에 대한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김원영: 연극은 어린 시절 좋아했고, 나이 들어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도약을 해보려 약간의 시도를 하다가, 다시 주제를 알고 접었다고나 할까요? (웃음) 잘 훈련된 배우로서 무대에 서 본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만 연극예술이 주는, 인간의 몸을 잘 기획된 무대 위에, 그러면서도 즉흥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긴장 속에 던져놓고 관객들에게 가까이서 직접 드러내는 그 시간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장애인으로서 저는 늘 누군가의 주목을 받아왔는데, 그 주목은 언제나 수동적인 것이었죠. 하지만 어차피 주목을 받아야할 운명이라면, 주체적이고 아름답게 주목을 받고 싶었고, 그것이 무대에 대한 열망을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재왕: 활발한 활동력은 로스쿨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죠. 인권법학회를 만들고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지요? 학교 활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김원영: 서울대로스쿨 인권법학회를 만들자고 서울대로스쿨 1기 입학 이후 처음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다음 카페였어요.)에 제안 글을 올렸습니다. 이후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대 로스쿨 회장으로 2010년 1학기 활동했고, 그때 서울대 <공익과 인권> 재창간호를 발간하면서 발간사도 썼습니다.

사회학과와 철학과만 기웃거리던 대학시절에 비해서 교과서로 잘 정리된 체계적 학문을 지루하지만 반복적이고 정례적으로 학습해야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나중에는 그것이야 말로 모든 ‘전문성’과 지적 발전의 기초라는 걸 깨달았지만요.

그런 지루함 속에서 인권법학회 활동은 약간의 탈출구였습니다. 물론 힘들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업법무나 국제법무같이 멋지고 재밌어 보이는 일에 주목할 때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때 학회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인권위에도, 희망법에도, 각종 로펌의 공익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고, 장애문제와 관련된 토론회나 강연회를 열면 그때 사람들이 각 분야 변호사로 여러 명 나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데 작게나마 기여한건 아닐까 라는 (다소 오버스러운) 생각도 합니다.

재왕: 여러 활동들을 관통하는 단어가 ‘인권’으로 보여요. 김원영이라는 사람에게 인권이란?

김원영: 인권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모든 문제를 ‘장애’로 해석하고 인권문제의 프레임으로 보는 습관이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한 내용, 제 삶의 서사, 제가 처한 현실을 종합해서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멀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재왕: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거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김원영: 코스모폴리탄(?)이 되고 싶습니다.

재왕: 마지막으로 희망법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원영: 3년 뒤에 후원금 1만원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3년 뒤에는 더 많은 일을 같이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