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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차별금지법, 차별금지사유 논쟁을 넘어

「차별금지법안」이 7년만에 발의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회에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라는 의견표명을 하였습니다. 이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 각계의 적극적 논의를 모아 법 제정까지 나아가야하는 때입니다.
차별금지법은 희망법의 모든 사업팀과 관련이 있는 주제입니다. 희망법은 창립 초기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함께 해왔으며, 2017년도 연간보고서(2018. 5. 발행)는 ‘차별금지법’을 기획주제로 희망법 각 사업팀과 외부기고글을 실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기운이 뜨겁게 모이고 있는 이 때, 여전히 유효한 이 글들을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합니다. 글은 총 3편으로 연재됩니다.
① 차별금지법, 차별금지사유 논쟁을 넘어 – 조혜인
②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함께, 이제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 김재왕
③ [외부기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쉬운 말 대신 – 미류(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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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차별금지사유 논쟁을 넘어

 

글 / 조 혜 인

* ‘희망법 연간보고서 2017’ 에 실린 글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란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은 사람의 특성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을 규율하고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법이다. 평등은 법, 경제, 사회문화 등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도덕적 층위에서의 평등, 즉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개념이다. 현대 인권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이러한 평등의 개념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을 부정하는 사회 관행과 제도를 바꿔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사적으로, 차별을 규율하는 법제는 초기에 인종, 성별 등의 사유를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점차 다양한 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통합적인 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차별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지면서 더 많은 차별 사유들을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단일 사유를 기반으로 한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현실의 복합적인 차별 상황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법의 내용 역시 형식적 평등권 침해를 소극적으로 규율하는 것에서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차별을 통합적으로 규율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법률은 외국에서 ‘차별금지법’, ‘평등법’, ‘동등대우법’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개별적 차별금지법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일반적 차별금지법’, 규율하는 사유와 영역이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으로 불려왔다.

 

 

한국의 차별금지법 논쟁사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참여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민통합과 양성평등의 구현’의 일환으로 법 제정이 추진되면서부터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안 권고법안을 마련하여 국무총리에 법제정을 권고하였고, 이를 토대로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그런데 두 달 후 법무부가 실제로 발의한 법안에서는 차별금지사유 중 ‘병력(病歷),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지향, 학력’이라는 7개 사유가 삭제되어 있었다. 입법예고 후 재계 및 일부 개신교계의 반발이 집중되었던 사유들이었다.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사유는 예시적인 것이므로 일부 사유가 법안에 명시되지 않았다 하여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인권·시민사회는 누군가의 반대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거나 숨기는 법안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차별조장법’이라고 비판하였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에서 더 이상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차별금지법은 제18대, 제19대 국회를 거치며 몇 차례 더 의원 입법 발의되었으나 논의가 2007년 당시에서 더 진전되지 못 한 채 법안이 철회되거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주로 성적지향 등의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일부 보수개신교계 등의 반대가 그 이유였다. 2013년 법안을 철회한 한 의원실은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 대해 오해를 넘어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철회의 배경을 밝히기도 하였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시민사회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만들어 반차별과 평등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유엔 국제인권조약기구들은 차별금지사유 등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우려를 표하면서 인종, 성적지향 등을 비롯한 모든 차별금지사유를 명확히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채택할 것을 2007년 이래 반복하여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차별금지사유의 문제

 

평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는 역사에 대한 성찰, 소수자·약자의 사회적 목소리에 대한 경청을 통해 더 구체적이고 풍부하고 생생한 인식과 감각으로 매번 갱신되어 왔다. 차별 관련 법의 차별금지사유는 특히 역사적·구조적으로 구분 지어져 차별을 받아온 집단의 경험을 반영하여 발전해왔다. 단적인 예로 장애가 보편적 차별금지사유로 자리잡아온 과정을 들 수 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나아가 1966년에 만들어진 국제인권조약들(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의 차별금지조항에는 ‘장애’가 차별금지사유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장애’를 이유 삼은 차별은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지만, 장애 인권 운동이 이를 인권의 문제, 차별의 문제로 명명하기 전까지 인류의 눈에는 장애 차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평등을 논할 때, 장애를 필수적인 차별금지사유로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보편성을 획득해온 차별금지사유다. 한때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적지향들을 모두 정신질환으로 보고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하던 역사가 있었으나,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이래 동성애, 양성애 등의 성적지향은 인간 섹슈얼리티의 자연스러운 형태 중 하나로 인정되었고 성별정체성에 관한 병리적 관점 또한 폐지되었다. 유엔 국제인권기구들은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국제인권규범상 인정되는 차별금지사유로 보고 있으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근거로 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조약 가입국들의 중요한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례들 역시 성적지향을 대표적인 차별금지사유로서 법에 빠짐없이 명시하고 있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이 우리 시대 함께 해결해야할 가장 심각한 차별 문제 중 하나라는 점에 국제사회가 인식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비롯하여 인종, 임신출산 등을 포함한 성별, 학력, 고용형태 등의 차별금지사유에 재계, 종교계 또는 대중적 반발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은 한국에서 그 제정이 계속 보류되어왔다. 문제는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이러한 반발들이 다름 아닌 사회의 차별적 인식, 편견과 혐오,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사유들이 그만큼 차별과 편견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 이 사유들을 둘러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법은 이들 사유를 반드시 명시적으로 포함하여야 한다. 국제인권기구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면서, 반드시 ‘인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한 형태’여야 함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담아야 할 내용

 

한국에는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19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예시하는 조항을 두고 차별을 규율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개별적인 차별 관련 법·제도·정책의 상위법이자 준거법이 되는 ‘평등에 관한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되어 왔다.
먼저 차별금지사유와 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면서 차별에 관한 통합적인 정의와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제들은 형식적 평등을 넘어선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면서, 직접 차별 뿐만 아니라 간접 차별, 차별의 지시, 괴롭힘, 성적 괴롭힘, 불이익조치 등에 관한 자세한 규정을 두어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상세한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두 번째로 차별이 발생하기 전에 차별을 예방하고, 차별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방법을 담아야 한다. 차별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 뿐만 아니라 법원을 통해 자신의 피해를 실효성 있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차별 중지 등을 명할 수 있는 법원의 권한, 입증책임의 완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특례조항이 필요하다. 또한 개별 차별 행위의 시정 뿐만 아니라 차별을 예방하고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들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평등에 관한 국가기본법을 만든다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권 문제는 주로 자유권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왔다. 평등의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지만 이에 관한 사회적인 논의, 법리와 판례는 아직 많이 쌓여있지 않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의 장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에게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책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국가기관이 평등 증진을 주요 과제로 인식하면서 장기적인 목표 아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그 내용에 포함하여야 한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사회의 모든 제도와 정책을 근본부터 점검하고 재정렬할 평등기본법,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가 바로 지금 필요하다.

 

2020년 7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D-60일, 2020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 선포 ‘대세는 이미 차별금지법! 평등에 합류하라’ 기자회견” 현장 모습   ⓒ 사진 /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