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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제3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 좌담회 ‘법질서 시대의 악법과 불법’ 녹취록 (상)

지난 2014년 2월 10일 제3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프로그램으로 <법질서 시대의 악법과 불법 – 이 시대의 ‘법’과 ‘원칙’에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상), (하), 2회로 나누어 싣습니다. 

사회자 :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서선영 변호사입니다.


이틀 동안 공익인권법 실무학교에서 공익인권소송도 배우고 입법활동도 배웠습니다. 저희 단체가 개소식 할 때부터 매년 좌담회를 개최했었는데요. 처음 좌담회는 공익인권법 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전망에 관한 것을 했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변화전략으로서 공익소송은 유의미한 것인가에 관한 것으로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어요. 이번 세 번째는 이 시대의 법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자고 해서 법질서 시대의 악법과 불법이라는 주제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모시기 힘든 네 분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서 감사드리고요, 한 분씩 소개드리겠습니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계시고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이신 이호중 교수님이십니다.

칼럼니스트이시고『소수의견』『88만 원 세대』 저자이신 박권일 선생님이십니다.

그저께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아직까진 해고노동자이지만, 곧 복직이 되실 것이고 되셔야 하는 고동민 선생님이십니다.

저희와 동종업계에 있는(웃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님이십니다.

오늘 진행은 발제하고 토론하는 식보다는 제가 처음에 질문을 드리고 이에 대해 패널들께서 이야기하신 다음에 플로어에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하겠습니다.

 

이호중 교수님께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도 법질서를 강조하긴 했었는데, 최근에 법질서, 법원칙을 더 많이 강조를 합니다. ‘법치주의는 권리를 제한하는 원칙이라고 배웠는데, ‘법질서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많이 다가옵니다. 법학자로서 이호중 교수님께 법질서가 무엇인지, 법치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이호중 : ‘법질서라고 하는 것은 사실 번역된 용어입니다. ‘Law and Order’라는 개념인데, 1980년대에 영미권 국가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치주의와는 다른 개념이죠. 보통 ‘law and order Ideology’라는 표현도 쓰고 ‘law and order politics’라는 표현도 씁니다. 모든 사람들이 준법의식을 갖춘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 할 때 사회질서가 제대로 유지되고 사회의 공익이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을 통칭할 때 ‘law and order’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법질서는 정치적인 용어로서 출발했습니다. 이 개념은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학자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학자들이 IMF 이후에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데, 미국이나 영국은 1980년대부터 시작이 되었죠.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복지를 현저하게 축소시키면서 무한경쟁을 내세우고, 노동 유연성의 개념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연대 내지 사회적인 안전망을 대폭 축소하는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네가 알아서 잘 해라는 식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개인 책임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법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복지국가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지는 법 정책이 나타나게 되죠. 시민들에게 모든 선택의 최종적인 책임은 너 자신이 져야한다는 이념이 전파되면서,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는 그에 대해 가차 없는 제재를 수반하는 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통칭해서 보통 법질서라는 개념으로 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처음 법질서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했죠. 이명박 정부 시대에 떼법 청산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예요. ‘떼법이라는 것이 우르르 몰려가서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건데, 뒤집어 말하면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였죠. 이러한 흐름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국정과제를 내세울 때 사회 안전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운다고 합니다.

 

 


요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을 잘 쓰잖아요. 이 표현에 들어 있는 메시지 속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집회·시위의 문제입니다. 시민들이 정치적·사회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서 가장 최후적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집회·시위일텐데, 그런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 논리로 대응하죠. 대규모의 촛불집회를 한다, 광화문 사거리가 막힌다, 광화문 사거리가 막히면 교통 장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몇 십억, 몇 백억에 이르게 되고 그 피해는 국민들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것은, 사회적 저항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최후적인 수단인 집회시위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사회 전체의 공익에 반하고 그 결과는 개개인에게 경제적 손해로 돌아간다는 식의 논리로 계속 규제하는 것을 정부 입장에서 정당화시키려는 움직임과 결합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법질서라는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민들의 사회적인 저항, 사회적 연대,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의 표현을 억누르면서, 그것이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연결시키고 국가공권력을 강화시키는 전체적인 경향이 법질서 정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자 : 법질서를 지키자는 좋은 말에 도대체 왜 불만이냐 라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법질서라는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어서 박권일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글 중에 치안국가가 강화될 것이다또는 싱가포르 판타지라고 해서 한국이 싱가포르 형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먼저 치안국가가 강화되는 현상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치안국가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권일 : 치안국가는 글자 그대로 치안이 중심이 되는 국가라는 의미입니다. 작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에 치안국가의 예감이라는 칼럼을 썼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부 출범 다음부터 화학적 거세에서 물리적 거세 이야기가 나오고, 법적인 처벌이 강화되고, 이런 흐름들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과거에 행자부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행정안전부로 변경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안전이 앞으로 나와서 안전행정부로 되는 과정이 단순히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권력의 전략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한국이 점점 치안 국가화 되고 있으며 이것은 권력의 드라이브일 뿐 아니라 중산층을 비롯한 대중의 안전 욕구가 강화된 결과이며 그 안전 욕구의 강화에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악화가 깔려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치안사회라는 개념을 써서 여기저기 글을 쓰고 있는데, ‘치안사회는 제가 만들어낸 개념이지만 안전사회’, 즉 ‘Sicherheightsgesellschaft라는 개념은 독일권 학자들이 만들어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케인즈주의 이후 신자유주의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안전담론이 중심담론이 되고 그것이 통치에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되어 왔느냐에 관해서 독어권 학자들이 많이 연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도 IMF 이후에, 더 길게 보자면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획일적인 형태로 사회에 관철되면서 사회경제적 조건이 굉장히 악화되었습니다. 성장연대 시기에서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시대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대중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도 강화되었습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겼던 대중의 경우, 그 욕구는 하층민으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 하층민과 구별되고 싶다는 욕구입니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노동자가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잉여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사회통합의 전략보다 배제와 분리의 전략이 권력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성장이 정체되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사회화라는 것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전사회라는 말을 쓰지 않고 치안사회라는 말을 쓴 이유는 안전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말이고, 한국의 경우 휴전상태에서 공안정국이 주기적으로 벌어지는데 권력이 억압적으로 치안정국과 공안정국을 발생시키는 현상을 안전사회라는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싱가포르 판타지는 풍자적으로 쓰는 말입니다. 싱가포르는 알다시피 리콴유 수상이 31년동안 독재를 한 나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가 넘어가는 굉장히 잘 사는 국가이입니다. 예전에 리콴유 수상이 아시아에서는 서구와 같은 형태의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해서 김대중 대통령과 논쟁하기도 했었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 롤 모델은 이를테면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배보다 성장 중심인 사회, 표현의 자유가 희생되고 독재를 좀 하더라도 잘 먹고 살게 해주는 나라, 경찰이 도둑들 확실히 때려잡아서 사회기강이 확실히 서 있는 나라가 한국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리서치 회사에서 조사를 한 것을 보았는데, 70% 정도의 응답자가 CCTV가 많이 설치되는 것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답을 했다고 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같은 시민권이 경제적 욕구나 치안 욕구보다 후순위에 놓이는 어떤 멘탈리티를 표현하기 위해서 싱가포르 판타지라는 말을 썼습니다.


치안사회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층위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층위는 글자 그대로 물리적 경찰력의 강화, 엄벌주의의 강화입니다. 서구의 경우 통계를 보면 실제 범죄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경우 통계상 범죄율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인긴 한데, 여러 논문들을 보니 반론들도 만만찮게 있습니다. 범죄율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범죄 피해율 자체는 줄어들고 있고 어떤 종류의 메커니즘에 의해 확대·과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논문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중들이 느끼기에 한국사회가 굉장히 치안이 불안하고, 그래서 더욱더 범죄자를 엄벌해야 하고, 화학적 거세가 부족하면 물리적 거세라도 해야 한다는 식이 되어서 이것이 권력의 의지나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실제로도 엄벌주의가 현실화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치안 자체가 정책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차적인 층위입니다.


두 번째 층위는 이런 것이 국가의 전략만이 아니라 기업에 의해서 안전 산업의 아웃소싱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LA와 같은 도시에서 하층민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gated community’라고 하는 거대한 장벽을 치고, 민영화된 경찰과 안전요원 같은 경호산업이 발달합니다. , 국가와 기업이 대중들의 안전 욕구를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이 두 번째 측면입니다. 사회적 분리와 배제의 테크놀로지가 점점 발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층위는 정치 없는 통치의 측면입니다. 정치가 경제논리에 종속되면서 경제논리에 의해서 정책들이 결정되는 정치의 왜소화 현상과 사법 권력이나 입법 권력에 비해 너무 행정 권력이 비대해지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행정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치안이나 경찰력의 강화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권력의 정당성을 인준 받으려는 것이 치안사회의 세 번째 측면입니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의 치안사회화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권력에 의해 추진된 부분도 있지만, 경제·사회적 지위가 흔들리는 대중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화되는 것과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회자 : 말씀을 듣고 나니 우울하네요. (좌중 웃음)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대한문 앞은 집시법 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 문화재보호법 등 각종 법이 총동원돼서 다각도로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고동민 선생님께서 많이 겪으셨을 텐데 그때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동민 : 그때 상황을 떠올리라고요? (좌중 웃음) 사실 오늘 이 자리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더 부담스러운데요, 저는 법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한문 앞은 20125월부터 저희가 24시간 집회신고를 내 놓았습니다. 서울 남대문 경찰서에서는 처음에는 집회가 안 된다고 했어요. 문화재 앞이고, 시민들 통행도 많다는 두 가지 이유로요. 집회신고가 안 받아져도 미신고 집회를 합니다. 그러면 경찰에서 집회를 방해하고 저같이 마이크 잡고 떠드는 사람들을 연행하고 조사하고 풀어주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한참 뒤에야 이것을 법원에 제소했어요. 행정법원에서 저희 편을 들어줬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집회를 하는 것이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없다고 말입니다. 법원에서 이렇게 한 뒤로 남대문 경찰서가 조용해집니다. 그래도 주간에는 70데시벨(db), 야간에는 60데시벨(db)을 넘을 수 없대요. 그런데 대한문 앞은 차 소리가 65db이에요. 그러니까 야간에 집회를 하려면 차 소리보다 작게 해야 집시법에 안 걸린다는 거죠. 저희들이 음향을 낮추지 않아 계속해서 음향장치를 뺏기기도 하고 싸워서 연행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정치인들이 나타나거나 이호중 교수님 같은 법학자나 변호사들이 등장하면 경찰들이 쓱 빠져요. 법과 원칙이 이렇게 드러납니다. 저처럼 우락부락하고 무식하게 생긴 노조 조끼 입은 사람이 집시법 위반이라고 하면 콧방귀도 안 뀌면서 고소하라고 하는데, 진짜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빠집니다.


대한문 앞에 최성영 경비과장이라고 있는데 얼마 전에 승진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이나 용산, 강정, 밀양 등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탄압하면 승진을 해요. 용산에서 살인진압 명령을 했던 김석기 씨는 지금 공항공사 사장으로 있고, 그때 수사를 지시했던 검사 정병두 씨는 지금 대법관 후보고 거론되고 있고요. 쌍용차만 봐도 경찰관 특공대를 투입했던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 그리고 경찰청장, 지금은 철장에 있는 거죠. (좌중 웃음그때 쌍용차가 법정관리 들어가면서 파산법원 판사였던 분은 지금 대법관이죠.


지금 강정, 밀양에서는 경찰에게 항의만 해도 연행되고, 그 연행이 몇 번 중첩되면 벌금 떨어지고, 또 중첩되면 구속되는 겁니다. 비일비재하고 억울한데, 저희는 채증장비가 없으니까 잘 설명이 안돼요. 인권변호사나 인권활동가들이 이런 것들을 도와주고 있지만요. 대한문은 그나마 좀 알려진 곳이죠. 똑같은 일들이 강정이나 밀양, 이전에 용산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저희가 집회신고를 한 뒤로 약간의 방해들이 있었으나 비교적 편안하게 집회를 이어가다가, 조선일보에서 새해 벽두부터 대한문에 빨갱이들이 모였다, 대한문이 전국의 전문시위꾼들이 모이는 장소로 바뀌었다, 두 번 때리니까 중구청에서 바로 철거를 해야겠다고 했었습니다. 중구청에서 주장하는 도로교통법이 우선인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저희가 이것도 법원에서 판단을 맡겨보자 했어요. 재판에 들어갔는데 선고를 앞두고 작년 44일 기습적으로 철거를 합니다. 그날 55명이 잡혀갑니다. 신부님도 잡혀가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하다가 잡혀가고. 이게 공무집행방해예요.


제가 2년 동안 받은 벌금이 3000만 원쯤 되거든요. 그런데 집시법으로 받은 벌금은 별로 없고 보통 일반교통방해 같은 거예요. 집시법으로는 법원이 집회 보호를 비교적 넓게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는 잘 기소 안하고 일반교통방해로 300~500만 원씩 때립니다. 정치인들이 약속 안 지킨 것이고 생존권 투쟁인데 억울하다고 하면, 죄는 있으나 양형의 사유가 된다고 깎아줘요. 저는 한 번도 무죄로 나온 적은 없어요. 집회신고를 했는데 집회신고를 한 장소에서 경찰들이 횡단보도를 막아서 그것을 항의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잡는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항의하면 고소하라고 해요. 고소를 해도 기소를 안 합니다. 최성영 씨는 네 번쯤 고소를 했는데 기소를 안 해요. 2013년에 중구청에서 철거를 한 뒤에 최성영 씨는 사활을 건 것 같았어요.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향을 준비하면 종이컵을 빼앗아요. 불법시위용품이라는 거예요. 흙을 담으면 흙도 불법시위용품인거죠. 향을 꽂으면 완전한 불법시위용품이죠. 대한문 앞에서 추모를 금지하는 겁니다. 저희가 꽃보다 집회라는 집회탄압을 항의하기 위한 집회를 했어요. 그때 집회 참가자들이 최루액을 쏘는 경찰에 맞서 물총을 쐈어요. 그런데 폭력집회로 변질됐다고 그런 식으로 집회시위를 금지시켰어요. 거기서 서 있지도, 앉아있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앉아있으면, 내가 차도 아닌데 들어서 강제로 견인 조치되었어요. 왜 그러냐고 항의하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위험사유가 돼서 강제로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들어다 내놓고 10분 정도 싸우면 풀어줘요. 들어가서 앉아 있으면 또……. 한 달 가까이를 그렇게 싸웠어요.


1인 시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1인 시위를 못하게 하려고 경찰들이 피켓을 찢어버려요. 일선 경찰들도 처음에는 미안해합니다. 그런데 이틀 지나고 5일 지나면 자기들도 피곤하니까 변해요. 이 사람들만 사라져 주면 편할텐데, 이런 표정이에요. 군인들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인데 광주나 4.3. 같은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 왜 그렇게 잔혹하게 했을까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변했던 거 같아요. 최성영 과장이 집시법 몇 조 위반이다, 해산하라고 하는 것은 겁이 안 났는데, 그 사람들 눈빛 변하는 것은 겁났어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싸웠는데, 이번에는 법원에서 진 거예요. 법의 양면이죠. 재작년에는 괜찮다고 했는데, 작년에는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니까. 그리고 덜커덕 김정우 전 지부장을 구속시킵니다. 민주노총에서 하는 집회에 5000명이 왔는데 저희가 2500번째 쯤에 조그맣게 찍히면, 김정우 씨 여기 있네요, 고동민 씨 여기 있네요, 도로교통법 위반이에요, 일반교통방해에요, 이러죠. 저희가 기소된 건이 많은데 많은 경우가 자체 집회 말고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였어요. 삽자루를 휘두르면 공무집행방해일 수 있고, 그것은 인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생존권 투쟁이고 사회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데, 삽자루를 휘두른 것이 현저하게 위험한지, 사람이 다쳤는지는 판단하지 않고 삽자루를 휘둘렀다는 것만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 의지를 꺾고자 하는 거죠. 입만 열면 법과 원칙 이야기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5년 동안 정리해고 무효 투쟁할 때 안 믿어주셨어요. 파업하면 배부른 것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많았거든요. 2009년에 저희 파업할 때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이명박 대통령은 오죽하면 회사에서 노동자를 자르겠느냐,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어요. 당시 전사회적으로 파업에 대한 질타가 팽배했었어요. 저희가 공장에서 쫓겨난 이후로 저희가 국가폭력의 피해자인데, 저희가 무능한 것으로 그렇게 개인적 책임으로 돌려버렸어요. 저희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봐라, 하지 말라고 그랬지, 괜히 그런 것 해서 네 인생만 조진 것이다고 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희망을 버리고 목숨을 끊으신 거고요.


취업이 아직도 안돼요.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났지만 아직도 취업을 안 시켜줘요. 아직도 일용직으로 일해야 해요. 이번 판결을 보고 질기게 싸우면 반전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런데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 비타협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법적인 판단을 믿을 수 없어요. 5년 만에 처음으로 유리한 판결 나왔는데, 이 판결을 근거로 힘껏 주장을 하면, 함께 싸워 주신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겠냐 싶어요.


대규모 정리해고 중에 이렇게 판결난 경우가 처음이에요. 정리해고가 불법이다, 이것이 저희 사회에서 시금석이 될 수 있게, 죽음을 막는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나서주세요. 누구나 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 고동민 선생님께서 법을 잘 모르신다고 했는데 누구보다도 현실에서 법이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생생하게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장서연 변호사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장 변호사님은 공익인권법 재단 공감에서 이주민들의 출입국 관련 사건을 많이 하셨습니다. 장 변호사님과 제가 술을 먹을 때가 있는데, 무력감이 들 때가 많다는 말을 나누곤 했어요. 인권위에서 강제퇴거 하지 말라는 결정이 나온 바로 그 순간에 이주노조 활동 했던 분을 강제 출국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때 개구멍으로 행사한 공권력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죠. 이것도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기는 한데 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서연 : 경찰서 현판도 그렇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나 외국인보호소에 있는 외국인들 면회하러 갈 때 법과 질서의 확립이라는 문구를 보면 기만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서 말하는 법이 어떤 법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법이라는 것은 현대국가에서 유일하게 강제력 또는 집행력 있는 사회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법 중에 최상위 규범이 헌법인데, 모든 인간은 존엄이 있고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고, 노동3권이 있다, 등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집시법이든 노조법이든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법률들이겠죠. 실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이 있고, 이를 위반할 때 형사 처벌하는 법이 있습니다.


법질서를 말할 때의 법은 헌법이 아닌 기본권을 제한하는 후자의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무를 하다보면 법 내용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것도 있지만, 법적용의 의도나 정책에 따른 악법이 더 문제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불온시하고 있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겹겹의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의적인 법집행이 이루어집니다.


2008, 2009년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쌍용차 파업도 폭력적으로 진압이 되었고, 용산참사 진압도 폭력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법집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법원은 농성자들, 노동자들, 철거민들만 처벌을 했었죠.


2008년에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지역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간부 3명이 모두 같은 날 단속이 돼서 강제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불법체류자 단속이 아니라 정부가 노조를 불온시해서 표적 단속하여 추방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기습적, 이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에 대해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가진 노동3, 평등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하며 인권위에 긴급구제조치 신청을 하고 행정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변호사들 면회도 못하게 하고 새벽에 이 세 명을 국비로 강제퇴거 집행을 한 상황이 발생을 한 것입니다. 보통 출국을 자기비용으로 하게 함에도 말이죠. 최소한의 재판받을 권리조차 침해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법무부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일반적인 단속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것은 2008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주노조 3대 집행부가 다 그런 식으로 강제퇴거를 당했습니다. 공정한 법적용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진 법집행이었죠. 특히 행정처분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적 규정인 행정절차법, 인신보호법 등이 외국인의 경우는 적용이 배제되고 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에서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집행이 법이 되는 현실입니다.


행정소송은 이미 강제출국이 집행되었기 때문에 취하를 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했습니다. 법집행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현실에서는 급박하게, 강력하게 이루어짐에 반해서 이에 대한 기본권 구제는 지난하고 오래 걸려서 사실상 당사자들이 구제를 못 받는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주노조 강제추방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했지만 2년 후에나 공개변론이 이루어지고 결국에는 다수의견이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쌍용차도 2009년에 폭력적 진압이 있었지만 엊그제서야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잖아요. 법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사람들은 당장 기본권 침해를 하는데, 법의 이름으로 이런 법집행이 위법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두 개의 문>을 보면 활동가가 한 분이,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문제제기를 못하고 사회적으로 묵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후에 쌍용차 같은 폭력적인 진압이 일어나고 이것에 대해 경찰들이 성공적인 진압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KBS 9시 뉴스에서 철도파업 철회 보도 바로 직후에 법과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을 처리하겠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고 치욕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은 영장 하나 들고 민주노총 건물을 침탈했는데 말입니다. 대한문이나 밀양을 보면 2008, 2009년보다 운동들이 파편화되어 있고,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더 힘든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사회자 : . 장서연 변호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플로어 질문이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플로어 1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정의이고 불법인지는 굳이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법이 만연하는 이유는 변호인이 부도덕한 변론인지 알면서도 변론을 했을 때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변호사의 부도덕한 변론행위를 불법으로 포섭해서 책임을 묻기는 힘든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호중 : 이야기의 전제가 동의가 잘 안 됩니다. 이야기하신 것이 맞으려면 불법이 확정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불법을 옹호하는 법조인의 책임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이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가 물론 맞는 경우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많은 사례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 행위가 불법이라고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철도파업이 정당한 것이냐 업무방해이냐를 다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법조인의 부도덕한 변론의 책임을 묻는 것이 설사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극히 일부의 영역의 문제일 것이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가 사회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논리가 사회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불법인지는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업무방해죄의 경우, 대법원이 2011년에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서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 요건을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요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긴 하지만요. 과거에는 파업은 무조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단 노조법의 요건을 갖추면 위법성이 조각한다는 논리로 접근했는데, 2011년 판결에서 약간은 진일보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무엇이 불법인가는 사회적인 인정투쟁, 담론투쟁입니다. 법은 절대로 고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회적 현상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변화하는데 그 시선들의 싸움 속에서 우리가 누구의 편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갈 것인가 관점과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조인의 싸움도 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창조적인 학문이라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데, 질문하신 분의 논리는 그런 것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장서연 : 제가 패널 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박권일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치안, 범죄, 특히 미등록 이 테러 등의 용어로서 안전이나 경비를 강화하는 추세가 있어왔습니다실제로 용산 참사가 일어났강제력을을 때 초반에는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습니다그런데청와대에서 연쇄살인사건을 계속 홍보하라고 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됩니다또 언론에서는 전철연의 과격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조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법이 다른 규범과 달리 강제력이 있는데법을 집행하고자 하는 행정부나 검찰 등에서는 그  가지고 진압 위주로 법을 집행합니다.


이틀 전에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습니다판결의 의미와 기쁨을 잠시 접어두면 최근에 많은 부분에서 노조의 힘이 점점 없어지니까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되어 버주민의 경우린 것 같습니다. 점차 이런 경향들이 강화될 텐데 이를 완화시키거나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사회적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권일 : 제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대학원 수업에서 페이퍼를 쓰면서 반 이주노동 커뮤니티 담론 분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일베가 나오기 전에 일베보다 세련된 형태의 넷 우익 담론이 그 때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다문화반대 카페라는 굉장히 큰 카페가 있었는데, 당시 그 커뮤니티에서 어떤 담론들이 오고 가는지 유형화해서 분석했습니다. 나중에 공저로 출판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본 담론들은 경제담론, 치안담론, 민족담론 크게 3가지였어요. 경제담론은 외국에서 온 타자들이 우리 것을 빼앗아간다는 논리입니다. 치안담론은 저 사람들이 우리의 딸들을 강간하고 도둑질하고 사회갈등을 일으킨다는 논리이고, 민족담론은 순혈국가인 우리나라의 한민족이 저런 애들 때문에 더러워진다는 논리였습니다. 지금은 일베가 유명해졌지만, 그런 논리들이 인터넷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지금 일베는 온라인 속에 있는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정념들이 담론이 되고 현실로 진출했을 때, 실제로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강력한 정치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얼마 전에 올랑드 정부의 지지율이 반토막 나고 르펜 지지율이 올랑드 지지율을 다 흡수해서 르펜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면서 무척 두려웠습니다. 지금도 넷 우익 담론, 치안사회 담론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장서연 변호사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과거 케인즈주의 시기에는 사회통합이 지배적 가치였습니다. 포디즘의 시기이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복지를 제공하고 범죄자도 교화해서 건강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정당하고, 그들을 다시 노동자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기는 생산력은 늘어나지만 더 이상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잉여 노동력이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시쳇말로 사람값이 개 값이 되는 시기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생산력에 기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언더클래스, 잉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 시대에는 사회통합이라는 가치가 예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배제와 격리라는 가치입니다. 프랑스 방리유나 미국의 LA 교외 지역들 같은 슬럼화된 지역들이 한국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강남 같은 경우, 가장 많은 것이 김밥천국과 고시원입니다. 1%의 글로벌 엘리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뒤치다꺼리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강남에 굉장히 많이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잘 사는 곳 주변에 그 잘 사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뒤치다꺼리를 하는 100명의 노동자들이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전 세계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도시화가 한국의 강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의 시대에서 배제와 격리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치안담론이 지배적인 담론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안정국도 치안담론의 하위범주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이전에는 체제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생존과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입니다. 쟤네들이 갑자기 무너질 경우.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줄 것 같은데 같은 민족이라서 외면할 수는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되는, 외부의 타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재앙이 되는 거죠. 남북통일의 과정이 그렇게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라, 내부 식민지가 생겨나서 2, 3등 시민이 생겨나는 서열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배제와 격리의 움직임들이 대중들의 동의하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조금씩 개선하기 위해서 법이나 외부의 권위에 기대는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에서의 문제해결방식이 너무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억울하면 출세하라가 최고의 해결책인양 유통됩니다. 사람들이 기업과 종교 외의 네트워크를 잘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큰 권위에 기대거나 혼자 출세해서 해결하려는 양극화된 방식이 나타납니다. 정치조직, 정당, 조합 등 사회적인 중간 조직들이 많이 늘어나야 하고, 그런 것들이 사회갈등의 완충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들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파편화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조직들이 많아져야 국가 같은 더 큰 단위의 조직들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중간조직들을 더 많이 더 잘 구성해 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에서 계속>

정리_서선영, 이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