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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제3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 좌담회 ‘법질서 시대의 악법과 불법’ 녹취록 (하)

사회자 : .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질문이나 의견을 한꺼번에 몇 개 받겠습니다

 

플로어2 : 철도파업 같이 업무방해죄에 관한 명확한 확정판결도 없는 상태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장서연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듯이 파업 철회 직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그 말은 유죄임을 가정하고 쓰는 것이고, 손해배상청구도 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거잖아요. 변호사님들이나 각종 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합니다.

 

플로어3 : 철도파업에서 보듯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불법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문제됩니다. 분향소를 철거하는 것이 불법일 때 경찰을 고소해도 실제로 기소당하지 않는 등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망을 벗어났을 때 그 불법을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외국의 경우 불법적인 집행을 했을 때 경찰청장이 검찰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요즘 추세를 보면 사법부나 검찰, 의회가 행정부 안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법, 행정, 사법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행정부의 취향에 따라 통합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행정부의 거대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견제하고 막아내야 하는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플로어4 :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기가 고소를 해도 기소를 하지 않은 검찰, 사람마다 다르게 나는 판결들이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굵직굵직한 판결이 연이어 나오는데 굉장히 전향적인 판결이 나왔다가 또 바로 굉장히 끔찍한 판결이 나오니까 굉장히 혼란스럽더라고요. 어제 친구와 한 이야기가, 나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일반 시민들의 경우 법적 안정성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곤혹스럽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재판부는 하나하나 독립적인 기관이고, 소신껏 판결할 수 있는 좋은 판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고요. 같이 이야기한 친구가 로클럭에 가게 된 친구인데, 법관들은 출세 욕심을 줄이면 전향적인 좋은 판결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검찰과는 다르지 않겠냐고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법관 개개인들의 출세 욕심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생각을 바꿔서 이것이 사법부의 민주화와 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대법원의 구성 문제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는지, 그에 관해서 이호중 교수님께 첫 번째 질문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사법민주화가 된다면, 이 모든 것들에 근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대중들의 각성이랄까 의지가 변화해야 할 것인데, 박권일 씨께서 말씀하셨듯이 삶의 질의 하락 속에서 대중들의 공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있을까요. 소소한 승리의 경험을 자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대중들의 감정 부분, 통념들, 공포감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구체인 실천태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동민 : 국가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싸워나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간다는 확신 없이는 안되겠죠. 이렇게 가다가는 민중들의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더 갈수록 묵인하고, 스스로의 체념과 무기력감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 질기게 싸워나가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지, 외면하고 살아야지 이러지 않고 저 사람들만큼 살지는 못해도 저 사람들과 함께해야겠다고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9년 용산참사때는 경찰특공대가 콘테이너를 앞세우고 쌍용차 파업때는 테이저건, 고무탄 같은 대테러무기를 앞세웁니다. 저희가 시라소니가 아니잖아요. 저희는 그냥 도망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찰특공대들이 진압했을 때 다 도망가는데 앞에 있는 분들이 있어요. 자기 자리를 지켜야지 동료들이 버틴다는 거예요. 저는 저희 동료들이 짐승처럼 매 맞은 것도 가슴 아프지만, 그때 자기 자리를 지켰던 그 분들이 먹먹합니다. 절대 잊지 않고, 지지 않고 싸우는 것이 해결방법일 것입니다.


강정은 벌써 8년째입니다. 밀양도 8년 되었어요. 나이 드신 할매 할배들이 싸워나가는 것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문제다라고 하면, 다음에 송전탑 건설할 때 정부가 고민을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급진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때를 생각하고 담담히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그 다음 질문을 제가 정리를 해 보면, 집행하는 사람들의 불법이 많은데도 처벌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경찰을 고소한 다음에 기소가 되어 법원에서 처벌을 받은 경우가 지금 딱 1건 기억나는데요. 그것은 변호사가 연행된 상황이었어요. 변호사가 연행돼서 그나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도 고민하는 상황인데요, 그런 것에 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사례가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행정부 거대화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세 번째는 사법민주화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입니다.

 

이호중 : 이런 내용을 이야기 할 거라고 미리 말씀을 해 주시지…(웃음) 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인데요.


저도 작년에 대한문에 여러 차례 나가서 집회도 참여하고 발언도 했는데, 뼈저리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판례 들이대고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교수, 변호사 오면 경찰이 약간 움찔한다고 고동민씨가 말씀하셨는데 전혀 아니에요. 경찰은 일단 무시하고, 나중에 아쉬우면 고소하라는 식의 반응입니다. 정말 답답한 것은 경찰은 물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단 친다는 거예요. 불법·합법은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치고 나서 현장에서 저항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연행을 하죠. 연행했다가 48시간이 거의 된 후에 풀어줍니다. 체포한 후 48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그러면서 현장에서는 물리력으로 칠 것 다 쳐요. 경찰이 집회 방해를 하니까 우리도 집시법상 집회방해니, 집권남용이니 해서 고소를 많이 합니다. 남대문 최성영 경비과장에 대해서도 몇 십건 고소했는데, 한 건도 제대로 된 판단이 나온 것이 없습니다. 기소유예조차 나온 것이 없어요. 경찰의 현장에서의 폭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처벌이 전혀 담보가 되지 않는 상황, 그러면서 동시에 경찰은 일단은 물리력을 이용해서 쳐버리는 상황이 되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무집행이 적법했냐는 우리가 이야기할 길이 없습니다. 손해배상을 해 볼 수 있겠지만, 국가배상을 청구 한다고 해도 위법행위의 입증뿐만 아니라 손해의 입증이 필요한데 집회의 경우 손해를 입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국가배상 사건은 하 세월이죠. 언제 법원이 판단을 할지 기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형사사건의 판단을 민사법원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사건은 경찰에서 수사도 안하고 기소도 안하는 상황이죠. 이렇게 방치되는 사태가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서 잘 탄압했다는 경찰은 승진해버리는 상황이 지난 1년 동안 봐왔던 상황입니다.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답답한 심정이예요. 집시법의 집회방해죄는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습니다. 공무원의 집회방해는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 있는데, 실제 적용된 예가 없고 판례도 없어요. 수차례 집회방해로 고소·고발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판단이 나온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이냐는 저도 개인적으로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법으로 갈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입니다.


제 전공은 형사법이니까 그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다 처벌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치적 사건들은 더더군다나 그렇죠. 과거에 대형파업이 있을 경우 파업이 종료되면 사측은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징계범위도 최소화겠다는 합의가 존재했어요. 어느 정도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면 형사 처벌 범위는 그에 따라 조절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황입니다. 공식적으로 노사정위원회도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현재 치안국가 패러다임 속에서 모든 사회적인 저항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서 무조건 엄단하겠다는 것이 법질서 정책입니다. 무관용주의라고 하죠. 그런 식의 정책이 팽배해 있다 보니까 철도파업에서 사측이 180여명을 고소하니까 경찰에서 전원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모든 것들을 법으로 통제하면서 사법적인 통제 권력이 계속 강화되어 가는 현상은 결국은 정치적인 해결에 대한 힘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상 처벌이 약하거나 아예 처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보니 도로에서 행진하는 사건의 경우 거의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합니다. 파업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대들면 공무집행방해죄이고요. 삽이나 쇠파이프가 나오면 특수가 붙죠. 또 상해를 붙여서 공무집행방해라 하면 특공방치상(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대부분 가죠. 조문들은 대부분 일반화된, 추상화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조문들로 사법적 권력을 어느 범위에서 얼마나 쓸 수 있느냐는 사회적 저항, 비판, 연대의 활동에 대해서 사회적 뒷받침이 어느 정도 있느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문제들은 정치적인 연대 차원에서 풀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법은 대부분 약자 편이 아니에요. 그나마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강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현재 법시스템이란 말입니다. 이 법시스템 속에서 법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치적인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해결이 결국은 법적인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파업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합의와 연대의 힘이 존재한다면 파업의 권리가 법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증진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아무리 법적인 논리로 이야기해봐야, 어차피 논리와 논리의 싸움에서 사회적 힘이 있는 논리가 이깁니다. 파업의 권리를 보장하자,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주장을 세련되게 해야 하지만 이는 사회적 뒷받침이 존재할 때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고 입법적 성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법은 사회적 갈등이나 민주주의 문제,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싸움의 장소이지만 절대로 고립된 장소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찰이 잡아가는데 현장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도망갈 수밖에 없잖아요. 사후에 법적인 대응을 한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합니다. 100, 1000명이 모이는 집회는 경찰이 잡아가지만, 10만 명이 모이는 집회는 경찰이 못 잡아가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사회적 힘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다음 사법부의 민주화 질문인가요? 아무리 사법부의 독립이라고 하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기관이 가진 한계가 분명합니다. 대법원도 그렇고 헌법재판소도 그렇고 사회적 여파와 파장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판결을 내립니다. 그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판결은 절대로 나올 수 없어요.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법부는 그런 의미에서 절대로 독립적 기관이 아니에요.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사건이 법원으로 가지 않으면 법원에서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원으로 갈지 안 갈지 결정을 하는데, 사법부의 역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형사사건에서 법원의 역할은 굉장히 종속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형사사건은 불고불리의 원칙이 있으니까 기소하지 않은 사건은 법원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갔을 때의 문제입니다. 법치의 과잉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사회의 공론을 축소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건을 보면, 진실공방이 있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합니다.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죠. 그러면 당장 언론에서는 수사하고 재판을 하니까 결과를 지켜보자고 하거든요. 사회적 공론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싸우면서 논란이 되어야 할 문제가 법원 관료들의 판단에 맡겨져 버리고 사회적 논의가 차단되는 효과가 올 수 있고 법원의 판단으로 갔을 때 민주주의의 영역이 축소될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면서 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법원의 관료주의를 깨는 것이 제도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고법 부장(고등법원 부장판사) 정도 되면, 대법관 될 생각하면 절대로 튀는 판결 못합니다. 쌍용차 판결은 굉장히 예외적인 판결이고, 대부분의 경우 고법 판결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나옵니다. 길목 길목을 대법원이 장악하는 관료주의적인 구조를 깨트리지 않는 한 법관이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원칙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법원이 경력 판사 제도로 이동해 가고 있는데, 활성화되면 조금 나아질 것 같습니다. 또 법원행정처가 법원 조직, 인사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문제를 깨야 합니다.


그 다음은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바꾸는 문제인데, 헌법 개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최고 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은 국가의 정책적인 방향을 설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대법관이 법조인 출신이어야 할 이유는 절대로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 노동자 대표, 농민 대표들이 대법원에 들어가고, 일본의 경우도 최고법원에서 각계를 대표하는 인적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스템이 좀 더 보완되어 나간다면 사법부가 지금보다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자 : 저희가 원래 잡은 주제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답은 굉장히 잘해주셨네요. 생각나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촛불집회 때 경찰이 폭력을 많이 행사하자 이를 막기 위해 ‘YMCA 눕자 행동단이 있었어요. 경찰에게 평화적으로 누워 있을테니 공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는데, 경찰이 그냥 밟고 지나간 것이에요. 그때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이 아예 밟고 지나가라고 명령을 했던거죠. 그래서 고소를 했는데 기소유예가 나왔어요. 밟고 지나간 것은 인정되었는데, 기소유예 이유가 이전에 시위 진압할 때 폭력 행사하지 말라는 교육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교육을 했는데도 밟고 지나가라고 명령했다면 죄질이 더 나쁜건데 그것이 알리바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황당했던 기억이 나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질문이 하나 남았는데, 지금 상황을 변화시키는 단초에 대해서 박권일 선생님께서 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권일 : 예전에 기자일 때 기륭전자 사옥 앞에서 텐트치고 농성하던 여성노동자들을 구사대들이 매일같이 텐트 무너뜨리겠다고 쇠파이프 들고 와서 위협하고 욕하고 하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려고 텐트 안에 있다가 나와 보니까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찔러 죽인다고 위협하고 있고, 김소연 분회장도 열이 받쳐서 찔러 보라고 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경찰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보고 있더라고요. 제가 경찰한테 왜 말리지 않느냐고 하니까, 웃고만 있더라고요.


그런 사례들을 거기서만 본 것이 아니라, 과거에 현대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서 시위하고 있는데 사측 구사대가 장례식장 때려 부수고 관까지 훼손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뒤에서 지켜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경찰력이야말로 자본의 편이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많이 저항을 하고 노조 조직률이 지금처럼 10퍼센트가 아니라 60퍼센트 정도는 되고, 진보정당이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거나 덜 벌어졌을 거예요. 10만 명이 모이면 경찰이 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1996년에 신촌로타리에 거의 10만 명이 모인 적이 있었어요. 이대역을 넘어 아현동 부근까지 학생으로 가득 찼었는데,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수가 모이는 것은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등의 해결을 법에 호소하는 일이 전가의 보도처럼 되는 현상은 위험합니다.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변모씨의 경우 자신과 관련해 논란만 있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형적인 징후입니다. 예전 같으면 공론장에서 붙어서 누가 지든 이기든 간에 공방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맘에 안 드는 얘기를 하면 민사소송이에요. 이건 사실상 공론장에 오물을 뿌려버리는 짓입니다. 그런 상황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최후로 기댈 것은 법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사회도 그쪽으로 움직여왔습니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움직여 왔는데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 답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정치 없는 통치 행위, 정치행위가 경제로 환원되고 정의가 법적인 담론으로 환원되는 경향들 속에서 사회적인 조직을 살려내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라든가 정당 같은 조직 말이에요. 근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개선되어야 하겠죠.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권력 입장에서는 치안담론을 유포할 겁니다. 치안담론은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권력이 택하는 포퓰리즘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줌도 안 되는 강력범죄자가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도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하는 국가가 더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다, 국가권력이나 기업이야말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 시간이 많이 흘러서,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받겠습니다.

 

플로어 5 : 사회적으로 묵인하는 국민들이 자기 삶이 팍팍해서 사회적 무관심을 보인다고 단순히 말하는 것 말고, 그 원인에 대해 사회적인 연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플로어 6 :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을 토로하시는 것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 법 만능주의로서가 아니라 정치로 풀 문제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익인권법 영역에서 역할을 꿈꾸면서 오신 분들이 많을 텐데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뭘 해야하나라는 생각도 많이 드실 것 같아요.


장서연 변호사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이렇게 점점 한편으로 법질서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한편으로 원래 있어야 할 법들을 무시하면서 가고 있는 상황인데, 공익인권변호사로서 이를 다루는 자세나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사회자 : 첫 질문에 대해 다들 난감한 표정이시니까 (웃음) 먼저 장서연 변호사님의 답을 듣고 나서 묵인하는 분위기의 원인이 뭔지, 그 원인에 대한 질문에 관해서 마무리 발언을 하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장서연 : 첫 질문에 대해서는 박권일 선생님과 이호중 교수님께서 이야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법질서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사회경제적 조건이 무너지면서 권력의 드라이브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요.


저는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법내용 자체보다는 법적용의 목적과 정책에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법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론을 할 때 실정법에 근거한 변론을 하지만, 법해석을 함에 있어서 국제인권법기준, 외국법과의 비교를 통해 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계속해서 법원에 질문을 합니다. 법원에서 전향적인 판결을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노조법상 절차법적 위반이 있다고 해서 다 형사처벌하는 것이 맞느냐, 불법행위로 손해배상하는 것이 맞을까요. 법원의 판사가 어느 정도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제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법 자체보다 법적용의 문제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법조인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죠.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법으로 하는 것은 힘들지만 반동과 퇴행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정치영역과 사회운동이 무너지면서 법원에 기대게 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소송을 통한 운동을 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을 합니다. 법조인의 역할은 소송뿐만이 아닙니다. 공감에서도 인권단체와 연대해서 활동을 하면서 있어야 할 법은 무엇인가 연구하고 고민합니다. 전략적으로 소송으로 갔을 때 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의 근본이념은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에서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지고 자유, 평등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준법의식을 이야기하는데, 시민의 권리의식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교육이나 시민사회에서 활동을 통해 이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자 : 지금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만,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를 하면 영업상 손해를 보았다며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입막음 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송절차로 끌어들여 위축시키려는 목적입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하는데, 미국은 그런 목적의 소송을 규제하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체계가 영미법과 다르긴 하지만, 우리도 이런 논리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수고 많으셨죠? 이제 마무리로 정리하는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악법과 불법이라는 제목으로 좌담회를 진행했는데, 최근들어 악법이 전통적으로 악법으로 여겨졌던 것뿐만 아니라 일반교통방해와 같은 일반조항이 많이 활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어요. 이호중 교수님께서 이에 관한 생각을 포함해서 정리하는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호중 : 법질서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지배권력과 자본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정리됩니다. 제가 작년에 학회 논문 발표하면서 안전이 형사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세 가지 층위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진보적인 정치세력에 대한 분쇄전략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쉽죠. 종북 매카시즘으로 나타났고, 통진당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가 사회적 저항에 대한 공권력의 강화입니다. 대표적으로 노동 영역에서 파업을 규제하는 것, 그리고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입니다.


세 번째는 저층위의 전략인데 경범죄 부분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이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었습니다. 그 개정안에는 구걸을 경범죄로 단속하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구걸 자체를 경범죄로 다루는 것은 일제 시대 때 있다가 해방 이후에는 없었는데 들어왔죠. 이 조문은 구걸 자체보다 구걸로 인해 혐오를 준다든가, 교통을 방해한다든가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상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규제하겠다는 것이었죠. 구걸에 대한 규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산업혁명 초창기 시대 있다가 없어진 이후에 미국과 유럽에서 1980년대 이후 부활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같이 가는 거죠. 개인책임의 원리, 근면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면서 게으름, 나태함에 대한 사회적 단죄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층위의 공권력이 한꺼번에 확 강화되는 모양새가 나타난 것이 지난 1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반교통방해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이 커졌습니다. 두 번째 층위의 대표적 사례로 집회시위 규제에서 정말 치사하고 말도 안 되는 조문들을 엄청 들고 나옵니다. 일반교통방해죄가 자주 적용된 것은 2008년 촛불집회가 기점인 듯합니다.


일반교통방해죄를 어떻게 적용하냐면 교통에 장해를 일으키면 해당한다고 합니다. 형법 교과서에서 일반교통방해의 보호법익이 교통의 안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통의 안전이 무엇인가요? 도로교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명이나 물적인 피해를 보호한다고 설명하지 않나요? 그런데 대법원은 도로를 막으면 일반교통방해라는 식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반교통방해가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악용합니다. 도로교통법상 점용허가 규정, 일반교통방해죄 같은 것들이 사실 집회시위를 막기 위한 규정은 아니거든요. 업무방해죄와는 성격이 달라요. 업무방해죄의 경우 유럽에서 파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조문을 일본이 프랑스 형법을 받아들이면서 이 조문을 일반화시켰다가 우리 나라에 계수된 것입니다. 업무방해죄는 연원 자체가 그렇지만

도로교통법, 일반교통방해죄는 그런 것이 아닌데 집회시위를 규제하기 위해 치사하게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집회시위에 대한 무력화 전략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교통방해를 적용하면 장점이 있습니다. 집시법은 집회 주최자만 처벌하고 단순참가자는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해산명령 위반죄 같은 경우에는 단순참가자도 처벌할 수 있지만 해산명령은 법원이 엄격하게 판단하니까요. 일반교통방해는 집회 주최자인지 단순참가자인지 상관없이 다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을 집행하는 입장에서의 장점입니다.


이런 조문들을 광범위하게 적용함으로써 단순 참가자들도 처벌하는 정책을 폅니다. 업무방해죄의 경우도 집행부 정도 처벌하다가 철도파업이나 쌍차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처벌합니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엄청납니다. 주최자만 처벌된다면 단순 참가자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데, 이제는 집회 가고 싶은 시민의 입장에서 나도 소환장 날라오는 거 아니냐는 위축 효과가 생깁니다. 전체적인 사회적 저항이 확산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얼핏 봐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에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한 소송 건수가 몇 십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전략적 봉쇄 소송 이야기도 나왔지만 국가 기관이 시민을 상대로 한 소송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소송만능주의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파업이 업무방해죄가 해당한다는 입장에서는 100, 200명 다 기소해도 그것을 잘못된 기소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왜 집행부만 기소하지 않고 다 기소했냐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가능하다면 왜 소송했냐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제도적으로 이를 억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소송도 중요하지만, 공익인권법 부문에서 인권 내지 공익의 담론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들의 바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법은 정치적인 것이고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로부터 벗어난 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용산참사 사건 때 1심 법원 판결문을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습니다. 망루의 화재원인이 무엇이냐 화염병 때문이냐에 관한 부분에서, 경찰관들은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 못 봤을 수 있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던졌다는 증언은 없었는데도 그에 대해서 법원은 못 본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재판을 받던 철거민들이 우리가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좁고 폐쇄된 공간에 화염병을 던졌겠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가릴 것 없는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해요. 직접적인 표현은 이것이 아니지만요. 화재의 원인에 관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간접증거는 추론의 문제이고, 해석의 문제입니다. 추론에는 사람들의 세계관, 편견이 반영됩니다. 철거민들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선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법은 굉장히 인간적인 것인데, 굉장히 바이어스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용산참사 사건의 판결문을 좌우했던 기본적인 것은 철거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농성을 했을 때, 진짜 범죄자가 원주민들을 쫒아내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누리려고 하는 자본인지, 이에 저항해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인지,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싸움에서 진 것이에요. 이런 관점을 같이 가져갈 수 있을 때 법률적 싸움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익과 인권을 생각하는 법률가는 결코 법조인으로서만살아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박권일 : 앞에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저는 짧게 하겠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주제는 치안사회이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멘탈리티입니다. 불심검문이 부활했을 때 부활에 찬성하는 분이 70%정도였던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불심검문은 굉장히 문제가 많아서 폐지되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이명박 정권 때 부활했고 시민들의 동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안전에 대한 공포가 강화되는 것은 사회경제적 불안이 반영된 것입니다.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부동산에 의한 자산 축적이 마무리되고 더 이상 소득을 통해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위축되고 방어적인 심리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심리적 기제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했던 결과가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런 과정들을 겪었던 유럽 사회에서 68혁명을 일으켰던 세대가 장관, 국회의원이 되는데, 사회는 점점 신자유주의화되고 자신들이 끌어가고 있는 사회가 파편화되는 걸 목격합니다. 청년시절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고육지책 중 하나가 이른바 시민교육 교과서였습니다. 이 교과서는 공교육 과정에 필수항목으로 포함되고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교양, 인권이나 노동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 신고서를 어떻게 제출하고, 악랄한 자본가에 맞서서 어떻게 파업투쟁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뉴얼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전부 입시와 취업경쟁에 내몰리면서 시민으로서 소양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그 중요한 기회가 예전에는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대학 학생회 활동이었습니다. 운동권, 간접적으로 운동권을 보면서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소양을 쌓아서 사회로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입니다. 과거의 운동권 학생들은 정치공동체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던 측면이 생활공동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그 목소리를 낼 것인가를 체화했습니다. 지금 대학사회는 취미공동체와 취업공동체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극단적 발현이 된 게 일베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시민교육을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겠고요.

 

고동민 : 저는 좀 더 짧게 할게요.


길 가다가 조끼 입고 지나가면 경찰이 막습니다. 왜 막냐고 하면 불법시위자라고 말을 합니다. 아무것도 안 했고, 지나가는 길일 뿐이라고 해도 불법시위자라고 낙인찍습니다. 시민이 아니고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모멸감이 심합니다. 해고된 가족들에게 아이들이 크면 99%가 노동자가 될 텐데 괜찮냐고 하면 싫어합니다. 번듯하게 넥타이 매고 출근 가방 들고 출근하길 바래요. 법은 만인을 위한 법이라고 하는데 믿지 않습니다. 딱 만 명만을 위한 법입니다. 우리가 만 명에 들어가기 위해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만 명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쓸거냐, 아니면 자기 아이들이 자기 삶을 올곧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힘쓸거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끄러워도 용인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이 시끄러운 것을 용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성소수자들, 장애인들, 철거민들이, 해고자들이 떠들 경우에 말입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욕도 안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경찰과 싸울 때 지랄같이 싸우면 저분 저렇게 안 봤는데 할 수 있잖아요. 그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이미지로만 보는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냐는 거예요. 저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홈리스 분들과 이야기하기 힘들 때가 있거든요. 이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메워가려고 계속 손잡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서연 : 최근에 제가 있는 공감에서 인권법캠프를 했었는데, 한홍구 교수님이 법률가들이 어떻게 군부독재를 기여했느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도 사과한 사람이 없고, 잘나가는 엘리트들이 되어 있습니다.


법을 수단으로 한 억압은 오늘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계속 되었습니다. 법률가들이 생각 없이, 출세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에 기여해왔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분들이 법과 관련된 일을 하시게 될 텐데 판결하는 기계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법 자체가 아니라 법적용, 법해석의 문제니까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맥락인지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 패널 분들의 좋은 마무리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