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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제2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 좌담회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 녹취록

 ※ 지난 2월 23일 제2회 공익인권법실무학교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특별좌담회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사회변화전략으로서의 소송, 그 가능성과 한계 의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진행자 : 사회를 맡은 희망법 서선영변호사입니다.


법률운동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꾸거나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것일 텐데요. 이번 좌담회는 이에 대한 질문과 답변보다는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한자리에 모시기 어려운 분들이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와 주셨습니다. 제 왼쪽부터 한 분씩 소개드리겠습니다.



진보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장여경 활동가님, 작년에 굉장히 유명한 판례였던 인터넷 실명제부터 패킷감청 헌법소원 제기 등의 사안을 기획하고 진행하시는 분입니다.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많은 일거리를 주시는 활동가십니다(웃음). 오늘은 그 활동 경험을 녹여서 여러 가지 것들을 이야기해 주실 것이고요.

그 옆에는 김남희 변호사님이십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계시고, 작년까지는 공익법센터에 계시다가 올해에는 복지노동팀으로 옮기셨습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공익소송을 많이 하는 곳인데요, 작년 한겨레21′에서 정한 올해의 10대 판결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 진행한 소송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 왼쪽에 계신 분은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님이십니다. 이른바 ‘11투표제‘, 그 전까지는 정당에 대한 투표 없이 지역구 대표에 대한 투표만으로 비례대표까지 선출했잖아요. 그 것을 ‘12투표제로 바꾼 소송을 진행하셨고요. 또 호주제 사건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까지 굵직굵직한 소송에 참여하셨습니다.

마지막에 계신 분은 숙명여대 법대 홍성수 교수님이십니다. 홍교수님께서는 요즘 워낙 많은 활동을 하고 계셔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부 열거를 할 수가 없는데요(웃음). ‘학생 인권 조례부터 서울시 행정 인권 강령작업도 하고 계십니다. 자료집에 실려 있는 사회변동전략으로 소송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소논문은 저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처럼 사회변동전략으로서 소송에 대해서 깊은 연구와 문제인식을 가지고 계신 교수님이십니다.

이제부터 각각 발제는 15분씩 하시고, 발제 후 패널 간 토론을 한 다음에 플로어에서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같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제자의 개입은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 발제 순서는 제일 왼쪽에 계시는 홍성수 교수님부터 진행을 할 텐데요. 저희가 드린 발제의 주제는 법의 본질과 사법의 한계인데, 꼭 주제에 한정한다기보다는 교수님께서 공익소송과 관련해서 혹은 사회변동전략에서 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편안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발제 듣겠습니다.

홍성수 교수: , 감사합니다.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이 오늘의 좌담회 주제인데요. 아주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제 주전공이 법사회학입니다. 법사회학은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법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법이 변하면 세상도 바뀌는가? 또 거꾸로 사회가 변화하면 그것이 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최근 3~4년 동안 소송이나 법을 통한 사회변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 해 왔는데 좌담회가 이 주제로 열리게 되어서 저를 위한 무대가 아닌가 (웃음) 착각을 잠시 했습니다.

영미권에서 ‘social change through litigation’이라는 표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고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오래 전부터 소송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고, 과연 그것이 적실한 방법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송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법률해석의 변경을 통해서 사회변동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의 한 방식’, 이렇게 정의를 할 수 있을 텐데요. 문제는 과연 이 소송운동에 대해 첫 번째, ‘효과적인가’. 즉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바라던 효과가 효율적으로 달성되었는가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과가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와 상관없이 정당한 것인가’, 특히 이는 민주주의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런데 소송운동을 어떤 사회역사적 맥락을 배제하고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 7~80년대, 즉 우리 공익소송으로 치면 1세대, 2세대 정도가 했던 사회역사적 조건은 지금과 다르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권위주의 정권 시대였고 정상적인 입법절차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시대죠. 그러니까 시민들이 아무리 거리에 뛰쳐나와서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고, 국가는 국민의 어떤 요구들, 민중의 요구를 받아 주지 않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의 방법으로 법원에 우리 한 번 호소를 해보자. 이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사법부는 당시 국가의 모든 기구 중에 그래도 그나마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법원에 호소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고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지금도 그런 사회역사적 조건인가는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고요.

또 소송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사회역사적 조건을 갖춘 나라가 있습니다. 소송을 많이 하고 또 시민운동에서도 법을 활용하여 소송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인데요. 저는 항상 미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외적인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곤 합니다. 미국이 표준처럼 얘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미국은 굉장히 특수한 사회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죠. 무엇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요구 자체가 의회나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부터 시작해서 국민들이 아무리 요구를 해도 국회의원들이 사적권력의 로비에 허망하게 무너진다거나우리는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국민건강보험 어떻게 하려고 하는데 제약회사가 로비해서 좌절되고 하는 식의 일들이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요. 어쨌든 미국 같은 경우에는 시민들이 입법부나 행정부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상당히 제약이 많은 나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을 설계할 때 사법부를 통한 사회변동을 어느 정도 허용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영국 같은 나라만 해도 얼마 전까지도 법원에 위헌법률심판권이 없었거든요. 그게 사실 그렇게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에요. 헌법재판소만 해도 모든 나라에 있을 것 같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몇 나라밖에 없는 것이고 법원이 위헌법률심판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은데 미국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 연방대법원에 그런 권한을 줬던 거죠.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법부는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래봤자 사법부다. 가장 위험하지 않은 기관이 사법부라고 생각을 했고 거기에 일정한 권한을 부여해 줬습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사법부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전략을 쓰는 것이 미국의 사회역사적 조건에서는 굉장히 유효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이 그러한 조건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과연 우리가 미국 같은 나라와 동일한 사회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소송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변호를 하게 되는 경우라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소송을 활용하는 경우, 즉 흔히 기획소송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이고 정당한 운동방식인가 하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얼마 전에 옆에 계신 장여경 선생님과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주민등록번호 변경소송인데요, 주민등록번호제도를 폐지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그 중에 한 방법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을 때 변경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있을 수 있죠. 이런 방식의 운동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소송운동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첫 번째는 법을 지배하는 원리 중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원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적 안정성이나 각종 법리 같은 것들로 인해 판례 변경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게 법의 속성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법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법의 속성을 거슬러서 법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활용해야 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정상적인 법치국가의 상황이라면 소송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자들은 소송운동을 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입법부나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약자들이 소송운동을 활용하는 것이 주로 문제가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약자들이 생각하는 언어들과 요구사항들이 법적인 언어로 전환되었을 때 그 요구들이 온전히 법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요구하려고 하는 진실이 100이라면 소송이라는 것으로 전환이 되면 남는 것은 10~20정도 밖에 안 남는 것 아니냐 이런 문제의식이죠. 그래서 실제로 변호사들이 상담을 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 말 좀 그만하시고요.”라고 합니다(웃음). 의뢰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이 이만큼 있는데 변호사가 봤을 때에는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중 극히 일부라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변호사가 그 말 그만하세요라고 제지했던 그 부분에서 오히려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법적인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원래 하려고 했던 요구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 해 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이기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무의미한 얘기를 법정에서 해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그 것이 때로는 의뢰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회적 약자들이 변호사를 통해서 공익소송을 할 때, 지금까지야 자기 얘기를 들어 주고 소송을 해 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 다음에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점도 따져 봐야할 부분입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아주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헌재가 했던 일들을 쭉 보면요. 진짜 세상을 바꾼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꾼 명판결들 중 상당수는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정부나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일보 직전에 사법부가 치고나간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긴 하지만요.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부가 선도적으로 소수자를 위해서 획기적인 결정을 내린 사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오늘 첫 번째 강의도 호주제 위헌 소송을 다뤘던데, 사실 호주제 위헌 결정이 내려질 즈음에는 국회의원 대다수가 폐지에 동의했던 상황이었고요. 이것과 무관하게 헌재가 치고 나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호주제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시민사회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어냈기 때문이지, 그것과 무관하게 헌재가 문제해결을 선도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한 것이나, 수도이전사건을 위헌 결정한 것도 사실 국민여론의 다수 견해를 따르는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거든요. 사실 다른 나라 사법부도 진보적인 사법부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를 통한 소송운동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고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부분인데, 과연 문제 해법을 사법부에 위탁하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가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주로 소송운동을 전개했지만, 요즘은 이른바 보수우파도 다 소송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지. 그러니까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사법부가 최종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소송운동이라는 것이 정치운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정치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이 소송운동은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사례로 4대강 소송을 들어보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 소송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든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승소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예비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다퉜는데, 이것이 과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의견의 차이에 가까운 문제라고 봤고요. 게다가 패소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패소했을 경우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거였습니다. 패소했을 때 정부가 ‘4대강 사업의 모든 법적 걸림돌이 없어졌다‘, 또는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이 법원을 통해 확인 되었다‘. 이런 성명이 나온다는 것쯤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수세에 몰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대부분의 소송은 패소했고, 국토해양부의 성명은 정확하게 그런 취지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예비타당성조사나 환경영향평가가 졸속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불법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합법/불법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바람직함/바람직하지 않음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졸속으로 조사나 평가가 이루어진 채 대형공사가 강행되는 것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겠지만, 이 판단을 법원에 맡겨서 위법 여부를 가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고요. 그것은 한편으로 토목/환경에 관한 전문적인 판단의 영역이기도 하고, 정치적 논쟁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4대강이 홍수 예방 효과가 있느냐의 문제에서 과연 이 쟁점을 법원이 판단할 수 있을까. 판사들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는가? 그 판단을 법원에게 맡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더 얘기가 길어지기 전제 정리하자면, 이 문제는 대중운동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소송을 통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제 잠정적인 생각입니다.

정리를 좀 해보면요. 일단은 소송은 세상을 바꾸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최종목표는 승소가 아니라 세상의 바꾸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척도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까 4대강 사건에서 말씀드렸지만 승소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따져 봐야 한다. 물론 이겨야겠지만 지더라도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고 이기더라도 별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승소가능성과 더불어 패소 시의 부정적 효과라든가, 패소함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에 승소한 경우라도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가를 검토해야 해요. 왜냐하면 소송은 본질적으로 당해 사건에만 효력을 미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사건의 결과가 파급력이 적은 경우도 있어요. 최종목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지, 당해 사건 하나만 구제받고자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전체적으로 문제되는 모든 담론들을 변화시키는 데 과연 소송이 유의미한가하는 것도 따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대중을 이끌어 내는 데에 소송이 유의미한 방식인가 하는 점도 검토가 필요하고요. 이런 쟁점들에 대해 공익소송 검토 매뉴얼같은 것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공익소송을 제기할 때 매뉴얼에 따라 하나하나 따져 보고, 전략적으로 소송을 택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전에 참여연대에서 일을 하셨던 차병직 변호사라는 분이 쓰신 글 중에 법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차병직 변호사 스스로가 입법운동이나 소송운동에 많이 관여하셨지만, 특히 용산참사를 바라보면서 법에 대한 무력감을 느낀 점을 그 글에 쓰셨습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제가 그 글을 읽는 것으로 마지막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습관을 익혀 오고 있었다. 한때는 잊고 있었던 쟁송의 권리가 꽤 빛나는 효과를 발휘한 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모든 쟁점을 소송화하는 사회운동의 방식은 전략적 수단으로서는 가능하지만 진보적 희망을 근원에서부터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법적 투쟁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해결 과정 중에 부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에 불과하다.”

이상 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 : , 홍성수 교수님이었습니다. 너무 발제가 감동적이어서…….(웃음)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제가 1년차 변호사일 때에는 뭔가 있으면 이거 헌재 가지고 가면 안돼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공익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데 내가 아는 것은 법 밖에 없으니까 해결방법을 자꾸 내가 아는 쪽으로 가지고 오려고 하고 그 소송이 결국은 어떤 영향을 주는 지와 같은 것들은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제기 자체로 만족감을 얻는 경험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늘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김수정 변호사님께 발제를 부탁드릴 텐데요. 김수정 변호사님께서도 여러 가지 공익소송을 해 오셨는데, 그 때 본인의 경험들을 통해서 얻은 고민들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발제 해 주시겠습니다.

김수정 변호사 : 홍교수님께서 본인을 위한 무대인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 그런 것 같네요. (웃음) 제가 아직 미천한 정도지만 공익소송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고민들에 대해서 많이 정리를 해 주신 것 같아요. 최근 노회찬의원 X파일 사건, 다 아시죠? 거기에서 대법원에서 패소 확정이 되어 의원직이 상실되었는데 그 사건을 제가 7년간 진행을 해 왔어요. 제가 지금 변호사 13년차인데 아주 어릴 때부터. (웃음) 한 번 승소. 한 번 패소. 대법원 가서 파기환송 패소. 그렇게 결론적으로는 패소인데. 이번에 패소를 당하고 나서, 그리고 직전부터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무게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 봤어요. 개인적으로 사람의 사건을 할 때에는 그 개인의 인생의 무게, 이 노회찬의원의 사건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인생의 무게에 덧붙여서 사회적인 무게까지 막 짓누르면서 . 과연 내가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이런 고민까지 많이 했었는데요. 홍교수님께서 소송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서 사실 저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 공익소송이 한두 가지씩 효과를 가지게 되면서 사회단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소송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어요. 그래서 주체를 이끌고 그 주체를 가지고 운동적인 측면을 많이 고민하기 보다는 소송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일이 생기면 변호사를 먼저 불러서 이건 소송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하는 것이 항상 먼저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소송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아니 모든 걸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 수단을 통해서 한 두 번 성과를 얻게 되니까 너무 많은 역량이 거기에 쏠리는 현상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제가 변호사로서 일을 맡았을 때 변호사는 주체인가 보조자인가”, 그 소송에서 이겼을 때 정말 이긴 것인가”, “이겼다고 해서 뭔가를 바꾼 것인가”. 패소했을 때는 당연히 패소인데 패소했다고 해서 우린 진 것인가”.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까 홍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건 중에 호주제 소송 같은 경우는 정말 모범적인 소송이었어요, 호주제 소송을 한 7년 가까이 진행을 했는데, 소송만 7년이 진행 된 건 아니고, 사실 소송은 부수적인 것이었어요. 주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시민운동들이 일어났고 그것이 한 2년 쌓이면서 그 결과로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고, 소송이 5년이 갔지만 그 사이에도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고 오히려 퍼져 나갔죠. 그래서 소송은 보조적인 게 되어서 이건 당연히 승소, 만약에 지면 변호사들이 역적이 되는 거죠. 당연히 이겨야 되는 건데. (웃음) 아무튼 그런 소송이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변호사들도 단순히 소송을 보조하는 역할 뿐만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으로 투쟁과정에 참여를 했어요. 보통 일반적으로 소송을 하게 되면 내가 담당 변호사인 경우에는 어떤 인터뷰나 토론회에 잘 나가지 않아요. 그런데 호주제 소송에서는 저희는 공동변호인단을 짜 가지고 언론담당을 뒀고 토론회 같은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변호사에게는 변호사의 역할이 있고 운동이 너무나도 활성화 되면서 여성부까지 합세를 하면서 정말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은 게 그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죠. 그래서 저는 . 공익소송은 정말 이렇게 진행이 되는 것이구나하고 너무 감명을 받았어요.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승리의 경험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또 많은 패배의 경험이 쌓이게 됐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소송에도 제가 많이 관여하고 있는데, 이 소송은 사실 저희가 주도하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계획을 짜기를 지금 현재는 무르익지 못 했다. 그래서 그 간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위헌소송에 가서 함부로 결론을 내렸을 때에는 이 소송이 식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을 가지고 위헌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워낙 병역거부자들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다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공간에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건에 법원이 툭 위헌제청을 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개입되지 않았던 사건에 부랴부랴 들어가서 위헌소송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해 버린 거예요. 확정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거죠. 당시 고민이 위헌제청은 헌재에 가 있었는데 헌재가 언제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날 대법원에 상고를 딱 해서 대법원 판결 날짜가 잡힌 거예요.

당시는 한두 달 사이에 언론에서 이 병역거부 사안을 언급 하는 건수가 200, 300건이 넘는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 의뢰인을 찾아 가서 상고심을 포기시킬까도 생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헌재에 영향을 미칠 것까지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결론은 지금 이정도로 언론에 알려진 상황에서 이 분들이 포기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비겁하게 보여질 수도 있다. 정면돌파하자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공개변론 요청도 하고 할 만 한 건 다 했지만 결론은 기각되었던 사건이에요. 병역거부 사건은 따로 싸우지 않아도 병역거부를 하시는 분들이 지금까지도 일 년에 600~700명이 나오기 때문에 계속해서 싸움은 있지만, 그 판결로 인해서 사회적 운동이 동력을 잃고 길을 헤맸어요. 그 이후 또 다시 법원에서 위헌제청을 해서 재작년에 예전보다 훨씬 더 후퇴한 판결이 나왔는데, 이를 보면서 아까 홍교수님이 말씀을 하셨듯이, 비단 이 판결뿐만 아니라 법원에 의해서 사회가 바뀔 수 있는 선도적 판결들을 우리가 기대하고 그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올인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가 상당히 들게 되고, 최근에 노회찬의원 판결을 보면서도 우리 법원의 구성 자체가 우리가 믿고 따라갈 만한 수준은 아직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11표제소송은 어떻게 보면 운 좋게도 사회적 의미가 있는 굵직한 소송에 영광스럽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소송의 경우에는 전혀 싸움도 없었어요. 너무나 당연하게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는데, ‘11표제라는 것이 어느 국회의원에 투표를 하면 표가 바로 그 당으로 갔었어요. 정당투표가 따로 없었죠.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싸워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제3의 당이 없었거든요. 민주당하고 지금까지 이름이 바뀌어 온 그 거대 여당하고 두 당 밖에 없었으니까 정당에 투표할 필요성을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등장을 하면서 . 이 건 우리당한테 너무 불리하네이런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노회찬 의원과 저와의 인연이 이제 시작이 된 건데요. 노회찬 의원이 사무총장을 하면서 이거 이상하니까 한 번 해 보시죠이러는데, 우리는 . 헌재 믿을 게 못 돼요이러면서 하지 말자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지더라도 한 번 해 보시죠이렇게 해서 하게 됐는데, 그 뒤로도 그냥 내 놓고 까먹고 있었고. (웃음) 그렇게 저희도 소송을 내 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게 터진 거예요. 너무 당연했던 판결이었는데 이 판결이 진보정당이 뿌리는 내릴 수 있는 하나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진보정당이 그 것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면서 운동적 차원에서 소송이 진행되었다면, 이 후에 ‘11표제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문제 중 하나인 선거제도, 선거구 까지 함께 싸워 낼 수 있는 창이 열렸을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 참 그게 안타까웠어요.




여러 가지 사례를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 생각에 공익소송은 소송제기 자체가 투쟁인 경우와 공익적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그리고 입법을 위해서 하는 경우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특히 첫 번째의 투쟁성 소송의 경우에 호주제 소송과 같은 엄청난 준비가 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는 순간 주체가 바뀌는 것을 많이 봤어요. 원래는 운동주체들이 주체였는데 소송이 제기되면서 운동주체들은 변호사의 승소를 위해서 도와주는 보조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법원 앞에서 구호 외치고, 변호사들은 그날 무기를 들고 나가는 전사가 되는 것이죠. 저 사람들이 주체인데 왜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되며 내가 그런 부담을 져야 되는 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게 돼서 그렇게 주체가 바뀔 것 같으면 전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운동의 주체, 투쟁의 주체는 변호사가 아니거든요. 소송이 그걸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굉장히 면밀히 준비한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보고요.

이걸 또 느꼈던 게 서선영 변호사랑 같이 민변에서 사무차장을 할 때였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소고기 수입을 잘못하다 보니 엄청난 거리투쟁이 벌어졌어요. 이 때 민변에서 위헌소송을 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 소송을 제기하는 투쟁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자체가 투쟁이었는데. 굉장히 많이 모였죠. 저는 민변에서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그런 변호사였어요. 그렇게 투쟁이 불붙고 할 때 소송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송의 모집 과정이나 여러 가지 과정들은 굉장히 잘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민변에 와서 도장을 만들어서 찍는 과정들, 만 명 가량 되는 사람이 원고인단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우리가 출력을 해서 낼 수 도 있었지만 일부러 자원봉사자를 모집을 해서 와서 모여서 했던 과정들은 참 투쟁 자체로서 만들어 갔었는데, 이게 역시나 소송에서 결과는 다 아시겠지만 패소했어요. 예상이 됐었던 건데 그에 대해 결과까지 예상하면서 잘 짜지는 못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촛불소송이 과연 그 단계에서 필요했었는가 좀 더 면밀한 판단이 필요했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소송으로 간다는 것은 좀 경계를 해야 한다. 어떤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소송은 부수적인 거다. 물론 소송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게 있죠. 하지만 그 걸 잘 봐야 된다. 그리고 엄청난 준비가 있어야 된다. 주체와 역할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지, 결과의 영향까지도 판단을 해 보고 해야 된다. 물론 이 것 때문에 꼭 제기되어야 하는 소송에 수동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변호사들도 내가 이 소송에서 보조적인 역할자인지 주체적인 역량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하자. 이 소송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나머지 얘기들은 남은 분들의 발제를 듣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또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진행자 : , 발제 감사드립니다. 저기 김수정 변호사님과는 굉장히 친한 편인데 또 이런 이야기를 이런 데서 듣게 되네요. (웃음) 토론회 자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굉장히 좋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저번 주 토요일과 오늘 이틀 동안 공익소송 이야기를 했는데요. 지금 가장 공익소송을 많이 제기하고 계신 김남희 변호사님. 참여연대 공익법 센터에서 공익소송의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더불어 실제 수행을 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서 김남희 변호사님께서 발제 해 주시겠습니다.

김남희 변호사 : , 안녕하세요. 저는 참여연대에서 지금 근무하고 있는 김남희 변호사입니다. 제가 사실 이 자리에 오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면도 좀 있긴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공익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참여연대에 입사를 한 게 2011년이었으니까 지금 2년 밖에 안 됐고요. 그리고 제가 참여연대에 들어가면서 저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지 않고 시민활동가로서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의지를 가지고 들어가게 됐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것 보다는 활동가로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가 변호사로서 경력이 좀 있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익법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한 달 전에 부서를 옮겼어요. 저는 지금 복지노동팀에서 활동가로 일을 하고 있고요. 사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공익법 센터에서 법을 통한 운동을 경험을 하면서 앞에 두 발제자님들이 말씀하신 그런 고민들을 많이 느꼈고요. 사실 법을 가지고 뭐를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느꼈고 저는 변호사로서의 활동 보다는 그냥 사회활동가로서의 활동에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소속까지 변경을 하게 되어서 (웃음) 좀 그런 면이 있는데요. 어쨌든 제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느꼈던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소송의 한계에 대해서 앞의 두 분이 잘 얘기를 해 주셨지만, 저는 그게 사회 발전 단계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홍성수 교수님 얘기에 많이 동의를 하는 데요. 하나는 기존에는 우리나라의 다른 사회 분위기가 워낙 억압적이고 권위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법원에 대해서 기대할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민주화가 됐죠?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민주화가 됐는데 반면에 법원은 상당히 보수화 되고 있어요. 이건 사회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공감을 하시는 부분인데요. 왜 그런가. 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겠죠. 제가 법조계에 몸 담은지 한 10년이 됐는데 그 기간 동안 저도 그런 것들을 많이 느껴요. 그리고 사회 변화상, 예전에 민주화 투쟁이랄까 이런 시기에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사회에서 진보의 색채를 가지는 것이 어떤 지식인의 소명이랄까? 이런 사회적 공감대가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법조계가 신분상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공감대도 더 많이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회가 좀 달라졌죠. 예전보다 훨씬 분화되고 또 운동의 흐름도 예전처럼 간명하지는 않아요. 민주화라고 말해서 이렇게 단순화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저희가 대처하고 사회 활동가로서 대응해야 될 대상도 예전에는 권위적인 정부였다면 이제는 정부보다는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자본권력이라든지 어떨 때는 외국계 자본 등 더 법의 영역을 벗어나서 그렇게 굉장히 다양화 되고요. 또 이해관계 충돌도 훨씬 분화가 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명하지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운데 법원은 점점 더 보수화가 되고 기득권을 중시하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거든요. 특히 그런 것들이 노동 쪽 판결들을 보면 더 드러나는 데요. 방금 전에 얘기하신 노회찬 판결이나 정봉주 판결도 그렇지만. 그런 법조계와 법원의 보수화, 법을 통한 운동의 한계 이런 것들을 활동하시는 분들은 많이 공감은 하실 것 같아요.



짧은 경험이지만 제가 그래도 나름대로 법을 통한 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하나는 보수화되고는 있지만 사법부가 그래도 자본권력으로 부터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실은 민주적 통제가 기반이 되어야 되는데 우리나라의 입법부나 행정부가 별로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비록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 선출을 하기만 그렇게 선출된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을 하느냐? 그런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 민주적 통제를 받고 있느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입법부나 행정부가 훨씬 더 민주적으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소위 기득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본에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직은 사법부가 국가 기구 중에서 청렴도에 있어서는 제가 경험한 바로는 덜 영향을 받는 편이다. 그리고 자본의 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면이 있다. 이번에 최태원도 감옥에 갔잖아요. (웃음)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공익소송이라는 것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작은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작년에 공익법 센터에서 준비해서 제기한 소송이 장애인 웹 접근성에 관련된 소송이었어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되면서 모든 홈페이지들은 웹 접근성을 준수를 해야 하고 장애인들의 웹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손해 배상 의무를 진다든지 하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게 단계적으로 적용이 돼서 모든 홈페이지에 대해서 20134월달에 적용이 돼요. 지금도 대기업이나 국가기관 같은 경우에는 이미 적용을 받고 있고요. 그런데 이 법이 이미 제정되고 시행이 되고 있음에도 기업들이나 공공기관은 여기에 대해서 실제로 대처를 안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공익법센터에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준비를 해왔는데 한 100개 정도 사이트를 조사를 해 보면 그 중에서 웹 접근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 사이트는 20~30%밖에 안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거를 기업들이 모르느냐 하면 그 건 아니에요. 기업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작년에 굉장히 큰 규모의 국제 심포지엄이 한국에서 열렸는데, 그 웹 접근성에 대한 거였거든요. 거기 가 보면 웹 개발자들이 수백 명이 와서 웹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심히 얘기를 하는데 전문적으로 그 분야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법이 제정이 됐고 실제로 시행이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 왜 이렇게 준수율이 낮은가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내가 이것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때 나중에 소송을 당해서 손해배상 청구 받을 위험과 이것을 비용을 들여서 고쳤을 때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형량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실제로 소송이 제기될 확률이 낮고 소송에서 배상해야 할 액수가 별로 크지 않다고 하면 내가 이것을 고칠 필요가 있겠느냐. 좀 두고 보자. 이렇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저희가 작년 12월에 소송을 제기했거든요. 소장을 접수를 시키니까 뉴스나 이런 데 나왔죠. 그러니까 그걸 보고 이제 기업들이 아 이게 뭔가 소송을 하는 구나, 가만히 있으면 뭔가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하고 그 때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를 시작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송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기업들이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그걸 보고 소송이 사회를 전부 바꿀 수는 없는 도구지만, 이 소송의 위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구나. 사실 이 웹 접근성 소송을 제기를 할 때 그렇게 큰 금액을 청구한 건 아니거든요. 저희도 원래는 70여개의 회사를 조사해서 그 중에 웹 접근성이 보장이 안되는 회사가 50개 정도 있었지만 그걸 다 제기하기는 너무 힘드니까 줄이고 줄여서 대표소송으로 몇 개를 골라내서 준비를 했는데, 그렇게 금액도 크지 않고 작은 소송이지만 이 소송의 추이에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웹 페이지들이 웹 접근성을 준수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걸 보면 사회적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있고요.



또 하나는 공익소송이 결과를 기대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공익소송이 패소율이 굉장히 높거든요. 아시겠지만 법이라는 것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그런 곳이니까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판결을 내는 것은 법원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럽단 말이에요. 공익소송을 제기해서 뭔가 사회를 바뀔 수 있는 그런 판결이 나올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다퉈나가는 그 과정 자체에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현대차 최병승씨 판결이 났는데도 현대차가 불법하게도 시정을 안 하고 있잖아요. 그게 지금 일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시정을 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작년 말인가 올해 초에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에서 정몽구를 고발했어요. 파견법 위반으로. 그 전에도 이제 고발이 됐었는데 고발 대상이 현대자동차 임직원이나 뭐 이렇게 포괄적으로 고발이 됐었고 별로 여론의 주목을 못 받았어요. 노동사회위원회에서 여론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법학 교수님들은 한 30분은 모아서 피고발자를 정몽구 1인으로 해서, “현대 자동차가 파견법을 위반하고 있고 네가 총수니까 책임을 져라라고 고발장을 접수를 했거든요. 그렇게 접수를 한다고 하니까 언론에서, 이런 일은 좀 하잖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거예요. (웃음) TV 카메라가 막 몇 대 오고 기자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해서 많이 찍었거든요. 전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뉴스와 신문에 실렸어요. 그러고 난 다음 얼마 전에 울산 노동청에서 현대자동차 특별 감독을 했어요. 기사에 뜬 바에 따르면 작년에 정몽구 고발 건으로 해서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특별 조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론을 환기하고 실제로 기소를 하거나 법원에 가서 유죄가 나오고 이런 확률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한테 알릴 수는 있는 거죠. 이게 굉장히 문제가 있고 그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이런 액션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여론을 환기하고 사회적 주목을 끌 수 있는 측면이 있고요.

또 하나는 노회찬 의원 판결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황당하고 어이없는 판결인데 결론이 되게 나쁘게 나왔잖아요. 그런데 저는 나쁜 결론도 때로는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문제가 있고 황당한 판결들이 나오면 그 판결이 나옴으로 해서 지금 온 국민이 분노를 하고 있잖아요. 이래선 안 된다. 뭔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꼭 승소를 통해서만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설사 패소를 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게 사회를 바꾸는데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저 너무 길게 얘기한 것 같고, (웃음) 그리고 실무에서의 고민은 제가 자료집에 적었는데요. 그것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소송을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이 당사자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공익 소송을 위한 당사자가 계실 때 이 분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공익소송의 취지가 안 맞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이럴 경우에 협조가 부족하거나 중간에 틀어지거나 아니면 우리가 끝까지 다퉈야 되는데 원하지 않으시거나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건 참 해결 방법이 없어요. 당사자분을 잘 설득하는 문제라든지 적절한 당사자를 잘 발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요. 또 하나는 높은 패소율인데 이미 말씀 드렸고, 소송비용의 부담이 커요. 인권 실무일 하시는 분들이 많이 느끼실 거예요. 자기 사익을 위해서 일 할 경우에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공익 쪽 하시는 분들이 자원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실제로 패소를 하게 되면 이 소송비용의 부담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익기금이라든지 하는 시스템이 좀 갖춰져 있어야 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책임성의 문제인데, 지금 공익을 전담으로 하시는 변호사님들이 드물잖아요. 많이 없는데. 자원 변호사들 위주로 진행이 될 경우에는, 그러니까 전업 공익 변호사가 아니라 자기 일을 따로 하시면서 도와주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 열심히 하시고 끝까지 책임 있게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기 일이 너무 바쁘면 적절한 순간에 사건이 진행되는 거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을 못 해 준다든지, 소송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년이 가고 3년이 가고 5년이 가고 7년이 갈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 중간에 이 분에 해외유학을 가게 되거나 지방에 내려가시기도 하고 이럴 경우에는 갑자기 책임소재가 없어지게 될 경우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공익소송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공익 변호사의 확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이 정도 입니다. (웃음)

진행자 : , 김남희 변호사님 발제 잘 들었습니다. 그 전에 공익소송의 위험성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걱정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하다는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웃음) 그 전에 저 공익 소송 계속 수업을 들었는데, 공익소송의 효용성에 대해서 너무들 많이 이야기가 나와서 걱정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하다는 분석의 말씀이셔서 감사드리고요. 그 다음에 장여경 활동가님은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인권 소송 기획을 많이 하셨는데요. 그 고민들 문제의식에 대해서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장여경 활동가 : 예 안녕하세요. 저는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 중에 유일하게 법률가가 아닌 진보네트워크라고 조그만 정보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이렇게 소송을 기획하고 그 소송을 맡아주실 변호사님들을 찾아서 여기 저기 전화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 막 귀찮게 굴기도 하고 그런 일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런 경험들 속에서 공유할 만한 게 있나 얘기해 보라고 하신 거 같아요.

근데 앞에 얘기 쭉 말씀 들으면서 저도 이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기는 것하고 바꾸는 것하고 사이에 갭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겼지만 진 소송이 기억이 나요.

그게 뭐냐 하면 2002년 불온통신에 대한 위헌 결정이 기억이 났거든요. 저희가 이제 처음 이 소송을 기획을 한건 96년 일이었어요. 저하고 여러 활동가들이 모여서 그 때 무슨 세미나를 했었어요. 그때 뭐 96년도는 왜 기억이 남는가하면 어디 소문을 들으니깐 저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연방 대법원에서 통신 품위법이라는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 났다 그러고 막 네티즌들이 블루리본 캠페인 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그 때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면 영화 화면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받은 거예요. 근데 저희가 이제 막 고무가 됐죠. 그래서 이제 막 세미나를 하는데 그때 우연히 배재대학교 김종서선생님이 오셔서 발제를 하시면서, 한국의 불온통신 조항이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위헌이다. 이런 발제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 발제문을 소중하게 갖고 있었죠. 그러다가 우리도 영화관련 사례처럼 소송에서 이기는 사례로써 위헌 사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고 그런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다가 99년도에 나우누리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던 거예요. 나우누리라는 pc통신에서 한 네티즌이 연평도 폭력 사건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정부가 옷로비 사건이며 조폐공사 파업 유도며 위기에 몰렸는데 이런 문제로 북풍같이 넘어가려고 하나 이런 글을 쓰셨는데 근데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그 내용이 삭제당한 거예요. 그래서 잘 걸렸다 싶은 거죠. 그 글을 삭제를 한 이유가 불온하다는 거였거든요. 96년부터 99년까지 적합한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 3년을 기다린 거죠. 근데 그때 글을 삭제 당한 사람이 여러 명이었는데, 여러 명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마침 답변을 준 분이 이 분이었어요. 이분과 어떻게 소송에 대응할지 변호사님들하고 의논을 해가지고 소송을 제기를 했고, 2002년도에 결국에 인터넷이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고 표현 촉진적인 매체다. 이런 결정을 헌재로부터 받게 됐죠. 그래서 인제 여기까지는 처음에 소송을 기획한 것도 그렇고 결과도 그렇고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이겼다고 볼 수가 있죠.

근데 그 이후에 쭉 진행된 걸 보면 저는 이제 과연 이겼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2002년도에 굉장히 고무가 됐는데, 헌재 결정이 6월에 있었거든요. 근데 7월에 정부가 개정안을 딱 내놨어요. 정보통신법에 대한 개정안이에요. 그게 뭐라고 되어있었느냐면 불온 통신은 위법이니깐 불법정보로 바꾸겠다. 그러면 앞으로 정보통신 윤리 위원회나 당시 정보통신부나 행정기구는 불온한건 안하겠지만, 불법적인 것은 하겠다. 이렇게 법을 싹 바꿔요. 그러고 7월에 개정안이 나오고 저희가 놀라가지고 국회를 갔죠. 11월에 국회에서 통과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밖에서 단체 사람들이 보좌관을 만나고 있으면 닫힌 문 안쪽에서 정보통신부 장관 차관 우연히 자기들끼리 차 마시면서 얘기하고당시 정부의 로비에 밀렸고, 저희가 정신을 못 차린 사이에 후다닥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뀌었고, 그게 정보통신부 사업법에 있다가 정보통신망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에 7로 옮겨와서 정보통신부 윤리위원회였던 기관이 방송 통신 심의위원회라는 걸로 바뀌었고 지금 인터넷상의 행정 시비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근데 당시 법이 바뀌었는데 단지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 졌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후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사이에 인터넷을 바라보는 사회 관점이2002년도의 헌재의 결정을 뒷받침할 만큼 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나라는 부분에서 보면 전 별로 그렇다고 생각이 안 들어요. 노회찬의원 대법원 판결문 보면 기가 막히잖아요. 보도 자료를 언론에 뿌린 것은 면책특권이 인정이 된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알아서 잘 거르기 때문에. 근데 인터넷에 올리는 건 안 된다. 누가 와서 보고 어떻게 이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근데 누가 와서 보고 어떻게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일반 시민들이거든요. 인터넷에 대해서 법원에서 이제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일반 시민들의 어떤 막 시끄러운 여론이라든지 시끄러운 민주주의라던지 아직도 이런 것에 대해 보수적인 생각이 좀 있다는 생각이 좀 들고 이번에 노회찬의원 판결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10년 동안에 인터넷 실명제가 다 입법화되거든요. 2004년도에 공직선거법에 공정한 선거를 방해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들어가고 2007년도에 일반 포털 사이트에까지 확장이 되요. 그때 여론 조사를 해 보면 80%가 인터넷 실명제 찬성한다고 나왔어요. 왜일까요? 연예인들이 다 인터넷 때문에 죽는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깐 뭔가 인터넷이 참 나쁜 짓 하는 것 같고 악플이 참 문제인 것 같다. 거기에다가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다라고 우리가 얘기를 해도 거의 먹히지가 않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2008년도에 새 정부 들어서고 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7월에 의결을 하나 하는데요. 그게 뭐였냐면 인터넷에 이제 어느 소비자들이 모여 있는 카페가 있었어요. 거기서 뭐 주중동이라는 큰 언론사들을 반대하는 소비자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아까 말씀드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고 이월 받아서 탄생한 그 기관이 언론 소비자들이 올린 글은 불법인거 같다고 판결을 해요. 왜 불법이냐면 한국 법에서 일차적인 소비자 운동은 인정을 하는 것 같은데 2차적인 소비자 운동 즉, 주중동을 반대하기 위해서 광고주를 압박하는 것은 대략 불법이 아닐까? 이런 정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글을 전부 삭제를 합니다.



저희는 96년도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가지고 99년도까지 기다렸던 것처럼 좋은 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당시 글이 삭제된 분들을 다 섭외를 해서 소송을 하게 됩니다. 근데 그것에 대해서 작년 2월에 결정이 나왔는데 저희가 졌어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그렇게 삭제할 수 있다. 그렇게 헌재가 결정을 하거든요. 그럼 2002년도 헌재 결정하고 2012년 헌재 결정 사이에 뭐가 있었냐면 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보수화된 것이죠. 판결문 행간을 읽어보면 그런 것이 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인터넷에서 막 거론되는 여러 시민들의 이런저런 얘기 이런 것들이 참 문제가 많다. 다른 한 가지는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운영되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된다. 그러니깐 저희가 주장했던 논리 중에 하나가 무엇이 불법 정보인 것을 왜 정부가 판단하느냐 그것은 사법부에서 판단할 일이다. 뭐 인터넷에서 명예훼손이면 명예훼손, 국가보안법이면 국가보안법. 그걸 왜 방송 통신 심의 위원회나 방송통신 위원장이 판단해야하느냐 그렇게 얘기 했는데 헌재 결정은 할 수 있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2002년에는 저희가 굉장히 고무가 됐지만,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행정부의 통제권한의 시비는 아직 이긴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겼지만 지금까지는 사실 우리가 지고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소송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고 했더라도 이것이 이제 전체적인 사회의 인식의 변화나 나아가서 행동의 변화 이렇게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사실은 결국에는 이제 후퇴를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 다음 결과도 졌고, 사회 운동으로도 졌던 뼈아픈 기억이 있어요. 바로 지문날인에 대한 위헌 소송이었는데요. 저희가 96년도에 전자주민증 반대 운동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97년도에 정권교체가 됐고 다들 용기백배해서 뭔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기대감에 부풀어가지고 주민등록제도를 이참에 한번 고쳐봐야겠다. 사회가 민주화 되어가고 있으니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주민등록제도의 여러 문제 중에 지문날인 문제를 제기했어요. 17세가 되면 전 국민이 동사무소에 가갔고 열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고 그 자료를 경찰에 그대로 넘겨서 전 국민을 상대로 평생 DB를 돌리고 수색을 하잖아요. 다른 나라도 이런 사례가 없다. 그리고 그때 특히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이게 법적 근거가 없었어요. 시행령에 있는 별지 서식 이런 정도에만 지문 찍는 란이 있고, 법적근거로 주민등록법에 지문을 날인한다는 조항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는 소송이라고 용기백배해서 소송을 99년도에 제기했습니다. 근데 결국 2005년도에 졌어요. 2005년도에 결과가 안 좋게 났죠. 2가지 의미에서 굉장히 안 좋게 났는데, 결정문 자체도 안 좋게 났거든요. 법적근거가 없이도 경찰은 그 지문 정보를 가져다가 쓸 수 있다. 왜냐하면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치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를 경찰이 할 수 있는데 지문은 범죄 수사에 막연하게 쓰지 않아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일종의 치안활동으로서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별다른 법적근거가 필요 없다는 게 헌재 결정이었어요. 그러다보니 그 뒤에도 심스(CIMS) 범죄 정보 관리 시스템이라든지 경찰이 별다른 법적 근거를 갖지 않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굴리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법률유보원칙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면 법원에서 헌재 결정을 다 가지고 와요. 헌재가 2005년도에 경찰은 별다른 근거 없이 따로 법을 만들지 않아도 다 DB 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갖고 거기서 뭐 범죄정보관리 시스템이라든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들이 운영이 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저희가 지문날인 반대 운동을 같이 하고 있었거든요. 활동가들이 지문날인을 반대하는 차원의 캠페인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저희가 캠페인 방향을 잘못 잡았었어요. 뭐냐면 확실히 위헌이다 법적으로 말이 안 된다. 너무 자신감이 있었던 나머지 이 소송의 결과를 당연히 이길 것으로 전제하고 그런 식의 논리 구사를 많이 한 거예요. 다른 나라에도 없다 이런 식으로그러다가 이제 2005년도에 소송이 진거죠. 또 마침 사회분위기가 민주정부에 대해서 가졌던 기대가 확 꺾여버려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거든요. 사회 단체들이 실망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그러면서 의욕을 잃어버렸죠. 그러면서 단위도 해체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고 그 전에는 지문 날인 반대한다고 활동하면 일반 시민들이 막 참여하고 자원 활동하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흐름이 탁 끊기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진 소송을 이기게 하는 것은 뭐냐. 그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변화를 가져왔을 때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송은 소송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의 여러 기획 중의 하나에 배치가 되어야 되요. 그래서 이제 행정 심의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는 헌재에선 졌지만 다양한 방법의 활동을 같이 하려고 해요. 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결정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도 하고 내용 중에 문제가 있는 케이스를 발굴하고 토론회하고 그 다음에 뭐 이전 시간에도 나왔지만, UN같은 데서도 대응하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사용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동원하고 그 중에 하나로 소송을 배치를 하려고 하고 있고요. 길은 굉장히 먼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작년에 저희가 대통령 선거 할 때 캠프마다 다니면서 이 정책을 받아달라고 했을 때, 지금 집권한 여당이 안 받는 거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인터넷에 대해 정부의 역할이 많다고 할 수 있으니깐 근데 야당도 안 받았거든요. 정부가 음란물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이런 것에 대해서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냐 이러면서 야당도 안 받더라고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렇게 갈 길이 먼 와중에 소송을 여러 전략 중에 하나로 사고로 했을 때 우리가 전략적으로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활동을 하지만 직업으로써의 활동이 아니라 공익 소송을 담당하시는 법률가분들은 일정하게 활동가적인 기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소송이 어떤 의미가 있고 전체 사회 운동 중에 동원할 수 있는 여러 전략 중에 공익 소송이 이루어져야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통신 비밀에 대한 여러 가지 소송이나 전략들을 짜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통신 비밀 관련법에 문제들이 몇 가지가 있어요. 그것을 저희가 하나씩 의제로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통신제한 조치와 관계해서는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고 통신 사실확인자료와 관련해서는 현재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누군가가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해서 당신들이 대응하고 있으니까 통신제한조치허가서에 대해 봐달라하고 가지고 왔는데, 거기 보니 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희가 알게 된 게 2009년이었어요. 근데 재밌는 것은 인터넷의 회선에 대해 통째로 감청하는 방식의 감청 기법이 적어도 이제 서면에서 드러난 것으로는 국가정보원이 2000년도 초반부터 거의 근 10년이 되는데 2009년도에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이전에는 아무도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거죠. 소송서류에도 있었어요. 재판 기록에도 보면 통신제한조치허가서 이렇게 첨부되어 있고 당시 대응하신 변호사님들도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셨던 부분이셨는데, 2009년도에 그걸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활동가들이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된 거죠. 이걸 당장 소송을 할 건가 아니면 일단 사회적 실체를 밝히는 게 먼전가. 2009년에 저희가 밟았던 건 일단 기자회견을 하고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리고 국회로 갔고 일단 국회에서 이 실체에 대해서 좀 더 밝혀주기를 요청을 하고, 당장 소송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있다가 2011년에 또 다른 케이스가 딱 생겼는데, 그 케이스가 소송하기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이광철 변호사님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 가지 중에 뭐가 있냐. 국가 배상도 있을 수 있고, 등등등 그런데 이건 헌법소원이 제일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행위를 대상으로 할 지 법령을 대상으로 할 지를 고민했죠.

여러 의제가 있어요. 대기를 하고 있다가 예를 들어서 기지국 수사 같은 사안을 알게 되면 바로 행동을 하는 거죠. 기지국 수사는 저희가 소문처럼 알게 된 것이었어요. 촛불시위하는 시민들이나 등록금 집회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 소환이 되는데 이 사람들을 경찰이 신원을 어떻게 알고 소환을 하는 걸까 그런 것에 대한 상식적인 의문들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연행되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소환을 할 까. 그런데 그 방법 중 하나가 휴대전화의 기지국을 터는 거였거든요. 집회 현장에 모여 있으면, 그 주변의 청계천이라든지 주변의 기지국 전체를 터는 문제를 가지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2011년에 사례가 하나 민주당에서 발생해서 2012년에 희망법이랑 같이 제기를 하게 되었던 거죠.

물론 이러한 이야기가 모든 사례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에요. 돌발적인 사안이 발생하거나 누군가에 실제 침해된 권리를 복구시키기 위해서는 즉각적으로 대응을 해야 되는 것도 있죠. 하지만 가능하면 활동적인 기획 속에서 기획 소송이 배치가 되면 우리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충분히 소송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행자 : . 생생한 경험과 관련해서 좋은 발제 감사드립니다. 들으면서 든 생각이 위헌 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진걸씨 강의에 있었지만, 야간 집회에 대한 헌법 불합치 나자마자 바로 새로 입법안으로 10시 이후 집회 금지법을 여당에서 통과시키려고 했는데 그 때 다행히 딱 사람들이 을 갖고 있다가 달려가고.. 그때 집회가 많이 있었어요. ‘야간 집회금지가 야간 집회를 부른다.’그런 집회도 했었고.. 막아냈던 경험이 있는데, 항상 사람이 승리를 할 때, 이길 때 항상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요. 이 네 분을 모실 때 예상했던 일이지만, 15분씩하고 패널 토론을 하고 그다음에 플로어 토론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사회자의 권한으로 바로 그 플로어로 질문을 돌리고 질문을 하면서 패널분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고요. 그래서 질문을 플로어로 마이크를 돌려서 이야기 하실 분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로어질문자 : 김남희 변호사님 발제문에도 나와 있고 장여경 활동가님 발제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사자를 확보하는 문제, 특히 공익적 마인드가 없는 당사자 같은 경우 협조가 부족한 경우에는 어려움을 겪을 텐데요. 이러한 경우 당사자가 대체 소송에서 어떤 역할을 가져야 하는 점이 고민이 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낙태 위헌 판결인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 같은 경우에도 당사자가 원고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애를 낳았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 분이 근본적인 기독교로 가서 낙태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서는 활동가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죠. 그리고 그 분이 나중에 공익단체, 공익변호사라는 인간들은 지들의 소송을 위해서 단지 애를 밴 여자가 필요했을 뿐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한데 당사자, 피해자의 위치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실 것 같아서 변호사님 두 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남희 변호사 : 제가 경험이 많지 않지만이런 고민이 들긴 하는데요. 정말 근본적으로 공익 소송에 있어서 당사자와의 관계가 어때야하는지에 대해서 제 나름의 답을 아직 내리진 못했어요. 네 질문자님 고민하시는 부분을 저도 비슷하게 고민을 하긴 하는데, 근데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까 공익을 하는 사람들이 소송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어떤 공익적인 걸 만들어나가는 건데,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좋은 결과를 위해서 희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면, 그 좋은 결과가 좋은 결과가 아닌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는 소송에 따라서 굉장히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같은 경우에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했던 소송분야가 자유권과 같은 부분들인데, 자유권과 같은 부분에서는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심각성이나 즉각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요. 사실 그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해서 그 분의 생계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런 당사자와의 문제에서 적게 발생했던 거 같은데, 그 낙태의 예를 드셨지만, 정말 생존이나 심각한 자신의 재산상 신체상 위해가 있는 상황의 사람이 당사자일 경우에는 소송 진행과정이나 협조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배려와 고민과 또 공감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정 변호사 : 일단은 그때 이게 변호사의 한계죠. 의뢰인이 와서 나를 선임한 경우랑 내가 의뢰인을 막 꼬셔서 하는 경우가 있을 거 같은데, 근데 변호사는 항상 내 의뢰인의 대리인일 뿐이니깐 원칙적으로는 당사자가 흔들리면 소송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원칙적인 말인데, 당사자가 흔들리면 설득해서 갈 것인지 그런 판단을 해야죠. 이 사람을 내가 설득해서 갈 것인지 아니면 당사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놔두고 기다릴 것인지.

저는 솔직히 기다리는 쪽을 택하거든요. 왜냐하면, 어떤 소송이냐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겠지만, 당사자의 노출 등 당사자가 많은걸 감내해야하는 경우라면 당사자의 결정을 따라야 하고, 당사자가 포기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내 소송이 아니기 때문에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호주제 같은 경우에도 당사자 구하는 게 어려워요. 이혼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내가 성인이고 엄마이고 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왜 내가 저 아이의 밑에 들어가냐고 해서 그걸 신청을 해서 불수리처분에 대한 거부처분에 대한 소송을 저희가 제기를 했고, 거기에 대해서 위헌소를 제청을 한 것인데, 그 경우에도 그분의 아이, 물론 그런 것들이 많이 보호가 됐지만, 그 분의 결단을 통해서 그런 식의 소송을 하게 될 수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 분은 소송을 흔들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저희가 여성운동사회에서 양성 평등역사에서 엄청난 일을 한 위대한 로자 파크스(Rosa Parks)와 같은 인물이 되신 건데, 그런 힘이 있다면 버텨갈 수 있는데, 당사자가 흔들리게 되면 싸움이 힘이 없는 경우가 많겠죠. 낙태 같은 경우에 우리나라에서 함부로 소송을 못 내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어쨌든 당사자가 흔들리면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는 어렵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어려운 문제죠.

진행자 : 또 질문하실 분이나 의견 주실 분?

플로어질문자 : . 말씀 잘 들었고요. 듣는 와중에서 한분 한분 발제가 넘어갈 때마다 마음이 막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가 목욕탕 온탕냉탕을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는데, 우선 개인적으로 계속 발제를 들으면서 다시금 돌이켜보게 되는 거 같아요.

로스쿨에 오기로 결정했던 내 마음이 과연 뭐였었지?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법조인이 된다면 세상을 바꿀 생각을 내가 했었었던가? 아니면 그럴 수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나? 너 스스로? 아까 김수정변호사님께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신 것사실 인권 침해가 있는 피해자의 개인적인 개별적인 구제라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고 작은 일이 아닌데,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간극이 어떻게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이런 고민들 속에서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대중운동의 우위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가령 지금 현대차 같은 경우에 비정규직이 그렇게 오랜 투쟁을 해왔고, 그래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도 여전히 해결이 안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이냐노동 운동이 뭐 많이 침체다 라고 얘기를 하고 비정규직 운동이 갈수록 동력이 사라지고 있고, 그래서 뭐 어렵다 회의적이다 답답하다 이런 얘기들이 현장에서 많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가령 소송이라는 것이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매치할 수 있는지가 고민됩니다.

아까 계속 말씀하시는 와중에 가령 패소를 염두에 두어두고 이슈, 이슈 환기나 이슈 파이팅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해서 패소하더라고 이것을 만들어간다는 말씀이 있었는데요. 가령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 황당한 판결을 통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라고 과연 판단할 수 있을까? 저는 그게 좀 고민이거든요. 소송의 패소라는 것이 도구적으로 어떻게 긍정적인 효과가 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고, 승소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여론에 대한 환기 그 이상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엔 호주제와 같은 경우에도 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당시에 여성운동의 대중운동적인 힘과 최근의 비정규적인 대중 운동의 힘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이냐 전 잘 모르겠거든요. 오히려 당시에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어떤 획기적인 판결이 딱 나오는 건 언제나 입법자들 그러니깐 쉽게 말하면 국회 안에서 국회위원들 대다수가 ……. 이건 이제 정말 낡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상황 속에서 한 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면은, 어 입법 운동의 경우에 오히려 좀 더 내지는 확 틀어서 국회의원을 많이 들여보내자 뭐 이러한 방식이랄까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소송이라는 것을 투쟁의 하나의 수단, 내지는 전략, 전술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의 의미가 굉장히 모호하다. 특히나 패소한 소송이나 승소한 소송이나 저는 동일하게 그런 것 같고, 차라리 입법 운동이나 이런 것에 대한 적극성 이런 것에 대한 고민들은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지 라는 굉장히 두루뭉술하고 저도 정리가 전혀 안 되고 있어서 그런데 어쨌든 질문을 그냥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진행자 : 네 뭐 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홍성수 교수님께서

홍성수 교수 : 답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구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송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성희롱 소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제 위헌 소송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그 과정에서 소송이 전략적으로 배치되었고, 결국 승소함으로써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면, 성희롱 소송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 인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소송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케이스거든요. 그러니깐 입법차원에서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었고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수준도 낮은 상황에서, 놀랍게도 승소를 거둔 것이죠. 승소 자체야 몇 백만 원 손해배상금을 받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 후에 성희롱 관련 입법으로 이어졌고, 사회적으로도 성희롱의 해악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될 수 있었죠. 즉 저는 이 사건이 단순히 승소를 넘어, 그 파급효과가 매우 좋았던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패소의 문제는 이렇다고 봅니다. 패소했다고 해서 그 사건 전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명예훼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얘기는 단지 법적으로 명예훼손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그 발언 자체가 훌륭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마치 그 판결이 발언의 정당성을 보장해준 것처럼 받아들이잖아요. 때로는 패소의 효과가 단순히 그 사건의 패소 이상의 부정적인 파급효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이겼다고 해서 이긴 것도 아니고 졌다고 해서 진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어떤 소송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의 한 운동에서 하나의 변수고 하나의 전략적 도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결과가 도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승패 여부는 그 중 하나의 요소라고 봐야할 것 같고요.




진행자 : 예 또 질문하실 분 있으시면…….

플로어질문자 : 지금 답변해주신 홍성수 교수님께 한번 더 여쭤보고 싶은데요. 이번 시간에 나온 얘기들이 공통적으로는 시민운동에서 소송이라는 것이 굉장히 유효한 전략임을 아직도 분명하지만, 유일하지는 않다라고 얘기를 하셨던 거 같은데요. 이게 꼭 소송이어서가 아니라 시민운동 전반이 바뀌고 있어서가 아닌가예전에 대변형 방식의 시민운동 방식이 주류였던 시대에서는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어떤 얘기를 받아서 대신 싸워주고 적이 분명하게 정과 부정이 분명하던 시대에서 그것이 유일하게 주로 검토되는 것이 법률적인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욕구가 다양해지고 전문가에게 사람들이 기대지 않고 직접 거리에 나서도 직접 활동을 조직하고 하는 방식으로 변화해가고 이슈를 만들어가고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변호사들의 역할도 변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예전에는 약자들을 위해서 싸우는 글래디에이터 같은 투사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심리치료를 할 수도 있고, 상담도 할 수 있고 굉장히 다양한 조정 전문가일 수도 있고 대화의 틀을 만들어내는 협력 촉진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데여전히 저희는 배우는 수단이라는 것이 주로 법이라고 하는 소송 위주로 배우고 있기 때문에 특히 지역에서 환경적인 부분에서 보면 단지 소송이 유일한 수단이 아닐 수도 있는 경우에 소송을 선택해서 마을 공동체가 적과 아군으로 구분되고 완전히 공동체가 망가지는 것을 보면 이런 분쟁에 있어서 다가가는 접근 방식이 다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저희가 변호사 될 사람들이고 법을 배우지만 더 이상은 소송의 기술만이 아니라 분쟁을 다루는 분쟁전문가로 훈련하고 트레이닝하기 위해서는 법 공부 외에도 참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걸 지금의 학교에서는 배울 수가 없어서 참 아쉬워요.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입장이시고 법을 연구하시는 분으로서 저희가 지금 어떤 것들을 같이 더 생각해보고 더 앞으로 만들어가고 했으면 좋을지 그런 상상력이나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성수 교수 : 말씀하신 것에 모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이 사회역사적 조건에 따라서 그 위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또 거기에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민운동의 조건의 변화가 당연히 있다고 봅니다. 법조인을 꿈꾸고 법조계에 진출해서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아까 장여경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이외의 것들을 고려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전체 사회운동에서 자신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법을 통한 사회운동이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변화된 사회 조건 내에서도 기여를 하려면 더 이상 법적인 조언만으로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볼 줄 알고 전체를 그리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저도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주로 말합니다. 하지만 이미 공익활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인 자리라면, 오히려 그 한계에 대해서 얘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변화된 사회적 조건에서 공익변호사의 활동이 더욱 예리하게 자리매김될 수 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론화시킬 필요가 있고요. 그동안의 여러 변호사들의 경험들도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이면 아까 말씀드린 공익소송 매뉴얼 같은 것으로 집약될 수 있겠죠.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공익인권소송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행자 : 저기 이제 시간이 거의 되어가고 있어서 질문 한 두 개 정도만 받고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플로어 질문자 : 제가 생각하기에 또 하나의 변수는 사실은 소송을 받는 법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발제하시면서 법원, 또는 사법부로 통칭을 하셨지만, 결코 그 사법부 구성원, 소송을 받는 법원은 균질적이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크게는 약간 농담일수도 있지만, 법은 고문을 한다. 고문을 하지 않는다. 자본 권력으로 독립되어 있다. 독립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입법이나 행정보다 종속성이 더 심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거는 하나의 사실에 대한 다른 평가일 수도 있지만, 개개인 변호사가 접한 재판부가 달라서 재판마다 사건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최고법원인 대법원으로 결론이 수렴되기는 하지만 똑같은 쟁점을 가지고 똑같은 변호사가 대리하면서 서울 행정법원 행정1부에서 행정2부에서 쓰는 판결이 전부 상반된다거나 아니면 여러 판결을 모니터하다보면 똑같은 사건인데 이 재판부에 갔으면, 결론이 완전히 바뀌었겠다. 이런 생각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이게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이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고, 이 부분에 대해서 아 그래도 당사자랑 변호사가 정말로 실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외에 다른 대안이라던지 의견이라던지 이런 것들을 좀 듣고 싶습니다.

김수정변호사 : 대단히 실무적인 것을 질문하시네요.(웃음) 공익, 특히 공익 소송에서 소송의 전략을 짤 때, 그 부분을 상당히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정보를 막 수집합니다. ‘어느 재판부가 진보적이야?’ 이렇게 정보를 수집해요. 정보가 부족하거나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때는 당사자가 많을 경우 여러 법원에 집어넣습니다. 변수를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죠. 당사자가 뭐 한 20명 있다고 하면 변호사는 20번 재판을 출석을 해야 되기는 하지만, 나눠서 가자 이러면서 다른 법원에 여러 군데 내서 그 중에서 한군데라고 걸리면, 정말 그거 가지고 끝까지 싸워나가는 전략을 씁니다. 소송이 겉으로 볼 때는 판결하나로 나오지만, 소 제기, 당사자 선정부터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거든요. 심지어 법원 선정까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변호사 당사자가 열심히 하면 이긴다는 생각을 가진 변호사라면, 이제 막 소송을 시작하고 계시나요?(웃음) 그런 경우는 많이 없는 것 같고요. 아니 뭐 있을 수도 있지요. 물론 일반 사건에서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익 사건이나 소위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건에서는 그것 갖고는 부족해요. 그 것은 기본이구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해요. 즉 법원이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저는 보는데요, 사실 저는 법원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법원이 사고에 있어서 편협하거나 협소한 사고를 한다는 아쉬움이 많아요. 상상력, 그게 소송을 하는데 있어서 되게 중요해요. 정말로 중요한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력, 그 다음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 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 상상력 풍부한 사건을 할 수가 없고, 판결을 할 수가 없어요. 근데 법원에 있는 분들은 계급적인 성향도 있지만,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요. 그 상상력을 만들어주는 것은 변호사와 당사자거든요. 변호사가 그 상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독서와 경험을 쌓아야 되고요. 학교에서 배우는 법서로는..법전으로써는 어림 없죠. 법원이 상상력이 너무나 부족한 집단이기 때문에 보수성 청렴성만 가지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길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때로 법정에서 변론을 마치고 올 때 마다 내가 변론을 계속 해야 하는 걸까?’ 할 정도의 충격을 받을 때가 있어요. 판결을 받고 의욕을 상실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기력을 차리고 열심히 해야지.” 어쨌든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소송을 하고 있고. 법원을 선택할 때 정말 많은 전략을 세워야 될 것 같아요. 많은 법원의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바로 공익 소송의 전략인 것이죠.

홍성수 교수 : 일반적인 수준에서 첨언을 하자면, 사회가 낙후될수록 법원이 역할이 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권에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니까, 법원에서 여러 차례 그 과오를 교정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잖아요. 사법부가 아무리 보수적이어도 사법부의 양심은 그런 수준의 후퇴까지 용납하지는 않는 겁니다. 그럼 거꾸로,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사법부의 역할이 없어질까요? 물론 예전에 비해서 역할이 줄거나 소극적인 역할에 한정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주의는 완벽할 수가 없고, 어떤 정권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틈새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 틈새를 메우는 역할은 사법부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 소송운동인 것이고요. 그런데 사법부에 대한 기대가 너무 과도하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사법개혁을 통해 사법부 구성이 좀 더 나아지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거든요. 사법부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법관 구성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효과는 여기 계신 분들이 은퇴할 때쯤이나 되어야 나타날 겁니다. (웃음) 그만큼 사법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틈새를 잘 파고들어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방법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 추가 질문 있으시면 손들어 주세요.

플로어 질문 : 질문은 아니고요.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법률가로서 사명감을 많이 가지고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 많이 방황을 해야 한다고 해야 되나? 당황해 하더라고요. 아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나왔던 법률가가 소송이 아니면 사회변화의 주체인가 보조자인가 이런 역할에 대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사실 변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법을 통해서 사회변화의 강력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을 선택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에서 생각을 해 보면 한편으로는 저는 작년에 인권법 캠프에서 공감에 계신 변호사님들한테 본인들은 우리 자신을 법률 활동가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던 들었었어요.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한편으론 또 그런 고민이 드는 거죠. 공익익권분야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싶지만 정체성이 그렇게 활동가에 가깝지는 않고사실 저는 여기에 계신 수강하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잘은 모르는데 활동에 온 인생을 헌신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단지 법률가로서의 어느 정도 만큼의 기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그 분들한테 힘이 되는 말이 되지 않을까 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지난주에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사법연수원인권법학회연합에서 캠프를 했는데요. 거기에서 2012 인권돋우미 선정사업을 했어요. 거기에서 최병승님이 선정되셨거든요. 말씀하셨던 현대차 철탑 농성하시는 최병승님이신데, 그 분과 선정된 후에 영상통화를 다같이 했어요. 되게 재미있었는데요. 그 분이 해주신 말씀이 정말 인상이 깊어서 그 말씀을 드리려고 마이크를 받았습니다. ‘전태일에게 한명의 변호사 친구가 있었다면, 필요했다면,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변호사 친구가 필요하다. 본인이 지금까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변호사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여러분이 더 많은 여러분이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약간 위안이 되었으면 하구요. 또 자료집 457페이지에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는데, 기존의 사법 시스템으로 해결될 수 없는 그런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의 그런 시스템을 억압적 모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반성적 모델로써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들을 들어주셨는데, 저는 이런 방향성이 굉장히 법률가로서 고민해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하나가 ADR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다음 주에 또 YMCA에서 ADR 캠프가 열리는데요. 저는 항상 가고 있는데, 정말 좋고 또 법률가로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깊이 있게 제시해줄 수 있는 좋은 행사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도 많이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 또 너무 암울한 얘기 하시는 것 아닌가 걱정하시니까 또 이렇게 파이팅하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요. 그러면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깐. 패널분들 1분 정도만 정리 발언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장여경 활동가 : 저는 이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이상하게 할 때는 다 이길 것 같거든요. 15년 동안 이긴 소송을 생각해보면 몇 개 없어요. 사실 대부분이 졌죠. 제가 변호사님들한테 전화를 많이 하는데, 변호사님들의 패소률이 높게끔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소송과 법의 힘이라는 것은 사회의 여러 가지 변동 요인 중에 작은 틈새를 여는 분명 그런 기능은 있는 것 같거든요. 특히 제가 답답할 때, 대중운동으로 풀 수 없는 영역이 있어요. 어떤 이슈는 심지어 대중으로부터 적대적인 이슈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요새 형사처벌주의 강화가 되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문제가 캠페인으로 풀기가 되게 어려워요. 예를 들면 사형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이게 한 축으로는 캠페인으로 가고 한 축으로 소송으로 같이 가면서 이렇게 절묘한 지점을 우리가 잘 찾을 수 있으면 좋겠고요. 지금은 지고 있어도 계속 도전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열릴 수도 있거든요. 작년 8월에 인터넷 본인확인제 위헌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면, 그 소송을 참여연대가 같이 해서 이겼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소송을 네 번째 한 것이었어요. 세 번을 졌어요. 2004년부터 계속 했는데 세 번 지다가 2012년에 한 번 이기게 됐는데, 그 이기게 된 배경에는 아마 제 혼자 생각입니다만 2011년에 대박으로 인터넷 개인정보가 유출이 되고, 3500만 전국민 주민번호가 인터넷 떠돈다. 이런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거든요.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법이 조그마한 틈새를 열어주고 그것이 우리가 희망을 놓지 못하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계속 건투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희 변호사 : 오늘 너무 좋았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상을 바꾼다고. 세상이 잘 안 바뀌고……. 어떻게 하면 세상이 바뀔 것인가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뭐 세상이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 그 한순간에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면은 너무 한계가 많이 부딪치고 또 힘이 빠지기도 하거든요. 근데 한걸음 한걸음 나간다고 생각하면 또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건 맞거든요. 그게 한순간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법조인의 역할이라는 것이 분쟁에서 이기는 것도 있지만 사실 분쟁이 안 생기게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실무에서 일을 해보면 사람들이 분쟁까지 가는, 그리고 뭔가 소송까지 가는 전단계에는 뭔가 상처가 있어요. 마음에 상처가 있고 힘든 것도 있는데, 그 법조인들이 정말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시작하면은 훨씬 더 좋은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꼭 소송으로 가지 않더라도 갈등을 없애고 또 더 나은 사회의 변화를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수정 변호사 : 누가 플로어에서 마지막에 읽어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오늘 이렇게까지 비관적인 얘기를 우리가 했나 반성이 들면서변호사란 매우 보람된 직업입니다.(웃음) 어느 직업이나 어느 일이나 좌절과 시련은 있는 것이고, 그 좌절과 시련 속에 얻는 보람이 저희를 움직이게 하고 열정을 식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만났던 피해자 분들 내지는 정말 그런 분들과 일하다가 고통이 내면화 되가지고 어느새 변호사로서의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실수도 범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그러다 나중에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면에선 고통에 대해서 둔감해지기도 하고.. 그런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제가 커가고 성숙해지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법조인이라는 직업은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직업인 것 같습니다. 그 상상력을 놓지 않기 위해서 독서도 많이 하시고, 경험도 많이 하세요. 나는 이미 상상력을 갖추었다 이런 생각은 오만이고 자만인 것 같아요. 타인에 대한 고통을 상상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 것 같거든요. 그거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법조인으로서 많은 성과를 이루실거라고 저는 믿어요. 그런 사람이 좀 더 높은 곳에 갔다면, 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은 사회가 그렇지 못한 것 같고요. 뭐 그런 사람이 됐을 때, 많이 즐겁게 일하실 수 있을 것이고. 저는 보람되게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홍성수 교수 : 제가 제일 비관적인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근데 비관적인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공익활동의 방향을 예리하게 잡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한계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였고요. 역사적 단계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법을 아는 변호사가 법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에는 그냥 법을 아는 변호사가 아니라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했습니다. 법정에 나가 보수적인 법관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여야 비로소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으로는 법적으로 유능할 뿐만 아니라, 법과 소송의 측면을 넘어 전체 사회의 맥락에서 변호사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변호사가 새로운 공익변호사의 상이 아닐까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회가 발전한 만큼 공익변호사들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진행자 : 오늘 패널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기획을 패널 토론으로 이렇게 정리를 했는데요. 희망법에서 이기는 것과 바꾸는 것을 기획을 했지만 정말 기획을 잘한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 고민하기 힘든 것, 여기서 아니면 이런 고민을 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이 고민을 사실은 정리 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계속 활동을 하시면서 계속 갖고 가셔야 될 고민인 것 같아요. 이틀 동안 강의 들으시면서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박수로 정리하겠습니다.


정리_김동현

정리에 도움을 주신 류수희, 조소영 자원활동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