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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재판 방청기








장애인차별금지법 재판 방청기






2013년 7월 4일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의 김재왕 변호사님을 따라 양재역의 행정법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번 재판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작해 TV에 방영된 선거 공익광고 영상물이 수화 화면 없이 자막 처리만을 해 청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소송이었다. 청각장애인은 마치 수화가 모어 같아서 자막을 읽는 것 역시 어려움이 있고 수화 화면을 삽입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한다.





이전에 대법원 견학을 가보기는 했으나 실제 재판 방청은 처음이어서 가슴이 뛰었다. 지하철을 통해 이동하는 동안 김재왕 변호사님을 에스코트(?)하게 되었는데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었기에 처음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난다. 불편함에 없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나 내가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상대에가 가장 편할까 내가 혹시 지금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예의 없는 행동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하며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행동/말은 장애인에게 실례입니다’ 하는 지침서 혹은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도착. 무덥고 습한 날씨였기에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도 등줄기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땀을 식혀 줄 시원한 건물을 기대했으나 공공기관 건물은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야 해서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마치 공항 세관 통과하듯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혹시라도 일어날 사고를 대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땀에 젖어 도착한 법정은 TV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매우 아담했다. 희망법 사무실보다 조금 더 크거나 비슷한 정도? 방청석도 매우 가까이에 있고 드라마에서 보던 법정에는 있던 방청석과 변호인/증인석 사이의 난간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방청석에서 손을 뻗으면 변호사님들 등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 판사님까지의 거리도 5m도 되지 않아보였다. 





영상이 잘 나오나 테스트 해 보기 위해 일찍 갔기에 앞의 다른 재판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떤 재판은 정말 빨리 끝났다. 변호사들이 앉아서 그냥 인사만 하더니 바로 다음 기일을 받고 나가버렸다. 또 다른 재판은 당사자로 추정되는 한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굉장히 말씀이 많으셨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가 대부분이었는데 굉장히 적극적인 분이셔서 뒤에서 방청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재판장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으셨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변호사님은 긴장한 얼굴로 앞으로 나가셨다. 이번 재판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작해 TV에 방영된 선거 부패 방지 캠페인 홍보 동영상에 수화 화면 없이 자막 처리만을 해 청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소송이었다. 따라서 이번 기일은 한 번 그 문제의 영상을 수정한 버전으로 시연하는 중요한 기일이었다. 수화를 모어로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이 받아들일 광고를 비장애인들이 체험해 보기 위해 광고영상에서 소리를 제거하고 자막도 제거한 영상이었다.





총 3편의 소리와 자막이 제거된 광고영상이 시연되었는데 정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하나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 중 한 편은 실제 작년 선거 당시 내가 직접 봤던 영상이었음에도 소리와 자막을 제거한다는 것만으로도 내용 전달의 큰 한계를 느꼈다. 수화를 모어로 사용하여 한글 자막 해독능력이 부족한 청각 장애인들이 보는 세상의 TV광고란 아마 그럴 것만 같았다. 새가 날아가고, 아이들이 웃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체 모르겠는 광고. 마지막에 나오는 ‘선거관리위원회’라는 글씨 없이 그것이 선거광고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재판장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느낌이었을까. 법정 안은 시연이 끝나자 잠시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다들 그 답답함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후의 재판의 진행이라는 것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다. 법정 드라마 못지않은 공방이 오갔다. 시연의 여파로 숙연해진 분위기를 타 몰아치기라도 하듯이 김동현 변호사님께서 외국의 ‘수화 화면이 바람직하게 삽입된’ 선거방송 동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보통 한국의 TV화면에 수화 화면이 삽입되었을 때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삽입되는 것과는 확연히 대조될 만큼 큰, 거의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화 화면이 있었다. 감탄하며 보고 있자 분위기는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온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영상이 보통 30초나 길어야 1분 이내인 TV광고라기엔 너무나도 길었다. 6분 혹은 10분가량 되는 영상이었기에 속으로 ‘저것이 공익광고란 말인가? 외국은 선거 공익광고를 엄청 길게 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피고(대한민국)측 소송 담당자는 이를 잘 캐치하여 그 영상은 사건의 영상과 같은 짧은 TV광고 영상이 아니라 각 국의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올라와있을 선거 진행 절차 설명 영상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홈페이지에는 그렇게 수화 화면을 동원한 충분한 설명 영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 순간에 분위기가 역전되었고 김재왕 변호사님과 김동현 변호사님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사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를 좀 더 보완해서 다음 기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재판 방청에는 나와 함께 실무수습 하는 정진아 수습생 이외에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님과 학생들이 함께 했다.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님들과 시립대 교수님 학생들 모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재판 얘기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저마다 다음 기일의 대책을 얘기하거나 재판에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했다.





일정이 모두 끝나서 다시 김재왕 변호사님을 모시고 희망법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변호사님으로부터 추가적인 재판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재판이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마 내 실무수습 기간이 끝난 뒤이겠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또 기획 소송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글_김예현(2013년 희망법 여름 실무수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