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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노동 착취를 방조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책임을 묻다

장애인에 대한 노동 착취를 방조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책임을 묻다

이른바 ‘염전노예’ 피해자의 국가배상소송 변론기

 

김재왕

 

 

대법원, 이른바 염전노예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인정

대법원은 2019년 4월 5일, 이른바 ‘염전노예’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심리불속행이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이 법 위반 등의 특정한 사유가 없다면 더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로, 국가와 완도군이 낸 상고를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로써 염전노예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은 3년 5개월 만에 마무리되었습니다. 피해자 4명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각 2,000만 원에서 3,000만원의 위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과정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른바 염전노예사건

2014년 이른바 ‘염전노예사건’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다수의 염전주들이 장기간 동안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서 임금을 주지 않고 착취한 사건이었습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장애인에 대한 노동 착취를 알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범죄행위를 예방해야 하는 경찰과 장애인에게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염전공대위와 법률대리인단 결성

장애계는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염전공대위)를 꾸리고 함께 대응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사실을 기록하고, 그들이 경찰에서 편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조력인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분리되어 머물 곳도 찾고, 장애인 등록 등 사회복지서비스 신청도 지원하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다양한 법률 조력이 필요하였습니다. 피해자 가운데 어떤 사람은 가해자와 합의할 때에 법률가의 조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후견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해자로부터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이에 염전공대위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대리인단을 꾸렸습니다. 희망법도 이에 참여하였습니다.

 

 

국가배상 소송 제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피해자를 착취한 염전주만 나쁜 사람들인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몰랐을까? 염전공대위는 이 사건이 범죄행위를 예방해야 하는 경찰과 장애인에게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로 국가배상 소송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법률대리인단은 처음에 국가배상 소송의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국가배상을 인정하기 위해서 분명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공무원의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법원의 태도에 따라, 국가배상을 인정받으려면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여야 하였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지적장애인이라 피해를 입증할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염전공대위는 소송에서 지더라도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강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법률대리인단은 피해자와 관련한 경찰 수사기록이나 상담일지 등에서 그나마 공무원의 주의의무 위반 사항이 드러나는 사람을 추려 8명의 원고를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3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무임금 노동, 상습폭행 등의 장애인 학대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점에 대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희망법도 참여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소송

예상대로 국가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지적장애인이어서 피해를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피해를 진술한 경우도 그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증거는 상대방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리인단은 피고 대한민국에게 경찰이 가지고 있는 염부(염전에서 일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 자료나 관련자 징계 자료, 염전노예 사건이 있었던 때에 해당 파출소에서 근무한 경찰 명단 등을 제출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피고 대한민국은 이미 폐기해서 자료가 없다거나, 사생활 보호를 핑계로 경찰 명단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염전주들의 진술은 놀라웠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2명의 염전주들은 하나 같이 경찰이 정기적으로 염부들의 임금체불이나 폭행 피해 여부를 조사하였고, 새로 섬에 들어온 사람에 대하여 기록한 장부가 있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염전주들의 진술에 따르면 경찰이 이미 노동 착취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원고 1명은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묵살한 과정을 힘겹게 진술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1명의 원고에 대하여 국가배상 인정

하지만 재판부는 2017년 9월 8일 법정에 출석하여 “도와 달라”며 수차례 파출소를 찾아갔으나 경찰이 번번이 염전주에게 돌려보냈다고 진술한 원고 1명에 대해서만 국가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외딴 섬에서 생활하던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대상인 경찰이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좌절감을 고려해 국가가 청구금액인 3,000만 원을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반면, 나머지 피해자 7명에 대해서는 국가가 원고 개개인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국가가 장애인을 상대로 한 불법 직업소개를 감독하지 못한 점이나,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에게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부분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의 기존 판결 경향을 그대로 따른 아쉬운 판결이었습니다.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 모습  ⓒ비마이너

힘겨웠던 2심 재판

법률대리인단은 1심에서 패소한 7명의 원고 가운데 그나마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원고 3명에 대해서만 항소하기로 하였습니다.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임금 체불을 의심하여 조사하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수차례 상담한 적이 있었던 사람, 경찰이 실종자로 발견하여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사람, 염전주에게 칼에 찔려 헬기로 이송되느라 경찰이 범죄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국가배상을 인정하려면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법률대리인단은 새로 증인 신청을 하고 상대방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변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관계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조사하면서 신뢰관계인을 동석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조사한 점,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 공무원이 임금체불을 알았던 점, 실제로 염부를 관리하는 장부가 있었던 점, 경찰이 칼에 찔린 원고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리게 된 과정을 전해 들었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항소심, 1심 뒤집고 3명의 원고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인정

항소심 재판부는 2018년 11월 23일, 1심 판결을 뒤집어 피고 대한민국은 2명의 원고에게는 3,000만 원, 나머지 1명의 원고에게는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실종자로 등록된 피해자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노동 착취를 방치한 경찰,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와 함께 조사하는 등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경찰과 근로감독관,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항소심 판결문 구석구석에는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의무가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공무원이 실종신고가 된 지적장애인을 염전주에게 맡겨 강제노동을 하도록 한 점은 “실종아동법에 따라 관할 행정기관 등에 필요한 협조를 구하거나 구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른 보호조치를 취하였어야 하였다.”고, 지적장애인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분리하지 않고, 신뢰관계인 동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해당 근로감독관은 장애인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춰 사건을 파악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사회복지공무원 또한 “면담을 통해 피해자가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이는 모두 헌법 제10조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국가배상 책임 인정

그러나 피고 대한민국과 지방자치단체는 2018126일과 10일 각각 상고장을 제출하였습니다. 마땅히 약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책임이 있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한 모습는 그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정말 실망스러운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45일 이들의 상고를 인정하지 않고 기각하였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장애인에 대한 착취와 학대 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염전노예 사건이 발생한 2014년에 비해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계속되고 있는 장애인 착취와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 있는 태도를 가지고 구체적 행동을 취하여야 합니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착취 사건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 행동 책임을 분명히 한 점에서 비슷한 사건을 근절하고 예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희망법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때까지 꾸준히 감시하고 비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