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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터괴롭힘 판례 연재] 8편, 병원에서의 일터괴롭힘

엄격한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일터괴롭힘

 

한 젊은 의사의 죽음

 

2007년 연말. 일본 효고현의 Y현립병원에서 30대 중반의 의사 T 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활했던 병원 관사의 쓰레기통에서 그가 찢어버린 일기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의사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부족한 것 같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고 있다. 사회생활을 접고 싶지만, 내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 둘 곳도 없는 나 스스로를 정리한다.’

찢어진 종이는 T 씨의 유서였습니다.

 

그는 모교 대학병원에서 수련의로 생활하다 2007년 10월 Y현립병원으로 파견을 나왔습니다. 그가 이 병원에서 생활한 것은 사망까지 약 2개월입니다. 그 2개월 사이에 우울증이 발병했고, 결국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0년 8월, T 씨의 죽음은 ‘지방공무원재해보상기금 효고지부’로부터 공무상재해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 병원에서 근무한 2개월 동안 월평균 40~50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해야 했고, 이런 여건이 그의 우울증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T 씨의 유가족들은 병원과 2명의 상사를 상대로, 장시간 노동과 일터괴롭힘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위자료지급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2014년 1심에서 일본법원(도치기지방법원)은 업무가 과중한 것에 더해 상사의 위압적인 언행을 계속해서 받았던 것이 원인이 되어 우울증이 발병한 것을 인정하고, 이 우울증으로 인해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T 씨의 상사들은 평소, ‘월급 받은 만큼 일을 안 하면 너희 부모에게 연락할거다.’, ‘시골 병원이라고 얕잡아보고 일을 대충 하는 거 아니냐!’ 등의 폭언을 일삼았고, 심지어 수술실에서도 폭언을 반복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회진중에는 환자와 간호사들이 있는 곳에서 폭언과 함께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T 씨가 부임하기 전에 일터괴롭힘을 이유로 3명의 의사가 이 병원을 그만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1심 법원은, 병원과 2명의 상사로 하여금 T 씨의 부모에게 총 8천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어진 2심(히로시마고등법원)에서도 우울증 발병 원인은 장시간 노동과 지나친 업무강도, 그리고 일터괴롭힘에 있다고 인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상사가 T 씨에게 한 행위는 주의나 지도를 하는 범위를 넘어서 위법행위에 해당할 만한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병원이 시간외 근무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일터괴롭힘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고 보고, 이는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2명의 상사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었던 1심과 달리, 공무원 개인의 배상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국가배상법의 적용을 주장한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총 1억엔의 위자료를 병원이 T 씨의 부모에게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원고와 피고 모두 2심의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의대 연구실의 일터괴롭힘

 

나라 현립 의료대학 공중위생학 연구실의 조교인 A 씨는 같은 연구실 K 교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국가공무원인 K교수의 행위에 대해 K교수와 지방정부인 나라현을 상대로 정신적인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A 씨는 나라현을 상대로 직원에게 일하기 좋은 직장환경을 제공해야 할 고용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 씨는 K 교수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부당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① 출장을 간 사이에 연구실에 있던 자신의 연구재료에 관리를 똑바로 하라는 내용의 쪽지를 붙여 옮겨놓은 것 ② 연구실의 개인용품들을 허락 없이 상자에 담아 이동시킨 것 ③ 연구비를 배분할 때 자신만 소외시키고 결정한 것 ④ 타 대학의 모집요강을 주며 응모해보라고 한 것 ⑤ 원고가 제출한 겸직허가원 서류에 사인해주지 않은 것 등입니다.

 

 

법원의 판단

 

이에 사건(이른바 나라의대 대학 내 괴롭힘 사건, 大阪地判平12․10․11)에 대해 1심(오사카 지방법원)은, 우선 공무원인 K 교수가 A 씨에게 한 행동들이 위법행위로 인정되며,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은 해당 위법행위를 한 공무원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배상법에 따라 나라현에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원고 A 씨와 피고 나라현의 관계는 지방공무원상의 임용관계이고 사법상 고용관계가 아니므로 고용계약상의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라현이 원고의 고용자로서 피고용자인 직원이 그 생명, 신체 등에 대한 위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할 신의칙상의 의무를 지기는 하지만, 의대의 각종 연구와 시설관리, 학생관리 등은 학교 측에 포괄적으로 위임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현이 구체적으로 이런 사정들을 모두 미리 알아내고 문제를 제거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①의 행위는 이미 3년의 시효가 지나갔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4가지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으로 50만엔이 상당하며, 5만엔의 소송비용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2심(오사카 고등법원)은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①과 ②의 경우 개인 물건으로 인해 다른 학생이 불편을 겪는다면 A 씨가 없을 때라도 이를 옮기는 결정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고, ③의 연구비 건은 비록 A 씨가 부재할 때 결정되었지만 연구실 전원의 합의를 통해 결정되었고 이후 A 씨에게 결과를 전달하고 이의를 제기하라고 했으나 응답이 없었기에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⑤의 경우는 K 교수가 평소 다른 대학의 공모사항을 취급하기 때문에 A 씨에게 응모하라며 서류를 놓고 간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①의 행위가 시효가 이미 지났음은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습니다.

단, ④의 경우는 K 교수가 연구실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트집을 잡아 날인을 거부했던 점이 명백해 괴롭힘의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나라현으로 하여금 A 씨에 대해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으로 10만엔이 상당하다고 인정하고, 소송비용 1만엔도 배상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글_김두나, 김광민

(이 글은 공익재단법인 21세기 직업재단,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일본 판례 모음』에 수록된 판례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