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터괴롭힘 판례 연재] 6편, 군대 내 괴롭힘

[일본 일터괴롭힘 판례 연재] 6편, 군대 내 괴롭힘

군대 상사의 집요한 괴롭힘

 

8개월 만에 시들어버린 꿈

 

1999년 11월.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사와기리호에서 3등해조(三等海曹, 하사관 후보생에 해당) 한 명이 스스로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활발한 성격에 장교가 되는 것이 꿈인 21살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부인과 아들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운 시험을 거쳐 하사관후보생이 되었던 것이 고작 8개월 전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K는 목숨을 끊기 전 수차례 주변 사람들에게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형에게 “상사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있다.”고 말했고, 동기생에게도 “부당하게 심한 지도를 받는 것 같다.”며 괴로움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버지에게도 자신을 비방하는 상사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누구도 K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상관의 집요한 괴롭힘

 

K의 직속상관 B는 훈련이나 업무 중에 폭언을 반복했습니다. “바보 같다”거나 “3등해조로서 실격이다”라는 말을 했고, “머리가 나쁘다”며 자주 모욕을 했습니다. K가 경비대원이 되고 싶어 하자 “일도 잘 못하면서 경비대원이 될 수 있을 것 같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간부들은 K가 매우 훌륭한 인재라고 평가를 했는데, B는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또 다른 상관 C는 미야기현 출신인 K에게 지역 특산품인 ‘백년의 고독’이라는 소주를 가져다 달라는 의미로 “백년의 고독 요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두 차례 이 소주를 K로부터 받았습니다. 또, C 역시 K에게 “싸구려”라거나 “멍청해서 일을 못 한다.”는 말을 했고, 다른 대원들도 괴롭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상사들의 괴롭힘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K는 결국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1심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국가의 책임

 

K가 사망하고, K의 부모는 사망원인이 상관들의 괴롭힘에 있고, 방지해야 했을 국가가 이를 소홀히 했으며, 국가가 K의 사망원인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외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1심 재판부(나가사키 지방재판소 사세보 지부 판결 2005. 6. 26.)는 K 부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결과는 일본에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K의 부모는 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일본 법원은 부분적으로나마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후쿠오카 고등재판소 2008. 8. 25.).

후쿠오카 고등재판소 앞에서 ‘승소’라는 글씨를 적은 종이를 들고 선 변호사와 판결을 환영하고 있는 시민들

 

 

다른 사람에게 피로나 심리적 부담을 과도하게 축적시키는 말들은 위법하다.

 

먼저 법원은 타인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말들(괴롭힘)이 어떠한 경우에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피로나 심리적 부담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경우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으므로 이러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부담을 과도하게 축적시키는 언동인지 아닌지는 원칙적으로 이를 받아들인 사람을 기준으로 평균적인 심리적 내성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설시하여 불법행위의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원칙적으로 피해자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국가는 상관의 행위로부터 피해 군인의 안전을 배려할 의무가 있다.

 

다음으로 법원은 사용자(이 사안에서 가해자는 군인이므로 국가가 사용자가 됩니다)가 어떠한 경우에 법적 책임을 지는지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법원은 “노동자가 근로를 할 때에 심리적 부담 등이 과도하게 축적되고 노동자의 심신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하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한다”라고 판시하고, “(위의 사용자의 책임)은 국가 공무원에게도 타당한 것으로서, 피고(국가)는 공무원의 공무 수행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장소, 시설 및 기구 등의 설치 관리와 공무원이 피고 또는 상사의 지시 아래 수행할 공무를 관리하면서 공무원의 생명 및 건강 등을 위험으로 보호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부담한다.”라고 설시하면서, 군대에서의 상관의 행위에 대하여 국가는 피해군인들의 안전을 배려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럼 이 사건에서 법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하였을까요?

 

먼저, 법원은 가해자들의 개별행위가 위법한지를 판단하였습니다. 먼저 B가 K에게 지속적으로 한 폭언에는 고의성이 인정되고, 그 내용도 과도한 것이 많아 심신에 큰 부담감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B의 행동은 K의 기능 업무 숙련도를 높여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고, 일관되게 인격을 무시하거나 부정했으며,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등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사로서 K에게 피로와 부담이 쌓이지 않도록 배려야해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사 C의 경우에는 술을 받아서 마시고 일부 폭언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쌓이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는 C의 행위도 불법행위라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C 반장의 언동 중 일부는 어느 정도 K에 대한 모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친한 상사와 부하 간의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았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발언이 반복되었거나 이 발언과 우울증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할만한 증거도 없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배상책임과 관련하여, 법원은 “B는 국가의 이행보조자로서 A가 겪은 심리적 부담 내지 정신적 피로가 축적되지 않도록 배려할 의무를 부담함과 동시에 A의 심신에 변화 조짐이 없는 지에 대하여 유의하면서 대처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전제한 후, B가 한 행위들은 바로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이행보조자 B를 사용한) 국가는 국가배상책임을 진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자위대원의 자살에 대한 일본 최초의 국가책임 인정

 

일본 법원은 K의 친모에게 200만 엔의 위자료를, 양부에게는 150만 엔의 위자료를 지급함이 상당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일본에서 최초로 자위대원의 자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판결이 내려지자 K의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한참 흘렸다고 합니다. 원래 요구했던 위자료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고, 함께 요구했던 ‘재발방지를 위한 군사 옴부즈맨 제도 도입 청구’도 기각되었음에도, 최초로 자살의 원인이 국가에도 있음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해상자위대에서만 매년 100명 가까이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었기에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_김동현, 김광민

(이 글은 공익재단법인 21세기 직업재단,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일본 판례 모음』에 수록된 판례를 정리한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사와기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