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후원금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수입·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인권, 중요하잖아요 – 최준석 회원님

인권, 중요하잖아요 최준석 회원님

이번 만남 도란도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설립될 때부터 지금까지 12년 넘게 인권위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준석 회원을 찾았습니다. 희망법 누군가가 보기에 귀염성이 있다는 그. 그는 인권위 차별조사과에서 성희롱, 나이차별 사건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인권위에서 그와 4년을 같이 했던 김재왕 변호사가 진행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김재왕 변호사의 말로 편하게 쓰겠습니다. 

자유로운 영혼 

나이차를 넘어 야자하는 사이인데 인터뷰가 어색하지 않을까. 어떤 질문을 먼저 할지 고민하는데 질문지를 본 그는 대뜸 질문이 식상하다고 투덜댔다. 엉겁결에 어떤 질문을 받고 싶으냐로 질문을 시작했다. 

“일 그만 두고 뭐 하고 싶어요?” 

아니. 인권위에서 어떤 일하는지를 소개하고 싶어서 잡은 인터뷰인데 처음부터 일 그만 두는 이야기라니. 찜찜한 마음을 감추며 일 그만 두면 뭐하고 싶은지를 물어 보았다. 

“예전 꿈은 있는 돈을 모아서 동남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거였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도 그런 곳에서 2~3년 정도 살고 싶어요. 전혀 다른 삶을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어요. 남에 의해 사는 것 말고 최준석으로 살고 싶어요. 다시 와서 체력이 된다면 택시 운전하고 싶어요. 저 운전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사실 그는 내가 인권위 있을 때에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요즘 일이 재미 없어서 그런가 의심이 들었다. 

“재미는 있어요. 재미는 상대적인 거니까요. 사건을 조사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 억울함을 풀어 주는 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성희롱 사건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나쁜 사람을 접하고 조사하다 보니까 별로 안 좋은 인간군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사람들하고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고 조사하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일에서의 재미는 양가적인 느낌이예요.” 

대답이 철학적이다. 철학과를 나왔냐고 물으니 불문과를 나왔단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살아 보고 싶단 꿈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너는 불어 잘 하니 불문과 가라고 해서 얇은 귀를 팔랑거렸다고 한다. 그런데 불어공부는 한 학기만에 접었다고 한다. 88년에 한창이던 학생운동에 빠지면서 사회과학 서적과 문학책을 뒤졌다. 그땐 그랬단다. 

인권위 조사 과정이란? 

그를 만남 도란도란 인터뷰에 섭외한 이유는 인권위 조사관의 입에서 조사의 실제를 듣고 싶어서였다. 본론으로 돌아가 조사 과정은 어떤지 물어 보았다. 

“진정이 들어오면 진정인 이야기를 듣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파악해요. 쟁점이 파악되면 피진정인, 주변 사람들을 조사해요.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을 밝힐만한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하죠. 그 뒤 밝혀진 사실에 대해서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 판단해서 보고서를 써요. 누구를 만났더니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자료가 있고, 보고서를 쓰고 조사관 의견을 첨부해 위원회에 보고서를 올려요.” 

사실관계가 명확하면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서면조사만 한단다. 회사가 직원을 뽑는데 나이를 제한했다는 것과 같은 경우에 그렇단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다투어지는 경우는 직접 만나서 조사한다고 한다. 

공감하는 게 어려워요. 

폭주하는 진정 사건 수에 비해 인권위 조사관은 턱 없이 부족하다. 일하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히 있죠.”라고 빠른 답변이 나온다.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는데 남자다 보니까 성희롱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이 안되는게 어려워요. 진정인을 만나다 보면 오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직장내 성희롱이니까 더 그래요. 인권위까지 오기까지 입은 마음의 상처들이 많아요. 직장 내에서 함부로 이야기도 못하고, 상사에게 이야기했는데 상사가 오히려 피해자를 타박한다든가, ‘참아라’,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다’, 또는 직장내에서 꽃뱀 취급을 당한다던가, 대개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죠.

이런 게 많았기 때문에 인권위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조사자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내가 남자다 보니 나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못하거나, 혹은 그 상처에 대한 공감이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진정인에게 티를 내면 안 되니 가장을 해요. 사건으로 진정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인에게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예요. 

조사라는 게 딱딱한 과정이지만 그러면서 일정 정도 풀리는 것이 있어요. 조사의 과정이 단순히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 만이 아니라 진정인이 성희롱으로 인해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사건을 하다 보면 사건 자체가 해결되는 것보다 당사자가 상처를 치유받는 게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의 말에 더욱 공감이 갔다.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인권위 조사과정은 인권친화적이어야 하죠. 조사과정에서의 나만의 노하우라고 하면 피진정인에게 단호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억울하게 피해받는 피진정인이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피진정인을 조사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일종의 교육 시간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해요. 그래서 조사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로 피진정인에게 쉬이 보이면 안 돼요. 저는 오랜 경험이 있어서 기존 결정례를 알고 있는데 처음 조사하는 사람은 그걸 모를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피진정인들에게 쉽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되죠.” 

가끔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진정 사건에 매이지 않고 문제제기했으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 사람 진짜 조사관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12년이 넘도록 인권위에서 계속 일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월급은 빼고 말이다. 

“많지는 않지만 고맙다고 하는 진정인들이 있어요.” 

사실 고맙다는 말만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면 12년 넘게 일한 조사관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고민은 없을까? 

“조사가 제대로 된건가 하는 고민이 좀 있어요. 섣부른 조사로 애먼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가, 진정인이 원하는 만큼 결과가 간 건가… 하는 고민이 좀 있어요. 뭐가 다르겠어요. 변호사랑 비슷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변호사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입에서도 그 말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인권위에 바라는 게 있듯이 인권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인권위를 활용하는 인권단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았다. 

“인권위법의 진정 사건의 요건은 협소해요. 까다로운 조사대상 요건이 되어야 하고, 각하사유에 해당해서도 안 돼요. 피해자를 특정할 필요도 있어요. 하지만 인권위가 하는 정책업무, 실태조사, 직권조사는 범위가 넓어요. 그래서 진정에 매이지 말고 현안에 대해서 계속 문제제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좀 들어요. 직원이 안테나를 세우고 인권현안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권 현장을 가장 많이 아는 게 단체 활동가들이니까요. 인권위 특히 조사관들 중에는 촉을 세우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까 공식적, 비공식적 채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한두번 제기해서 안될 때도 많지만, 결국 질긴 놈이 이기는 거예요.”

요즘 인권위를 둘러 싸고 논란이 많다.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의 자질이 형편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로 인한 답답함은 없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인권위에 책임감과 애정이 있어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인권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인권위에 애정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 갔다. 

“국가인권기구 공대위 시절부터, 민변에서 일을 했으니까, 깊이는 아니지만 공대위 상황에 관여하고 공부하기도 했어요. 인권위가 어떻게 설립되어야 하고, 어떤 인권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를 해 왔어요. 그러니 인권위에서 내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인권위를 만들기 이전부터 관여했으니까 그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있어요.” 

나는 인권위에서 일할 때에도 인권위가 어떤 곳이란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참 소중한 곳에서 일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희망법에 이런 애정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기가 일하는 곳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인권, 중요하잖아요. 

그는 인권위에 오기 전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5년간 상근자로 있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뒤 뭐할까 고민하다가 신문 광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붙었다고 한다. 그의 삶에서 ‘인권’은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았다. 그래서 왜 인권이냐고 물었다. 

“인권, 중요하잖아요. 인권만큼 중요한 가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답이었다. 내가 참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크게 웃었다. 그도 웃더니 말을 계속했다. 

“91년도에 과 친구 귀정이가 시위하다가 죽었어요. 그때 삶의 관점이 약간 바뀌었어요. 혁명같이 단번에 뭘 바꿔내는건 힘들겠구나, 그러니 내가 평생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고민했어요. 책도 좀 보고 이것저것 찾다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민변에도 가게 되고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에서 공부도 했어요.” 

그는 인권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은 그 일을 충실히 하는 게 계획이라고 했다. 공무원으로서 공공의 가치, 인권의 가치를 위해서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고 싶단다. 그러다가 그만두었을 때는 외국에서 살면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투자하라는 권유도 빼놓지 않았다. 

희망법이 잘 되었으면 

그는 1시간 외출을 달고 희망법을 찾았다. 빠듯한 시간에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마무리를 해야 했다. 희망법을 후원하는 이유를 물었다. 내심 나 때문이라는 답변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시작하는 단체다 보니까 자리를 잘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후원했어요. 15년 전부터 관여하면서 시작하는 단체에 후원을 많이 했어요. 중간에 끊은 단체도 있긴 하지만 계속하는 단체도 있어요.” 

참 고마우면서도 무서운 말이었다. 지속적인 후원을 당부하면서 마지막으로 희망법에 바라는 점은 없는지 물어 보았다. 

“희망법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법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에요. 궁극적으로 목표하고자 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단일 뿐이죠. 그러나 지금은 법제도가 제대로 안 돼 있으니까, 그리고 그 제대로 안된 법을 통해서 실제로 구제해줄 사람이나 단체도 별로 없으니까, 그나마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게 희망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으니까, 구성원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외출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짐을 챙겼다. 이런 사람과 친구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도 그가 지향하는 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행 및 정리_김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