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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의 삶이 1991년의 테두리 밖에 놓여질 수 있을까

 


이제는 그의 삶이 1991년의 테두리 밖에 놓여질 수 있을까

– 강기훈 유서대필 재심사건 방청기

 

2014116, 서울고법 형사10부의 심리로 열린 강기훈씨의 유서대필 의혹 사건의 재심 결심공판을 방청하였습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중요한 사건을 방청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강기훈씨는 199158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여 자살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1992724일 징역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711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조사위원회는 김기설씨의 유서 필체와 강기훈씨의 필체가 다르다는 국과수 및 7개 감정기관의 필적 재감정 결과를 토대로 재심 권고를 하였고, 당시 필적감정인 김형영 등의 허위증언이 있었음이 인정되어 재심 결정을 받고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결심공판에서는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최종변론 및 강기훈시의 최후진술이 2시간 반 가량 동안 이어졌습니다. 필체의 동일성 여부가 공판의 쟁점이었던 만큼 일부는 김기설씨의, 일부는 강기훈씨의 것일 수많은 자음과 모음의 파편들이 정리되어 감정결과로 제시되었고, 모두들 저마다의 의문 또는 확신을 가지며 재판에 집중하였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며,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측은 20여 년 전과 다름없이 강기훈씨의 유죄를 주장하면서 그 혐의에 대한 입증이 아닌 의심만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반면 변호인측은 1991년도 김형영의 감정결과 이외에는 2007년부터 이루어진 모든 감정결과가 유서의 필체가 김기설씨의 것이며 강기훈씨의 필체와 다름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강기훈씨는 소위 유서대필 사건 이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들에 대한 묘사로 최후진술을 시작했습니다. 순간 이 재판을 방청하기 전에 찾아보았던 1991년의 기사에서 본 청년 강기훈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차분하고 절제된, 때로는 분노에 찬 진술에서 20여 년 동안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자로, 전과자로 여겨지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한이 전해졌습니다. 그의 말은 마지막까지 떠있던 피고인은 무죄라는 PPT 화면과 함께, 어떠한 논리 정연한 변론보다도 호소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강기훈씨는 이번 결심에 이은 선고 이후에도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이어질 지난한 싸움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강기훈씨 사건을 비롯, 아직까지 우리 사회 많은 부분 진실·화해와 과거사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언젠가는 끝나기를, 그의 바람대로 1991년의 테두리에서 놓여나기를, 이 재심의 확정판결로 강기훈씨는 물론 몸바쳐 정권의 퇴진을 외쳤던 김기설씨를 비롯한 열사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명예의 회복 및 치유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글_강미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