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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관심과 현실의 접점 – 이준일 회원님




이번 달 ‘만남 도란도란’에서는 고려대학교에서 헌법과 인권법을 강의하시는 이준일 회원님을 모셨습니다. 김동현변호사가 정성껏(?) 준비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답니다. 물기가 다 빠지지 않은 두부전은 타버렸고. 카레는 너무 오래 끓여서 식감이 없어졌지만,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법 : 안녕하세요. 이준일 회원님. 저희 희망법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지요.

이준일 : 대학원에서 지도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김동현 변호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곳이라서 후원하게 되었어요.

 

희망법 : 희망법 사무실에 오신 것은 처음이시죠. 희망법 사무실 와보니까 어떠세요.

이준일 : 사무실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이사한지 얼마 안되었죠? 그래도 여전히 비좁다는 느낌이 드네요. 각자 일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할텐데.

 

희망법 : 오늘 하는 인터뷰는 만남 도란도란’ 코너로서 희망법 소식지에 실릴 예정인데요. 희망법 소식지 잘 보고 계시나요? 소식지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준일 : 메일로 잘 받고 있고, 솔직히 말하면 기사 모두를 다 보지는 못해요. 재미있고 관심있는 기사로 보이면 클릭해서 들어가서 보고 있어요.

 

[법철학에 기반을 둔 헌법학자의 길로]

 

희망법 : 교수님은 어떻게 학자의 길을 결심하고 들어가게 되셨어요?  보통 학부 때에는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준일 : 많은 법대생들이 점수 맞추어서 들어오는데 저도 그 중에 하나였어요. 구체적으로 뭘 공부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법대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법대 수업이 재미가 없고, 특히 사법시험은 개인적으로 잘 안 맞았어요(웃음).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 사법시험은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었죠. 그 후에 주변 서적들을 읽으면서 공부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이게 나한테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독일 유학을 가면서 확고하게 결심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법대 공부나 사법시험이 잘 안 맞아서 다른 길을 찾다가 그랬으면 원래 완전히 다른 길을 찾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법학 안에서 길을 찾은 것 같아요.

 

희망법 : 다른 법 중에서 헌법을 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이준일 : 원래는 법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법학과 주변 학문을 연결시킬 수 있는 영역은 법철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을 가려고 하니까 주변의 선배들이 실정법을 함께 해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구요. 그래서 법학의 냄새가 가장 덜 나는 헌법을 하게 되었죠.

 

또 독일 유학을 갔을 때 지도교수인 알렉시 교수가 기본적으로 법철학을 하는 헌법학자여서 자연스럽게 헌법을 하게 된 점도 있었죠. 그분이 만약 민법이나 형법을 했다면 제가 민법이나 형법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Robert Alexy

 

Robert Alexy(로베르트 알렉시)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법철학자. 한국에는 그의 저서 중 법의 개념과 효력(Begriff und Geltung des Rechts)법적 논증이론(Theorie der juristischen Argumentation)기본권이론(Theorie der Grundrechte) 등이 번역되어 있다

(사진출처 : http://www.alexy.jura.uni-kiel.de/).


 

희망법 : 딱 어느 시점에서 너무 공부가 재미있다라는 유레카스러운 순간이 있으셨나요?

이준일 : 저에게는 알렉시 교수라는 학자를 만났을 때였던 것 같아요. 절차이론이나 의사소통이론이라는 그 분의 법철학적인 기반이나 지향점이 저와 잘 맞았어요. 그 분의 글을 읽으면서 법학이 재미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죠. 알렉시 교수는 주변 학문들을 법학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를 잘 이끌어준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희망법 : 독일 유학 생활하시면서 독일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그리고 혹시 한국에 대한 비교도 해보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이준일 : 독일에 대한 평가는 좀 나뉘는 것 같아요. 학문적으로 보면 엄밀하고 심도가 깊은 학문적 배경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국가주의적이거나 인종주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죠. 관점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많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상 깊었던 것은 독일은 자기가 인생에서 다시 도전해서 그동안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국가, 소위 말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국가라는 점이었어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예를 들면, 20대 대학입시에서 모든 인생이 결정되는 나라죠. 패자부활이 없는.

 

독일에서 한국사회를 바라 보면 한국이 합리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주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합리적 결정을 도출하기보다는 아무래도 힘이 지배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뭔가를 결정하는 유학 간 첫해인 1994년이 격동기였죠. 김일성이 사망하고,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도 무너졌죠. 독일애들이 저한테 그랬어요. “ 김일성이 죽었는데 왜 한국으로 안돌아가냐. 전쟁나는 것 아니냐.”

외국에 나가서 보니,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한국은 뭔가 불안하다는 인식이 있었죠. 그리고 뭔지 모르게 불합리하고 치밀하지 못한 나라.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희망법 : 한국에서 법학을 배우면 독일법학의 절대적 위치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유럽에서 독일법학은 어떠한 지위인가요. 인권법만 보더라도 유럽인권재판소, 영국이나 프랑스 쪽의 법리도 꽤 발전해 있는 것 같은데요.

이준일 : 전후 독일과 그 전 독일은 다른 것 같아요. 독일법학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깊이가 있어서 잘못 생각하면 관념적인 법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전후 독일법학은 실용적인 법학을 한다는 느낌도 있어요. 과거의 철학적 깊이와 현재의 경제적 힘이 결합되면서 지금도 유럽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유럽 자체가 특정 국가에 쏠리는 것은 아니고 각 국가 나름대로 전통이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 쪽으로 쏠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법학의 영향을 많았지만 요즘은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독일법학의 영향력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네요. 예전 같지 않죠.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의 구체화]

 

희망법 : 지금까지 출판하셨던 책들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준일 : 저는 대작을 쓰지는 않고 다작을 쓰는 편이죠(웃음). 법철학을 다룬 법학입문과 헌법교과서인 헌법학강의, 기본권 영역을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자유권에 대한 인권법, 평등 관련해서는 차별금지법, 사회권 관련해서는 헌법과 사회복지법제라는 책이 나와 있죠. 그리고 조금 더 구체화해서 들어간 영역이 섹슈얼리티와 법이랑 미혼모와 입양인의 권리를 다루고 있는 가족의 탄생등이 있어요.


이준일교수님이 따끈따끈한 올해 판 인권법을 사무실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희망법 : 이번 학기 중에는 어떤 책을 쓰실 예정이세요.

이준일 : 저는 구상이 떠오르는 대로 컴퓨터에 앞에 앉아서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학기중이나 방학을 구분하지 않고 어떤 구상이 떠오르면 계속 써 놓죠. 그래서 어떤 책은 1년안에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저는 컴퓨터와 인터넷만 연결해주면 잘 놀아요(웃음).

 

희망법 : 꾸준히 틈틈히 글을 쓴다는 것이 대단하시네요. 보통 어떤 사람들은 발동이 걸려야만 글을 쓸 수 있잖아요. 방학 때 어디 내려가서 암자를 잡아야만 글이 써지는 사람들도 있구요.

이준일 : 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수시로 글을 쓰고 글을 모아서 책을 완성시키는 편이죠. 어디서 보니까 조정래 선생이 하루에 원고를 200매 원고지 30장을 쓰는 것이 자기 인생의 철학이라고 하더라구요. 뭘 쓰더라도 자기 목표를 정해놓고 쉬지 않고 쓰는거죠. 저는 30장은 못 쓰겠고 하루에 10장이라도 쓰려고 해요. 써 놓으면 나중에 뭐든지 작품이 되더라구요.

 

희망법 : 자료 정리는 어떻게 하세요? 제가 섹슈얼리티와 법을 봐도 자료 정리가 정말 꼼꼼히 되어 있더라구요. 사실 국가별로 입법례 정리하는 것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닌데요. 그런 자료 정리를 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이준일 : 그건 뭐인터넷이죠(웃음). 국제비교는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제도에 대한 영문화 작업이 잘 되어 있는 나라는 스웨덴이더라구요. 스웨덴어가 있는데도 거의 스웨덴어와 거의 동일한 정도였어요. 우리 나라도 정보를 영어로 정리해 놓으면 우리 제도 소개도 되고 외국에서도 우리 제도를 많이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랑스가 제일 영문화작업이 안 되어 있어서 애를 먹습니다.


[섹슈얼리티와 법차별금지법이론적 관심과 현실의 접점]

 

희망법: 섹슈얼리티와 법은 어떻게 기획을 하게 되셨어요여성NGO나 성소수자NGO에서 학계에서 이런 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는데요. 그런데 이 책을 입문서 혹은 기본서처럼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이준일 : 아 그래요?(웃음)

희망법 : NGO들은 이론적인 기반이 필요한데요, 대중서는 많은데 법학 이론서는 거의 없어서요.

이준일 : 처음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헌법 제36조의 혼인, 가족의 개념과 관련해서 시작을 했었어요. 헌법학자들이 정치구조나 기본권 같은 것은 굉장히 많은 연구를 많이 하는데, 혼인, 가족 같은 기본 개념에 대해서 천착한 작업이 없어서 시작을 하게 되었었고, 그래서 성소수자를 먼저 만났기보다는 헌법상 사용되는 개념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게 된 거죠.

혼인 하면 우리가 아무래도 이성 간의 혼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동성간의 혼인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혼인 개념이 새로 구성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성혼에 대한 글을 썼었고, 그 전제가 되는 것이 성별의 문제인데, 성별이라는 것이 신체적 성별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다보니 트렌스젠더에 대한 논문도 쓰게 되었고. 그래서 그게 확대되다 보니까 책으로 내게 되었죠. 그리고 그 책에 에이즈 문제까지 포함시키게 된 것이죠. 원래 논문 2개로 시작했던 것이 책 한권이 된 거죠. 그런데 저 책도 아직 많이 부족해요

최근에는 미혼모 관련한 글도 많이 쓰는데 그러다 보니까 미혼모단체들과도 만나요. 그러다 보니까 혼혈인 문제도 관심이 가고.

2013년도 하반기 고려대학교 강좌 「사회적 이슈와 인권」중 ‘섹슈얼리티와 성적 소수자의 인권’ 강의사진. 이 강의는 공개강좌로Open KU와 itunes에서 볼 수 있습니다(Open KU 해당 강좌 바로 가기).

희망법 : 현실에서 이슈를 목도하고 글을 쓰기 보다는, 먼저 이론으로 썼는데 운동단체에서 교수님을 찾아온 것이네요.

이준일 : 그러네요(웃음). 사실은 학자는 이론적 관심으로 출발하는데 현실의 어떤 문제와 만나게 되면 그 이론적 연구가 현실에 접목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발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실을 모르면 이론이 너무 관념적이 되고, 이론을 모르면 그야말로 큰 목소리 밖에 안되니까요.



2013. 2. 한국 미혼모 지원 네트워크 특강 장면(출처: 페이스북)

 

희망법 차별금지법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이준일 : 아까 말했던 것처럼 헌법학강의 쓴 다음에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의 순서대로 책을 쓰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차별금지법 책을 쓰려고 보니 연구가 너무 안되어 있더라구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주제인데, 평등을 추상적으로 연구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차별을 받았을 때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그런 논의가 의외로 한국에 많이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희망법 : 차별금지법을 오래 연구하신 입장에서 차별금지법의 입법이 지난하게 시간을 끄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준일 : 최근에도 국회에서 발행하는 의정연구라는 잡지에도 논문을 썼어요. 그러면서 보니까 차별금지법이 꾸준하게 발의가 되었었더라구요. 분위기는 성숙해 있는 것 같은데 왜 제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의원들이 정말 의지를 가지고 차별금지법을 발의를 했던 것인지도 의심이 들고. 이미 정부는 TF를 만들어서 연구를 많이 한 상태에요. 법안도 다 되어 있고. 결단만 남은 상태인데 정부에서 무엇을 눈치 보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기독교쪽의 성적 지향이랑, 보수쪽의 친북, 종북의 사상, 재계에서는 차별적 고용으로 인한 부담 같은데 너무 과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인권이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다 있는데 저도 사실 의문스러워요. 왜 안 될까요(웃음)? 그리고 이미 우리 법이 5개나 있는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제가 왜 안 만들어질까 사실 의아합니다. 뭘 걱정하는 걸까요? 제가 물어볼께요. 이미 법이 다 있는데.


 

희망법 : 마지막으로 희망법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준일 : 이제 3주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걸음마단계잖아요?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규모가 일단 한정적이기 때문에 많은 영역을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영역을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회원님이 사무실에 방문하신 날 거짓말 같이 회의실의 탁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것은 어떤
운명일까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달라는
말씀에 저희는 조심스럽게 회의실 탁자를 말씀드렸고, 흔쾌히 수락해주셨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사무실에 방문해주시고, 또 희망법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토론 마당이 되는 회의실 탁자도 후원해주신 이준일 회원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진행_류민희, 김동현

정리_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