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울란바토르 다이어리


울란바토르 다이어리

류민희 변호사는 지난 11월 8일, 9일 양일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렸던 HRBA2J-ASIA의 동북아시아 회의 및 훈련에 참가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컨소시엄의 의장이기도 하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 민변의 김기남 변호사님도 함께 하였습니다. 그 3박 4일 간의 여정을 전합니다. 다시 한 번 이 해외연수를 가능하게 해주신 후원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11월 7일 출발과 도착

해외 출장을 떠나기 직전에는 언제나 무거운 마음만 가득하다. 밀린 일들, 부재 시 왠지 무슨 일이 더 생길 것 같은 사건들. 한국을 대표해서 참석하는 것인데 어떤 활동들 위주로 정리해서 아시아 지역 변호사들과 공유하면 좋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탑승 대기를 하다가 황필규 변호사님을 뵈어 비행기 안에서도 동석을 하게 되었다. 급하게 출장 나오시는 길이라 밤까지 업무 처리하느라 지친 모습이셨는데도, 나와 흔쾌히 즐겁게 대화를 나눠주셨다. 대화 속에서 어느덧 현재 하는 일이 자연스레 머리 속에 정리가 되었다.

어느 덧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구, 수화물 찾는 곳이 하나뿐인 아담한 공항.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처음으로 본 울란바토르는 내 상상 속의 초원과는 달랐다. 급격한 산업화를 겪는 몽골에서도 특히 울란바토르는 난개발을 앓고 있는 도시였다.

11월 8일 회의 1일차

HRBA2J-ASIA는 사법접근권에 있어서 인권에 기반한 정의로의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Justice)을 증진하기 위하여 세워진 아시아 지역 단위의 컨소시엄으로, 주로 아시아 각국의 법률, 인권단체, 시민사회단체, 학술단체들이 회원들이다. UN Democracy Fund, UNDP-Asia Pacific Regional Centre, UNDP-Philippines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주기적인 회의 및 훈련은 무엇보다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모범사례를 발굴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번 동북아 회의는 한중일 3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몽골의 국내적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고 주요 참가자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공익인권법단체의 변호사, 활동가, 코디네이터들 그리고 몽골의 변호사들이었다.

1일차의 프로그램은 ①각자 어떠한 정의를 어떻게 추구하고 있으며, 그 목적을 이루는 데에 장애물들은 무엇이 있는지 브레인스토밍, ②몇 가지 나눠진 카테고리를 가지고 그 안에 어떠한 인권 이슈가 있는지 그룹토의와 발표 황필규 의장님의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 대한 발제를 듣고, 우리의 작업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그룹토의와 발표를 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브레인스토밍과 발표는 각자 내용을 적은 종이를 벽에 붙이는 방식으로 했는데, 격식없이 실용적이기도 했지만 시각적으로도 참 많은 아이디어들이 공유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이번 회의 코디네이팅을 맡은 단체는 몽골의 Center for Human Rights and Development(CHRD)와 20여명의 몽골 변호사들을 지속적으로 피력한 몽골의 인권 이슈는 광산업과 관련된 인권침해와 환경파괴, 유목민 공동체의 붕괴였다. 한 활동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구가 2백만이고 그 중 백만이 울란바토르에 산다. 몽골은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그렇게 큰 산업구조가 필요없다. 예전에 너른 초원이 있었을때 고부가가치의 관광산업으로 우리는 문제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정부가 서구 몇몇 기업에 무분별하게 채굴면허를 준 이후, 수백년간 초원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은 갈 곳을 잃고 채굴현장에서 아동노동, 저임금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광산 투성이인 몽골을 외국인들이 예전처럼 좋아할까? 나는 의문이다.”

한편, 황필규 변호사님은 인권에 기반한 접근에 대한 발제를 통해, 인권 우선 원칙이 목적일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추구하는 모든 과정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점에 대해 강조하셨다. 특히 낙태권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 410 U.S. 113)을 그 예로 드셨다. 이 사건을 통해 변호사와 활동가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던 텍사스 주 법을 바꾸려고 하였고 그 기획에서 배제와 소외를 당하고 결국 원하는 낙태를 하지 못했던 원고는 몇십년 후 이 판결의 취지와 반대편에 서 있는 소위 ‘Pro-Life’ 진영의 운동가가 되었다. 목적에만 몰입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 원칙을 놓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변호사 아니겠는가.

11월 9일 회의 2일차


이른 첫 눈을 울란바토르에서 맞게 되었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2일차의 한중일의 공익소송 중 한국 부분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룸메이트인 리케펑 변호사는 베이징에서 오신 분인데, 노트북 조명과 키보드 소음에도 개의치 않은 그녀의 무던함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었다.

공익인권법 운동. Public Interest Lawyer, Social Lawyer, Cause Lawyer, Impact Litigation 등 여러 가지 단어로 표상되고, 또 각 나라마다 국내적 역사성과 맥락을 가지고 있는 운동. 

나는 한국의 공익인권법 전통은 70, 80년대 시국사건에서의 형사변론, 1988년 민변 창립 등의 조직화를 통해 이제 법정도 하나의 투쟁 현장이 될 수 있고 인권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도를 가진 일련의 변호사 세대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 개별 NGO에 상근 형태로 근무하는 것,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들 중심의 단체를 조직하는 것(공감, 어필, 그리고 희망법)의 모델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몇 건의 공익인권소송(망원동수재사건, 김포공항소음소송, 희망법이 준비 중인 소송)에 대해 발제하였다.

몽골 변호사들은 몇몇 소송들이 원고가 많은 점에 대해서 집단소송법이 존재하는지 흥미를 가졌으나, 우리는 이 소송은 집단소송(Class Action)은 아니고, 사회적 파급력과 영향력을 위해 많은 원고 개인들을 모집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이어서 자연스레 대화는 몽골의 국내 이슈로 넘어갔다. 몽골 변호사들은 환경소송에서 적절한 원고의 부재, 어렵게 섭외한 원고가 중간에 포기하는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원고 적격을 확대하는 행정소송법 개정 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개정 소위원회가 2일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하였는데 폭설로 인하여 참석을 하지 못했다. 이 불참 자체가 몽골 변호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이 낙관적이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11월 10일 귀국하며


마지막 밤을 대화로 불태워서 비몽사몽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익숙한 곳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었다. 두서 없는 이야기를 함께 해주신 황필규 변호사, 김기남 변호사님께 감사드린다.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올지 모르겠지만.

이틀 간의 경험을 되새겨 보았다. 첫 날에 가장 큰 장벽이 뭐라고 썼는지 보니,  재원과 인력 등 한정적인 자원이라고 했다. 자꾸 습관처럼 활동의 미진함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원칙을 잊지 말자.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면 이번 교육에서처럼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떨어져서 관조하자. 궁극적으로는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자. 이미 오랫동안 활동해오신 몽골 변호사들처럼 즐겁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 엉뚱한 곳에 도달할 수 있으니, 내 뒤에 있었던 발자욱도 잘 보고 앞으로 가는 길도 잘 살펴서… ‘잘’ 해야겠다!

글_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