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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패러다임의 전환, 성/평/등을 외치다”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라는 구호가 낯설지 않다. 2017년, 성평등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말”이기 때문에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라고 외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성평등 개헌,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정책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한 충남인권조례 폐지와 EBS <까칠남녀> 패널인 은하선 작가의 하차를 요구를 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양성평등/성평등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왔는지, 성소수자 위치에서의 성평등의 개념은 무엇인지, 보수 개신교의 의도와 정치적 행동은 어떠하고 그 영향은 무엇인지 살펴 볼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 중략 …

 

보수 개신교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차별, 폭력, 혐오, 배제일 뿐

“양성평등의 계보화와 그 효과”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진옥(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양성평등은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성평등은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언어 프레임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과 양성평등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보완, 호환되며 사용되어 왔는데 보수 개신교로 인해 훼손이 되었으며 한편 동반연(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국민연합)이나 기독교가 말하는 것은 차별, 폭력, 혐오, 배제이지 절대 양성평등은 아니기에 양성평등과 성평등 용어가 아닌 평등의 내용과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양성평등 NO”라고 답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한편 이진옥은 양성평등기본법이 만들어진 후,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만이 아니라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양성평등’이 소외되어왔던 남성을 챙겨야 한다는, 남성에 대한 지원책에 대한 방식으로 양성평등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 남성연대가 지금의 양성평등연대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보수 개신교가 말하는 양성평등의 유래는 이와 맞닿아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로 대체한다고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진옥은 덧붙였는데 가령 양성평등을 비판하는 중요한 주장이 기계적 평등, 산술적 평등인데 과연 “젠더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어서 기계적 평등, 산술적 평등이란 방법론을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성평등 자체를 무효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풀어 가는데 혼선, 불필요한 오해, 과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인권과 성평등,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성소수자 위치에서의 성평등”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맡은 박한희(희망을만드는법/퀴어여성네트워크)는 이성애주의, 성별이분법, 가부장제와 같은 성별규범들은 개인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구분하고 어떠한 모습과 신체기준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성역할을 해야 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규정함으로써 성소수자와 여성 모두에 대한 억압으로 작동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때로는 성소수자이기에 겪는 복합적인 차별 경험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성별이 단순히 생물학적이고 이분법적인 생식기 구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신체조건이 어떠한지, 내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이끌리는지의 다양한 스펙트럼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성소수자 인권과 성평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안부터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 성평등이 분리될 수 없음에도 ‘양성평등기본법 사태’를 통해 분리되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박한희는 지적했다. 실제로 양성평등기본법의 법안 명칭이 여성을 ‘발전’, ‘개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차례 법명의 개정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이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법안 명칭을 확정하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2014년 2월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양성평등은 헌법에서 도출되나 성평등은 그렇지 않고, 제3의 성과 동성애 등 성적 지향에 대한 개념을 포함하는 성평등을 우리 사회에서 논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양성평등을 기초로 국가와 사회가 굳건하게 세워져있다”는 주장이 여성가족부의 어떠한 비판도 없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법안의 명칭은 양성평등기본법안으로 확정되어 2015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

이후 성평등 조례가 양성평등조례로 개정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고 ‘남성들을 배려하는 정책’ 정도로 여겨지고야 만다. 이러한 프레임은 2017년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보수개신교 등 성소수자 혐오단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를 외치며 양성평등의 가치는 남녀로서의 가족결합, 가부장적인 정상가족, 착취구조를 보여주는 게 헌법의 기본적인 틀이며 이런 나라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박한희는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앞으로 가져갈 것인가는 고민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즉 앞으로의 제도, 정책의 구성에 있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보수 개신교의 “페미니즘 반대”

“보수 개신교의 의도와 정치적 행동 그리고 그 영향”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맡은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은 앞서도 언급된 보수개신교의 움직임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존재해온 맥락이 있으며 이는 학부모, 교수와 같은 이름들을 내세워 조직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종교적인 맥락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기대어 온 가치에 비롯된 것이며 진보에서 사용되어온 용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프레임을 바꿔왔으며 기독교 우파, 미국에서부터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어온 전략임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대만은 2009년부터 학부모 이름을 내건 기독교 우파 조직이 학교 성교육에 개입하였고 미국 역시 동성애 반대, 성교육 반대 등을 공화당의 정치기반으로 만든 전략이 있었다. 즉, 가족가치를 내세워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공화당의 정치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보수 개신교의 움직임 역시 유사하다. 과거 반공, 발전주의를 중심으로 보수정치에 연합했다면, 2010년에는 시민단체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족가치운동을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성소수자 반대를 매개로 이주민, 페미니즘, 노동조합 및 진보 운동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활용하고 이를 보수 정치의 기반으로 만들어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가 보다 중요해

나영은 가족을 내세우는 보수 개신교의 주장이 한편으로 건강가정기본법, 양성평등기본법 등의 역사와 의도치 않더라도 조우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보수 개신교 집단은 최근 공청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남자와 여자라는 ‘양성’은 신의 뜻에 따라 주어진 역할과 규범이 있으며 그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상호보완’하는 것이 평등이라는 주장 하에 ‘양성평등’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한편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의 제정과 앞서 언급된 양성평등기본법으로의 개정 논의에서도 드러났다. ‘건강가정’을 혼인과 혈연 중심의 이성애 가족에 한정 짓고 혼인과 출산을 국민의 의무로서 강조해 가족중심의 목표 실현으로서 양성평등을 과제로 둔 현행 정책들을 볼 때, 양성과 평등을 이미 그 목표에 기능적으로 두고 있는 차원에 문제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영은 성평등이 단지 성소수자를 포함하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성역할과 그에 따른 양성평등을 기능적으로 전제해 온 패러다임을 넘어 각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할 권리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문제이며, 그 내용에 무엇이 필요할지에 관한 논의가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한 때

발제가 끝난 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의 토론자들을 중심으로 토론이 이어졌다. 박인숙(정의당 여성위원회)는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용어의 문제는 아니나 정치화되어 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정의당은 가장 먼저 개헌안을 제출하였으며 내용에는 성적지향과 다양한 개인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포함했음을 언급하며, 현재 논의는 동성애를 인정 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는 성평등 패러다임이기에 정치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민경자(국민개헌넷, 헌법개정여성연대)도 어떻게 쉬운 용어로 대중적으로 풀어나가 헌법 개정하는 과정에 성평등 용어를 쓸 것이냐는 전략적 회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한편 10년 전 성평등을 당헌당규에 사용했던 민주당이 이제 와서 못 쓰는 것은 표, 즉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정치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젠더라는 용어에 대한 번역은 어쩌면 계속 사용한 우리에 대한 반성과 함께 기독교 우파들이 던져준 것인 것 같다고 덧붙이며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것은 지금이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성정책’ 안에 비워져있던 내용을 목도하는 지금

나영정(장애여성공감)은 양성평등기본법이 되면서 여성의 발전에서 남녀의 동등한 참여과 권리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고 우리가 이것을 평가해야한다고는 말하지만, 그 참여와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못함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성을 매개로 한 차별과 폭력에 대해 정책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기에 결국 현재 우리에게 놓인 상황은 ‘보수 개신교로부터의 도전’보다는 ‘여성정책 안에 비워져있었던, 질적으로 비워져있음’을 목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나영정은 여성의 나이, 가족상황, 장애 유무, 정체성, 소득, 고용상황 등을 파악해야만 정책을 구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이유는 교차성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차별을 해소할 의지가 없었던, 여성정책 범주가 결국 국가 정책 속에서 칸막이가 쳐져있음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10년에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연을 지지한다”는 말을 정책적 협약을 하는 전문가들에 듣곤 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정책협약을 해온 지난 역사 속에서 지금 다시 성평등 담론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며 앞서 언급된 ‘비어있는 무언가’를 우리가 채우고 고민해 출발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분법적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하는 차원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전면에 지키지 못했다는 데에서의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차이와 다름, 그럼에도 우리들의 ‘공동전선’을 재확인하며

3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성평등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의 필요성과 함께 이는 단순히 용어만이 아닌, 그 내용을 어떻게 담느냐 역시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양성평등이라는 말 안에도 보다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고 볼 때, 이 안에서의 오용될 가능성 역시 혼재되어있는 상황이 있었다.

즉 지금의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현상이 보수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성평등’이 정책에 있어 개념상 기능적으로 배치되어온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에 어떤 논리로 맞설 것인가가 불분명했기에 “패러다임의 전환 성/평/등”을 다양한 위치와 입장에 있는 이들이 말하기 시작한, 오늘의 토론회가 중요했던 것이다. 혐오를 막아내는 것이 토론회에 참여한 이들의 중요한 ‘공동 전선’이라는 점에서 2018년이 여성운동, 성소수자 운동, 차이, 다름에 대해 논의하며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때가 되었으면 한다.

 

글.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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