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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 활동자료를 함께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남성 간 성폭력은 무죄, 동성 간 사랑은 유죄?

이 한 장의 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이 써주신 기사에 삽입된 사진이다. 군형법 제92조의6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김덕진 사무국장님이 굉장히 잘 써주셔서 보탤 것이 없다. 다만 이 사진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것은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를 위한 활동들, 그리고 이 활동을 벌여온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군 관련 성소수자 네트워크)’에서 함께한 사람들이다.

군 관련 성소수자 네트워크는 2008년에 만들어졌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와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주도하여 결성했다. 2006년과 2007년 연달아 크게 이슈가 된 군대 내 성소수자 병사 인권침해 사건 직후였다. 행성인과 친구사이 등에서는 이 사건들의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군대에서는 성소수자 병사에게 정체성 입증을 위한 성관계 동영상 등을 요구하고 성폭력과 아우팅 피해 등으로 건강까지 해치게 했다. 이 일들을 거치면서 단체들은 좀 더 전문적으로 ‘솔루션 테이블’을 만들어야겠다며 뜻을 모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의 배경에 성소수자 혐오를 제도화한 조항인 군형법상 ‘추행’죄가 있고, 또 인권침해와 차별을 막기 위한 군대 안의 인권에 관한 제도적 보장이 미비하다는 점을 인식하며 출범했다.

법으로 동성애를 ‘추행’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 연대체의 결성 무렵, 대법원에서는 이 조항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군형법상 ‘추행’의 의미를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판결이었다.

동성애는 대법원에 의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부도덕한 것이 되었다. 이 판결의 결과, 기소된 중대장은 무죄를 받았다. 그에 대한 공소사실은 “다수인이 왕래하는 복도 등에서 중대원인 다수 피해자들의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일이었다. ‘성적 만족 행위’인 동성애가 아닌 이 남성 간 성폭력은 무죄가 되었고, 동성 간 사랑은 유죄가 되었다.

우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이 조항에 대한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군사법원이 직권으로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군형법을 누구보다도 많이 적용하는 군사법원 스스로, 이 조항이 불명확해서 어떻게 적용할지 알기 어렵고,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군 관련 성소수자 네트워크에서는 이 위헌제청결정을 환영하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여러 단체들로부터 이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각각 모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 탄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더 어려웠던 그때, 실명과 주소, 정자로 쓴 서명을 담은 탄원서에 성소수자들은 이름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 조항에 대해 “군대 내 성폭력은 막아야 하지 않나요?”라고 되묻는 등 이 조항이 ‘동성애 처벌법’이라는 사실도 잘 알기가 어려웠다. ‘추행’이라는 이 법조항 표제의 의미가 ‘성추행’이 아니라 동성애를 ‘추한 행위’라고 한 것이라 설명을 해도, 법조인들도 당연히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인 줄 아는 이 법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탄원서 제출 캠페인을 지지하면서 기꺼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탄원용지를 가져가서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서 주변의 서명을 받아오시는 분들도 많았다.

더운 한낮의 서울시내 거리에서 탄원 캠페인을 벌여나갔다. 활동가들의 얼굴이 익어갔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화를 내는 시민도, 성소수자는 괜찮지만 군대에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한국에 ‘소도미법(Sodomy law)’이 있는 줄 몰랐다며 서명을 하고 가는 외국인도 있었다. 행성인과 친구사이 회원들은 낮과 밤의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래서 끌어모은 것이 1500명이었다. 지금이야 적어보이지만, 당시로서는 각각 한 장의 탄원서로 1500여 장을 모은 것은 성소수자 운동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허망하게도, 보수 개신교 교회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장의 합헌 결정 촉구 탄원서를 받아서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헌법재판소에 제출해야 했다. 2010년에는 2차로 2437장의 탄원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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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너무 늦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후 2010년 6월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와 장서연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사건에 참여하여 법적 공방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아쉽게도 2011년 3월에 나온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합헌. 결정문은 성소수자 혐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선고를 듣고 나온 활동가들은 얼굴이 크게 굳었다. 국가의 혐오표현을 직접 헌재 대법정에서 들어야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제도화한 법률이 정당하다는 헌법수호기관의 판단이었다. 사람들의 분노와 규탄 뒤에는 슬픔이 남았다.

끝은 아니었다. 2013년 5천여 명의 폐지 입법청원과 국회의원들의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 발의, 그리고 군형법 개정의 과정에서도, 2016년에 선고된 제3차 군형법상 ‘추행’죄 합헌 결정에서도, 올해 1만 2천여 명의 폐지 입법청원에서도, 인권, 여성, 사회 운동에서는 후퇴를 막고 이 조항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성소수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서명지에 정자로 넣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광화문 촛불에서 만난 지나가는 시민들도 ‘군형법 제92조의6’이라는 말만 듣고도 “폐지해야 한다”며 줄을 서서 서명을 하고 갔다.

그러나 이 ‘추행’죄를 없애지는 못했고, 급기야 전례 없는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이 벌어졌다. 군인권센터의 발표로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합의한 동성 간 성적 접촉에 대해 한 해에 한 건 적용될까 말까 하던 이 조항이, 단기간에 수십 건이 적용되어 입건이 되었다. 위헌 결정 촉구 탄원서와 폐지 입법청원 서명을 받기 위해 함께 뛰어다니던, 그 역시 군복무 중 다른 부대 병사와 뜨겁게 연애를 했던 한 친구사이 회원은, 진작 폐지시키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지금 재판받는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이제 다시 어떤 출발점에 섰다.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직전, 인천지방법원은 직권으로 이 조항에 대해 다시 한번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지난주에는 국회에 김종대 의원의 대표발의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이 발의됐다. 또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재작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이 조항에 대한 폐지 권고에 이어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고려하라는 권고를 대한민국에 내렸다.

우리는 다시 거리와 법정과 국회에서 군형법 제92조의6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이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평등과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를 훼손하고,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범죄로 몰아가는 이 조항을 폐지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일들을 벌여 나가왔고, 벌여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할 일들이 남았다.

군형법 제92조의6. 이 지난한 10년의 폐지 운동의 날들을 넘어, 이제는 꼭 폐지할 때가 됐다.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2009년의 사진 속에서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를 외치던 사람은 세 명이지만, 지금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2017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