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아시아, 나 그리고 우리

글_류민희



들어가며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1986년에 설립된 비정부 국제인권단체로, 현재 홍콩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기관인 아시아법률정보센터(Asian Legal Resource Centre)는 아시아인권위원회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아시아 지역 인권법 이슈에 대응하고 인권활동가의 법적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 등을 합니다. 아시아 활동가 교육의 일환으로 아시아법률센터는 매년 인권학교(Human Rights Folk School)를 주최합니다. 이 행사에 감사하게도 경험이 일천한 제가 초청을 받아 2주간 다녀왔습니다. 저 개인보다는 희망법의 가능성을 높게 보아주신 것이겠지요. 2주간의 기억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와 아시아법률센터




Folk School의 유래




국제인권법과 관련하여 강의 형태의 단기 코스나 프로그램은 적지 않습니다. UN인권보호 매커니즘을 배우고 지역 별 인권협약과 인권재판소 체계를 익히고 주요 결정례를 배웁니다. 이를 통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법 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제게는 어딘가 고담준론 같기도 했습니다. ‘저 결정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저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라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출국 삼일 전 급하게 참가 결정을 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도착한 홍콩에서의 첫 날. 한국,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태국, 스리랑카, 인도, 파키스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부터 온 14명의 참가자들이 각자의 경력을 소개하고 이 교육의 컨셉인 Folk School에 대해 바실 페르난도(Basil Fernando)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습니다.




Folk School은 덴마크의 신학자인 그룬트빅(N. F. S. Grundtvig)이 창안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교수로부터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생들끼리 서로를 가르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역량을 키우는 형태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CCPR이 뭔지, CERD가 뭔지는 다른 곳에서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꺼내놓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 해결책을 만듭니다.” 바실 씨의 이 소개를 듣는 순간, 저는 여기에서는 강의라는 형식 속에 나를 숨길 수 없고, 동의를 얻을 수 있든 없든 나의 경험과 고민을 털어놓는 곳이 되겠구나, 예감을 했습니다. 그렇게 2주간 저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동료들의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실 페르난도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장




아시아의 활동가들




태국의 라후(Lahu) 족은 주로 버마에 살다가 군부 독재를 피해서 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실라(Sila Jahae)씨의 라후 족 마을은 치앙마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의 높은 산 속에 있는데, 교육, 식량, 보건위생 문제 등 기본적인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낙후된 지역입니다. 실라 씨는 바로 이 라후 족을 지원하는 단체 Lahu Association의 회장입니다. 2010년 태국 인권위원회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지요.




실라 씨는 군벌로부터 납치당하여 산 채로 땅 구덩이 속에 던져지고 며칠 동안 고립되었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 마을을 지키려면 그저 평화롭게 앉아서 시위하든지, 무장군에 들어가 무기를 들든지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며 무기력함을 호소했습니다.




인도 마니푸르 지방에서 온 곤메이(Panti Gonmei) 씨는 Rongmei Naga Women’s Organization이라는 여성인권단체의 회장입니다.




마니푸르 지방은 인도 동북쪽의 접경지역입니다. 마니푸르는 1891년 영국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독립적인 왕국이었으나 1947년 영국이 물러가며 인도에 편입되었습니다. 빈곤한 저개발 지방의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 등으로 인하여 1964년부터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났고, 인도 정부는 이 지역을 ‘혼란 지역(disturbed area)’로 규정하였습니다. 무장군대특별법(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에 의하면 인도 군대는 혼란 지역에서 무력 사용에 대하여 광범위한 면책 특권을 가집니다. 이 법은 위헌적인 법으로 UN으로부터 여러 번 폐지의 권고를 받은 바 있습니다.




면책 특권을 가진 인도 군대, 저마다 입장이 다른 무장 세력들의 폭력과 혼란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과 아동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동은 무장세력 가입을 강요당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인신매매를 당합니다. 여성은 강간, 폭력, 인신매매의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곤메이 씨는 이러한 피해 여성을 조력하는 사람입니다.




페룸(SIA Pherum) 씨는 캄보디아의 주거권 활동가입니다. 페룸 씨의 맥북에는 ‘강제퇴거 금지지역Eviction Free Zone’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원래 페룸 씨와 같이 오기로 하였던 다른 활동가는 체포당하여 오지 못하였습니다. 페룸 씨는 200명 이상이 운집하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캄보디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하여 비판하였습니다. TV, 라디오의 주요 채널에서는 자신들의 활동을 보도하지 않고 캄보디아 국민의 3% 정도만이 인터넷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부당한 퇴거와 인권침해 상황에 대하여 알리고 이에 대한 인식을 확신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점이라고 합니다.





곤메이 씨(왼쪽), 실라 씨(오른쪽 상단), 페룸 씨(오른쪽 하단)




무엇이 문제인가?




언제나 예정된 시간을 넘겨가며 각국의 상황과 각자의 활동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어느 하나 가벼운 이야기가 없는 만큼 하루 8시간의 수업이 체력적으로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유럽에서 인권법 수업을 들을 때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들 – 법치 확립, 사법부의 독립, 부패 척결, 투명한 분배, 전근대적 계급 제도의 타파 – 이 아시아 국가들의 주요 당면 과제였습니다.




아시아법률센터에서는 제2, 제3의 대안적 감시기구도 좋지만 경찰, 검찰, 군대, 사법부 등 ‘가장 본질적인 시스템의 올바른 작동’이 아시아 인권활동에서의 최우선 목표여야 한다고 주지했습니다.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여 할 집단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많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또한 태국의 왕실모욕죄(Lese majeste), 각국의 인터넷 등 뉴 미디어에 대한 규제 법령에 대해서 활동가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의 측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면 시민사회가 감시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본적인 창구가 없는 것입니다. 공포를 조성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어 결국 점점 반대의견 자체를 말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지요.





조별 토론 과정






‘고발하라’ ‘기록하라’




인권학교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각자 열심히 인권활동을 하시고 계시겠지만, 지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될까요?”




예를 들어, 제가 하는 성폭력 생존자/피해자 지원의 경우, 매일 개별적인 사건 조력에 힘쓰고 있지만 축적된 사례를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점의 고발,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형사정책 측면에서도 제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개별구제 뿐만 아니라 ‘고발, 폭로’를 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나 인권 침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환기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바실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폭로할 때, 담당자/권력자는 처음에는 그런 일은 없다고 부정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런 일이 존재하기는 해도 드문 일이고 당신이 과장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고 디테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는 Urgent Appeal(http://www.humanrights.asia/news/urgent-appeals) 코너를 두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사건을 폭로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Urgent Appeal은 각국의 개별적 사례들을 축적하는 아카이브로서 기능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의 주거권 상황과 활동가의 구금 사태를 공유하고 있는 시아 페룸 씨




아시아적 연대와 한국의 민주화 경험




아시아의 각국은 식민지, 2차 세계대전, 군부독재 등의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함부로 뭉뚱그릴 수 없는 정치·문화의 지역적 맥락과 특성도 존재하고, 민주화 발전과 법의 지배의 안착 면에서 각기 다른 단계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 나라의 민주화 경험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감과 동력을 위해서 성공적인 전략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5.18기념재단(http://518.org)의 정린님은 참가자들에게 5.18민중항쟁과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아시아 활동가들이 5.18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18기념재단도 아시아법률센터처럼 Folk School 형태의 광주아시아인권학교를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민주화 경험이 역사 속에 묻히지 않고 다른 곳, 크게는 아시아에서의 민주화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전통의 계승이고 또한 새로운 과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인권위원회의 문제




아시아에서도 인권위원회는 뜨거운 화제였습니다. 활동가들은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이행의 더딤, 잘 작동하지 않는 사법제도에 실망하였고, 이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로 생각했던 각국의 인권위원회가 정작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점에 더 큰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 조직과 권한이 미미하여 사실상 정부 정책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서, 오히려 인권에 대한 정부의 알리바이로 운영되는 점 등이 문제로 거론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모델로 소개되었던 한국 인권위원회에 대해서 저는 “이제 위원장 등 구성원 선임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국가의 인권위원회는 조직이 약하거나 권한이 미미해도, 최소한 위원장은 인권 관련 활동경력이 충분한 사람을 앉혔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생존자/피해자의 치유




아시아인권위원회의 상근 활동가 중 오랫동안 인권관련 활동을 해온 임상심리학자 미트라 박사Dr. Rajat Mitra는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미트라 박사는 주로 고문 피해자, 성폭력범죄 피해자를 치유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법률가는 구제 수단에 있어서 1차적으로는 생존자/피해자가 사법절차 안에서 차별 받지 않고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여, 결국 실체적 진실을 밝혀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도록 조력합니다. 그러나 생존자/피해자에게 오랫동안 정신적 심리적으로 남는 피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는 7월 개소를 앞두고 있는 광주 트라우마 센터는 5.18을 비롯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사회적 지지 및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법적인 절차에만 매몰되지 않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아, 나 그리고 우리




“힘들다. 때로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파키스탄의 Women Workers Help Line에서 온  부쉬라(Bushra Khaliq) 씨가 토로했습니다. 기본적인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강의실이 숙연해졌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기록과 공유를 역설하는 것은, 누구도 외부에서 우리의 상황을 모르는 것 같다는 고립갑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로 우리는 예전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어떻게 알려서 동의과 주목을 이끌어 내느냐의 문제이지,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차원은 아니지요. 지금까지의 활동을 한 번 되돌아보고 힘을 다시 내자고 서로 약속했습니다.




아시아의 동료 활동가들은 납치와 고문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저는 모바일 메세지와 이메일을 연신 확인하며 대도시의 기운을 잔뜩 몰고 온 어두운 표정의 서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각자 활동 상황의 단초만 이야기해도 빠른 이해와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생각하는 바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도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들도 저에게서 힘을 받았을까요? 인도의 라주 씨에게 저는 ‘주민 반대에도 제철소를 세우려고 하는 포스코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지만, 헤어질 때는 다른 사람으로 기억되었길 빌면서. 우리 다시 만날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