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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수습 후기] 불광동 실무수습생 서면 작성 기능 전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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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공동과제에 대한 의식의 흐름

이 이야기는 2016년 여름, 짧은 장마 뒤 바로 찾아온 무더위에 4주간 동고동락한 실무수습생 5명의 공동과제 수행기입니다. 막연했던 어색함부터, 자신감, 막막함, 불안함, 익숙함, 각성을 거쳐 환희에 이르기까지 양보할 줄 모르는 다섯 수습생들이 공동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1. 5명이 함께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실무수습을 위해 첫발을 디딘 서울혁신파크는 웬만한 대학캠퍼스만큼 컸습니다. 첫 출근이라 서둘러 나왔는데도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찾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울혁신파크를 두 번쯤 돌고서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땀 범벅이었습니다. 게다가 변호사님들이 회의하는 동안 대기실로 사용한 공동회의실은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어서 저는 연신 손부채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십 분쯤 지나 수습 동기가 들어오자 ‘이 친구가 함께하는 수습생이구나,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연이어 다른 수습생들이 도착하긴 했는데, 저는 통성명도 없이 쭈뼛쭈뼛 인사만 하고 사전에 나눠주신 일정표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회의를 마치시고 회의실에 오실 때까지 시간이 좀처럼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4주가 4년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일을 같이 하는 사람과는 필요 이상의 친분을 쌓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색하다면 과연 공동과제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서로 할 일을 미루거나 누군가 혼자 짊어지는 것은 공동과제에서 벌어지는 제일 흔한 사태고, 그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습니다.

 

  1. 처음에는 해볼만했습니다.

공동과제에 대한 정식 발제는 목요일에 있었지만, 그 전 월요일에 이미 공동과제의 주제를 담당변호사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공동과제는 시위 주최자 및 참가자에 대한 국가의 민사소송에 대응하는 법리검토와 서면작성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집회 중에 발생한 경찰비용을 집회 주최자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것을 반박하는 논리를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공동과제를 들었을 때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먼저 경찰행정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공무 수행 중 발생한 비용을 손해라고 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개되고 상징적인 장소에서 공적인 목적으로 시민들이 정치적인 의견을 내어 놓을 때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공익적인 일이므로 그 비용은 시민들이 세금으로 함께 분담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수습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더 좋은 의견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국가가 시민의 기본권 행사를 제한할 때는 법률에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꽤 일리가 있었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국가에서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도 아니고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 말 그대로 ‘기본’권이기 때문에 근거 없이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기책임원칙에 어긋난다’, ‘훈련 받은 경찰도 통제 못 하면서 시위대를 통제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청이다’와 같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니, 펼칠 수 있는 논리도 많고 써 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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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데 이내 막막해졌습니다.

목요일에 정식으로 공동과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자료는 이틀 전인 화요일에 미리 변호사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받은 자료를 각자 전부 읽어 보기로 했으나, 솔직히 좀처럼 잘 읽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논문들을 검색하고, 논문에 나온 판례들까지 검색하고 나니 읽어야 할 문서의 양이 점점 늘어났고, 그 중에는 독일이나 미국 판례도 있어서 자신감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 눈앞이 막막해졌습니다. 물리적인 양뿐 아니라 방향성과 목표도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설이나 해외 판례를 적용해서 기존 판례를 뒤집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새로운 판례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논리를 구성하는 연결고리가 하나씩 모자란 것 같고,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논리의 약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 국가의 경찰비용 청구 논리들은 교묘하고 상식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논리적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기존 판례들을 근거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 막막함과 불안함을 연달아 찾아옵니다.

자료의 양이 많긴 했는지 저만 다 읽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첫 주 금요일까지 각자 논문을 한 두 개씩 나누어 읽고 요약해서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외국 판례도 각각 10여개 정도로 나누었습니다. 다행인 점은 모두 약속한 날짜까지 쟁점을 정리해서 공유했고, 덕분에 금요일은 예정대로 모여서 각자 읽은 부분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논문들의 내용이나 방향이 대체로 비슷해서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외국 판례도 유사한 표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좀 더 다양한 근거나, 단단한 논리들이 나오길 바랬는데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 불안해졌습니다. 게다가 과제의 수행에 대한 논의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획이 안보이면 굉장히 불안해 하는 편인데, 당장 주말에는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주 제출인데 계획이 안보이니,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있는 것인가, 애초에 단계나 계획이라는 게 있었나, 결과물을 완성할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만 많아지는 첫 주말이었습니다.

 

  1. 첫 과제를 마무리하니 팀이 되었습니다.

불안했던 주말 동안 논문을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 우리는 쟁점을 분리해서 목차를 구성하고, 이 목차를 각자 나누어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모아서 최종본을 만들었는데, 약속한 시간에 각자 맡은 부분을 다 써준 덕분에 서식을 통일하고 목차표를 만드는 작업을 여유롭게 할 수 있었고 첫 번째 과제도 시간 내에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 자체는 아쉬운 점이 훨씬 많았지만 첫 번째 과제를 협동하여 써보니 팀워크만은 훨씬 좋아졌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계획을 세우고 마무리를 하기 좋아하는 것처럼 석현이는 형식을 갖추어 빠르게 서면을 작성하고, 아라는 예상되는 반론을 찾아내고, 예지는 의견을 조정하고, 재원이는 문장과 논리를 검토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두 번째 공동과제는 속도가 붙었습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팀워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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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 번째 과제는 속도가 나기 시작합니다.

2차 공동과제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서면을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진행 중인 개별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대신 보고서를 한번 써보니 방향도 다시 보이고, 시간적으로도 점점 목표지점과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3주째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상대방 주장과 근거들 중에 약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장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분노도 점점 커져갔습니다. 국가가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망각하고 차별적이고 전략적인 소송을 강행하여 정부와 다른 의견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국가는 집회를 제한하기 위해서 다양한 불법을 공권력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렀는데, 사후적으로 경제적인 제재까지 취하겠다고 합니다. 객관적 공권인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면 민주주의 사회는 병들 수 밖에 없습니다. 목표지점이 가까워지고, 주제가 명확해지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분노하면서 우리는 마치 각성한 것처럼 서면작성에 탄력을 받았습니다.

 

  1.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제출을 약속했던 금요일에 드디어 하나의 서면으로 서식을 편집해서 검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문장이나 구성 등에서 고칠 것이 많아서 한 문장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금요일에 다 못 끝낼 것 같아서 결국 각자 집에 가서 순서대로 탈고 겸 검토를 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마지막 주자가 다섯 번째 검토를 끝내고 최종본을 제출한 날, 처음 생각보다 4주라는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무더위 속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고민하여 작성한 결과물을 보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공동과제를 이렇게 뿌듯하게 수행한 적은 오랜만이었고, 말 그대로 환희의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4주 실무수습 기간 중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1.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며…

물론 두 번째 과제도 훌륭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강평 때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도 많이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고서와 서면을 쓰면서 형식이나 문장에서 부족한 점도 많이 느꼈습니다. 흥분해서 공격적으로 쓰기 보다는 전략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쓰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의뢰인에게 더 능력 있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남은 학기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도 이 보고서와 서면은 꼭 인쇄해서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흔들리는 순간 다시 꺼내 읽어볼 겁니다.

 

글_마한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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