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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실무수습 후기] 나를 설명하기 위한 시간 – 희망법 실무수습

예전부터 SNS에서 희망법의 소식들을 받아보고 있었다. 여름방학 실무수습 공지를 보고 단박에 하고 싶긴 했지만, 나와 같은 1학년들은 보통 민법, 민사소송법 예습을 하며 첫 여름방학을 보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특히 다른 실무수습의 경우 기간이 2주인 것에 비하여 희망법은 4주라는 것도 조금 부담이 되었다. 계속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지원 마지막 날이었던 6월 3일 낮에서야 급히 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사실 실무수습을 하게 되었다는 결과를 메일로 받고도 한참을 “괜히 한다고 했나? 남들 다 공부하는데 이러다 뒤쳐지는 거 아니야?” 같은 걱정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왜 했냐고 묻는다면, 막연하게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학기를 보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변호사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회의감이 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인권, 공익 같은 ‘좋은 말’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그런 가치들이 어떻게 실무에서 실현되는지 혹은 실현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로스쿨을 다니는 내내 바쁠 텐데, 당장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다보면 그 어느 때에도 희망법을 들여다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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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

첫 날. 희망법이 입주해있는 서울혁신파크는 생각보다 멀었다. 한 시간을 넉넉잡아 갔는데 환승에서 길을 헷갈리는 바람에 첫날부터 5분가량 늦어버렸다. 함께 실무수습을 할 친구들을 처음 만난 뒤 나 혼자 1학년인 것을 알고 걱정이 잔뜩 되살아났다. 희망법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전반적인 일정을 전달받은 뒤 지도변호사였던 한가람 변호사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의 실무수습 시스템과 달리 이번부터는 팀으로 교육받거나 과제를 부여받지 않았다. 교육은 다 같이 받고, 개별과제는 매 주 두 개의 주제 중에서 2:3으로(우리는 총 다섯 명이었다)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으로 그 날의 일정은 끝이었고, 사무실에서 저녁 회식이 있었다. 실무수습생들끼리는 어색했는데, 다 모인 게 오랜만이었던 구성원들(변호사님들과 사무국장님)께서 너무 즐겁게 이야기를 하셔서 시트콤을 보는 듯 했다. 이 때 처음 희망법의 분위기를 익히게 되는데, 나는 희망법이 나이나 학번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하게 지내는 문화인 것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우리 실무수습생들끼리도 나이와 학부 학번을 묻지 않고 모두 말을 놓기로 했다. 그 덕에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부터는 교육을 받았다. 소송실무의 기초,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인권의 이해, 일터괴롭힘, 집회와 시위의 자유, 장애인권 전반에 대한 교육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처음 교육이 소송실무였던 것이 좋았다. 아직 절차법을 배우지 않은 터라 약간 긴장이 됐었는데 한가람 변호사님께서 소송절차에 대한 틀을 잘 잡아주셨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셔서 소송실무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그 뒤의 교육들도 잘 이해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금요일에는 희망법 구성원들 전체가 워크숍에 가셔서 실무수습생들끼리 따로 만나 공동과제를 시작했다. 공동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후기는 한얼이 자세히! 잘! 써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출근 여부와 관계없는 자택근무(?)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무도 시킨 것은 아니지만 과제의 정해진 기한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둘째 주.

공동과제는 계속 진행 중인 상태로, 둘째 주 월요일에 개별과제를 부여받았다. 성소수자 혐오발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장 작성과 에버랜드의 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에 대한 준비서면 작성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한얼, 예지와 함께 혐오발언 손해배상소송 소장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이후의 모든 개별과제를 다 한얼과 함께 하게 된다) 피고가 한 혐오 발언의 녹취록을 보면서 장난으로 우리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꽤 컸다. 혐오 발언의 규제와 관련해서는 기존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과 법적인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고 그래서 어려웠다. 후에 강평을 받을 때에도 가장 많이 들었던 부분이 ‘논증’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이것은 나쁘다. 옳지 않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에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나의 관념에서 이미 프로세스를 거치고 넘어가버린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피고의 변호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가 희망법에서 이 사건을 과제로 부여받았기 때문에 원고의 감정에 내가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피고의 변호인이었다면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한 피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사실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을 것 같다). 희망법에서 첫 실무수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김재왕 변호사님을 따라 무려 인천까지! 다녀왔다. 민들레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였다. 장애인 차별 전문 상담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김재왕 변호사님께서는 법률 정보의 검색 등에 관한 강의를 하셨다. 사실 이 날은 너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따라가서 앉아있기만 해서 좀 죄송했다… 이 날 처음으로 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날 강의를 들은 수강생 분들은 지체장애인으로, 책을 넘기거나 필기를 하는 등의 신체적 활동에 제약이 있는 분들이셨다. 따라서 제도권 교육 내에서 교사가 모니터나 스크린 등을 통한 시각자료를 제시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지 않으면, 일단 집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강의 내용도 꼼꼼히 기억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함에 있어서, 단순히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거나 기술적 편리성을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일방적인 강독이 아닌 구체적으로 교육이 ‘닿을 수 있는’ 교수방법이 보편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셋째 주.

두 번째 개별과제는 조선소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목격자가 없는 가운데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수사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의 서면을 작성하는 것과 한국의 인권 실태와 관련하여 고문방지협약의 Shadow report 초안을 작성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고문방지협약 shadow report를 작성하기로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의 전환치료와 수형시설에서의 트랜스젠더 처우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그에 관한 권고를 작성했다. 전환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주변에서 여러 번 들어봤는데, 정작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으려니까 나오는 게 전무하다시피 했다.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상담이나 기도 등을 통해 성정체성이 바뀔 수 있다고 믿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고 억압인데도, 이것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이제 막 공론화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지 보여준다. 한편 수형시설에서는 행정상 편의에 따라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수형자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조치들이 거의 무시되는데, 그 피해자들이 형을 선고받아 집행 중인 사람들이므로 그러한 문제점이 비가시화되거나 심지어는 정당화되는 현실이다. 그 외에도 한얼이 인터섹스 아동들의 수술 문제를, 예지가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문제를 리서치해서 함께 과제를 완성했다. 한정된 자료들로 쓴 리포트라 걱정이 많았는데, 류민희 변호사님께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주셨다. 내년에 좋은 권고가 나오길.

셋째 주 금요일이 공동과제의 데드라인이었기 때문에 가장 바빴던 것 같다. 자료 조사나 논리 구성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준비서면을 쓰기 시작했는데, 원고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나는 소장에서 원고가 적시한 사건의 경위를 반박하는 부분을 맡아 썼는데,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오히려 원고를 겨우겨우 뒤쫓아 가는 느낌만 들 뿐 판을 뒤집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또한 금지통고의 부당함이나 경찰 진압 과정에서의 위헌성 등이 사실상 문제를 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부수적으로밖에 주장할 수 없어 힘든 점이 많았다.

맞다, 이 때에 법정방청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놀이기구 탑승거부를 한 에버랜드와의 소송 변론기일이었는데, 재판방청후기는 석현이 또 잘 써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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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주.

웬만한 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개별과제가 있었다. 하나는 어느 대기업에서 일어난 일터괴롭힘에 대하여 소장을 작성하는 것, 하나는 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자막을 제공해달라는 청구가 저작권에 위반되는지에 대해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막 제공 의견서를 맡았는데, 전혀 배워본 적 없는 저작권에 대한 문제라서 처음에는 방향성을 잡지 못 하고 삽질(?)을 좀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저작권법을 한 세 번 정도 정독한 것 같다. 일단 자막의 제막이 저작권 이용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몰라서 고생했고 영화 상영이라는 특정 업계의 관행을 몰라서 좀 애를 먹었다. 변호사님께서 생각하신 것과 조금 다른 방향의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희망법 실무수습의 특성상 답이 이미 내려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새로운 생각들을 교환할 수 있어서 좋았다.

3주차 목요일부터 실무수습생들의 점심 준비 기간이었다. 각자 하루씩 맡아서 점심을 준비했는데, 첫 날 한얼이 너무 맛있는 함박스테이크를 해오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질이 높아졌다! 같이 실무수습하는 친구들끼리 많이 재미있게 지내서 좋았다. 마지막 회식 때 서로를 칭찬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돼서 변호사님들께서 낯설어 하셨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좋았기 때문에 4주 내내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희망법의 실무수습은 경쟁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과제를 하면서 서로 돕고, 지적하고, 또 칭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공동과제를 할 때에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정말 열심히 했다. 내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중화원의 해물누룽지탕은 언제 또 먹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얻은 수확이 굉장히 크다. 사실 나는 법 공부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아서, 내가 이 길을 왜 선택했을까 하는 고민이 쭉 있어왔다. 그런데 희망법 실무수습을 하면서 실무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막상 정말 변호사가 되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고, 내가 훗날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보니 더 용기도 생겼고, 스스로의 장점이나 단점에 대해서도 조금 깨닫게 된 것 같다. 변호사라는 직역과 나 자신의 궁합(?)에 대해 여러 요소를 통해 재정립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음번에 실무수습을 나가거나 몇 년 뒤 변호사로서의 일을 시작할 때, 희망법에서의 실무수습은 단순히 경력에 기입하기 위한 한 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시간으로서 단단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재원

글 _ 이재원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