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수습] 장애팀후기-‘소진되지 않도록, 내 삶을 지키면서, 즐겁게.’

[실무수습] 장애팀후기-‘소진되지 않도록, 내 삶을 지키면서, 즐겁게.’

2016년동 동계 법학전문대학원 실무수습에서 한민지 실무수습생은 희망법 장애팀에 속해서 실무수습을 이수하였습니다. 변호사로서 장애인권활동을 꿈꾸는 한민지 실무수습생이 희망법에서 3주간 실무수습을 하며 느낀 점들을 후기로 보내왔습니다.

 

장애팀 후기- ‘소진되지 않도록, 내 삶을 지키면서, 즐겁게.’

시작하며

장애 인권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이동권, 정보 접근권, 탈시설과 그 이후의 문제들 등 장애의 유형에 따라 다양한 의제가 터져 나오고 장애인 개인에 대한 크고 작은 차별 문제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지금, 변호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희망법 실무수습을 신청하면서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실무수습에 참여하면서 기대한 것이 많았지만, 장애팀에 배정을 받고 가장 기대한 것은 장애 인권분야에서 공익변호사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김재왕 지도변호사님과 함께 하면서 그 한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장애인표준사업장 내부고발자 명예훼손사건

장애인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된 사건은 아니지만, 먼저 과제를 위해 기록으로 접하고, 재판을 방청한 후 변론요지서를 작성하는 과제를 해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건이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일어난 장애인 차별과 폭언, 폭력 등의 문제를 내부고발한 노동자를 사업주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인데, 사업주에 대한 증인신문 공판이 잡혀 있었고 심문사항을 적어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을 접하는 신기함도 잠시,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 문제가 없다며 제출한 기록들을 보며 관련법에도 여전히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록을 본 이후 방청한 공판에서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업주가 증언하는 것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공판에서는 명예훼손적 발언과 관련하여 발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주로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나 작업 환경 등에 대한 심문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사업주는 장애인 노동자가 감정이 격해지면 달래기 위해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판사에게 “판사님이 직접 지적장애인들하고 일해보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또한 근로환경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사업주의 증언은 관련법이 정말 ‘최소한’의 기준만 설정하고 있을 뿐이고, 감독기관은 큰 문제가 터져 사회가 떠들썩해지지 않는 한 실질적인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직면시켜 주었다. 사업장의 실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우수 사업장 표창을 받으면서 사업주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단지 몰지각한 사업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사건 같았다.

방청 후 변론요지서를 작성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의 명예훼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다면 이 사업장이 갖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지가 궁금해졌다.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가 사업장의 문제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죄가 선고된다면 재판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사업주가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면서 선고일의 방청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여성 성폭행 고소 사건

탈시설 이후 자립한 장애 여성이 시설에 있던 동안 발생한 성폭행에 대하여 관련자를 고소하고자 한 사건이다. 주어진 자료는 피해 여성의 진술서뿐이었고, 이마저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공소시효 진행여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진술서에는 피해가 발생한 일시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범행들도 있었다.

처음 고소장을 작성하는 과제를 받았을 때, 유사한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장애여성 성폭행과 관련한 매뉴얼을 찾아보았다. 장애여성공감의 매뉴얼과 경찰청/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의 매뉴얼을 참고하여 고소장을 작성했다.

고소장을 작성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특정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분명 진술서 전반에는 성폭행 사실이 반복적으로 나와 있었고, 의뢰인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최대한 증언을 논리적으로 배열하여 신빙성이 있어보이게 만들자는 것이 처음의 다짐이었지만, 주어진 사실이 부족하다고 해서 없는 일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범행 발생 년도와 가해자가 뚜렷한 범행 위주로 고소장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공소시효도 나를 힘들게 했다. 현행법엔 다양한 특별법의 공소시효 특례조항들이 있지만, 범행이 대부분10년 이상 된 일들이기에 2010년 전후에 대폭 제․개정된 법률들을 적용할 수 있을지 헷갈려오기 시작했다. 개정일을 확인하면서 요리조리 끼워 맞춰 가능하다고 호기롭게 작성해서 제출하였지만, 막상 변호사님의 피드백을 받을 때에는 이를 다시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시설 내의 폭력/성폭력 문제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심각함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만연해 있다.이 사건은 다행히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 처벌을 받지도 않은 채로 계속되고 있는 사건도 많을 것이다. 이를 공론화시키는 것은 피해자나 내부고발자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면 시설을 벗어날 결심을 하지 않은 장애인의 경우 신고를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으며,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범행이 발생해 왔다면 일자에 대한 특정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건과 관련된 법률가들이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으며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연대활동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재왕 변호사님은 장추련과 연대하여 법률지원 활동을 하고 계신데, 실무수습 기간에 장추련 파견근무를 따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법률지원 활동은 장추련에서 상담전화 평지를 통해 접수된 사건들을 정리하여 변호사님께 전달하면 법적 조언에서부터 소송 준비까지 지원을 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진행 중인 사건의 사례 관리와 새로운 상담 사건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도 활동가분들은 쉴 새 없이 전화를 받으며 상담을 계속 했다.

요양원 내 보호자에 대한 폭력사건, 근육장애인이 비행기를 예약하려 하자 의사 소견서를 보내고 6명분의 티켓값을 지불하라고 요구한 사건 등이 있었지만, 특히 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임대주택에서 특정가구의 퇴거를 나머지 가구가 요청할 경우 임대차를 해지할 수 있다는 임대차계약서가 문제된 사건이었다. 장애인인 사건의 당사자가 이웃과 분쟁이 생기자 임대인인 ㅇㅇ공사에서 퇴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계약서의 해당 조항이 무효라는 의견서를 작성하면서 공공주택특별법과 약관규제법 등 생소한 법률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처음 장추련에 간 날, 장추련의 김성연 활동가님이 ‘로스쿨이 생기고 나니 단체들에서 덕을 보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떠오른다. 풀 자체가 넓어지니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가고 각자 관심사에 따라 좀 더 과감하게 진로를 고를 수 있어져서 단체 입장에서는 반갑다는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연대활동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회의, 회의, 회의

희망법의 실무수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외부 회의일 것이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장애인법연구회의 월례 세미나 외에도, 한국영화 화면해설/자막방송 소송과 관련한 회의, 인강원 사건의 후속조치에 대한 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장애팀 뿐만 아니라 SOGI팀, 기업과 인권팀에서도 부지런히 외부 회의에 참석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변호사의 업무는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특정한 의제를 위해 소송을 함과 동시에 운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 중간과정을 점검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앉아서 서면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임을 배웠다.

짧은 3주를 마치면서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듣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말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학교생활에 치여 바래갈 무렵, 희망법 실무수습에 참여했다. 그리고 3주를 보내면서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그중에 가장 값진 것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지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장애 인권 분야에서 공익 변호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 역시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희망법 사람들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동기들로부터도 수많은 것을 배웠다.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었던 과제들을 함께 완성해 나가면서, 같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만큼, 언젠가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본다.

‘소진되지 않도록, 내 삶을 지키면서, 즐겁게.’ 희망법의 여러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공익 변호사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느꼈던 것들이다.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희망법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지만, ‘모범 답안’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답을 찾을 때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희망법에서 보낸 추운 겨울의 이 시간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한민지

글_한민지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년

희망법 2016년 동계 실무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