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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소식] 12년 만에 종결된 경찰의 화풀이 소송, 씁쓸함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글 / 서 선 영

 

 

방패를 챙겨 나가려다너무 세게 방패를 잡아 당겨 자신의 방패에 맞음

방패를 챙겨 나가려다너무 세게 방패를 잡아 당겨 자신의 방패에 맞음”, “하이바 쓴 채로 물포를 뒤쪽에서 맞음”, “구보로 이동하던 중 도로에 세워져 있던 기둥에 오른쪽 다리를 부딪힘”, “근무 교대 중 넘어짐”, “이동중에 인도와 차도 경계 부근에서 발을 헛디뎌 접질림”, “상황 종료 후 부대 복귀를 위해 경력 수송버스로 이동 중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울타리를 넘으려다 앞으로 넘어짐”, “진군들의 전진으로 진압 방패에 무릎을 부딪힘
위 사연들은 2008년 촛불집회 주최 단체단체에 소속된 활동가사회를 본 사람 등에게 치료비를 배상하라고 하면서 국가(대한민국) 민 청구서의 내용 중 일부다경찰이 자신의 방패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 스스로 그 방패에 맞은 것도경찰이 쓴 물포에 경찰이 맞은 것도경찰이 다리를 헛디뎌서 발생한 상처도 모두 집회 주최 단체 등이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이런 소송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전략적 봉쇄소송 (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행동하는 시민들을 응징하는데 목적이 있는 민사소송”[정영수, ‘전략적 소송(SLAPP)에 관한 연구’]을 말한다괴롭히기 소송이라고도 부른다.
위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의 성격이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그러나 경찰이 피해라고 주장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고 있으면(위에서 언급한 예는 경찰의 황당한 주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소송에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품위있는 단어를 붙이는게 어색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저 집회가 없었으면 이 모든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집회 탓이라는, 집회에 대한 증오소송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원고)의 이름을 사유화해서 소송이라는 형식으로 집회 주최‧참가자 들에게 화풀이를 한 추태일 뿐이었다

 

2008년 시작한 소송이 결국 2020년에야 끝났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권 1년차이자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2008년 7월에 시작됐고 거의 12년을 채운 2020년 7월 9일 대법원 선고(대법원 201639125 판결)로 12년 만에 종료됐다소제기 당시 원고 대한민국의 법률상 대표자는 법무부장관 김경한이었는데소송종료 시 법률상 대표자는 추미애 장관이다대한민국 스스로가 이런 문제적인 소송을 스스로 걷어들일 기회가 12년이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야 아예 기대할 바 없었다 하더라도촛불정권이라고 자평하는 문재인 정권에서도 이 소송은 계속됐다.
지금도 비슷한 소송들이 여전히 법원에 있다경찰이 2009년 파업과정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015년 세월호 집회에 대해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다경찰청 인권침해 조사위원회는 2009년 쌍용차 진압에서 있었던 국가폭력을 사과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2015년 세월호 집회에 대한 소송에서 대한민국은 전문적인 시위대는 세월호 참사 등 모든 사회적 이슈를 반정부 투쟁의 동력으로 삼아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아직 원고가 이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으니,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도 이 주장을 용인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보도들이 있었는데, 법무부는 우선 법원이 있는 이 소송들부터 어서 취하해야 할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환경을 만들었던 법원

다른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데개별 참가자가 그 충동의 원인을 쉽사리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의 두려움과 분노깊은 유감의 마음그리고 궁지에 몰린 동료 시위 참여자들을 도우려는 소망은그리고 때로는 경찰에 의해 행사된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으로부터 스로를 보호하려는 의도는 폭력을 행사하는 동료 시위자와 즉각적으로 연대하고 그들의 폭력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1984년 독일연방통상법원이 대규모 시위 도중 발생한 폭력행위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시한 부분이다(이계수박병욱 번역, ‘그론데 판결’, 행정법 연구 46)
그러나 우리 법원에서는 이런 섬세한 판결을 찾기 어려웠다집회가 있었고 그 집회에서 충돌이 벌어졌다면그 충돌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주최측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식의 뭉텅이 뭉텅이식 판단만 이루어졌다충돌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당시 공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었는지공권력에 대한 방어의 차원이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묻지 않았다법원의 이런 태도가 전략적 봉쇄소송의 토양이 됐다다행히 이 사건에서는 단지 이 사건 집회 시위 참가자와 원고 소속 경찰관 등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쉽게 집회 시위 주최자의 행위가 방조에 해당한다거나 앞서 본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기뻐해야 할지만시지탄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명박산성에 이은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차벽   ⓒ 사진 / 한겨레

 

12년 동안 소송을 당한 후 피고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전략적 봉쇄소송의 특징은몇 년동안 법정 투쟁을 이어서 겨우겨우 이겼다(원고 패소하더라도 남는 건 거액의 손해배상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정도 뿐이라는 것이다소송이 끝날 때 즈음은 소송의 계기였던 집회에 대한 이슈는 이미 오래전 일이 되어 있는 경우도 다수다승소라고 기뻐하기에는 허무한 판결인 것이다이 소송을 누가 기획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어쨌든 그들은 정부 돈을 써서 이 소송을 진행했다패소해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그러나 결론이 이래서는 곤란하다최소한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내어놓아야 한다.
아마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할 수 있는 일은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세월호 집회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는 일일 것이다이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자임한다국가폭력의 희생자인 쌍용차 노동자들에게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계속 하면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촛불정권이라고 스스로 부르기 위해서는 그에 부합하는 결단들이 있어야 한다. 쌍용차, 세월호 집회에 대한 손해배상을 유지하는 이 정권은 촛불정권인가.

 

※ 희망법 서선영 변호사는 이 사건 피고측 공동대리인으로 참여했습니다
ⓒ 사진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