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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소식] 헌법재판소, 낙태죄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 중 ‘의사’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하였습니다. 여성의 기본권 침해를 종식시키고, 성재생산건강을 보장할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결정입니다.
희망법 류민희, 최현정 변호사도 청구인 대리인단에 참여하였습니다. 두 변호사의 변론 후기를 전합니다.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직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활동가들 및 시민들이 헌재의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성과재생산포럼

 

함께 한 발을 내딛다 / 류민희 변호사

 

희망법은 2016년부터 장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소수자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정치에 개입하며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성과재생산포럼의 여러 활동가, 연구자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2017헌바127’ 사건이라는 사건번호로 일컬어지는 낙태죄 위헌소원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연과 필연이 겹친 과정 동안 낙태죄 폐지, 그리고 그 너머를 바라보며 모든 이들의 성과 재생산 권리의 보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처음’을 고대하며 보낸 몇 년이 좋은 결과로 돌아와 기쁜 마음입니다.

낙태죄 위헌소원의 7명의 대리인단은 사건이 가지는 역사적 무게와 있을 수 있는 실패의 부담감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논리적 주장과 충분한 증거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변론과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법적으로 정당화된 적이 없다는 신념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 확신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와 유엔을 포함한 해외에서의 지지 목소리도 저희의 확신을 강화해주었습니다.

 

▶ 휴먼라이츠워치, “한국: 낙태 비범죄화 필요”

▶ 유엔 여성차별철폐실무그룹,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위헌성에 관한 의견서 제출

 

저희는 공개변론을 경유하며 진행되는 사회적 대화의 시간 동안 점점 나아지는 공론의 수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대리인단도 이 조항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성과재생산포럼의 일원으로 단행본 <배틀그라운드>를 출간하며 더 많은 대중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때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도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 도서 배틀그라운드 

 

3월 30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주최한 시위 때는 날이 궂었습니다. 수많은 단체들의 깃발이 휘청일 정도로 센 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렸는데 “이것은 길조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쟁의 여정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저희 이렇게 함께 한 발을 내딛었네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축하드립니다.

지난 3월 30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한 류민희 변호사(가운데)와 최현정 변호사(오른쪽)

 

66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 최현정 변호사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예상보다 좋은 위헌의 이유를 들으며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인데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대리인단 모두가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대리인단이 구성된 2017. 8.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공부를 했습니다. 공개변론 날짜가 정해지고 변론요지서를 작성할 때에는 2주에 한 번 꼴로 회의를 하면서 각자 작성해온 초안을 수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의 낙태 관련 자료들은 대부분 검토한 것 같습니다. 2000년 전후의 자료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여성들의 임신중지 경험과 외국 입법례를 정리한 자료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최근 2, 3년 사이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둘러싼 자신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러한 내용들을 변론요지서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 보고서를 작성하셨던 한 교수님은, 유학생일 때 경험한 외국의 낙태 관련 정책이 충격적일 정도로 선진적이서 이를 소개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반향이 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이와 달리 2010년에는 낙태 시술 의사들에 대한 고발과 의사들의 수술 거부로 낙태죄 조항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여성들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정부가 낙태 시술 의사들에 대한 행정제재를 강화하고자 하여 이에 반발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발족하여 집회, 증언, 릴레이 1인 시위 등 다양한 방식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 운동의 뒷받침 없이는 소수자의 경험이 중요한 논의 주제로 인식되거나 지식으로 축적되기 어렵다는 것을, 자료들을 보며 새삼 느꼈습니다.

 

마치 여성들의 경험, 고민, 증언, 운동의 언어와 광범위하고 심도 깊게 이루어진 연구 자료들을 한 걸음씩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던, 변론요지서를 작성할 때의 그 벅차오르던 마음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국 사회가 지난 66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향후 관련 입법이 더 중요하지만 일단 이 지면에서는, 오늘의 이 당연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온 모든 분들께 감사와 축하를 전합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기로 되어 있던 4월 11일 아침, 청구인 대리인단 변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관련자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차혜령 변호사의 낙태죄 위헌소원 변론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2020년 말까지 법 개정하라” (한겨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