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소식]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자살 아닌 업무상 재해 인정

[승소소식]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자살 아닌 업무상 재해 인정

지난 8월 14일, 법원은 조선소에서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1심과 달리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목격자가 없거나 증거를 준비하기 쉽지 않아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법원이 합리적인 사고 개연성을 바탕으로 산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입니다. (사진출처 /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

 

2014년 4월,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사망

 

2015. 3. 10. 본 사건 관련 국회기자회견 (사진출처: 노동건강연대)

 

2014년 4월, 현대중공업 조선소 선행도장부에서 샌딩 작업 중이었던 하청노동자(이하 ‘망인’)가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사망 당시 목격자가 없었던 탓에 망인의 사망원인이 자살이라는 소문이 현장에 퍼지더니 결국 울산동부경찰서는 사고의 정황과 망인의 평소 언행에 비추어 자살로 판단할 근거가 없었음에도 망인이 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리고 내사종결 처리했습니다.

위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유족들은 수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현대중공업 공장과 울산동부경찰서, 울산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6개월간 진행하며 정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사결과에 대한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해 국정감사에서 본 사건이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울산지방경찰청이 재수사를 실시했으나 마찬가지로 망인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결론 내렸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1심 판결 

이후 망인의 배우자인 이 사건의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는 점을 전제로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지급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위 수사결과를 근거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유족들에게 유족급여 지급청구를 거부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위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망인의 사고 가능성이 추정되지 않고, 망인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결론내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오류나 의문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7. 12. 7. 선고 2015구합82563 판결).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

그렇지만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5행정부(재판장 배광국)은 2019. 8. 14.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망인이 샌딩기 리모콘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샌딩기에서 분사된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는 사고를 당하였고, 그로인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다리를 통해 내려가려다 바닥에 사려놓은 에어호스에 몸이 감겼고 이후 실족하는 과정에서 호스가 목에 매여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함에도 이를 달리 판단한 1심의 판결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9. 8. 14. 선고 2018누301090 판결).

구체적으로 항소심 법원은 ① 망인의 샌딩기 리모콘이 전선 접촉에 의해 의도치 않게 작동할 수 있었던 점 ② 망인 착용하고 있었던 방진마스크 오른쪽 필터가 훼손되고 망인의 얼굴과 목 부위에 쇳가루가 묻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망인이 리모콘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샌딩기에서 분사되는 쇳가루에 맞았고 이것이 눈에 들어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망인은 눈에 들어간 쇳가루 때문에 시야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작업장 밖으로 나가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외부 비계를 통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놓인 에어호스가 몸에 감겼고, 그러한 상태에서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려던 망인이 실족하면서 몸에 감겨있던 호스가 위쪽으로 당겨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항소심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한 망인의 자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① 사고가 일어난 곳은 망인의 작업구역에서 떨어진 동료의 작업구역인데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굳이 타인의 작업구역까지 이동할 이유가 없는 점 ② 망인이 사고 발생 전날까지도 배우자인 원고와 통화를 하고 사고 당일에도 동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등 자살의 동기가 확인되지 않고 관련 전문가 의견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점 ③ 눈에 쇳가루가 들어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높이를 가늠하여 목을 매기는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추어, 망인이 자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계기로

이번 판결에서 항소심 법원은 직·간접적인 정황 및 객관적 자료 등을 근거로 망인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하였을 개연성을 인정하고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였지만, 본 사건과 같이 목격자가 없거나 산재를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해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 관계 등에 의거하여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업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할 것’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입증책임의 판례법리가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증 자료가 부족한 노동자가 소송에서 산재로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판결이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이 사건을 계기로 망인과 같은 하청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위험한 작업에 놓이게 되는 ‘위험의 외주화’가 해결되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한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

 

2019. 1. 본 사건 사고 현장 재현 실험 과정

 

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족들은 물론, 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희망법 김동현, 김두나, 박한희 변호사는 금속노조 울산법률원(참여변호사 정기호),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리걸클리닉 센터(센터장 홍대식, 참여교수 이상수)와 함께 대리인단을 구성하여 본 사건을 진행하였고, 대리인단은 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여러 차례 현장 재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각계 전문가(심리학, 의학)들은 의견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판례 조사, 서면 작성 등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진실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