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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소식] 전장연 박경석 활동가, 집시법위반 등 일부 무죄 확정

전장연 박경석 활동가집시법위반 등 일부 무죄 확정

 

최현정

 

지난 12월 2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활동가가 집시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지 3년 만에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유죄 부분에 대한 10여 개월의 징역과 이에 대한 집행유예도 확정되었습니다.

 

검찰은 집시법위반(미신고집회주최), 일반교통방해, 업무방해 등의 형법 규정을 적용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2014년 4월 20일 미신고집회주최 혐의도 포함되었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약 200여 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장애인 시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모였던 날입니다. 그날 모인 이들에게, 경찰은 법률을 어기면서 최루액을 분사했습니다.  (관련 글 보기)

 

검찰은 그 6일 전인 2014년 4월 14일의 기자회견 개최에 대해서도 집시법위반(미신고집회주최)으로 기소했습니다. 3급 뇌병변장애인 송국현 씨가, 당시 장애등급 2급까지만 지원되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혼자 지내다가 화재 사고를 당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날 활동가들은 국민연금공단 앞에 모여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송국현 씨에게 긴급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송국현 씨는 긴급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로부터 사흘 후 새벽에 사망했습니다. (관련 글 보기 – [세상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나머지 공소사실도, 교황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방문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려고 하거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 등에 참여하였다가 주거침입, 일반교통방해 등으로 기소된 것들입니다.

 

전체 7건의 공소사실 중 3건은 무죄, 그보다 많은 4건이 유죄로 확정되었습니다. 희망법은 박경석 활동가를 변호하면서, 공소사실들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평화적 집회이거나 긴급 집회로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벌 조항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여 집회 참가자들을 기소하고 유죄로 판단하는 것은 집회 참가자를 위축시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반대로,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형사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관행은 국제인권기준에도 어긋납니다.

 

일단 기소되면, 집회의 원인이 된 사회적 불평등과 불합리는 단지 양형 사유(정상 참작 사유)로만 고려되기 쉽습니다. 아쉬움이 남아, 박경석 활동가의 최후 진술 전체를 직접 인용합니다. 박경석 활동가가 싸워 온 현실, 집회를 통해 알리고자 한 문제가 무엇인지, 다소 길게 느껴지시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경석 활동가(아래) / ⓒ오마이뉴스

 

* * * * *

 

존경하는 재판관님,

제가 이곳 법정에서 유무죄를 판결받기 전에 재판관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길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재판관님,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 경 서울시 중랑구에 사는 한 아버지가 가족들이 집안을 비운 사이에 혼자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자신의 친자식인 장남을 망치로 뒷통수를 세 번 치고 죽지 않자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새벽에 망치로 맞아 죽은 친자식은 41살의 지적장애 1급인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수십년을 집에서 돌보다가 자신이 늙고 병들어 이제 죽을 때가 다되었는데, 자신이 죽고 나면 그 처와 둘째 아들이 그 장애인 아들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심히 부담이 될까봐, 그 아버지는 그 장남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버지는 죽지 않고 재판을 받게 되어 가족들의 선처와 안타까운 사연이 참작되어 그 아버지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2016년 11월 20일, 전주에서 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목졸라 죽였습니다.
2016년 11월 23일, 경기도 여주에서 또다시 한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목졸라 죽였습니다.

3일 만에 그 부모가 장애인 자녀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은 이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시나브로 그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의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그 부모와 가족들에게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선택한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부모가 살인자일까요. 저는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조차 죽임을 당하는 중증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2001년에 장애인들이 ‘공간이동’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시민들과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 리듬도 경쾌하고 그 당시 유행했던 ‘랩’리듬도 있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의 랩부분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내 모습 지옥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받아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위선 속에 동정 받는 병신인줄아나!
닥쳐 닥쳐라, 우린 병신이 아냐!!”

그 당시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장애인인구의 70.5%가 한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고, 거리의 턱 때문에, 그리고 혼자서 움질 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사회 전체가 장애인들에게 감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버스도 같이 탈 수 있도록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을 만들어서 제3조에 (이동권)이라는 권리를 명시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제3조 (이동권) ;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있습니다.

그 법은 2001년에 장애인이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4년을 싸워서 2005년 1월 27일에 제정이 되었던 법입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고속버스, 시외버스, 마을버스는 장애인들이 한 대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법에는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했지만, 버스사업자나 국가는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동서울버스터미널에 고속버스 차표를 끊고 매번 명절 때마다 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싶어 버스표를 끊고 고속버스를 타러간 것입니다. 그것이 집회가 되어 불법집회라 검찰이 기소한 것입니다.

검찰의 기소가 백번 맞다고 해도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중증장애인들도 평등하게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없이 안전하게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이동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동권. 재판관님 그것을 함께 지켜주시기 간곡히 바랍니다.

중증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중에 45%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70명이 넘는 중증장애인이 학령기에 마땅히 초등학교를 다녔어야 하는데 장애 때문에 받지 못해서 지금 함께 밤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완전하게 통합하여 함께 참여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원합니다.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늦은 나이에 장애인을 수용하는 거주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위해 탈출하여 나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밤에 시설에서 기어서 탈출해 나와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공부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수용하는 거주시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곳이 바로 ‘꽃동네’입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신다 했을 때 저희들은 많이 기뻤습니다. 세월호 광장에 유가족들을 만나서 위로한다는 뉴스를 보며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 ‘꽃동네’를 방문하신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장애가 심한 중증장애인도 수용중심의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있도록 정부에게 주택도 요구하고, 활동보조서비스 시간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서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확대하라는 탈시설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소식은 우리의 눈앞을 캄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명동성당을 찾아가 교황님께서 장애인을 수용하는 대표적인 꽃동네를 찾아가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크고 힘이 있는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꽃동네를 간다는 것의 의미는 한국에서 탈시설운동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큰 절망을,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정부에게는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데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 심히 우려되었습니다. 그래서 명동성당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동성당에서 우리를 막아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교회가 힘없는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포용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 우리들의 잘못이었나 봅니다. 명동성당에 들어가려다 갑자기 일어난 불상사에 대하여 명동성당에 깊이 사과를 드렸고 지금도 사과를 드립니다.

우리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 저에게 이른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개새끼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학생은 35년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고 노들야학을 다니면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집구석에서만 있었고, 부모님들이 직장에 나갈 때면 그에게 ‘밥 먹어라. 집 잘 봐라’며 나갔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면 ‘밥 먹었냐. 집 잘 봤냐’며 한 말이 그가 들은 말이었다 합니다. 동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구석방으로 비켜서 혼자 지내야 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개새끼’라 여겼답니다. 집만 지키는 ‘개새끼’말입니다.

재판장님,
그 부모에게 맞아 죽어야 했던 그 자식들의 처참한 현실과, 자신을 ‘개새끼’라 생각하는 우리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의 피눈물 고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헌법 제11조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진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 진실을 재판관님께서 지켜주시고 증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들은 방구석과 시설에서 쓸모 없는 폐기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부담스러워 그 자식을 죽였습니다. 그 자식을 집구석에 개새끼처럼 묶어 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담스러우면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로 보내버렸습니다.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것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에는 중증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헌법은, 법은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되어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재판관님,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참여했던 그 모든 집회와 시위는 중증장애인들이 이 세상에서 ‘폐기물’로 처분당하지 않기 위한 그 누구도 제대로 듣지 않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차별없이 참여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 * * *

 

그나마 법원이 일부라도 박경석 활동가의 ‘목소리를 듣고’ 집행유예를 판결하여 다행입니다.

박경석 활동가가 앞으로도 오래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희망법도 함께하겠습니다.

 

1심 변론종결 후 박경석 활동가(가운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