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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별표현 차별적인 문화재청 가이드라인 개선

성별표현 차별적인 문화재청 가이드라인 개선

문화재청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 대한 국가인권위 진정 변론기

 

박한희

 

국가인권위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은 성별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

2019년 4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자는 치마한복, 남자는 바지한복을 입어야만 고궁 및 종묘 관람료를 면제하는 문화재청의 「궁·능 한복착용자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은 성별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문화재청장에게 성별표현을 이유로 생물학적 성별과 맞지 않는 복장을 한 사람이 제외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 동안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라는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 옷차림을 요구하여 다양한 성별표현을 제한해 온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이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위 결정이 있고나서 2019년 7월 1일 문화재청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수용하여, 성별에 무관하게 한복을 착용한 사람은 누구나 무료관람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개정했습니다. 2016년 성별에 맞는 한복착용을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지 3년 만에 나온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부터 문화재청 가이드라인 개정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들을 순서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자는 치마한복, 남자는 바지한복가이드라인 제정

2013년 문화재청은 「궁·능원 및 유적관람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한복을 입은 사람에 대해서는 고궁, 종묘 등의 관람료를 면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개정이유로 문화재청은 전통한복 착용을 진흥하고 한복의 대중화, 세계화를 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실제로 위 규정 개정 이후 한복을 입고 고궁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한복을 입고 관람을 즐기는 등 여러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6. 9. 21. 문화재청은 갑자기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남자는 저고리에 바지, 여자는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경우만 무료관람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문화재청이 밝힌 가이드라인 제정 이유는 남녀가 서로 한복을 바꿔 입고 오는 것에 민원이 제기되었고, 성별에 맞지 않는 한복을 입는 것이 전통을 왜곡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만 전통이 지켜진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로 경복궁 앞에서 가이드라인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기자회견들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완고했습니다. 언론들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2017년 1월 1일 문화재청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궁궐의 품격에 어울리는 한복을 권장”한다는 문구를 넣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문화재청의 경직된 가이드라인 앞에서, 커플끼리 서로 한복을 바꿔 입은 사람들,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적성별과 다른 한복을 입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성별표현의 하나로 바지 한복을 입은 여성 등 여러 사람들이 고궁 입구에서 한차례 제지당하고 당황하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리 직원이 입장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성별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모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경복궁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문화재청 가이드라인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제기

2017년 10월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로 하나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바지 한복을 입고 고궁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한 한 여성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변 내에서도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걸 계기로 보다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와 소수자인권위원회 구성원들로 공동대리인단이 구성되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준비하였습니다. 희망법에서는 김두나, 김재왕, 박한희 변호사가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으로 공동대리인단에 참여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은 인권위를 통해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받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문제를 널리 알리고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공동대리인단은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의 구체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진정서를 준비함과 동시에 이 문제를 어떻게 좀 더 공론화할지에 대해 많은 궁리를 했고, 논의 결과 진정인을 공개 모집하여 집단 진정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1) 개인의 취향에 따라 2) 표현의 자유를 위해 3) 성별정체성에 맞는 한복을 입고 싶은 등 다양한 이유로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을 차별, 인권침해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집했고, 총 97명의 진정인이 모집되었습니다. 짧은 모집기간에도 100명 가까운 진정인이 모인 것은 그만큼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의 개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후 공동대리인단은 각자 역할을 나눠 진정서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진정을 준비하며 대리인단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은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전통수호라는 논리의 허구성입니다. 문화재청이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주된 목적은 전통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중해야 할 전통은 과거에 박제된 무언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해석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인권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점차 타파해 나가는 이 시대에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라는 것은 더 이상 확고한 전통으로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이 성별, 성별표현,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는 점입니다.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은 성별에 맞는 한복이라는 이름 아래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옷차림만을 전통, 궁궐의 품격에 맞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이분법에 맞지 않는 성별표현,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은 잘못된, 비정상적이라는 낙인을 씌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셋째는 문화재정 가이드라인이 표현의 자유, 문화향유권을 침해한다는 점입니다. 가이드라인은 얼핏 보면 한복을 입은 사람에게 관람료를 면제해주는 우대를 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문화재청은 2013년 규정을 개정해 한복착용자가 무료관람을 하도록 보장했음에도 가이드라인으로 ‘성별에 맞는 한복 착용’이라는 조건을 정해 특정 사람들을 배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은 성별에 맞는 한복을 착용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침해하는 침익적 규정이라 할 것입니다.

 

공동대리인인단은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치며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준비했고 최종적으로 2017. 12. 19. 경복궁 앞에서 진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 ‘경복궁에서 덕수궁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은 재판과는 달리 변론 등을 통한 방청기회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진정 제기와 더불어 하는 기자회견은 시민들에게 사건의 문제점과 우리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공동대리인단은 발언자들을 섭외하고 취재요청서를 돌리며 열심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기자회견 참석자 전원이 자신의 외관, 법적 성별 등과 다른 한복을 착용하고 실제 궁궐에 입장을 시도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017년 12월 19일 기자회견 당일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준비를 다한 공동대리인단은 당황스러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19일은 화요일로 경복궁이 휴관이었던 것인데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으나 일정을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경복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광화문 광장을 지나 덕수궁에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열리지 않는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자유롭게 한복을 입은 기자회견은 너무나 좋은 그림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황진이 복장을 한 김재왕 변호사는 모든 기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7년 12월 19일 경복궁 앞 기자회견 모습 ⓒ한겨레

 

그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덕수궁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면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멋있다고 지지해주는 속에서 힘을 얻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에 도착해 대한문을 지나려 하니 아니나 다를까 ‘성별에 맞지 않는 한복’을 입었기에 입장료를 요구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참가자 중 한명은 머리가 짧고 목소리가 다소 낮은 여성분이었는데 바지한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무료입장이 되었습니다. 바지한복을 입은 트랜스젠더여성 참가자의 경우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법적성별이 남성임을 알려주자 또 무료입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체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이 말하는 성별이 무엇인지, 외관과 법률, 생물학적 중 어떤 것을 국가가 자의적으로 성별이라고 취급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는 좋은 결정이 나오도록 기다리면서 인권위와 계속 소통을 하는 일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시정권고와 가이드라인 개정

진정으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2019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이 성별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성별에 부합하는 복장을 하는 것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일반규범으로 인정되기 어려운데다가 그 전통으로서의 가치가 피해자의 평등권을 제한해야 할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고 인정되기 어렵다”고 설시했습니다. 진정인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점이 상당부분 반영된 만족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위 결정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1일 드디어 가이드라인이 개정되어 성별에 무관하게 한복을 입은 사람 누구나 무료관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권위 진정 등을 통한 꾸준한 문제제기가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공동대리인단 및 진정에 참여한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개선이 있기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시민들 모두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2019년 10월 19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한 평등행진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갔습니다. 당시 트럭위에 타고 있던 저는 광화문 앞을 오고 가는 다양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 사회의 차별이 조금이나마 개선된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의미를 잘 간직하면서 앞으로도 희망법은 사회 속의 차별적인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기 위한 활동들에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