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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 관행에 경종을 울린 법원 판단을 환영한다

*사진:오마이뉴스

지난 13일 대법원은, 민주노총이 2013년 5월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노동절 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후 양방향 6개 차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원에 기소되었던 K씨에 대해 무죄라고 최종적으로 판결했습니다.

집회 현장에는 늘 경찰이 수많은 카메라나 영상장비를 동원해 ‘채증’이라는 것을 합니다. 촬영된 사진 등은 집회참가자를 손쉽게 기소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어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사실 ‘행진’은 집회에서 아주 당연하다고 할 정도로 기본적인 집회의 방식입니다. 이번 촛불집회 기간 동안에도 행진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경찰은 채증을 통해 시민들의 집회와 행진을 억압해왔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채증으로 확보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해야만 하며, 채증 요건을 명확히 적용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재확인 한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합니다.

 

 ….. 논 평 …..

 

집회 채증 사진의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평

 

대법원이 집회 채증 사진의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판결을 내놨다. 4월 13일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우리는 집회 채증 사진의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피고인 김랑희씨는 민주노총이 2013년 5월 1일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노동절 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후 다른 집회 참가자 1500명과 함께 프라자호텔 앞 양방향 6개 전차로를 점거하여 차량 통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2014년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되자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을 받아 왔다.

 

앞서 지난 1월 19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제9형사부(재판장 이헌숙)는 채증사진 파일 및 파일을 출력한 사진이 원본 파일에 저장된 내용과 동일성을 유지하며 존재한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고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이 증거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된 문건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특히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을 대신하여 디지털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하드카피’, ‘이미징’한 매체로부터 문건이 출력되는 경우에는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이미징’한 매체 사이에 자료의 동일성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도7257 판결 등). 이어 재판부는 서울청 수사과로부터 내사지시를 받은 경찰관 김00이 원본 파일이 아닌 원본 파일이 복사되어 있는 CD를 송부받았는데 원본 파일을 CD로 복사하는 과정이나 CD에서 컴퓨터로 복사하는 과정에서 해쉬(Hash)값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동일성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CD의 사진파일에 이미 피고인이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어 일부 편집작업을 거친 이후의 것으로 보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모든 디지털 파일은 편집 프로그램 등에 의하여 흔적 없이 편집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채증사진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1심 판결에서도 채증사진의 증거능력은 부정되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노서영 판사는 “원촬영자가 불분명한 이 사건에서 이 사진파일의 촬영일시 정보와 실제 촬영한 일시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다. … 이 사건 사진파일에 해시값을 추출한다거나 봉인을 하는 등의 디지털 증거의 무결성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제출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는 채증 사진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누가 촬영했는지도 불분명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었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최00은 자신이 사진을 직접 채증했고 파일 이름에 자신의 이니셜을 넣기 때문에 자신이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 채증 사진 파일에는 다른 이니셜이 붙어 있었다. 서울청은 사실조회회보서를 통해 채증자가 경찰 김00이라고 밝혔지만, 김00은 법정에서 “그 날 잠시 자리를 비우면서 최00에게 촬영기기를 맡겼다고 (증인신문 기일 즈음에 최00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최00에게 빌려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사진기를 맡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노 판사는 “최00 증언 당시 그러한 진술을 한 바 없는데다가 본인이 소지하던 사진기를 두고 타인의 것을 빌려서 채증을 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집회에 대한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 및 증거능력에 대해 엄격한 판단을 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흔히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차로에서 촬영된 채증 사진만 있으면 형법 일반교통방해죄 등을 적용하여 수사·기소한다. 법원은 채증 사진의 증거능력에 대한 엄격한 판단 없이 원본과의 동일성이 입증되지 않는 사본도 손쉽게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였다. 유죄의 입증은 엄격한 증명에 의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찾기 어려웠다.

 

집회 현장에서의 무분별한 채증은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라는 것은 시민들이 통행하고 모이는 공간인 광장·도로에서의 집단적 의사표현, 행진 등을 전형적인 모습으로 하고 있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이런 행진 등을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 행사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라는, 사실상 전혀 다른 취지로 규정된 죄명을 마구 활용해서 ‘행진’이라는 집회의 본질을 범죄화하고 있다. 일반교통방해죄 적용이라는 방향을 잃은 칼질에 의해 헌법이 국가의 최상위규범이라는 원칙은 한낱 농담거리가 되어 버린다.

 

집회에서의 무분별한 채증은 이런 위헌적인 일반교통방해죄의 적용과 결합하여 집회 참가자를 범죄화하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집회에 참가해서 채증자료가 남은 사람은 누구도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되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집회의 자유는…국가가 개인의 집회참가행위를 감시하고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집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자로 하여금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미리 집회참가를 포기하도록 집회참가의사를 약화시키는 것 등 집회의 자유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치를 금지한다”고 선언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00헌바67·83(병합)) 문언 속에 있는 ‘감시’, ‘정보수집’, ‘불이익’ 이런 모든 위험이 집회 현장의 채증 속에 들어가 있다.

 

2015년 1월 경찰은 “채증활동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채증의 정의를 고쳐 종래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규정되어 있던 채증 요건을 “불법행위 또는 이와 밀접한 행위”로 고친 정도에 불과했다. 여전히 채증 요건이 모호하다보니 무분별한 채증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경찰청이 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 채증 건수는 △2011년 3417건 △2012년 4003건 △2013년 5324건 △2014년 4170건을 기록하다가 채증활동규칙이 개정된 2015년에는 10863건으로 오히려 폭증했다.

 

아직 한국은 집회가 감시받는 사회이다. 그러한 감시가 ‘일반교통방해죄’라는 형법 규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경찰 채증자료에 대해 쉽게 증거능력을 인정해버리면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는 설 곳이 없다. 이 판결을 계기로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자료가 마구 사용되는 관행이 통제되길 바란다.

 

2017424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