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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강제적으로 잡고 가두는 것이 이렇게도 쉬운 나라

글. 서선영

아직 21세기가 되기 전,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현행범인 체포의 요건으로는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외에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것을 요한다”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도3029 판결)

그리고 위 대법원 판결로부터 13년이 지난 2012년 6월.

양평군에서 수년 동안 환경미화업무를 담당하다가 올해 4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군청 앞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집회 전에 미리 면담을 신청한 집회참가자들은 군수를 만나고자 군수실로 향했고, 100여명이 넘는 경찰이 이를 막았습니다. 그 와중에 들어가고자 하는 참가자들과 이를 막는 경찰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집회 참가자중 일부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집회 대열에 있던 한명이 경찰에 끌려 나왔습니다. 곧바로 경찰에 의해 자빠트려져서 얼굴은 바닥에 처박히고 양손은 허리 뒤쪽으로 결박당하면서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경찰서장이 직접 현장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장은 없었습니다.

수갑이 채워진 사람은 그 지역에서 환경미화원을 수년동안 한 사람이었고 좁은 지역사회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 경찰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이 조사를 위해 오라고 하면 당연히 출석을 하려고 했었고 다른 사유로 출석요구를 받았을 때에도 출석일자를 협의한 상태였습니다.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체포였습니다.

                                    출처 : http://www.sxc.hu

몇일뒤 불법체포에 대해 항의하며 경찰 담당자와 면담을 요청했고 만났습니다. 불법체포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공권력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신체의 강제를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공적 목적을 위해 국가에게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적 목적을 위해 강제력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법률이 정한 엄격한 요건 하에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요구입니다. 만약 법관의 영장을 기다려서는 실효적 집행이 되지 않을 예외적 경우에만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하며(현행범체포, 긴급체포) 이 경우에도 체포의 필요성(증거인멸 또는 도망의 우려)이 있을 때에만 적법한 공권력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집회현장에서는 영장 없는 체포가 예외가 아니라 원칙처럼 행해지는 주객전도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의 불법체포에 항의하면 “나중에 고소하시던지”라는 답변을 듣는 것 또한 일상입니다. ‘막체포’입니다. 사람을 잡고 가두는 것이 이렇게도 쉽게 행해질 수 있는지 답답하고 억울합니다.

지난주 형사변론을 위해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 활동으로 21명이 공동으로 기소된 사건인데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었습니다. 몇 일전에는 어머님을 모시고 강정에 살면서 마늘밭을 가꾸는 주민도 현행범으로 무영장 체포되었습니다. 현행범 체포를 위해서는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경찰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원칙은 경찰에게 ‘부존재’하는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2년간 500여명이 연행, 즉 현행범 체포되었습니다.1 이 중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지요.

지금도 강정에서는 거의 매주 현행범체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연행건수가 쌓이는 것만큼 경찰의 불법행위 건수도 비례해서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법집행이 불법을 당연히 수반하는 형국입니다. 이를 두고 ‘엄정한 법집행’이라 이름붙이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강변하는 공권력의 언어는 파렴치합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는 환경미화원들에 대한 불법체포건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의 불법성이 확인되고 피해자가 반드시 배상을 받아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런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37조(현행범인의 체포) ③ 사법경찰관리가 현행범인을 체포하거나 현행범인을 인도받았을 때에는 특히 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신중을 하여야 하며, 별지 제36호 서식의 현행범인 체포원부에 그 내용을 적어야 한다.

<판례>

1. 현행범인 체포의 요건으로서는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외에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것을 요한다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도3029 판결)

2. 피고인이 경찰관의 불심검문에 응하여 이미 운전면허증을 교부한 상태이고, 경찰관뿐 아니라 인근 주민도 욕설을 직접 들었으므로,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의 모욕 범행은 불심검문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일시적, 우발적인 행위로서 사안 자체가 경미할 뿐 아니라, 피해자인 경찰관이 범행현장에서 즉시 범인을 체포할 급박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경찰관이 피고인을 체포한 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이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가한 것은 불법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3682 판결)

3. 원고에 대한 현행범 체포 당시 체포의 필요성이 있었는가에 관하여 살피건대, 현행범을 체포함에 있어 체포의 필요성이 필요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고, ..변론 전체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건 사고 현장에서 폭행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관하여 상반된 진술은 없었던 사실, 원고는 주거가 분명하고, 이 사건 사고 당시 현장에는 많은 행인들이 지켜보고 있어 사건 관련자들 모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상황이 아니었고, 누구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행태를 보이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원고에 대한 체포의 필요성이 있었다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피고들은 공동으로 원고에게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한 자로서, 피고 대한민국은 위 피고들의 사용자로서, 부진정연대하여 원고에게 위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0. 9. 30. 선고 2010가단25432 판결)

1)강정마을 2년간 500여명 연행…재판·벌금에 강정은 지금 ‘피눈물’, <제주의 소리> 2012. 8. 17. “2010년 이후 해군기지와 관련해 체포된 인원만 492명에 이른다. 이중 절반이상인 260여명은 2012년 이후 8개월 만에 연행된 인원들이다.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될수록 연행되는 주민과 활동가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