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레인보우 타이페이 – 대만 LGBT 인권단체 방문기

 

글 류민희

 

 

 

저는 지난 10월 23일부터 28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하여 제11회 타이페이 프라이드에 참가하고 Tongzhi(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TAPCPR(台灣伴侶權益推動聯盟), ISTScare(台灣性別不明關懷協會) 등 대만 LGBT 인권단체들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원래 이번 대만 행은 한국의 퀴어문화축제(Korean Queer Culture Festival) 기획단에서 휴식과 대만 프라이드 참가를 겸한 여정으로 기획하신 것인데, 별도로 대만에 사적으로 방문을 고려하고 있던 제가 일부 일정에 동행하였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도 함께 했습니다. 그때그때 한국 상황과 비교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여행동무들이 있어서 더욱 즐거운 방문이었습니다. 대만에서는 한국에서 10명 남짓의 대형 방문단이 와서 상당히 반가워했습니다.

 

 

Tongzhi(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방문

http://hotline.org.tw/

 

 

 

통츠라고 발음되는 Tongzhi(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영문명 Taiwan Tongzhi Hotline Association, TTHA)는 1998년 창립된 단체로 2000년 처음으로 정부에 등록된 LGBT단체가 되었습니다. 7명의 상근자와 1명의 반상근자, 250여명의 자원활동가가 일하는 상당히 큰 조직입니다.

 

Tongzhi가 주로 하는 일은  매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상담전화 핫라인을 운영하고(정체성, 친밀관계, 가정폭력 등 다양), LGBT 가족 상담, AIDS 예방, 중장년층 LGBT 대상 프로그램, (타이페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부 지부 활동, 문화 출판, 인권옹호, 사회운동(다른 LGBT,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ILGA 등의 국제연대 등), 그 밖의 조직행정(자원활동가 교육, 연간 펀드레이징, 홈페이지 관리) 등입니다. 정체성 고민의 아주 초기단계부터 당사자, 가족을 아우르는 범커뮤니티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지점부터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소통이 유지되어 후원으로까지 이어지는 강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Tongzhi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에 나가는 성평등교육입니다. 대만은 2004년 제정된 성별평등교육법(性別平等教育法)에 기하여 각급 학교에서 성별평등교육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범주 안에는, 예를 들면 반성폭력 교육도 할 수 있겠지만 LGBT 인권교육 또한 가능합니다. Tongzhi는 각 학교에 접촉하여 최대한 많은 현장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점점 자신들의 강의를 받아들이는 학교와 교사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에서도 이 강의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교육에서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한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500여번의 학교 현장에서 3만여명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강의는 Tongzhi가 교육하는 자원활동가들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당사자이고 가능하면 2-3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서 간다고 하네요.

 

 

연 운영비의 60%에 해당하는 기금을 1년 2회 하는 후원파티에서 마련한다고 합니다. 이 후원파티에는 무려 1,500여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하네요. 재원의 20%는 큰 단체에서부터 오는 기금, 10%는 정부복권기금으로부터 충당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대만 정치상황과 문화, 심지어 K-Pop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한국 보이밴드와 그 패션을 보고 한국이 게이 친화적일 거라고 생각했다는군요. 🙂 ). Chih-Liu Peng 활동가, Sih-Cheng Du 활동가, Amy 활동가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Amy 활동가가 들고 있는 것이 후원행사 포스터

 

Tongzhi 사무실

 

 

왠지 익숙한 사무실 풍경

 

 

TAPCPR(台灣伴侶權益推動聯盟)
http://tapcpr.wordpress.com/

 

TAPCPR은 동성파트너십권리단체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오전에 TAPCPR은 동성결혼이 포함된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는 등 최근 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3년간의 준비의 첫 번째 결실을 보는 이 바쁜 와중에서도 저희를 환대해준 회장 Victoria Hsu 변호사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빅토리아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입법 노력에 대해 다음와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단체는 소송과 입법 노력 중 후자를 선택하였다. 전자로는 개별적인 원고들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진행한 하위법원 사건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다(We cannot control them). 나에게 소송을 대리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는데 입법에 전념하기 위하여 모두 거절하였다. 물론 이 중 어떤 사건이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가게 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소송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할 것이다. (질문: 헌법재판소에 올리는 결정은 누가 하는가?) 우리가 할 수는 없다. 개별 원고들이 아마 할 것이다(필자 주 : 이미 입법적 노력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소 제기와 상소를 통한 적극적인 소송 시도가 많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입법적 노력을 선택한 이유는 ① 15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보수적인 편이고 우리는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다 ② 소송의 형태로 이야기하고 결정될 수 있는 쟁점은 아주 좁다는 점이다.”

 

“우리의 법안은 3년간의 연구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10여 개국의 결혼/파트너쉽법을 조항별로 분석하였다. 법안은 별도로 3가지이다. ① 평등결혼(동성결혼이 포함된) ② 반려자권리(파트너쉽권리) ③ 비혈연, 선택의 가족”

 

“평등결혼 – 결혼이 아닌 파트너쉽권리는 2등 결혼이 될 수 밖에 없다

파트너쉽제 – 경직된 결혼 제도애 대한 선택. 진입과 해소가 유연한 대신, 권리와 의무도 약함

가족의 다양성 – (성애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으나) 실제 생활을 같이 하고 돌봄노동을 하는 실제 가족들. 가족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

 

“파트너쉽제은 여성운동계,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다.”

 

“법이 통과되는 것은 궁극적 목표는 아니고 입법운동을 통해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 차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TAPCPR은 3년의 준비를 거쳐 10여개 국의 동성결혼/파트너십 법제를 연구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3가지 법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물론 통과가능성 자체는 높지 않으나, 이 과정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인사를 서로 나누며 TAPCPR을 나왔습니다. 빅토리아 변호사도 한국의 ‘gay movie director’ 케이스의 향방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TAPCPR의 3가지 민법 개정안 전문 소개(pdf 포맷)

1. 평등한 결혼 (동성결혼을 포함)
2. 파트너쉽권리
3. 비혈연, 선택에 의한 가족구성권

 

아시아타임즈 – 대만 제1야당 민진당 23명의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발의된 동성결혼이 포함된 민법 개정안 소식
http://www.atimes.com/atimes/China/CHIN-02-311013.html

 

TAPCPR 회장 Victoria Hsu 변호사)왼쪽)와의 대화

한국 방문단과 함께

TAPCPR의 세 가지 법안 소개 동영상

 

 

 

ISTScare(台灣性別不明關懷協會)
http://www.istscare.org/

ISTScare는 3년전 만들어진 대만의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의 권익과 인권 증진을 위한 단체입니다. 아직은 상근자도 사무실도 없는 작은 단체이지만 굵직굵직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내무부의 훈령 같은 형태의 지침에 근거하여 성별변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ISTScare는 생식능력제거 요건(즉, 수술 요건) 같은 강제불임이 신체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므로 폐지를 주장하는 온라인 청원도 벌인 바 있습니다.

기사 http://groundreport.com/istscare-taiwanese-laws-should-not-require-surgery-to-change-sex/

온라인 청원 링크

 

ISTScare의 두 MTF 활동가 Abby와 Ziyi는 (아마도) 대만에서 유일하게 법적 결혼을 한 여성 커플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성별변경 시기를 조정하여, 법적으로 이성 커플이었을 때 혼인 신고를 했고, 그 후 나머지 한 사람도 성별변경을 마쳤습니다. 대만 당국은 처음에는 혼인 신고를 무효화하려 했으나 그 결정을 결국 철회하였습니다. 동성혼 가능성에 대해서 대만의 법이 어떠한 수용성이 있는지 시작해본 도전이었는데, 결국 그들의 기대를 넘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com/2013/08/08/taiwan-upholds-transgender-marriage_n_3726493.html

 

그외에도 우리는 수술과 의료계, 트랜스젠더 핫라인, 인터섹스 이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Abby는 한국의 법적 성별변경요건 중 ‘부모 동의’ 요건을 잘 이해할 수 없어 하여 저희는 설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성인인데 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가요?”). 물론 대만도 수술 전에 의사가 사실상 부모의 의견을 구하는 관행이 있어 당사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법률적이거나 공식적인 요건은 아니고, 의료계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의료적 결정은 오롯이 자신이 하여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수술 후에 병원에 항의 방문을 하는 가족들이 많아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의사들이 부모 의견을 구하는 관행이 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므로 Abby는 상당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ISTScare는 별도로 사무실이 없습니다. TAPCPR 사무실에서 단체 플랑카드를 걸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이해를 빨리 못 하자, Abby와 Jiyi가 연대기 순으로 그려준 스토리. 2012. 7. 수술, 2012. 9. Jiyi 성별변경, 2012. 10. 17. 결혼, 2012. 10. 20. Abby 성별변경(이로써 법적여성 2명의 동성혼이 됨)

 

 

늦은 시간에도 열정적으로 단체와 활동 소개를 해준 Abby 활동가

 

 

 

타이페이 프라이드

http://twpride.org

프라이드 퍼레이드, LGBT 퍼레이드, 퀴어 퍼레이드 혹은 자긍심 행진으로도 불리우는 프라이드 행사는 성소수자 문화의 일부입니다. 일반적으로 프라이드는 미국 1969년 6월 28일의 스톤월항쟁을 기념하기 위하여 6월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역 특유의 전통과 유래에 따라 다른 시기에 하기도 합니다. 대만 타이페이의 프라이드 행진은 아시아 최대규모인 7만 여명이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올해 타이페이 프라이드는 10월 26일에 열렸습니다.

 

대만 타이페이 프라이드는 커뮤니티와 운동단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대기업 스폰서 없이도 대규모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으로 유명합니다(물론 LGBT 관련 업소 스폰서는 있습니다).

 

도보로 2시간 걸렸던 행진의 전 구간에서 타이페이 교통경찰의 협조와 대규모 자원봉사단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대만의 대로를 교통 통제 하에 걷는 기분은 짜릿하기까지 했습니다.

 

 

구글 타이완의 사내 모임. 앞에는 Pride, 뒤에는 Google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20여명의 참가단.

 

 

“성별 평등이 학교를 좋게 만든다. 차이를 존중하고 동성애자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피켓팅을 한 고등학생 참가자들 <출처 : 장서연 변호사 페이스북>

 

 

 

공익인권법재단 장서연 변호사와 함께. 레인보우 스티커는 프라이드 기획단의 한국 담당자께서 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남신 강림 트럭. 한국 방문단 바로 뒤 참가단이었습니다.

 

관중으로부터 큰 박수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연신 받았던 한국 방문단의 한국 초청 현수막. 만나요~

 

 

 

기타 일정 – 女書店 Fembooks

http://www.fembooks.com.tw/

 

프라이드가 끝나고 주말 시간을 이용해 타이페이의 페미니스트 서점 Fembooks 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동성결혼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20여명의 국회의원은 대체로 민진당의 여성운동 계열의 의원들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다른 맥락이 있겠지만 최소한 외견적으로 보면 현재 대만은 LGBT운동과 여성운동이 발을 잘 맞추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도 그런 편이라고 올 여름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났던 활동가가 그랬지요.

 

페미니스트 서점을 머리 짧은 톰보이들이 운영하면서 한 코너에는 톰보이 문화의 상징인 압박브라를 판매하는 광경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네요. 아닌가요? 🙂

저는 Fembooks에서 꽤 철지난(?) 2005년작 What’s queer about queer studies를 샀습니다.

 

 

 

주디스 할버스탐, 지넷 윈터슨 책, 압박 브라가 공존하는 페미니스트 서점

 

마치며

 

이번 대만 방문은 제가 하는 일과 한국의 상황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착착 진행시켜 나가는 Victoria Hsu 변호사, 부족한 시간과 자원 속에서 그것을 탓하지 않고 원대한 포부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던 Abby Wu 활동가 등이 기억이 남습니다. 이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받은 느낌은 ‘거침없고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왜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하는 전야인데, 사람들이 피곤해하지 않고 표정이 밝은 걸까?” 이것이 제게 가장 큰 미스테리였습니다. 제가 큰 행사 전날 저녁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외국에서 온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면 은연 중에 여러 번 시계를 쳐다봤을 것 같은데요. 바쁜 시간에 저희를 환대해준 모든 대만 활동가 여러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한국에 오시면 제가 좋은 대접하겠습니다. 🙂

저는 대만 방문을 통해 제가 지금 하는 일을 견주어볼 수 있는 잣대를 발견했고 함께 할 수 있는 국제연대적 기반도 확인했습니다. 짧은 방문 동안 알차게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가면서, 다음 대만에 갔을 때는 우리의 성과물도 자랑스레 펼쳐 보여줄 것을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글_류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