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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아픈 추모가 없기를 – 2018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글 / 한희

 

그림 . TDoR과 트랜스젠더 자긍심 깃발 ⓒ University of Toronto

 

얼마 전인 11월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이었습니다. 1999년부터 매년 기억되고 있는 이 날은, 전 세계에서 혐오와 차별에 희생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고 사람들을 지지하는 날입니다. 한국에서도 2018년 TDOR을 앞두고 17일에 촛불문화제와 행진이 열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왜 ‘추모의 날’이 있어야 할까요?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들은 여럿 있습니다.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6월 ‘자긍심의 달’은 많이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4월 26일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9월 23일 ‘바이섹슈얼 가시화의 날’ 등 여러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서로를 지지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도 2000년부터 시작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3월 31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오래되고 알려진 것은 TDOR이지요. 왜 트랜스젠더는 가시화에 앞서 추모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유럽의 트랜스젠더 단체인 TGEU는 매년 트랜스혐오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희생당한 트랜스젠더는 369명입니다. 이 숫자도 놀랍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그 숫자가 매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로 남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희생자들의 기록을 보면 이 사회를 둘러싼 성별이분법의 구조가 얼마나 공고한지를, 그리고 이러한 차별적 구조가 만드는 트랜스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그림 트랜스젠더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연간 통계 ⓒ TGEU

 

한국은 어떨까요? 위 TGEU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트랜스혐오로 인한 살인 건수는 1건입니다. 2010년 경북 경산시에서 일어난 사건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곧 한국은 트랜스혐오범죄가 거의 없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TGEU가 유럽에 위치해 있기에 발생하는 지역적인 편차를 차치하더라도, 지금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트랜스젠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마주하는 혐오와 폭력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가로막는 억압과 너의 성별을 증명하라는 강요된 시선들이 존재합니다. 또한 제도적 차별들도 있지요. 지나치게 엄격한 성별정정의 요건과 절차, 트랜지션 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미적용, 나아가 차별금지법의 부재. 이러한 일상과 제도적 차별, 혐오로 인하여 떠난 사람들,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못한 사람들. 이처럼 결코 숫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수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너무 무거운 마음을 안겨주지 않았나 합니다. 저 역시 희망법 활동을 하면서 또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있기에 이러한 글을 적으며 조심스러워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TDOR이 존재하고, 우리가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는 것이 단지 개인이 입은 고통만을 기리기 위함이 아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추모란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없어져야 할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 곁을 떠나는 존재들은 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일은 사라질 것도, 사라져야 할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 존재하고, 이 날의 추모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날의 추모가 그저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성별이분법에 기인한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추모의 감정조차 자유롭게 갖지 못하게 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저항하고 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트랜스혐오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거꾸로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혐오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TDOR을, 트랜스젠더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하나로만 이야기될 수 없는 여러 측면이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더 많은 트랜스젠더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드러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아픈’ 추모로 이어지지 않도록, 희망법 역시 혐오와 차별의 구조를 바꿔나가기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우리 곁을 떠나야 했던 친구들에게 추모를,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지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