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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향한 목소리 위축시키는 수사, 즉각 중단해야

글 / 김 두 나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들(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의사’에 관한 부분, 이하 ‘낙태죄 조항’)이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법자에게 2020년 12월 31일까지 위 조항을 개정입법하라는 의무를 부여했습니다(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
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28개 여성·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여러 차례 성명을 발표하여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가 공공의료체계에서 안전하게 보장되려면 기본적으로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정부는 입법 방향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고 의견 수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9월경,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주 수에 따른 처벌조항을 존속시키는 방향을 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는 결국 기존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둔 채, 기간이나 사유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개정안은 헌법재판소 결정취지에 반하여 낙태죄를 사실상 부활시킨다고 볼 수 있는 안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건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안입니다. 이에 모낙폐는 9월 28일과 10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개최한 청와대 앞 기자회견 모습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그런데 위 기자회견 개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맡았던 모낙폐 활동가들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았습니다. 모낙폐가 개최한 기자회견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 위반한 ‘미신고 집회’라면서 위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본 활동가들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낙폐가 개최한 기자회견은 집시법상 사전 신고를 해야 하는 집회가 아니라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과 낙태죄 조항 폐지 의견을 언론을 통해 알리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낙태죄 조항 개정입법 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성들의 경험이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어떤 절차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낙폐는 기자회견으로 입법 방향에 대한 여성들의 입장을 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 기자회견은 아무런 충돌이나 교통방해 없이 없이 짧은 시간 동안 기자들에게 입장을 전달하고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즉, 모낙폐가 개최한 기자회견은 집시법상 사전 신고를 해야 하는 집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당시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참가 인원을 조정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위 기자회견으로 감염병이 확산될 우려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은 무리하게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활동가들을 조사했습니다. 이에 희망법은 활동가들이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혐의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개진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 개정입법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주었지만 국회와 정부가 제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결국 개정입법은 연내 이루어지기 어려워졌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 이후 낙태죄는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며칠 후면 ‘낙태죄’ 없는 2021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할 일은 무리한 수사로 낙태죄 폐지를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수사기관은 당장 낙태죄 폐지 활동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낙태죄’ 없는 2021년을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