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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및 구제, 법·정책 연구, 교육과 연대를 통하여 인권을 옹호하고 실절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변론기> ‘낙태죄’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희망법은 최근 <희망을만드는법 연간보고서 2019>를 발간하며 2019년 한 해 동안의 여러 활동들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와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의미 있는 소송에 대해서는 따로 변론기를 작성하였습니다. 변론기를 통해서 당시의 소송 과정과 소송에 담긴 의미 등이 여러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낙태죄’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낙태죄’ 헌법소원 변론기

글 최현정

 

헌법재판소 “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하여 위헌”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들(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 ‘의사’에 관한 부분, 이하 ‘낙태죄 조항’이라고 합니다)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2012년 결정과 달리, 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입법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2020년 12월 31일을 기한으로 입법자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낙태죄 조항을 잠정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져 66년 동안 존속되어 오던 낙태죄 조항은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조항이 작동하는 현실

낙태죄 조항은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으로 국가가 나서서 피임·불임 시술, 낙태 시술을 지원했던 시기가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2009년 말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몇몇 의사들이 낙태 시술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를 고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낙태죄 조항을 적용하는 것을 일종의 저출산 대책처럼 받아들여, ‘불법’ 낙태 시술 제보를 받는 고발센터를 운하기도 했습니다. 실형이 선고되지 않더라도 의사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낙태 시술을 거부하거나 시술 비용을 올렸습니다. 그 피해는 임신한 여성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전하고,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약물을 구입해 복용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적절한 시기를 놓쳐 뒤늦게 낙태 시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통념과 달리, 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과 결합하여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자보건법은 성폭력으로 인하여 임신했더라도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여성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더라도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24주 이후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굳이 낙태죄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낙태죄 조항의 존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낙태는 엄연히 불법이므로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고, 당연히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의과대학에서는 안전한 임신중지 시술 방법, 최신의 기술들을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상용화되어 있는 안전한 임신중지약물도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송의 시작

이 헌법소원은 희망법이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과는 다소 다르게 시작되었습니다. 희망법은 2015년 장애여성공감이 진행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이 사업에서 만난 활동가, 연구자, 의사들은 페미니즘과 퀴어 운동, 장애 운동 등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권리를 확장하는 운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2016년 초 ‘성과재생산포럼’이라는 연대체를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낙태죄라는 문제의식에서 포럼을 준비하거나, 정부의 정책에 대응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2017년 여름, 류민희 변호사는 낙태죄 조항이 다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낙태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의사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입니다. 몇 사람을 거쳐 청구인에게 직접 연락하였고, 청구인의 동의를 받아 대리인단이 구성되었습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시는 김수정(법무법인 지향), 박수진(법무법인 덕수), 유원정, 이소아(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천지선, 차혜령(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님과 희망법 류민희, 최현정 변호사가 함께했고, 김수정 변호사님께서 단장을 맡아 주셨습니다. 2017년 9월 28일 첫 번째 대리인단 회의가 열렸습니다.

우선 헌법재판소에 추가로 구성한 대리인단의 위임장을 제출하고, 곧이어 변론기일지정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서면 심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공개변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외국의 입법 경향도 달라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낙태죄 폐지 요구가 높아졌으며, 과학기술의 발달 등 지난 심리에서 참작되지 않은 사실들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공개변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결정을 할 때에도 공개변론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공개변론을 결정할지 여부가 불분명했습니다. 대리인단은 일단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변론요지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읽을거리를 사전에 공유하고, 각자 발제를 준비하여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자료구입비와 회의비가 필요했는데, 감사하게도 민변 공익인권변론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공동대리인단

 

변론 준비

2018년 설 연휴 직전, 헌법재판소로부터 공개변론이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긴장도 되었지만 공개변론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개변론 날짜는 5월 24일로 정해졌고, 3월 말까지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변론요지서의 목차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2주에 한 번씩 모여 각자 작성해온 초안을 점검하고 수정하였습니다.

변론요지서를 작성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우선 임신중지 혹은 출산을 둘러싼 여성들의 경험들을 충분히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들은 파트너와의 관계, 자신의 진로, 연령, 장애 유무, 이주 여부, 계급, 건강상태 등 다양한 사회 경제적 조건과 상황 속에서 임신중지 혹은 출산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임신중지와 관련한 최근의 변화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2012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자보건법 개정 수준이 아니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9월 28일에는 여러 단체들의 연대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출범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상상하는 ‘미혼 여성의 낙태’와 달리, 현실에서는 임신 출산을 위해 보조생식기술과 함께 임신중절시술도 자연스러운 재생산 기술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헌법적 기본권으로 ‘재생산권’ 침해를 주장할 것인지도 고민했습니다. 긴 시간 논의 끝에,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 도출 근거가 아직은 법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재생산권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권리들을 나누어 자기결정권, 건강권, 평등권, 신체의 완전성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모성보호를 받을 권리 등에 내용적으로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청구인측 참고인을 결정하기 위해서 긴 시간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낙태죄 헌법소원에서는 젠더법학을 연구하시는 양현아 교수님이 참고인으로 공개변론에서 진술했습니다. 이번에는 건강권 침해를 강조하기 위해 산부인과 전문의 고경심 선생님을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3월 말 청구인측과 법무부측 대리인 정부법무공단은 각각 변론요지서를 제출했습니다. 며칠 뒤 정부법무공단은 청구인측 변론요지서에 대해 반박하는 보충서면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충서면에는 ‘자의에 의한 성교는 임신 가능성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결과인 임신을 가리켜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등의 표현이 있어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분노한 네티즌들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법무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고, 법무부는 공개변론이 끝나고 위 보충서면을 철회하는 서면을 제출했습니다.

 

2018년 7월 7일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 모습 /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헌법재판소에서의 공개변론

처음 경험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내용 상으로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청구인측 모두진술에서 이 사안은 여성의 경험과 관점을 고려해서 심리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심 재판관의 질문은 태아의 생명권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쟁점들을 짚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 개인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청구인이 제기한 다양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고경심 선생님의 참고인 진술이 시작되면서 이런 답답함은 많이 가셨습니다. 고경심 선생님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의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낙태죄 조항의 문제점, 임신중지 및 출산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 최근 보조생식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변화한 출산 실태, 낙태죄 조항이 어떻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며, 어떻게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는지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법무부측 참고인인 정현미 교수님도 현행 낙태죄 조항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이에 재판관이 ‘청구인측 참고인 같다’고 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공개변론이 끝난 후에도 외국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참고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거쳐 여성의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근거였던 헌법조항을 폐지한 것, 아르헨티나 하원에서 임신중지 허용 법안이 통과되었던 것,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생명의 권리에 관하여 발표한 일반논평, 2018년 국제 안전한 임신중지의 날을 기념하여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실무그룹에서 발표한 공동서한 등의 내용과 취지를 정리하여 제출했습니다.

낙태죄 폐지 운동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학자, 의료인 등도 헌법재판소에 수많은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면서 위헌 결정을 촉구하습니다.

 

헌법불합치 결정과 그 이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서 든 이유들은 2012년의 결정보다 진일보한 것이었습니다.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는 것, 또한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하므로, 양자택일 방식으로 임신중지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들입니다.

당연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법을 개정할지,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현재 외국의 입법례는 여성의 건강권을 더욱 보장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질랜드에서는 임신 후 20주까지 여성의 결정만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2020년 개정될 법률에 낙태죄 폐지 운동의 요구가 충실하게 담길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잘 살피고 대응하겠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이 전해진 후 환호하는 모습 / 출처 성과재생산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