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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7일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 모습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낙태죄 정부안의 문제점과 올바른 입법방향

글 / 류 민 희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들(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의사’에 관한 부분, 이하 ‘낙태죄 조항’이라고 합니다)이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마침내 66년만에 평등으로 진정한 첫 걸음을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19. 4. [승소소식] 헌법재판소, 낙태죄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 류민희 최현정
▶ ‘낙태죄’ 헌법소원 변론기 / 최현정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직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활동가들 및 시민들이 헌재의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 성과재생산포럼

 

헌법재판소는 위 헌법불합치결정에서 입법자에게 2020년 12월 31일의 입법시한까지 개정입법의무를 부여했습니다. 여성단체들은 직후 성명을 통해 기본권이 보장되는 명확한 개정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올 8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에서도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와 헌법, 국제인권규범에 근거한 비범죄화 권고안을 발표했습니다. 여러 정책기관에서도 해외의 좋은 정책들을 참고한 연구보고서가 출간되었습니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여성의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하지만 정작 입법의무가 있는 정부는 어떠한 의견 수렴도 없이 침묵한 채로 1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2020년 10월 7일 마침내 정부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개정안은 좋지 않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부의 개정안은  정부안은 기존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예외적 허용 요건을 형법 제270조의2로 신설하는 안입니다. 개정안에 의하면 형법 제269조의 낙태죄 조항은 문언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형법 체계상 임신중지는 원칙적으로 불법이고, 위법성조각사유가 인정되어야만 범죄가 되지 아니한다. 즉, 임신 14주까지는 여성 요청이 있으면 허용하고, 이후 24주까지는 성범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친족간 임신,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여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임신중지를 허용합니다. 이때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여성은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에 더하여 모자보건법에는 임신중지시술에 대한 의사의 진료 거부권을 명시하고, 미성년자의 경우 동의 요건을 규정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범죄이고 예외적인 시기/사유로 허용되는 행위라는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67년간 쌓여온 낙인은 제거 불가능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낙인의 강화될 수 있습니다. 도움이 아닌 지원이 아닌 형태로, 허용사유와 조건을 여러 겹으로 더했습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의 자기 낙인, 의료계의 낙인, 계층적, 지역적 어려움까지 더하면 수 겹의 장벽이 있고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위험한 임신중지로 이어지고 건강권, 생명권 침해로도 이어집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낙태죄를 사실상 부활시키는 정부 입법안 즉시 철회하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첫째, 입법시한을 2달 여 남기고 논의 시작점 자체가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후퇴해서 시작된 손해는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정부 개정안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이자 좋은 정책이라는 입증책임은 정부에게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였습니다. 셋째, 형법의 위헌성에 대해 정부는 66년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기본권을 침해당한 집단이 소송과 운동을 통해서 스스로 구제를 꾀하여 만든 전환의 국면을 엎어버리는 무책임한 개정안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한참을 돌아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당혹감과 분노를 표현하셨습니다. 헌법재판소 사건을 수행하신 공동대리인단 변호사님들께서도 여러 지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한겨레21] 재생산 정의 헌재가 연 문, 정부가 닫았다 / 차혜령
▶[한겨레] 그만, 낙태죄를 놓아주십시오 / 천지선

 

정부는 질문을 잘못 던졌습니다. 이제 “어떤 조건 하에 허용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이 가장 접근성을 보장하여 여성의 결정권을 진정하게 보호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 ❏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 제공하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도록 비범죄화하여야 합니다.

  • ❏ 모든 여성과 소녀를 비롯한 임신 가능한 사람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 이 의료는 접근, 이용 가능하고 양질의 의료여야 하고, 자율성, 존엄성, 프라이버시, 비밀유지가 지켜져야 하며, 정보에 입각한 동의 하에 제공되어야 합니다.

  • ❏ 자율적 결정을 촉진하고 가능케 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포괄적 성교육 등 충분한 사전정보가 있어야 하고, 장애, 지역, 인종, 생활수준 차이가 장벽으로 기능하지 않아야 합니다.

  • ❏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가 존중되는 법과 정책 수립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이 헛소동을 통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국가가 67년간 보거나 들으려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완벽한 폐지’를 위해 꼭 겪어야했던 과정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이 목소리들을 충분히 경청한다면 어쩌면 2021년 1월 1일 우리는 온전하게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법과 정책을 마침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해봅니다.

 

2018년 7월 7일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 모습

2018년 7월 7일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 모습  ⓒ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