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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성기 성형수술’ 꼭 필요한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고 유현석 변호사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켰습니다. 이 기금은 지금까지 여러 공익소송사건을 지원해 왔습니다. 본 기고는, 희망법 한가람 변호사가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을 통해 2016년에 진행하고 승소했던 ‘성기 성형 없는 트랜스젠더 여성 성별정정 사건’을 중심으로 쓴 글로, 오마이뉴스에 기고되었던 것을 희망법 회원님들께 전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성기 성형수술’ 꼭 필요한가

 

글 / 한 가 람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일에 대하여,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느냐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바뀐다 한들, 아마도 엄청난 변화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성별을 되찾음으로써, 저는 포털 사이트에서 여자로서 실명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제가 트랜스젠더임을 상대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불쾌하지 않을까, 혹은 제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매 순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겪어도 참거나 도망 다니지 않고 마음 편히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가도, 제가 본인임을 여러 차례 증명하거나,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동물원 원숭이처럼 검사를 받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고, 빠르고 마음 편히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유령도 범죄자도 수상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기준에서 경쟁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것은,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이자, 전부입니다. 제게 지금 그리고 미래의, ‘삶’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2월 추운 겨울날,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법정을 나서기 직전 재판장의 허락을 얻어 말을 이어나갔다. 이 목소리에 대한 응답을 바랐다. 트랜스젠더의 삶과 역사와 목소리와 고난과 노력을, 법이 귀 기울여 듣고 수용하기를 기대했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남’에서 ‘여’로 정정해 달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신청이, 단지 여성 성기를 형성하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것이 이 공익소송의 시작이었다.

 

2016년 2월 17일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성기성형 없는 트랜스젠더 여성 성별정정 신청 사건’의 심문기일이 열렸다.

 

 

성전환수술 해야 성별 정정 해준다는 대법원 예규

2006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법적 성별 변경을 허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첫 결정이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성전환자 성별정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의 기준을 판례와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통해 ▲ 만 19세 이상의 행위능력자로서 ▲ 사회생활상 전환된 성으로 살고 있고 ▲ 혼인중이 아니면서 ▲ 부모의 동의를 얻었으며 ▲ 의료적으로 2인 이상의 정신과전문의의 정신과 진단이 있고 ▲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으며 ▲ 전환된 성으로의 외부성기 성형수술 등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받을 것 등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이 가능한 국가 중 가장 엄격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랜스젠더 개인이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트랜스젠더 한명 한명이 처한 건강이나 경제적 여건, 삶의 이력 등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이러한 요건 달성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 요건들은 의료적인 관점에서도 지나치게 신체에 침습적 의료조치를 요구하거나 의료적 필요성이 없더라도 시술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는 국가가 법적 신분 확인을 위하여 외과수술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히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마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2011년에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생식능력 제거 및 ‘성전환수술’을 규정한 독일 성전환자법 조항에 대하여 위헌으로 판단한 바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에서도 이에 대한 법원의 위헌 판결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전환자 성별정정의 요건으로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외부성기’를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법적 성별이 여성이지만 남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가진 30여 명의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해, 사회생활상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에게 외부성기 성형수술까지 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 남성성기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별 정정을 허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울산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가정법원 등에서도 이러한 결정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남성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 성별정정의 요건을 충족한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런 법원의 결정들은 트랜스젠더 남성에게만 한정된 결정이었고, 그때까지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못한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서는 성별정정 허가가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역시도 여성성기 성형수술을 법적 신분 확인의 요건으로서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컸다. 그렇지만 성기성형 수술의 과정이나 비용에서도 차이가 있었고, 여성으로서의 신체에 대한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적 관념 또는 편견을 넘어서기가 힘들었다.

누구보다도 트랜스젠더 여성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앞서 소개한 2013년 서울서부지법 결정 이후에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트랜스젠더 남성에 이어 트랜스젠더 여성이 나서다

2015년 9월,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법정책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 넷은 공동으로, 여성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두 명을 대리해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요건 완화를 위한 기획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공익소송 지원을 신청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 요구되는 현재의 기준과 절차가 너무 높아, 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 공익소송의 목표는 명확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법적 성별 변경의 실질적인 장벽을 낮추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법적 성별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당시까지 존재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기로 했다.

그럼으로써 트랜스젠더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나아가 성별 변경이 안 됨으로써 오히려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혼란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 사건을 통해 보다 용이하게 성별정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남성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한 성별정정허가 결정은 그 공익성과 의미를 인정받아 2013년 <한겨레21>이 선정한 ‘최고의 판결’로 선정됐다. 울산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서울가정법원, 대구가정법원, 제주지방법원 등 각 지방법원에서도 유사한 결정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많은 트랜스젠더 남성들이 법적 성별을 정정하여 사회적 성별과 법적 성별의 불일치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아온 직업과 가족생활, 의료접근권 등에 있어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기대하며 두 명의 당사자들과 함께 신청을 준비해 나갔다. 천주교인권위원회로부터도 이번 새로운 공익소송을 지원하겠다는 연락을 받아 보다 본격적인 소송 준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도움과 노력 끝에, 드디어 2015년 10월 12일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이후에는 기다림이 계속된다. 대법원예규에 따라 반드시 열려야 하는 심문기일이 언제가 될까 하며 기다리거나, 법원의 사건진행 상황부를 온라인으로 습관처럼 들어가서 보거나, 법원에 전화해서 혹시 언제쯤 열리게 될 것인지 문의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2016년 1월에 심문기일이 열린다는 통지를 받고 안도했지만, 2월로 한 차례 연기가 된 다음에야 심문기일을 가질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렇지만 법원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설렘과 기대와 떨림으로 가득했다.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심문기일이 진행되었고, 첫머리에 소개한 것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법정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돌아온 후 다시 계속되는 것은 또 기다림이다.

결과가 언제 나올까? 허가 결정이 나올까? 기각이 되면 어떻게 한담? 변호사들도 당사자들도 기다림과 또 걱정이었다. 당사자들이 추가로 준비한 진술서 같은 자료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하나라도 더 찾은 최신의 자료들을 정리해서 제출한 것도 몇 차례였다.

2017년 2월 14일, 법원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심문기일이 열린 지 꼭 1년이 될 무렵이었다. 다른 일 때문에 국회에 들어가 국회의원 보좌관을 만나 인권 관련 법안 발의를 위해 설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국회의원회관의 아무도 없는 한 휴게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결정문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허가 결정이었다!

바로 두 분 당사자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런 날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밸런타인데이 선물 같았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야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로를 안았다. 가장 따뜻한 포옹이었다. 법원의 결정문 또한 그랬다. 우리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었다.

“신분관계 정립의 기준을 보다 명확하고 일의적으로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연령, 출생지, 부모 등과 달리 현실에서도 쉽게 다양함이 목격되는 성별 특성 등을 감안한다면, 성전환증을 인정하고 따라서 그에 따른 성별정정을 인정하는 한, 또한 그 성별정정이 제3자의 이익을 해하거나 탈법적인 수단으로 성행할 우려가 없는 한 성전환자들의 특성은 최대한 반영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외관이 일반적인 성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일반인의 혼란감은, 경제적 어려움, 수술의 위험성 또는 자신의 성생활방식 등에 대한 선택으로 외부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채 살아가는 성전환자들이 외부성기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이 되지 않음으로써 겪게 되는 사회적, 경제적, 인격적 고통에 비하면, 당연히 감내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2019. 2. 14.자 2015호기302 결정)

 

 

지난해 7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 참가자들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은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반대하고 있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성별정체성은 허가의 대상일 수 없다

이 공익소송에 따른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의 결정은 외부성기 성형수술 없이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이루어진 첫 성별정정 허가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대단히 컸다. 이 결정은 성별정정에 있어 외부성기 성형수술 요구가 갖는 위헌성을 지적했다. 트랜스젠더들이 처한 구체적 현실에 관심을 두면서, 성별정정 허가를 위해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한편으로, 대법원의 판례와 예규가 변경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의 한계 역시 명백하다. 어느 법원에서는 되고, 어느 법원에서는 안 되고의 문제부터가 심각하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정정 허가를 얻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에 따라 인권침해적인 보정명령이나 보정권고, 심문기일에서의 부적절하고 존엄성을 침해하는 질문이나 요구들을 피할 수가 없는 것도 큰 문제다.

2015년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에 대한 인권상황 검토 후에 발표한 ‘최종견해’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위원회는 성별정정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되는 과도한 제한에 관하여 우려를 표명한다.(…)대한민국은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의 법적 인정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이와 같은 국제인권기구에서 제시하는 기준과 권고를 제대로 받아들일 날은 언제일까.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의 삶 또는 존재를 ‘허가해주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 지금 성별정정의 절차와 기준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인권침해의 현실은 제자리걸음일 수 있다. 성별정체성은 국가나 다른 사람에게 허가나 허락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권리로서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권리로서의 성별정체성을 법이, 또 우리 사회가 더 확고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공익소송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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