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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

글 / 박 한 희

 

✽본 글은,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의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시리즈에 실린 박한희 변호사의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화장실 어디 있어요?”
식당, 카페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가게 내에 설치된 경우도 있고 공용 건물에 별도 설치된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가게에는 화장실이 있다. 만일 어떤 가게를 이용하는데 화장실을 전혀 사용할 수 없다면 해당 가게를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이를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그 결과 가게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살림의원 화장실 입구. 남녀 구분이 아닌 여성전용 화장실과 가족화장실·공용화장실로 구분된 문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

가게 등에 설치된 화장실의 대다수는 남녀, 두 가지 성별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규모가 작은 가게의 경우 화장실이 한 칸만 존재하는 1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 역시 소변기와 대변기가 같이 있는 등 성별 구분을 전제로 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 화장실 앞에서 망설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이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하겠지만, 기본적인 개념을 먼저 짚어보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태어날 때 지정된 주민등록상의 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내면의 성별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말한다. ‘젠더퀴어(genderqueer)’는 중성, 무성, 양성 등 여성/남성이 아닌 성별로 자신을 인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인터섹스(intersex)’는 생식기, 성선, 염색체 등 성적 특징이 통상적인 여성/남성과 다른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그 수가 적지 않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트랜스젠더 등은 많은 경우 법적 성별과 자신이 살아가고 겉으로 인식되는 성별이 불일치한다. 가령 법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성별정체성은 여성이고 주변 사람들 역시 외관상 여성으로 인식하거나,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경우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모와 법적 성별이 불일치하기에 이들은 두 가지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게 된다. 가령 법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소위 ‘여성적’인 모습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면, 남성 화장실에 갈 경우 다른 남성들이 여성으로 오해해서 이상한 시선을 받거나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고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법적 성별이 남성임이 알려진다면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어느 쪽 화장실도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의하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90명 중 37명(41.1%)이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2017년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이 실시한 <한국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256명 중 67명(26.2%)이 공중화장실 이용 시 이용을 제지당하거나 모욕적인 발언을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우도 5.1%인 13명에 달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화장실이 트랜스젠더 등에게는 차별과 폭력을 감수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밖에서는 화장실을 가급적 이용하지 않으며, 그러기 위해 물도 별로 마시지 않는다. 1인 화장실이 설치된 카페의 위치를 외우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급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한편으로 성별 분리된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트랜스젠더 등만이 아니다. 긴 머리를 한 남성이 남성 화장실을 이용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았다거나, 짧은 머리의 여성이 여성 화장실에서 남자로 오인 받았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짧은 머리의 여성 지인의 경우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항상 신분증이 든 지갑을 지참한다. 혹시라도 오해를 받았을 때 자신이 여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어린 딸을 둔 아버지나 활동지원인과 장애인 이용자의 성별이 다른 경우처럼, 두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경우에도 화장실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남성으로 구분된 화장실은 모두에게 차별 없이 열린 공간이 결코 아닌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성중립 화장실 입구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

이처럼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을 맘 편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여기서 ‘성중립’은 단순히 ‘남녀 공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남녀 공용 화장실’은 단지 공간상의 문제로 성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합쳐 놓은 것이다. 이에 비해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은 명칭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성별, 장애, 동반자 유무 등에 따른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이다.
구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각자 집에 있는 화장실이나 비행기 화장실을 생각하면 된다. 성별을 구분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고, 안에 변기와 세면대 등이 갖춰져 있다. 성중립 화장실은 이러한 화장실이 단독 내지는 이어진 구조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공간 구성에 따라 세면대는 공용으로 바깥에 두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 원칙은 완전히 밀폐되고 독립된 화장실 안에 성별, 장애 특성에 따른 편의시설을 동등하게 구비해놓은 형태이다. 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특성에 따라 편안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하는 화장실이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공공기관 및 상업시설에서 이처럼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권단체 사무실이나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병원에 설치된 사례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여성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차별적 구조에서 오는 여성들의 불안감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불법촬영, 성폭력 등의 범죄는 성별이 분리된 화장실에서도 일어나며,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되었다고 그러한 범죄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럽 등지에는 성중립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이로 인해 성범죄가 증가하였다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없다. 따라서 안전의 우려가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막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별없는 가게를 위해

이와 같이 성중립 화장실이 필요한 이유와 그 구조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사실 이러한 화장실을 널리 이해시키는 방법은 백 마디 말보다 한번 사용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된 가게에서 이를 이용해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경험할 때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 가게들에서 적극적으로 성중립 화장실의 설치를 고려해보기를 바란다. 만일 현재의 구조나 여러 조건상 어렵다면 대안으로서 조금씩의 시도라도 해보기를 바란다.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한 병원은 기존의 남녀 구분된 화장실을 여성 화장실과 성중립 화장실로 변경하였는데, 이러한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또한 1인용 화장실만이 있는 가게라면 해당 화장실의 표지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임을 표시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가령 일본 후지TV 본사의 경우 기존의 다목적 화장실 앞에 무지개를 부착하고 ‘누구나 화장실(だれでもトイレ)’이라는 표지판을 달아 그 취지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 후지TV 성중립 화장실 입구

 

이처럼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은 단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조건들을 고려한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하다. 그러한 시도들에서 가장 기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차별과 폭력, 모욕에 대한 두려움 없이 어떻게 평등하게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더 나은 답을 고민한다면, 차별 없는 가게의 화장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논의의 방향성이 보일 것이다.